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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운 Mar 29. 2022

1. 31살, 달리기를 시작하다.

차근차근

2022년 2월의 마지막 날 오후 4시 14분, 나는 달리기를 해보겠다며 밖으로 나갔다.

강원도 철원에서 군 복무를 하던 시절, 뜀걸음을 할 때마다 우리 부대의 행정보급관님은 나이가 많은 나를 놀리셨다. "역시 늙은이라 못 뛰는구먼?" 당시의 설움을 이제라도 극복해보리라.


물론 꼭 그래서 달리기를 시작한 것만은 아니었다. 문득 이번 베이징 올림픽을 보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었다. "내가 지금부터 시작해도 나갈 수 있는 운동 대회가 없을까?"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마라톤이 생각났다. 그래. 한 번쯤은 하프 마라톤에 나가보는 거야. 이 생각이 나를 밖으로 이끌어냈다.


며칠은 무작정 뛰어봤다. 한 번에 3분도 못 뛰는 나 자신이 구멍 나고 너덜거리는 헌 옷 같이 느껴졌다. 어떻게 내 구멍 난 체력을 메꿀 수 있을까? 유튜브를 뒤적거리다 보니 달리기와 관련된 좋은 훈련 어플들이 많았다. 그래 이거야!


그렇게 제대로 된 달리기 훈련이 시작됐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나는 무슨 운동을 해도 초반 적응기에 너무 오버 트레이닝을 해버리는 못된 병이 있는데, 그 병이 도진 것이다. 하루는 혼자 얼마나 신났는지 산책 나온 동네 강아지처럼 뛰었다. 3분도 제대로 못 뛰던 며칠 전의 내 모습은 잊어버리고 숨이 넘어가기 직전까지 뛰고 또 뛰었다. 너무 신나잖아!


그렇게 내 무릎은 아웃되고 말았다.

안녕 나의 무릎아. 아니, 나의 무릎"들"아. 양쪽이 다 아파오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나는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된다. 이 통증은 근육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오는 통증인가, 아니면 부상인가. 이를 확인하기 위해 3일을 쉬고, 아직 덜 회복된 무릎으로 다시 달려보았다.


나의 깊은 고민은 완전히 해결되었다. 나는 무사히 달리기를 마치고 집에 돌아왔다. 드디어 알았다. 나는 얼른 씻고 한의원으로 직행해야 한다는 것을. 너무 아파요 선생님..



겨우 보름 조금 넘는 짧다고 말할 수 있는 기간 동안, 난 한 가지 사실을 배우게 되더라. 모든 것은 단계가 있고, 차근차근 다져나가야 한다는 것을.


사실 나는 내가 왜 어려서부터 무슨 운동을 시작하기만 하면, 초반 적응기에 오버 트레이닝을 해버리는 병이 도지는지 이유를 잘 알고 있다. 내가 아니라 남을 보기 때문이다. 쓸모없는 비교 때문이라는 것이다.

나는 어려서부터 운동 신경이 부족한 것 아니냐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왔다. 그래서 운동 신경이 좋은 친구들을 한 번이라도 이겨먹어보고 싶었다. 그래서 늘 초반부터 오버 트레이닝. 그렇게 초라한 운동 능력을 가진 내 몸은 늘 가소롭게 무너졌다.


다른 사람의 능력을 보고, 그 능력에 빗대어 나 자신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냥 나 자신의 능력을 있는 그대로 사랑해주고 아껴주며 차근차근 성장시켜 나갔다면, 나 자신이 지금보다도 훨씬 더 사랑스러워지지 않았을까? 비록 부족한 능력일지라도 그 나름대로의 아기자기한 매력이 생겼을 테니까.


그래서 나는 결심한다. 무릎이 돌아오면 누구와도 비교하지 않고 묵묵히 달려가기로. 남들이 1km를 4분 30초 만에 달릴 때, 나는 두 배로 9분이 걸릴지라도 그런 나의 능력을 사랑해주고 아껴주기로. 남을 이겨서 행복한 게 아니라, 나의 나 된 모습 그대로를 사랑하여 행복하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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