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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나라 10. 대련

10. 대련

by 정완기

10. 대련(對鍊)



남국의 여름은 견디기 힘든 폭염이 이어졌다.

김춘추는 병부령 죽파(竹破)에게 양신과 김유신의 검술 대련을 허가해줄 것을 요청했다. 그런데 큰 관심과 흥미를 느낄 줄로 여겼던 죽파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며 난색을 표했다.

죽파는 김유신의 승리가 보장된다면 더할 수 없이 좋을 것이나 만약에 패하게 될 경우 그 파장은 만만치가 않을 일이었다. 때문에 좀 더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는 태도를 보였다.

그럼에도 서라벌에선 김유신과 양신이 검술 대련을 벌이게 되었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돌았다. 그 소문은 화랑도는 물론 일반 백성들까지도 알게 되어 크나 큰 관심 속에 화제를 삼았다.

김유신은 화랑도 중 검술 실력이 가장 뛰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고구려의 최고 검객인 양신이 남가라에서 왜인 고수를 눌렀다. 김유신이 그런 실력자와 겨룬다는 것에 비상한 관심을 보였다.

장마철로 접어들자 궂은 날씨가 계속되었다.

양신은 밀두도를 돌려받는 조건으로 김유신과 대련에 응하기로 했다. 그런 가운데 어느 날 김호림이 해론을 불렀다.

"해론군, 요즘에 양신은 어떻게 지내고 있는가?"

"더위 속에서도 검술 수련을 하기에 열중하고 있습니다."

"요즘엔 낭도들 또한 검술 연마에 부쩍 열을 올리고 있다는 소문일세. 아마도 부제와 양신 간의 대련이 큰 영향을 주었다는 생각이 든다."

"주형,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화랑도는 모처럼 큰 바람이 불었다. 나는 그게 식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인데 자칫 그런 분위기가 깨어질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주형, 무슨 연유로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나는 어제 병부령의 부름을 받고 찾아가 뵈었다. 그런데 병부령께선 이만저만 걱정이 크지 않다는 말씀을 하셨다."

"주형, 병부령께선 무슨 걱정을 하시기에 그러십니까?"

"병부령께선 이번 대련은 놓고 고민이 크신데 그 이유는 이렇다. 대련은 해도 하지 않아도 걱정이란 말씀을 하셨다."

"왜 그러십니까?"

"왜냐하면 대련의 결과에 따라 화랑도 전체가 받을 영향은 매우 심각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자연 우려가 크실 수밖에 없다."

해론은 무슨 뜻인지 알만해 잠자코 있었다.

"나는 양신이 밀두도를 돌려받는 조건으로 대련에 응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돌려주지 않을 경우가 생길지도 모르겠다. 만약에 돌려받지 못할 경우가 생기더라도 양신은 대련에 응하지 않으면 안 된다."

"주형, 그건 무슨 뜻으로 하시는 말씀입니까? 양신은 오직 밀두도를 돌려받기 위해 응했습니다. 때문에 잔뜩 들뜬 마음으로 때론 제게 대련이 무산되면 어쩌나 걱정이 된다는 말을 한 적도 있습니다."

"해론, 이번 대련이 누구의 지시로 이뤄진 것임을 아는가?"

"주형, 저도 그 점을 궁금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덕만 공주님의 지시일세."

"주형, 그 말씀 정말이십니까?"

해론은 매우 놀라는 빛을 보였고 김호림은 표정이 엄숙해졌다.

"나는 공주님에게 주형 자리를 하루속히 유신에게 넘기고 싶다는 건의를 수없이 해왔다. 그런데 낭도들의 객관적인 평판을 들어보면 유신보다 보종이 크게 앞서므로 공주님은 고민이 여간 크시지 않다."

"주형, 저도 그 점에 대해선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가? 그러나 내가 폐하께 주청을 해서 유신에게 주형 자리를 일방적으로 넘길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만약에 그랬다간 낭도들이 큰 반발을 하게 되어 큰 부작용이 생길지도 모를 일이라 우려가 크다."

"주형, 저도 그 점을 걱정하게 됩니다."

"화랑도의 반발은 조직을 분열시킬 우려마저 있다."

김호림은 말하고 해론의 안색을 지긋이 살폈다.

해론도 그 때문에 큰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 이유는 자신이 다갈촌 검술 대회에서 백제보다 뒤쳐진 3위에 그쳤기 때문이다. 낭도들의 자존심을 크게 상하게 만들어 낯을 들 수가 없었다.

그런 때 김유신과 양신의 대련을 벌인다는 소문이 나자 낭도들은 여간만 관심이 크지 않았다. 하나 같이 김유신이 양신을 눌러 주길 바라는 기대감에 대련 날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김호림이 다시 입을 열었다.

"나는 유신이 어떻게든 양신을 눌러주길 바란다. 그래야만 이번 기회에 자신의 취약점을 단번에 극복하고 주형 자리를 바라볼 수가 있다."

해론도 그렇게만 되면 낭도들의 불만을 일거에 날려버릴 수가 있고 유신은 앞날이 크게 열릴 호기로 삼을 수가 있다는 생각이었다.

"나는 이번에 유신이 양신을 꼭 제압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과연 그럴 수가 있을까 하는 회의감이 크다. 해론군, 자네는 그에 대해 어떤 예측을 할 수가 있는가?"

"주형, 저로선 예측을 할 수가 없습니다."

"자넨 이미 양신과 겨뤄본 경험이 있지 않은가?"

해론이 대답을 못하자 김호림은 음성이 더욱 무거워졌다.

"물론 결과를 예측하긴 힘든 일이다. 그러나 어떤 결과가 나오느냐에 따라 심각한 사태를 빚을 수가 있는 게 문제이다. 아무튼 사전에 충분한 검토도 없이 덮어놓고 추진해서 이젠 빼도 박도 못하게 생겼다."

해론은 김호림의 말이 자신과 연관된 것이라 힘없이 입을 열었다.

"주형, 면목이 없습니다. 내리시는 꾸지람을 달게 받겠습니다."

"해론, 나는 자네를 탓하고자 하는 말이 아니다. 이젠 조정의 대소 신료들까지 대련 날짜를 빨리 잡으라는 독촉을 하는 판이다. 그러나 여러 가지 문제를 생각해 대련을 없던 일로 만들 수가 없게 되었다."

"주형, 큰 책임을 느끼는 저로선 송구스러울 따름입니다."

"나는 그런 말을 듣자는 게 아니다. 유신이 패할 경우를 걱정한다."

김호림이 같은 말만 반복하자 해론은 좀 반발심이 일었다.

"주형께선 검술에서 승패에만 연연하지 말라는 말씀을 자주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번 대련에선 왜 승패에 관한 말씀만 자꾸 하십니까? "

"내가 그럴 수밖에 더 있겠나? 이번 검술 대결은 유신과 양신 간의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고 신라와 고구려의 대결이 되기 때문이다."

