제주 가면 추억 속 말들을 만날 수 있을까
힌남노가 전국을 강타할 것이라는 예보가 있었다. 드디어 제주 서귀포 남남서쪽에 힌남노가 다다랐다는 아침 신문 기사를 보며 잠시 제주를 떠올려본다. 사실, 코로나19가 여전함에도 연휴가 오면 많은 사람이 제주도를 찾았다. 연인끼리 부부끼리 또는 가족과 함께 일상을 떠나는 것을 보면 늘 부러웠다.
제주를 마지막 다녀온 것이 20년도 넘었다. 한 번은 친구와 함께 또 한 번은 남편 친구 가족과 함께였다. 그러나 갈 때마다 비를 몰고 다녀 제대로 제주를 맛보지 못했다. 친구와는 커피와 맥주만 마시다 돌아왔고, 남편 친구 가족과는 골프 대신 카드놀이와 수다로 시간을 보내다 왔다.
한 번은 꼭 제주를 제대로 여행하고 싶다. 그 시절에 비하면 엄청난 개발이 이루어졌다고 하니 볼거리와 할 거리가 많을 것 같다. 올레길도 걸어보고 성산 일출도 보고 싶다. 그리고 아주 오래전 소식이 끊긴 지인도 한 번쯤 만나보고 싶다.
그를 처음 만난 것은 골프 동호회 모임에서였다. 아직 현역으로 일하고 있는지 신앙심은 더 깊어졌는지 궁금해진다. 골프를 함께 치다 보면 상대방의 인품과 성품도 조금은 알게 된다. 실력도 실력이었지만 특유의 유머 감각이 우리를 유쾌하게 했다. 무슨 내용이었는지는 기억도 나지 않지만, 밥 먹다 너무 우스워 천장을 두들기며 배꼽을 잡은 적도 있었다. 그러다 한 사람은 LA로 이민을 떠났고 남은 이와는 몇 년 더 골프를 함께 쳤다. 그러나 골프에서 손을 떼니 점차 연락도 뜸해지고 결국 새해 인사와 안부를 묻는 정도가 되어버렸다.
문득 ‘제주 오면 연락 주세요.’라던 마지막 말이 생각난다. 정말 제주 한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아주 오래된 메일함에서 간신히 그의 주소를 찾아냈다. 주고받은 메일을 읽다 보니 그 시절 우리 삶의 모습이 담겨있기도 했다.
‘당신이 어디에 있든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도 모를 정도로 바쁘게 살지는 말라. 인생은 경주가 아니라 그 길의 한 걸음 한 걸음을 음미하는 여행이다. 어제는 역사이고 내일은 미스터리며 그리고 오늘은 선물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현재(present)를 선물(present)이라고 한다.' 늘 바쁘게 허둥대며 사는 나에게, 조금 천천히 가라는 경계의 말도 보내왔다.
내 가족의 부음을 위로하며 써 보낸 글도 있었다. ‘계절의 변화를 실감하며 이 아침에도 떨어지는 나뭇잎을 바라봅니다. 저도 고모부님께서 하늘나라 부르심을 받으셔서…. 평소에 아주 건강하셨고 경제적인 부도 많이 쌓으셨는데 아쉽게도 일 년간 폐암으로 고생하시다 그만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죽음 앞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제주 오면 연락 주세요.’
제주에 가면 추억 속의 말들을 만날 수 있을까? 시월이면 제주에 가게 될지도 모르겠다. 이미 지나가 버린 시간을 꺼내어 이야기하는 것이 어쩌면 부질없는 일이기도 하겠다. 하지만 조금은 설레는 일이기도 하다.
이 거대한 태풍 속에서 그곳 사람들도 그들의 생계도 그리고 우리의 세상도 모두 안전하기를 기도한다.
사진출처:제주도 서귀포시 예래동 앞바다에 집채만 한 파도가 치고 있다(2022.09.04 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