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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운 Apr 02. 2022

4. 이상한 놈, 이상해지고 싶어진 놈

10대로 돌아갈 수 없는 30대가 10대 청소년에게 쓰는 편지

유튜브를 보다 문득 떠오르는 기억을 끄적이다.





10대 시절, 친구 중에 참 이상한 놈이 있었다.


그 친구는 이름만 대면 모두가 바로 아는 한 예술고등학교의 연극영화과 학생이었다.

나는 그 친구에게 물었다.


나: 넌 어느 대학에 가고 싶어?

친구: 난 대학 안 갈 거야.

나: 왜? 연극영화과 가야 되는 거 아니야?

친구: 고등학교 3년 동안 배웠는데 대학에 가서 똑같은 걸 왜 배워?

나: 에이 그래도 다르겠지. 고등학교랑 대학교랑.

친구: 아무튼 난 안 갈 거야. 난 그냥 내가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래.


그 시절 나는 이 친구를 이상한 놈이라고 생각했다. 세상을 살아가기 위한 법칙이라는 것이 있는데, 대한민국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대학 정도는 무조건 나와줘야 하는데. 이 생각에 갇혀 나는 이 친구를 이상한 놈으로 생각했다.


훗날 나는 대학에 갔고, 이 친구와의 연은 자연스럽게 끊어졌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친구가 아닌, 내가 연기전공으로 대학에 갔다. 아무튼 그렇게 시간은 흐르고 또 흘렀다. 몇 년이 지났을까? 나는 인스타그램을 통해 우연히 이 친구의 인생을 구경할 수 있었다. 이제 이 친구의 머리는 장발이 되어 있었다. 예술가 같은 인상을 풍겼지만 나는 생각했다. 세상을 살아가기 위한 법칙이라는 것이 있는데, 대한민국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단정한 머리를 고수해야 사회생활이 훨씬 편할 텐데. 이 생각에 갇혀 나는 이 친구를 여전히 이상한 놈으로 생각했다.



2022년 3월, 지금의 나는 31살이다.

오늘은 우연히 시간이 남아 유튜브를 통해 뮤지션 장기하 씨의 음악을 들었다. 어떠한 고정관념과 틀에 박히지 않은 채, 자신의 음악을 하는 장기하 씨의 음악을. 멋있었다. 정말 멋있었다. 그러자 문득 그 친구가 생각났다. 내 눈에는 늘 이상한 놈으로 보였던 그 친구가. 어떠한 고정관념과 틀에 박히지 않은 채,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걷던 그 친구가.


31살이라는 나이가 되고 보니, 세상을 살아가기 위한 법칙이라는 것은 없었다. 인생에는 정답이라는 것이 없었다. 하지만 나는 늘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허상에 갇혀 살아오고 말았다. 30대가 되고서야 비로소 나는 나만의 정답을 찾아 떠나고 싶어졌다. 나만의 철학을 따라서. 이제 나는 '이상해지고 싶어진 놈'이 되었다.


이상해지고 싶어진 놈이 다시금 돌아본다.

10대 시절의 정말 이상한 놈은 그 친구였을까, 나였을까.

이제와 돌이켜보니 이상한 놈은 나였다.

나의 삶을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를 따라, 눈치를 보며, 거기에 맞춰 그려갔던 내가 이상한 놈이었다.

나는 나일뿐인데.


10대 시절의 나는 '이상한 놈'이었고, 30대의 나는 늦게라도 '이상해지고 싶어진 놈'이다. 그래. 당당하게 이상한 놈이 되어보자.



나는 청소년들과 함께 지낸 지 10여 년이 됐다. 그 청소년들에게 이렇게 이야기해주고 싶다.

"지나 보니 내가 이상한 놈이더라. 이제 나는 이상해지고 싶어진 놈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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