해론은 그 말에 고개를 숙일뿐인데 김호림은 무겁게 입을 열었다.

"병부령께서 내게 하신 말씀을 자네에게 그대로 전하겠다."

"주형, 병부령께서 어떤 말씀을 하셨습니까?"

"양신은 현재 인질 신분이다. 혹여 대련에서 승리를 한다고 해도 밀두도를 돌려준다는 것은 생각해 볼일이라는 말씀을 하셨다."

해론은 그건 약속을 어기는 일이라 반발심이 일었다.

"주형, 본래의 약속과 다르지 않습니까? 약속은 지켜져야 합니다."

"해론군, 만약에 양신이 유신을 이긴다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생각해 본 적은 있나? 그렇게 되면 양신은 큰 어려움에 빠져들지도 모른다."

"주형, 양신이 이기면 무슨 어려움에 빠져든다는 말씀입니까?"

김호림은 좀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해론군, 만약에 양신이 유신을 이기면 분개한 낭도들이 무슨 불상사를 저질을 지도 모른다. 낭도들이 양신에게 위해를 가하려고 든다면 여간 큰일이 아니가? 나는 이런저런 일들을 생각해서 그러는 것이다."

"주형, 저도 우려가 되므로 대련을 취소할 순 없겠습니까?"

"한번 결정이 난 대련을 어떻게 취소를 한단 말인가? 병부령은 내게 책임을 지고 원만한 해결을 볼 수가 있는 방안을 세우라고 하셨다."

"주형께선 어떤 방안을 세우시려고 하십니까?"

"나로선 어떻게든 유신이 이기게 만들어야 만 한다."

"주형, 그게 뜻대로 되는 일은 아니잖습니까?"

해론의 반문에 김호림은 엉뚱한 말을 꺼냈다.

"해론군, 혹시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

"주형, 뭘 말씀하시는 것인지요?"

"변품 장군이 고구려에 당하신 일에 대해서이다."

변품(邊品) 장군은 한수유역을 방어하는 신주정(新州亭) 군의 군주(軍主)로 있었다. 3년 전 그의 처남인 백도(伯圖)는 고구려 국도에 침투해 정탐 임무를 수행하다가 처형을 당했다.

"변품 장군이 양신에 관한 소문을 들으신 모양이다. 때문에 병부령에게 고구려 첩자의 신병을 자신에 넘겨달라는 요청을 했다고 한다."

"변품 장군께선 무엇 때문에 그러신단 말씀입니까?"

"자신이 양신을 처형해 분풀이를 하고 싶다는 말씀을 하셨다네."

김호림의 대답에 크게 놀란 해론은 떨리는 음성이 되었다.

"주형, 병부령께선 어떤 답을 하셨는지 모르십니까?"

"병부령은 대련 이후로 결정을 미루겠다는 말씀을 하셨다. 그보다도 대련 문제부터 해결하는 게 시급하다는 태도이시다. 대련에서 유신이 양신을 이기면 모든 게 다 좋은 쪽으로 잘 풀릴 것이란 말씀도 하셨네."

해론은 김호림이 하는 말뜻이 무엇인지 알만했다. 그러나 김유신이 양신을 이기는 것은 회의적인 일이라 마음은 한없이 무겁기만 했다.

"해론군, 나는 전군님과도 만나서 의논을 했네. 전군님 또한 나와 자네가 책임을 지고 유신이 양신을 이기게 만들라는 당부를 하면서 이기게 만드는 방법까지 내게 제시를 했네."

"주형, 어떻게 이기는 방법이 있단 말씀입니까?"

해론의 질문에 김호림은 그 방법을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유신이 대련에서 승리하면 밀두도를 상으로 받게 만든다. 그런 뒤에 유신은 밀두도를 양신에게 넘겨준다. 그렇게 함으로써 승리를 쟁취해 유신은 바라는 목적을 달성할 수가 있다. 또 양신 역시 밀두도를 되찾고 신라를 떠날 길이 열리게 된다는 말이었다.

해론이 아무런 말도 않자 김호림은 부드러운 음성이 되었다.

"해론군, 나하곤 이 정도로 얘기를 끝내세. 자네는 지금부터 전군님 댁으로 찾아가 뵙고 말씀을 듣도록 하게나."

"주형, 제가 무슨 일로 전군님을 찾아뵙는다는 말씀입니까?"

"병부령은 자네에게 중요한 임무를 지워야 한다고 하셨네. 아마도 전군님은 그에 관한 일을 놓고 자네와 얘길 나눌 생각을 하시는 것 같네."

김호림의 말에 해론은 그만 몸을 일으키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내키지 않는 발길을 옮겨 김춘추의 집으로 갔다. 김춘추는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해론을 맞았다.

"전군님, 주형의 말씀을 듣고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김춘추는 반기는 음성으로 말했다.

"해론님, 잘 왔소. 그런데 대련 날짜가 잡힌 것은 알고 있소?"

"전군님, 대련 날자가 언제로 잡혔습니까?"

"칠석날이요."

해론이 고개만 끄덕이는데 김춘추는 굳어진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나는 해론님에게 병부령이 부여하신 중요한 임무가 있으므로 전하겠소. 지금부터 내 말을 잘 듣고 실천에 옮겨주어야 하겠소."

"병부령께서 제게 어떤 임무를 부여하셨습니까?"

"병부령은 이 일을 놓고 결자해지를 하라는 말씀을 하셨소."

해론은 결자해지란 말이 나오자 그게 무슨 뜻인가를 생각했다. 그것은 자신이 양신을 신라로 데려왔으므로 스스로 책임을 지라는 뜻으로밖에 해석할 수밖에 없었다. 즉 자신은 병부령이 부여한 임무를 책임감을 갖고 해결을 해야 한다는 뜻으로 밖에 달리 생각할 게 없었다.

김춘추는 묵묵부답인 해론의 표정을 살피며 입을 열었다.

"병부령께선 이번 대련을 넣고 우려와 고민이 매우 크신 걸 나도 해론님도 잘 알고 있을 것인데 해론은 어떻게 보고 있소?"

"저도 주형님으로부터 그런 말씀을 듣고 책임감을 느낍니다."

"그러면 됐소. 나는 해론님에게 솔직한 속내를 털어놔야 하겠소. 지금 병부령께선 큰 부담감을 혼자서 떠안고 계시오. 나는 그걸 모른 체할 수가 없어 해론님과 더불어 문제를 해결해야만 하오."

해론은 김춘추가 해결하겠다는 문제가 어떤 것임을 모르지 않아서 침묵만 지켰다. 그런데 김춘추 또한 김호림처럼 자신에게 압박을 가하려는 태도를 보여 중압감을 느껴야 만했다. 그것은 자신에게 어떤 임무를 부여하고 스스로 해결하라는 압박임으로 긴장이 되었다. 너무 무리한 요구를 받게 되면 어떻게 해야 될지 몰라 걱정이었다.

