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릿이 묻고 햄넷이 답하다

세익스피어를 다시 만나다

by 셀린

오랜만에 조조영화를 보았다. 티켓 가격이 저렴하다는 이유만은 아니다. 물론 경로우대를 더하면 영화표 값은 더 저렴해지지만. 조조 영화는 영화관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10시 이전에 상영하기 때문에 조용한 시간에 번잡하지 않게 영화를 즐길 수 있다. 더 좋은 점은 시간을 효율적으로 쓸 수 있다는 점이다. 아침나절에 안락한 영화관에서 좋아하는 영화 한 편을 끝낼 수 있다는 이점.


그래도 아침 9시 10분 조조영화를 보려면 바쁘다. 아침 챙겨 먹고 볕이 좋으니 빨래도 널어야 하고 화장실 청소까지 하고 나서려니 종종걸음을 칠 수밖에 없다. 지하철로 10분 거리에 영화관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남들은 굳이 영화관까지 봐야 하냐고 하지만, 영화는 극장에서 봐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 하나다. 나중에 OTT에 올라오면 보면 되지 않느냐고, 그것도 꼭 조조를 봐야 하냐고 묻지만 나름 영화에 대한 내 주관이 있다. 큰 스크린에서 웅장한 음악과 함께 보는 충만감도 좋고 늘 들리는 것은 아니지만 자막 대신 배우의 목소리와 대사를 듣는 것도 또 다른 재미다. 그래서인지 극장에서 감명 깊게 본 영화는 아무리 좋아도 OTT나 DVD로 다시 보지 않는다. 스크린에서 보았던 감동과 느낌이 변색되기 때문이다.


오늘 본 영화는 햄넷(Hamnet). 요즘 지역극단에서 <한 여름밤의 꿈> 공연 연습을 하고 있어 이 영화에 관심이 많았다. 영화 줄거리는 셰익스피어의 젊은 시절, 자연과 교감하는 여인과의 사랑, 결혼 후 아이들과 보내는 가난하지만 행복한 시간. 그리고 혼자 런던으로 떠나 연극과 극단에 바치는 그의 열정과 번뇌를 그리고 있다. 무엇보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그의 아들 햄넷의 성장과 죽음에 관한 서사였던 것 같다. 질병으로 고통받는 아들의 마지막을 함께 하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가족을 제대로 챙기지 못했다는 미안함, 그러나 일을 놓을 수없었던 그의 고뇌가 고스란히 전해졌다.

월과 아녜스가 사랑하게 되는 장면은 신선했고, 고통스러운 출산의 순간과 질병으로 인한 죽음의 순간은 호흡을 멈추게도 했다. 그러나 따뜻하고 잔잔한 위로의 순간도 많았다. 16세기말과 17세기초에는 햄넷과 햄릿을 혼용해서 썼다는 첫 오프닝자막은 셰익스피어의 비극 <햄릿>과 아들 햄넷의 연관성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아들 햄넷의 죽음이 훗날 비극 <햄릿>으로 이어지는 정서적 연결을 암시하는 말. 심지어 죽음 기록에서도 두 이름이 혼용된 것임을 말하고 있었다니.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햄넷 영화 속 <햄릿> 공연 부분이었다. 셰익스피어가 아들을 잃은 슬픔을 직접 말하지 못하고 결국 연극 작품을 통해 아들 햄넷을 애도하는 순간은 큰 울림을 주었다. 독살당한 햄릿의 선왕으로 셰익스피어가 출연하고, 영화 속 햄넷을 연기한 배우(Jacobi Jupe)의 실제 형(Noah Jupe)이 햄릿으로 연기하는 장면. 어쩌면 햄넷이 살아있었다면 햄릿 같은 배우가 되지 않았을까.


언젠가 대학로에서 본 공연 <햄릿>은 고전적이고 조금은 무겁고 여전히 질문을 던지며 우리를 되돌아보게 했다.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어쩌면 식상한 대사일지 모르지만 햄릿의 우유부단함이나 처절한 복수심을 대변하는 대사다. 이름 있는 배우들이 열연했던 공연이니 만큼 기억에 오래 남았고 또 모처럼 작품 햄릿을 제대로 이해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햄릿의 마지막 대사의 의미는 여전히 각자의 몫이지만.

오늘 본 영화 햄넷에서 햄릿이 던진 질문에 조금은 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 나의 진실을 전해달라, 남겨진 사람들에게 의미 있는 이야기를 전해달라.' '죽은 사람의 마지막은 침묵으로 남는다(The rest is silence.)'. 죽고 나면 더 이상의 질문도 독백도 사유도 없다. 복수와 정의를 추구했지만 결국 침묵과 공허만이 남은 마지막. 영화 햄넷은 셰익스피어의 비극 작품 <햄릿>이 어떻게 탄생되었는지, 그 대사들은 어디에서 왔는지를 보여주었다. 나도 잠시 햄넷과 햄릿이 혼용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