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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셀린 Jan 14. 2023

집으로 오는 길

귀향


설날이 일주일밖에 남지 않았다. 고국으로 돌아와 첫 번째 맞는 설날이다. 선물은 무엇으로 할지 음식 준비는 어떻게 할지 생각도 많고 고민도 많지만, 마음만은 풍성해진다. 마트 앞에 진열된 선물 세트를 둘러보며 이런저런 생각에 지나간 시간이 아스라이 펼쳐진다. 아직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했다면 어땠을까? 그저 무사히 돌아왔다는 안도감에 이 시간이 이 계절이 그리고 여기 고국이 고마울 따름이다.     

 

 돌아보면 참 먼 길을 돌아왔다. 시골에서 태어나 서울로 진입해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하고 결혼했다. 아이들 기르는 내내 서울을 지켰다. 30대 이후부터는 남편 직장 관계로 런던, 시드니, 뉴욕으로 돌아다니며 살았다. 좁은 세상을 떠나 처음 접한 이국에서의 삶은 신선하고 감동적이었다. 그러나 IMF이후 오십이 다 되어 생업을 위해 떠났던 해외 생활은 뜨내기 같았다. 그런 마음 탓이었을까, 십오 년 넘게 살았음에도 뿌리내리지 못했다. 어쩌면 뿌리내리려 애쓰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언젠가는 돌아갈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을 것이다.     

 

 귀소본능은 비단 동물에게만 있는 현상은 아닐 것이다. 타향살이하는 사람들은 언젠가는 고향으로 돌아가 노후를 마음 편히 살고 싶다고 말한다. 고국을 떠나 먼 이국에서 이미 터전을 잡은 이민자들도 늘그막에는 고국에 돌아가 살고 싶다는 말을 종종 했다. 아메리칸드림을 안고 고국을 떠나온 이민자 대부분은 힘들게 일한 결과 많은 것을 일구어냈다. 그러나 성공하겠다고 고국을 떠나왔으나 주류사회에 동화되지 못한 채 정체성과 사회문화적 갈등을 겪으며 이방인처럼 사는 이민자들도 있다. 고국으로 돌아오고 싶어도 돌아올 수 없는 사람들도 있다. 

 토마스 하디(Thomas Hardy)의 소설, <귀향(The Return of the Native)>에서 외지에 나가 살던 크림(Clym Yeobrigt)은 고향 사람들의 삶이 묻어있는 곳, 공동체의 기억이 남아 있는 고향 히스로 돌아가는 것을 꿈꾸다 결국 귀향한다. 반대로 유스테시아(Eusticia Vye)는 지루한 히스의 삶에 권태를 느끼며 도시적 이국적 삶을 동경하며 시골 히스를 벗어나고 싶어 했다. 이러한 결정은 온전히 삶의 철학에 대한 각자의 선택에 달려 있다. 


 사는 일은 떠돌아다니는 일인지도 모른다. 떠나온 곳으로의 마지막 귀환이 또 다른 시작점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소음과 미세먼지, 높은 생활비와 불안한 국내 정세 등 외부적인 여건을 감당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사람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그래도 나는 사람 사는 냄새나는 고국에서의 생활이 좋다. 내게는 모국어로 글을 쓰고 모국어로 아픔과 외로움을 말할 수 있다는 것은 큰 위로가 된다. 

 이번 설에는 어쩌면 고향에 다녀올 수 없을 것 같다. 추석쯤에나 떠나보려 한다. 아직 아버지의 산소가 남아있고 사촌오빠가 사는 옛 시골 할머니 집. 여름방학 때면 어김없이 개울에서 고둥을 잡고 콩서리를 하며 뻐꾸기 소리를 들었던 추억이 묻어있는 곳이다. 냇가로 나를 밀어내 내 무릎이 빠졌던 사고를 그는 기억이나 하고 있을까? 어쩌면 그도 이제는 늙었을 것만 같은 생각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마당에 있던 우물은 아직도 그리 깊은지, 반질거리던 장독대 옆 감나무는 지금도 버티고 있는지, 울울한 바람 소리를 내던 뒤꼍 대나무숲은 여전한지, 마음은 어느새 시골집에 닿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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