"나는 병부령의 부담감을 실질적으로 해결해 드릴 수가 있는 사람은 해론님 밖에 없다는 생각이오. 해론님은 어찌 생각하오?"

"저는 전군님이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해론의 대답에 김춘추는 음성이 굳어들었다.

"해론님은 주형에께 이미 들은 말씀이 있지 않소? 그걸 내 입으로 또 한다면 해론님은 대련에서 유신님이 양신님을 이기게 만드는 일이요."

김춘추는 비로소 노골적인 말을 꺼낼 태도를 보였다.

"전군님, 저는 하려고 해도 그게 어떻게 가능한 일이겠습니까?"

"그건 해론님이 하기에 달렸소. 이 일은 나라를 위하는 일도 됨을 깊이 인지하고 꼭 수행을 하지 않으면 안 되오. 무슨 뜻인지 알겠소?"

김춘추의 음성은 강압적이라 해론은 입을 다물고만 있었다.

"해론님, 왜 아무런 대답이 없소?"

해론은 겨우 입을 열었다.

"저는 전군님의 말씀대로 해보고자 합니다만."

"해론님은 그 일을 하는데 있어 깊이 유념할 점도 있소."

"전군님, 어떤 점을 유념하라는 말씀입니까?"

"이 일을 유신님이 알아선 절대로 안 되오."

해론은 고개만 끄덕여 보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가슴속은 너무도 답답해 숨이 막힐 지경인데 김춘추의 입에서 뜻밖의 말이 나왔다.

"나는 양신님이 신라를 떠나고 싶어 하는 걸로 알고 있소."

"전군님의 말씀대로 입니다."

"해론님이 유신님을 돕는 건 양신님을 돕는 일이요. 왜냐하면 양신님은 신라를 떠나고 싶어도 밀두도를 지니지 못하면 떠날 수가 없지 않소? 그 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유신님이 양신님을 꼭 이겨야만 하오."

김춘추의 말 대로 되면 좋을 것이나 해론은 입을 열지 못했다.

"해론님은 밀두도 건을 가지고 양신님과 한번 타협을 해보시오."

"전군님, 제가 어떤 타협을 해보라는 말씀입니까?"

"해론님, 내 말뜻을 그렇게도 못 알아듣소? 양신님이 승리를 양보하게 되면 밀두도를 되돌려 받을 수가 있다는 제안을 해 보시오."

"전군님, 저는 대련에서 승리한 자에게 밀두도를 상으로 내린다고 들었습니다. 양신님이 승리를 양보하면 밀두도는 어떻게 됩니까?"

"유신님이 상으로 받은 밀두도를 양신님에게 되돌리게 할 것이요."

"전군님, 그 일을 보장받을 수가 있겠습니까?"

"양신님이 밀두도를 되돌려 받는 것은 내가 책임을 지겠소. 그렇게 되어야 양쪽 모두에게 좋은 일이 되오. 뿐만 아니라 나는 양신님이 고구려로 떠날 수 있게 도와 줄 수도 있음도 밝히겠소."

김춘추의 대답에 해론은 귀가 번쩍 뜨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전군님, 말씀대로 정말 해 주실 수가 있겠습니까?"

"내 말을 믿어도 좋소."

"저는 그에 관한 얘길 양신님에게 꺼내기 좀."

"해론님, 할 수가 없는 일이라도 꼭 해야만 하오."

김춘추의 강압적인 태도에 해론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검인으로 도저히 꺼낼 수가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결자해지를 해야 할 책임감 때문에 입을 열었다.

"전군님의 말씀대로 해보겠습니다."

"해론님, 꼭 성사를 시켜야 하오. 이만 물러가시오."

해론이 몸을 일으키는데 김춘추는 또 다시 입을 열었다.

"해론님, 이 일을 유신님이 알게 되면 안 되는 점 명심하시오."

"전군님의 명을 잘 받들겠습니다."

해론은 김춘추의 집을 나왔지만 답답하기 그지없었다. 막막함에 갈 데가 없는 사람처럼 한동안을 서 있기만 했다. 그러나 김유신과 양신이 함께 좋을 쪽으로 결말이 나야만 했다. 특히 김유신의 승리는 국인이 전부 바라는 바이고, 양신도 밀두도를 되찾게 되어야만 만했다. 그걸 위해 자신은 자존심을 접어야만 했다. 다만 양신에게 양보를 설득할 입이 떨어지지 않는 게 고민이었다. 그런 부담과 압박감에 짓눌린 채 걸음을 옮기다 보니 자기도 모르게 김유신의 집 앞에 이르렀다. 김유신도 한번 만나보고 일을 하자는 마음에 대문 안으로 들어갔다.

김유신은 마침 집에 있다가 해론을 맞아 술상을 차려냈다.

"해론, 그렇지 않아도 혼자서 고민을 하던 중인데 잘 왔네."

해론은 김유신의 얼굴이 어딘지 헐쑥해진 걸로 보였다.

"유신, 검술 연마에 힘을 많이 쏟고 있는 모양이군?"

"검술 연마는 무슨?"

두 사람은 말없이 술잔을 들고 홀짝홀짝 마셨다.

"유신, 마침내 대련 날짜가 잡혔다는 말을 들었네."

김유신은 고개를 끄덕이다 불쑥 물었다.

"자넨 내가 양신님을 이길 수가 있다고 생각하는가?"

"자네는 나하고 다르지 않는가?"

"해론, 내가 자네보다 더 나을 게 무엇이란 말인가?"

"유신, 자네가 날 추켜세우는 말도 할 줄 아는군?"

"해론, 내가 대련에 응한 것은 전군님의 권유를 물리칠 수가 없기 때문임을 자네도 잘 알지 않는가? 물론 나도 처음엔 고구려 최고수와 한판 겨루고 싶은 마음이 없지도 않았네. 그 이유는 낭도들이 내게 거는 기대가 커서 부응을 해보고 싶은 욕심이 생겼기 때문일세."

김유신의 솔직한 심경을 듣고 해론은 미안함을 느꼈다.

"유신, 자네답지 않게 왜 이러나? 자넨 양신을 누를 수가 있네."

"병부령과 전군님도 똑 같은 말씀을 하셨는데 자네까지 그런 말을 하는가? 어젠 품주님이 부르시더니 역시 똑같은 말씀을 하셨네."

품주(稟主)는 왕궁의 수비군을 지휘하는 김용춘이었다.

"유신, 품주님이 무슨 일로 자네를 부르셨단 말인가?"

"덕만 공주님이 날 주형 자리에 앉히려고 하신다는 말씀을 하셨네. 그리고 이번 대련은 공주님이 추진하신 일로 그 목적은 왕실의 기반을 튼튼하게 다지는 계획의 일환이란 말씀도 하셨네."

"이번 대련은 자네에게 주어진 책무가 매우 크다는 말씀이로군?"

"그러므로 나는 어깨가 여간 무겁지 않네."

김유신은 그런 대답을 하고 조정의 기밀 사항까지 들려주었다.

