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y'n magazine | 정읍의 숨겨진 이야기를 발굴합니다
어떤 지역을 가더라도 동네사람들만 아는 진정한 로컬 맛집, 터줏대감이 있는 법입니다. 이런 곳은 보통 지역 주민들의 입을 통해 소문나는 법이라 외부인은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정읍에는 지역 주민뿐만 아니라 외부인에게도 많은 사랑을 받는 곳이 있습니다. 이곳이 모두에게 사랑받는 이유는 맛도 맛이지만, 정읍의 역사와 이야기가 담겨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오늘은 두 음식에 얽혀있는 이야기와 맛에 대해 풀어나가 봅니다.
정읍이란 이름은 우물 정(井)에 고을 읍(邑), 우물의 마을이라는 뜻입니다. 물이 좋아 어딜 가나 우물이 많다는 것에서 붙여진 이름이죠. 자고로 술과 음식은 물이 좋고 풍부해야 하는 법. 정읍은 술과 요리를 만들 수 있는 기본 조건이 좋은 곳입니다.
이를 증명하듯 정읍에서는 ‘죽력고’가 빚어지고 있습니다. 이는 대나무의 진액인 죽력으로 빚은 술입니다. 전라도에서 주로 빚던 술이 전국에 유명해진 계기는 동학농민운동과 관련 깊습니다. 녹두장군 전봉준이 일본군의 혹독한 고문으로 인해 만신창이가 되었는데, 죽력고를 먹고 기운을 차렸다고 합니다.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었고 그 명성을 퍼트릴 수 있었습니다. 더불어 육당 최남선의 조선상식문답에서 조선의 3대 명주로 소개되기도 했습니다.
태인면에는 죽력고를 빚는 무형문화재이자 전통식품 명인, 송명섭 명인이 운영하는 ‘태인 주조장’이 있습니다.
향나무가 반겨주는 주조장은 생각보다 아담한 크기를 지녔습니다. 곳곳을 살펴보면 옹기종기 모여있는 항아리와 커다란 아궁이가 눈에 띕니다. 이들은 죽력고의 핵심인 죽력을 내리기 위한 것입니다. 명인은 예로부터 내려오는 방법을 통해 직접 죽력을 만듭니다. 그 과정이 무척 까다로운데 관건은 불 조절입니다. 불이 꺼지거나 불길이 커지면 애써 만든 죽력을 모두 망치게 되기 때문이죠. 3일 동안 정성을 다해 불을 때야 작은 항아리에 죽력이 내려집니다. 이에 솔잎과 생강, 꿀 등 각종 약재를 넣고 증류해 나오는 것이 죽력고입니다.
언뜻 봐도 과정이 무척 복잡합니다. 더불어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겪으며 죽력고의 명맥은 대부분 끊기게 되었고, 현재 국내에선 유일하게 송명섭 명인의 손에서만 빚어지고 있습니다.
명인은 자신의 이름을 딴 ‘송명섭 막걸리’도 제조하고 있습니다. 직접 농사지은 쌀로 만든 생 막걸리입니다. 감미료가 전혀 들어있지 않아 단맛 없이 시큼하고 걸쭉합니다. 이 맛이 조금 낯설게 느껴질 수 있지만, 본연의 맛을 느끼고자 하는 사람들에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술이라고 합니다. 막걸리는 청와대 만찬에도 오를 정도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인근의 마트에서 쉽게 구할 수 있으니, 태인면에 들리면 한 병쯤 꼭 사 오는 것을 추천합니다.
전북 정읍시 태인면 창흥2길 17
태인면에 흐르는 동진강에는 오염되지 않은 1급수에만 산다는 참게가 살았습니다. 동진강 참게는 조선시대 임금에게 진상해 ‘진상 게’라는 별칭을 얻을 정도로 유명했습니다. 과거 찬바람이 일고 참게의 계절이 돌아오면 동진강 지류에 게살과 움막, 싸리대 통발 등을 설치해 참게를 잡았다고 합니다. 그렇게 잡은 참게는 겨우내 다양한 조리법으로 식탁에 올랐습니다.
그중에서 손이 많이 가는 조리법을 꼽으라면 단연 참게장입니다. 우리 조상들은 간장을 따르고 끓이는 과정을 적어도 3번 반복하며, 마치 한약처럼 소중히 달였다 합니다. 정성이 가득 배인 참게장은 1년이 지나도 살이 삭지 않는 것이 특징이죠.
정읍에는 참게장을 맛볼 수 있는 대일정이 있습니다. 50년의 노하우를 자랑하는 이곳은 조선간장으로 만든 참게장 백반과 떡갈비가 유명합니다.
대일정의 참게장은 쪽파와 양파가 듬뿍 얹어져 조금은 생소한 모습일 수 있습니다. 살이 통통하게 오른 참게장을 한 입 깨물면, 특유의 향과 감칠맛이 혀끝에 감돕니다. 부담스러운 향과 맛은 아니라 처음 먹는 사람이라도 맛있게 즐길 수 있습니다.
참게의 맛을 더 진하게 느끼고 싶다면, 밥 한 숟갈을 게 뚜껑 안에 넣어 슥-슥- 비벼 먹어보세요. 감동적인 풍미가 입안에 가득 찹니다. 참게장에 얹어진 양파와 양념장을 밥에 비벼, 갓 구운 김에 싸 먹는 것도 별미죠. 또 다른 메인메뉴인 떡갈비도 퍽퍽하지 않고 부드러워 맛있게 먹을 수 있습니다. 여기에 어마어마한 가짓수의 밑반찬까지 곁들이면 어느새 텅 비워진 밥그릇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전북 정읍시 태인면 수학정석길 3
글 · 사진 | 올어바웃 @allabout
편집 | 언더독스 @underdog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