그동안 신라의 병권(兵權)을 장악하는 병부령은 왕족 중 내물계가 독차지 해왔었다. 국왕은 그 자리에 석(昔)씨 계열인 죽파 장군을 겨우 앉힐 수가 있었는데 공주는 그걸 김용춘에게 돌리려고 함을 알렸다.

"병부령을 새로 앉힌다면 어느 분이 되겠는가?"

"바로 품주님일세."

"유신, 품주님이 병부령을 맡으면 내물계의 반발은 말할 것 없고 석씨계마저도 등을 돌리게 만들 우려가 크지 않은가?"

"다행이도 죽파대장군이 그걸 받아들이기로 하셨다네."

"죽파대장군님이 그걸 받아들이셨다고?"

"나중에 더 높은 자리로 승급되기로 보장을 받으셨기 때문일세."

해론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인 뒤 뜻밖의 말을 꺼냈다.

"유신, 우리는 가락국 후예로 어려서부터 목표를 세운 게 있지 않는가? 그 일을 위해서라도 나는 자넬 도울 생각을 하고 있네."

해론이 밑도 끝도 없는 말을 꺼내자 김유신은 술잔을 입에 털어 넣고 아서 그 말을 새삼 음미해 보게 되었다.

김유신은 금관가락국(金官駕洛國) 왕족의 후예였다. 신라에 멸망을 당한 마지막 왕인 구형(仇衡)은 신라에 귀부(歸附)를 했다. 이후로 구형의 아들인 무득(武得)은 진흥왕을 도와 한수 유역 점령에서 큰 공을 세웠고, 손자인 서현(舒玄)은 갈문왕(葛文王) 숙흘종(肅訖宗)의 딸 만명(萬明)과 결혼한 뒤 물금노(勿今努) 땅으로 이주해서 김유신을 낳았다.

해론의 조부는 금관가락국의 야장이었다. 나라가 망하자 신라에 의해 산사철(山砂鐵)이 많이 나는 물금노 땅으로 이주를 당했다. 그로인해 김유신과 해론은 어려서부터 죽마고우로 자랐다.

"유신, 가락국 시절이었다면 엄연한 신분적인 차이로 나는 자네 친구가 될 수는 없을 것일세. 그럼에도 자넨 날 진정한 친구로 대하고 이끌어 주었으니 자네에 대한 보답을 하는 건 당연한 일일세."

해론은 그렇게 말한 뒤 물었다.

"유신, 우리가 어려서 나눴던 만뢰성의 약조를 기억하는가?"

"만뢰성의 약조?"

"두 사람은 서로가 도와 서라벌에서 출세를 하자는 약조 말일세."

김유신은 해론의 말을 듣고 또 생각에 잠겼다.

가락국 후예들은 신라에서 차별을 당하는 형편이었다. 때문에 아무리 출중하다고 해도 출세 길이 막혀 있었다. 다만 김유신의 집안은 형식적이나마 왕족 대우를 받으며 신라 관직을 얻을 수가 있었다. 그로인해 김유신의 가문은 가락국 후예들의 구심점 역할을 했고 해론의 부친인 찬덕(讚德)도 서현의 천거로 가잠성의 현령이 될 수가 있었다.

"해론, 갑자기 왜 그런 얘길 꺼내는가?"

"유신, 자네가 주형이 되면 가락국 후예들이 화랑도에 많이 입도할 수가 있네. 그렇게 되면 가락국의 후예들은 기를 펴고 세력을 형성할 수가 있네. 그러므로 자넨 양신을 꼭 이겨서 주형 자리를 맡아야 하네."

김유신은 새삼 그런 말을 꺼낸 이유를 모르는데 해론이 말을 이었다.

"유신, 자네도 이번에 중요한 임무를 부여받은 셈이 아닌가? 전군님은 그 일이 공주님이 세우신 계획의 일환이라고 하셨네. 그러므로 자네가 크게 일조를 해야만 가락국 후예들도 모두 희망을 갖게 될 것일세."

"해론, 자네까지 왜 이러는가?"

"유신, 이번 대련에서 자네가 능력을 전부 발휘하면 승리를 거머쥘 수가 있다고 나는 확신하네. 자네가 이번에 승리를 쟁취하느냐 못하느냐는 자네 앞날의 분수령이 될 것임을 잘 알고 있겠지?"

"해론, 그렇지만 능력이 미쳐야 이룰 수가 있지 않겠나?"

"유신, 위기는 기회란 말도 있지 않나? 나도 자넬 적극 돕겠네."

김유신은 술잔을 입에 털어 넣고 나서 물었다.

"해론, 자네가 날 어떻게 돕겠다는 말인가?"

해론은 그 말에 대답을 않고 몸을 일으켜 집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이번엔 양신에게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밤늦게야 집으로 들어가 행랑채에서 잠을 자고 이튿날 아침 안채로 들어서자 양신이 물었다.

"해론, 어제 밤엔 어디서 잤나?"

해론은 동문서답처럼 대꾸했다.

"양신, 드디어 대련 날짜가 잡혔네."

"대련 날짜가 잡혔다고? 언제인가?"

양신이 반색을 하는데 해론은 무거운 음성으로 대답했다.

"칠석날일세."

"그럼 닷새밖에 안 남았군. 나는 밀두도를 꼭 돌려받아야만 하네."

"양신, 대련에 관해 자네에게 들려 줄 말이 있네."

"해론, 무슨 말인가?"

"이번 대련에서 승리한 자는 밀두도를 상으로 받게 된다네."

해론은 말을 거기서 끝내고 더 이을 수가 없었다. 김춘추로부터 들은 말을 도저히 양신에게 꺼낼 수가 없었다. 천상 밤새도록 생각을 했던 대로 남가라로 가서 구미 거수를 만나 상의를 해볼 마음을 먹었다.

양신은 들뜨는 기분 속에 다음 말을 기다리는데 해론이 입을 열었다.

"양신, 나는 오늘 남가라로 떠나 거기서 며칠을 지내야 하네."

"해론, 갑자기 남가라는 무슨 일로 가게 되는가?"

"병부의 명을 받고 가는 것일세."

"나도 따라가면 안 되겠나?"

"그럴 수가 없는 일일세."

양신은 그 말에 고개만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해론은 즉시 집을 나섰다. 그로부터 사흘 뒤 지물촌에서 온 구미와 열기가 해론의 집으로 왔다. 양신은 너무도 반가워서 외쳤다.

"거수님, 열기님, 오래간만입니다."

그런데 두 사람은 어딘지 양신의 눈길을 피하는 것 같았다.

"지물촌의 여러 분들도 모두 무고들 하시겠지요?"

양신이 재차 묻자 구미는 그제야 입을 떼었다.

"모두들 잘 지내고 있습니다."

대꾸한 구미는 여전히 양신의 눈치를 살피는 태도만 보였다.

"두 분은 해론님을 만나려고 오신 모양인데 해론님은 남가라로 떠났소. 이렇게 길들이 어긋났으니 어쩌면 좋지요?"

양신의 말에 열기가 대꾸했다.

"우린 남가라에서 해론님을 만나고 왔습니다."

"아, 그러셨군요? 그러면 서라벌은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구미는 그 질문에 대꾸를 못하고 열기가 대신 입을 떼었다.

"우린 양신님과 의논을 드릴 게 있어서 오게 되었습니다."

"두 분이 저하고 무슨 의논을 할 게 있다는 말씀입니까?"

"의논이 아니고 양신님께 부탁을 드려야 하겠습니다."

열기만 계속 대꾸를 하는데 구미가 뜻 모를 말을 꺼냈다.

"사람은 때론 목숨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게 있습니다. 그건 명예입니다. 그 점을 놓고 양신님께 부끄러운 청을 드리고자 합니다."

"거수님은 제게 어떤 청을 하시려고 그러십니까?"

양신의 반문에 구미는 또 요령부득의 말을 했다.

"양신님, 어떤 목적을 위해 때론 명예를 버릴 수도 있습니다."

"구미님, 때론 명예를 버릴 수도 있다니 그건 무슨 말씀입니까?"

양신은 뜬금없는 말을 듣고 두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 구미와 열기도 서로 시선만 나누었다. 양신은 궁금해서 또 입을 열었다.

"두 분은 제게 무슨 할 말씀이 있는 것 같은데 해 보십시오."

구미는 그 말에 어렵게 입을 떼었다.

"해론님은 양신님이 부제님과 검술 대련을 펼칠 소식을 전했습니다."

"아, 그랬습니까?"

"양신님은 밀두도를 되찾기 위해 대련에 응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거수님도 알다시피 밀두도는 철장이 대대로 물려받는 칼인데 제가 그걸 부주의로 지니고 나와 압수를 당한 형편입니다."

구미는 그 말에 용기를 내듯 입을 열었다.

"양신님, 그 일을 놓고 단도직입적으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구미님, 무슨 말씀을 하시려는지 해 보십시오."

"저는 양신님이 밀두도를 되찾는 걸로 만족해 주셨으면 합니다."

"물론이죠. 저로선 더 바랄 게 없는 일인데 왜 그런 말을 하십니까?"

"양신님이 밀두도를 돌려받자면 부제님을 이겨선 안 됩니다."

"거수님, 그건 또 무슨 말씀입니까?"

양신의 반문에 구미는 머뭇거리기만 하고 열기가 대신 입을 열었다.

"이번 대련에서 승자는 밀두도를 상으로 받게 되었습니다."

양신은 고개만 끄덕이는데 구미가 용기를 내듯 말했다.

"저는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양신님을 위해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구미님, 대체 무슨 일이기에 그러십니까?"

"이번 다갈촌 검술대회에서 해론님은 3등에 그치지 않았습니까?"

"그렇게 되었습니다만."

"그 일로 화랑도 전체의 사기를 크게 떨어뜨렸습니다. 뿐더러 큰 불만을 품게 된 낭도들로부터 해론님은 큰 수모를 겪어야 만했습니다."

"구미님, 저도 근래에 와서 그 점을 알게 되었습니다."

양신이 무거운 음성으로 대답하자 구미는 한 마디를 더했다.

"그 일 때문에 큰 문제가 터졌습니다."

"구미님, 그 일 때문에 무슨 큰 문제가 터졌단 말씀입니까?"

"이번 대련은 병부령의 명령입니다. 부제님은 양신님을 눌러서 화랑도의 명예를 회복시켜 놓으라는 막중한 임무를 부여받게 되었습니다."

양신이 고개만 끄덕이자 구미는 말을 이었다.

"그렇지만 부제님이 양신님을 누를 수가 있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만약에 부제님까지 패할 경우 화랑도가 받을 타격은 이만저만 크지가 않게 되었습니다. 그로인해 낭도들의 반감이 더욱 커지면 양신님에게 무슨 위해를 가하게 될지 모릅니다. 해론님은 그런 사태자 빚어지지 않게 문제를 해결하라는 명령을 받기에 이르렀습니다. 뿐만 아니라 전군님마저 나섰습니다. 양신님이 승리를 양보한다면 밀두도를 돌려주는 건 물론이고 고구려로 돌아가는 일까지 돕겠다는 약속을 하셨답니다."

구미의 말을 거들어 열기도 입을 열었다.

"해론님은 차마 그런 말을 양신님에게 꺼낼 수가 없어 남가라로 와 사정을 털어놨고, 거수님이 대신 전하고자 저와 함께 오게 되었습니다."

양신은 그 말을 듣고 무겁게 고개만 끄덕인 뒤 대답했다.

"이건 저에게 반가운 소식입니다. 해론님처럼 순수한 분은 그런 말은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저는 그런 제안을 기꺼이 받아들이겠습니다."

구미는 어두웠던 얼굴에 환한 웃음을 지으며 반문했다.

"양신님, 그 말씀 진심이십니까?"

"거수님, 진심이 아니면 무엇이겠습니까? 친 형제나 다름이 없는 해론님의 일은 바로 제 일입니다. 양보가 아닌 확실한 패자가 되겠습니다."

"양신님, 저는 감사를 표하며 부제님에 관한 말씀을 더 드려야 하겠습니다. 부제님은 지금 화랑도의 주형 자리에 천거를 받은 몸입니다. 그러나 패할 경우 그 여파는 만만치 않게 됩니다. 그런데 양신님이 이처럼 선선히 응해주셔 우린 이제 마음을 놓게 되었습니다."

구미의 말을 듣고 양신은 대답했다.

"저도 이 일로 밀두도를 되찾고 조국으로 돌아가는 게 꼭 이뤄지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두 분들께서도 절 도와주려고 오신 분들입니다."

"양신님이 고구려로 돌아가는 일은 전군님이 책임지고 해결해 주신답니다. 우린 양신님의 의향을 들었으니 그만 돌아가겠습니다."

구미는 말하고 열기를 일으켜 세운 뒤 바로 떠났다. 그런데 저녁 때 해론이 주뼛대는 태도로 집으로 돌아왔다. 양신은 반기면서도 좀 놀리는 태도로 물었다.

"해론, 오늘 구미님과 열기님이 여길 다녀갔네. 자넨 어떻게 벌써 남가라를 떠나 이 시각에 집에 도착할 수가 있었단 말인가?"

"양신, 실은 나도 남가라에서 두 사람과 함께 돌아왔었네. 나는 두 사람으로부터 자네의 대답을 듣고 전군님을 찾아가서 보고를 했네."

"해론, 잘 했네."

"양신, 아무튼 간에 나로선 미안한 마음부터 전해야 하겠네."

"해론 무슨 소린가? 미안한 사람은 바로 날세."

"나는 언어도단인 말을 차마 꺼낼 수가 없어 구차한 짓까지 해야만 했었네. 지금도 자네 얼굴을 대하기가 고맙고도 부끄럽네."

"해론, 자네에게서 대련에 관한 말이 나온 뒤로 늘 표정이 밝지 못했던 이유를 몰랐었네. 그런데 밀두도를 돌려받는 것은 확실한가?"

"그건, 확실하므로 안심해도 되네."

"자넨 다갈촌 검술 대회 참가한 일로 큰 마음고생을 해군?!"

"구미님은 자네에게 쓸데없는 말까지 다 하셨더군? 허지만 그럴 수밖에 더 있겠나? 누구도 고구려에 패배한 걸 좋아할 사람은 없지."

"해론, 나는 이래저래 자네에게 큰 부담만 지운 사람이었네. 이젠 자네도 큰 짐을 덜게 되었으니 나로선 무엇보다 기쁘기 그지없네."

"양신, 밀두도를 돌려받는 대로 떠날 생각인가?"

"물론이지. 하루속히 떠나고 싶은 내 마음 자네도 알지 않는가?"

해론은 그런 대답을 듣고 당연한 일로 여기면서도 걱정이 생겼다. 그 이유는 양신이 밀두도를 되찾는 것까진 가능해도 과연 고구려로 떠나게 해 줄지는 의문이었기 때문이다.

양신은 해론이 아무 말도 않고 있자 입을 열었다.

"해론, 자네가 앞으로 좋지 않은 일을 더 당하지 않게 되길 바라네."

"양신, 자네의 솔직한 심경을 들으니 나도 해보고 싶은 말이 있네. 그것은 밀두도를 돌려받는 대로 내 걱정은 말고 신라를 떠나는 일일세."

양신은 해론이 해보고 싶은 말이란 표현을 쓴 게 좀 마음에 걸려서 입을 열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해론, 나로선 밀두도를 돌려받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네. 때문에 전군님을 직접 만나서 확인을 하고 싶은데 그렇게 할 수는 없겠나?"

"양신, 전군님은 지금 여러 모로 골머리를 썩이고 계시네. 그 분이 자네에 대한 일을 어떻게 든 잘 처리를 하실 것인지는 기다려 보세."

"그렇지만 마음이 영 놓이지 않아서 그럴세."

"양신, 나를 믿는다면 전군님도 믿어야 하네."

해론의 대답에 양신은 더 입을 뗄 수가 없었다.

"양신, 자네가 신라를 떠나는 것은 전군님 독단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일이 아닐세. 그건 국법에 따라 처리를 해야 하는 일이므로 앞으로 전군을 비롯해 여러 분들이 그에 대한 연구를 하실 걸세."

"그런가? 나는 자네 말 대로 따를 것이네."

칠석날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다.

서라벌의 남산(南山)은 아담한 산세였으나 바위들이 많은 강골의 기상도 지니고 있었다. 햇볕에 나뭇잎들이 번쩍대는 산자락 밑으로 펼쳐진 화랑도의 연병장(練兵場)은 북적대기 시작했다.

연병장의 사열대 밑에 큰 차일이 몇 개 쳐져 있었다. 차일 속엔 책상과 의자들이 놓여 있었다. 높은 사람들도 많이 참석한다는 소문이 도는 가운데 아침부터 낭도(郎徒)들이 모여들었다.

대련은 사시(巳時)부터 하게 되었다.

병부령 죽파를 비롯해 십여 명의 고관과 장수들이 연병장으로 들어와서 차일 안으로 들어가 좌정하고 있었다. 드디어 대련의 심판관(審判官)인 김호림이 차일 앞으로 나섰다.

연병장 둘레로 아름드리 노송(老松)들이 병풍처럼 둘러서 있었다. 이내 연병장 둘레는 낭도들로 둘러싸이게 되었다. 관전을 앞둔 낭도들은 들뜬 분위기 속에 설왕설래가 한창이었다.

낭도들은 양신이 해론의 무릎을 꿇게 만든 실력자임을 잘 알고 있었다. 때문에 기대와 우려가 반반인 속에서 걱정이 큰 자는 벌써부터 양신에 대한 적의를 드러내기도 했다.

갑자기 연병장 둘레가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차일 앞으로 김춘추와 김유신이 나란히 모습을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김춘추는 차일 안으로 들어가서 착석했고 김유신은 죽파에게 군례를 붙인 뒤 김호림 곁으로 가서 부동자세를 취했다.

낭도들은 김유신의 승리를 마음속으로 빌고 있으므로 점점 긴장감이 높아져 갔다. 젊은 혈기로 넘치는 몸들이 뿜어내는 열기가 나무 밑 그늘마저 후덥지근하게 달궈놓았다.

사시를 알리는 종소리가 느리게 울려 퍼졌다.

매시마다 치는 종소리였지만 오늘 따라 낭도들에겐 매우 무겁게 들렸다. 모두는 긴장감 속에 누구를 찾듯 여기저기를 둘러보고 있었다. 김유신과 대결할 양신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때 누군가가 외쳤다.

"해론 낭두님이 나타났소!"

낭도들의 시선은 일제히 연병장 입구로 쏠렸다. 해론의 곁에선 양신이 함께 걷고 있었다. 두 사람은 차일 앞에 이르렀다. 두 사람은 군관의 훈령에 따라 죽파에게 군례를 붙였다.

잠시 후 김유신과 양신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연병장 가운데로 걸어 나갔다. 그 뒤를 4명의 병사들이 따랐다. 2명은 장도를 한 자루씩 들었고 다른 2명은 쟁반을 하나씩 들었다.

모두 연병장 복판에 있는 아름드리 노송(老松) 밑에 섰다.

노송 밑에서 2명의 병사가 쟁반에 담긴 가죽 끈을 양신과 김유신의 몸에 부착시켰다. 5개의 가죽 끈들은 두어 뼘 가량 되었다. 그걸 양 어깨, 가슴팍, 등, 머리에 쓴 복두 끝에 달았다.

김유신에겐 노란색이 양신에겐 흰색이 붙었다. 경기 방법은 주어진 시간 내에 누가 상대방의 가죽 끈을 더 베느냐로 승패가 났다. 단 상대에게 상처를 입힌 자는 패자가 되었다.

양신은 붉어진 눈시울로 밀두도를 보자니 마치 고향으로 돌아간 것 같았다. 칼을 받아들자 가슴이 뻐근할 만큼 감격에 벅찼다. 칼을 칼집에서 뽑자 햇빛을 받고 강한 반사광을 뿜어냈다.

김유신은 칼날을 살피고 있는 양신을 나직이 불렀다.

"양신님."

양신은 그 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마주 선 김유신은 공수의 예를 취했다. 양신도 따라서 예를 했다. 김유신은 장도를 빼서 왼쪽 어깨에 슬쩍 얹어 놓는 자세를 취했다.

시작 신호인 나팔 소리가 뚜 하고 일어났다.

"이 얏!"

김유신은 기합성과 함께 제자리에서 몸을 솟구쳤다. 뛰어오른 몸은 등 뒤쪽에 선 노송의 나뭇가지를 밟고 올라섰다. 칼을 한번 휘두르고 바닥으로 내려서자 어깨 위로 솔잎들이 쏟아져 내렸다.

김유신이 몸을 푸는 동작을 해보이자 낭도들은 환호성을 질러댔다.

"와!"

"역시 부제님이다."

양신도 고개를 들어 우람한 노송을 흘끔 올려다보았다.

"야, 잇."

역시 기합성과 함께 몸을 솟구쳐 올렸다. 그리고 김유신이 했던 대로 칼을 휘두른 뒤 사뿐히 땅바닥에 내려섰다. 그의 어깨 위에도 솔잎들이 우수수 쏟아져 내렸다.

양신은 밀두도를 휘두르고 나자 아랫배로부터 뜨거운 정기(精氣)가 용솟음쳐 오르는 것 같았다. 오래간만에 몸과 칼이 일체가 되는 기분 속에 마음은 한없이 편안해졌다.

김유신은 자신을 따라서 하는 양신을 보고 약간 경쟁심이 일었다. 그런데 상대의 도약력이 자신보다 월등히 높았다는 점에 한편으로 좀 위축감을 느껴서 기합성을 다시 질렀다.

"이 얏."

김유신이 공격에 나서자 양신은 반사적으로 방어로 들어갔다. 두 개의 칼날이 부딪치는 날카로운 금속성이 퍼져나갔다. 반면 연병장 둘레의 낭도들은 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칼날이 부딪치는 금속성과 함께 두 사람은 어지럽게 휘돌아 쳤다. 실전을 방불케 하는 동작이라 관전자들은 숨을 죽였다. 모든 눈길도 두 사람의 움직임을 쫓기에 바삐 돌아갔다.

두 사람은 몸을 솟구쳤다 내려서길 반복했다. 그런 몸짓들은 한 시도 땅에 발을 붙이려 하지 않았다. 마치 큰 새들처럼 음영 짙은 노송들 사이로 유영(遊泳)을 하듯 날아다녔다.

김유신은 실력으로나 패기로나 서라벌 으뜸 검인이었다. 그는 승부욕도 대단했고 상대를 빠르게 제압하기로도 소문이 나 있었다. 그는 공격 일변도로 양신을 몰아붙이고 있었다.

양신은 방어에 치중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수세로 몰리는 모습은 전혀 보이질 않았다. 물론 승부욕이 강했지만 지금은 그걸 접고 착실한 방어위주로만 일관하면서도 여유감을 드러냈다.

김유신은 이겨야 한다는 중압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때문에 자연히 연타연격(連打連擊)으로 나갈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 보니 체력 소모가 무척이나 커서 점점 동작이 둔화되어 갔다.

양신은 이미 김유신의 검술 실력을 어느 정도 파악이 되었다. 상당한 실력이지만 해론과 비슷한 수준으로 보았다. 다만 김유신은 체력적인 면에선 해론보다 월등히 앞섰다.

관전하는 낭도들의 얼굴에 점점 어두운 빛이 감돌았다. 그 이유는 김유신이 좀처럼 빨리 상대를 제압하지 못하는 데다 일타필도(一打必倒)의 공격은 번번이 불발로 끝났기 때문이었다.

양신은 마음만 먹으면 상대의 가죽 끈을 언제든지 전부 떼어낼 수가 있었다. 그러나 그러질 않으려니 도리어 힘이 들었다. 반면에 김유신은 너무 자주 무리수를 쓰고 있었다.

김유신도 상대가 보통 고수가 아님을 벌써 파악하고 있었다. 도무지 헛점도 틈도 찾을 수가 없었다. 따라서 공격의 성과를 거두기가 힘들고 접전을 할수록 위기의식만 커져 갔다.

1차 휴식을 알리는 나팔 소리가 뚜하고 일어났다.

경기를 멈춘 두 사람은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서 의자에 앉았다. 두 사람은 가쁜 숨들을 몰아쉬었다. 얼굴에 흐르는 땀을 수건으로 닦거나 물병을 들어 목을 축이며 휴식을 취했다.

김유신은 양신을 바라보면서 좀 이상하단 생각을 했다. 왜냐하면 검술은 상대적인 것인데 양신에겐 다른 점이 있었다. 자신이 그토록 공격 일변도로 나갔지만 한 번도 궁지로 몰수가 없었다.

반면 방어에만 치중한 양신은 상대를 적절히 대응하며 자신의 실력을 드러내지 않기에 애를 썼다. 적당히 방어하다가 가죽 끈을 내주되 형편없이 당하는 모습은 보여주지 않을 생각이었다.

1차 휴식이 끝나고 2차 대결로 들어갔다.

김유신은 다시 접전으로 들어가자마자 상대의 오른쪽 어깨 죽지를 계속 노렸다. 그런데 가장 쉬운 부위임에도 1차 전에서 번번이 무위로 끝났다. 점점 자신감을 잃고 초조해졌다.

관전자들은 고수들의 대결 치곤 왠지 모르게 박진감이 떨어지는 데다 지루함마저 느꼈다. 그러나 대련자들의 속셈을 꿰뚫어 볼 수는 없는 일이라 계속 주시할 뿐이었다.

양신은 김유신이 2차전에서 더욱 과감한 공격으로 나오자 위험을 더 욱 느꼈다. 방어에 더욱 치중을 하지만 느긋한 마음은 사라진 가운데 끝내 오른쪽 어깨 죽지의 끈이 베어졌다.

연병장 둘레는 떠나갈 듯한 환호성이 일어났다.

김유신은 그에 힘을 입듯 더욱 저돌적인 공격으로 나갔다. 그리고 이어 양신의 왼쪽 어깨 쪽 끈마저 베어냈다. 연병장 둘레는 그야말로 흥분의 도가니 속으로 빠져들고 말았다.

낭도들은 기쁨을 이기지 못해 그냥 뒤집어졌다. 수많은 어깨들이 물결치는 파도처럼 들썩여 대었다. 양신은 그 같은 광경 속에 연속으로 자신의 가죽 끈 2개를 잃게 되자 당황했다.

2차 휴식을 알리는 나팔 소리가 일어났다.

양신은 의자로 돌아가 앉은 채 생각에 잠겼다. 지더라도 완패를 당하는 모습은 보여주지 않아야만 했다. 위기의식보다 자존심이 상해 3차 경기를 알리는 마지막 나팔소리에 성급히 몸을 일으켰다.

김유신은 한결 느긋해진 태도를 보였다. 양신은 지금까진 한 수 접어주는 상대를 했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완패를 당하지 않으려면 어느 정도는 실력을 발휘를 해야만 했다.

양신이 거침없는 공격으로 나가자 김유신은 내심 당황했다. 상대가 갑자기 달라진 태도를 보였기 때문이다. 뿐더러 이대론 상대의 가죽 끈을 더 끊어내기가 힘들 것만 같았다.

김유신은 당황감 속에 이상한 생각도 들었다. 상대는 지금까진 일정한 수준의 방어로만 임하는 느낌이었다. 그러면서도 방어나 공격 면에서 자신보다 월등한 검술실력을 드러낼 때가 있었다. 그걸 인정하자면 깨닫게 되는 점이 있었다. 김춘추, 김호림, 해론이 모두 자신의 승리를 낙관적으로 봤던 태도들인데 그러는 이유는 대체 뭘까? 그런 생각 끝에 상대가 자신을 봐주고 있는 듯한 느낌을 떨칠 수가 없었다. 그게 확실하단 판단이 들자 자신은 초라해지고 수모감 마저 떨칠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렇다 쳐도 생각할 점이 있었다. 성원하는 낭도들은 자신이 승리를 쟁취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 했다. 거기다 더 중요한 것은 이 대련에서 승리하지 않으면 주형 자리에 앉을 수가 없었다. 그건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큰 목표이자 유일한 희망이 깨어지는 것이었다.

"그렇다. 검술 연마는 심신단련에 있지 승패만을 목적으로 할 게 아니다. 나는 장차 대군을 통솔할 궁량을 지닌 장수가 되어야 한다. 그런 나로선 인생의 전부를 한 자루 칼에 거는 사람이 되고 싶진 않다."

김유신은 결심을 더욱 다졌다. 원대한 포부를 달성해야 할 자신은 쓸데없는 자존심에 매달려선 안 된다. 상대가 자신을 봐주는 수모는 참아야만 했다. 그 결과로 거둘 수 있는 것은 모든 걸 상쇄시키고도 남음이 있기다. 승리를 쟁취하기 위해 더욱 과감해질 필요가 있었다.

반면 양신은 공격의 고삐를 서서히 죄어갈 생각인데 김유신의 공격이 점점 거칠어져 고민이었다. 감당을 하기가 어려울 만큼 부담감을 느끼게 만들었다. 방어만 하는 척하다가 어느 순간 상대의 오른쪽 어깨에서 가죽 끈을 베어냈다.

연병장 둘레는 쥐죽은 듯 고요해졌다.

김유신은 당하고 나서 상대방을 멍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이젠 상대가 자신을 봐준 게 확실한 이상 더욱 과감한 공격을 가속화시킬 마음을 먹자 도리어 안정감이 생겼다.

양신은 아직 상대방의 가죽 끈을 하나밖에 못 떼어 냈다. 2개는 베어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김유신은 관전자들의 눈을 의식해 몸을 사리지 않고 덤벼들었다. 거기다 뱃장까지 부려서 마구잡이로 공격을 감행한 끝에 가장 어려운 부위인 양신의 가슴팍에서 베어냈다.

"와, 우."

"우, 와."

연병장 둘레는 그야말로 광란의 장으로 변해 버렸다.

양신은 당한 뒤에 멍청한 표정으로 서 있기만 했다. 대련에서 일보일격(一步一擊)은 한 칼 거리를 유지해야 하는 게 정석이다. 그러나 상대는 그걸 무시하고 마구 파고들었다. 거기다 위험한 암수(暗數)까지 쓰는 터라 아주 위험한 무리수에 당할 수밖에 없었다.

김유신은 마구잡이 공격만에 만 그치질 않았다. 위험천만한 공격까지 마구 펼쳤다. 때문에 양신은 그걸 막아내기에 진땀을 뺄 지경이었다, 그러나 기회를 노려 반격을 가하곤 했다.

"야. 잇!"

양신의 공격도 점점 변화무쌍해졌다. 상대로부터 가죽 끈을 하나라도 더 떼어내려고 조급하게 굴었다. 그러자 김유신은 지금까지완 다르게 공격 대신 철저한 방어로 돌아섰다.

김유신은 우위를 점했다는 판단에 철저한 방어에만 치중했다. 침착성과 신중 도를 높인 방어로 일관했다. 반면 양신은 격차를 최소한 줄이고자 더욱 다급해지는 마음이었다.

양신의 그 같은 심리는 자연 공격이 거칠어졌다. 김유신은 휘몰아치는 공격을 받으며 몸이 마구 흔들리게 되었다. 그렇게 최선을 다하려고 했지만 남은 어깨 죽지의 가죽 끈이 베어져 나갔다.

연병장 둘레에선 큰 탄식들이 흘러나왔다.

김유신은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나자 허탈감이 일었다. 그러나 자신은 가슴, 등, 복두 3군데가 온전하고 상대는 복두와 등 2군 데만 남았다. 그 중 복두 끝은 언제라도 베어낼 수가 있게 쉬웠다.

양신은 겨우 근소한 차로 지게 된 것만으로도 다행이다 싶었다. 그런데 김유신은 기습공격을 감행하며 동시에 암수를 더욱 심하게 썼다. 때문에 양신의 복두 끝 가죽 끈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그와 동시에 종료 나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와."

"우와."

대결이 끝난 연병장 둘레에선 낭도들의 함성소리가 진동을 했다.

양신이 허탈한 기분으로 서 있는데 김유신은 입가에 묘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허공으로 떠올랐던 하얀 가죽 끈이 너울거리듯 땅바닥에 떨어져 내리고 양신이 먼저 입을 열었다.

"유신님, 제가 졌습니다."

양신이 패배를 인정하자 김유신은 다가들면서 말했다.

"양신님이 제게 승리를 양보해 주신 덕분이 아닙니까?"

"유신님?"

김유신은 놀라는 양신을 가볍게 끌어안았다.

두 사람은 곧 어깨를 나란히 하고 차일 앞으로 나갔다. 차일 안에선 일제히 박수들을 치며 두 사람을 맞았다. 그때 병사 하나가 연병장 바닥에 흩어진 가죽 끈들을 집어다 김호림에게 바쳤다.

죽파는 싱글벙글 웃는 얼굴로 김유신을 대견한 듯 바라보았고, 가죽 끈을 받아든 김호림은 안색이 흐려졌다. 두 사람이 각기 잘라낸 가죽 끈들의 모양 때문이었다. 양신이 잘라낸 노란 가죽 끈은 모두 자로 잰 듯 길이가 같은데 김유신이 잘라낸 흰 가죽 끈들은 들쭉날쭉이었다.

김호림은 가죽 끈들을 모두 합쳐 소매 속에 집어넣었다.

죽파는 한 장수를 돌아다보며 호기롭게 명령했다.

"아란도, 납검을 받게."

아란도(阿蘭都)는 신주정 군주인 변품 장군의 막료 장수였다. 그는 양신에게서 밀두도를 받아내려고 손을 내밀었다.

"장도를 회수하겠다."

양신이 선뜻 내주려고 하질 않자 아란도는 호통을 쳤다.

"장도는 승자에게 상으로 내릴 것이다."

아란도는 밀두도를 잡아채듯 빼앗아 병부령에게 바쳤다. 죽파는 박수갈채 속에서 밀두도를 김유신에게 상으로 내렸다. 그것을 바라보는 양신의 두 눈이 갑자기 뿌옇게 흐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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