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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나라 36. 내란

36. 내란

by 정완기

36. 내란(內亂)


수국에선 세력이 있건 없건 간에 반란을 일으키는 자들이 늘어나고 각처에서 화적(火賊) 떼가 횡행했다. 그런 중에 장남(長南)에서 세력이 가장 큰 두건덕(竇建德)이 군도를 이끌고 관아를 들이쳤다. 전선에서 그 보고를 받은 황제는 양현감에게 진압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밀은 그 명령을 기화로 양현감에게 반란의 기치를 세울 것을 권했다. 양현감은 이밀의 건의대로 무리를 모으기 위해 전선으로 보낼 군량미를 유랑민들에게 풀었다. 그러자 각처에서 그 소문을 듣고 사람들이 몰려들고 그중에서 다수는 반란에 동참하기로 했다.

여양은 치안 상태가 비교적 양호한 편이었다. 때문에 도적 떼로 불안을 느낀 사람들은 가족과 재물을 끌고 모여들었다. 그런 점은 양현감의 입지를 강화시키는데 큰 작용을 했고 그런 중에 양소 참군이 사라졌다.

어느 날 양적선은 양신을 불러 꾸짖었다.

"양만춘 대정, 너는 분수를 모르는 자로다."

"장군님, 무슨 일로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만돌이 종적을 감추었다."

양신은 놀라며 물었다.

"장군님, 만돌이 종적을 감추었다고 하셨습니까?"

양적선은 양신을 노려보며 반문했다.

"그 이유는 그대가 잘 알고 있겠지?"

"장군님, 제가 뭘 잘 알고 있다는 말씀입니까?"

"너는 만돌을 겁탈하려고 들었던 자가 아닌가?"

"장군님, 그 말씀은 터무니없는 오해이십니다."

"터무니없는 오해라니? 만돌이 헛소릴 지어냈단 말인가?"

"장군님, 저는 그런 짓을 하지 않았습니다."

"종복들이 고한 말로는 만돌과 술을 먹다가 겁탈을 하려고 들었다. 만돌이 반항을 해서 뜻을 못 이루자 한 밤중에 별장을 떠났지 않았는가?"

양적선의 추궁을 받은 양신은 만돌이 자신의 거부를 당한 앙갚음을 하려고 뒤집어씌운 말이나 난감하기가 그지없었다. 그러나 도리어 자신이 만돌의 유혹을 뿌리친 것을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소관은 장군님과 만돌 3자 대면으로 억울함을 풀겠습니다."

"만돌이 어디로 종적을 감췄는데 어떻게 3자 대면을 하겠는가?"

"저는 상서대감의 은의를 크게 입는 사람인데 어찌 그런 짓을 저지를 수가 있겠습니까? 만돌이 종적을 감춘 이유는 다른 데 있습니다."

"종적을 감춘 이유가 다른 데 있다니 무슨 소린가?"

"만돌은 상서대감과 장군님이 거사를 일으키게 되실 것이라 더 곁에 더 있기를 꺼렸습니다. 소관에게도 목숨이 위태해지기 전에 함께 떠나자고 했지만 저는 상서대감과 장군님을 돕겠다고 거절한 사람입니다."

"양대정의 그런 말을 내가 어떻게 믿을 수가 있겠나? 그건 만돌이 도망치게 만든 자가 하는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아무튼 간에 나로선 자존심이 매우 상하고 불쾌하므로 양대정에게 대신 요구를 해야 하겠다."

"장군님, 제게 어떤 요구를 하시겠다는 말씀입니까?"

"양대정의 처제는 대단한 미인이란 소문이 시정에 퍼져 있더군!"

양신은 그게 무슨 뜻으로 하는 말인지 알만해서 기가 막혔다. 그때 밖에서 그런 얘기를 엿듣고 있던 양현감과 이밀이 실내로 들어왔다.

"아우님, 만돌은 능히 그러고도 남을 계집일세. 나도 아우님에게 믿지 못할 계집을 진작 떼어내야 할 것을 여러 번 충고를 하지 않았나? 그런데 계집이 제 발로 떠났다면 이건 여간 잘 된 일이 아닐세."

양적선은 형이 하는 말에 멋 적게 어디로 사라져 양신은 어려움을 겨우 벗어날 수가 있었다. 그런데 며칠 뒤 사근이 찾아와서 사오에게 검술을 가르쳐 주는 주랑에게 비단을 선물했다. 그리고 바깥나들이를 못해 본 양신의 가족들을 요리 집에서 대접을 하겠다는 제안을 했다.

양신은 내키지 않는 일이라 거절을 하려고 했다. 그러나 함께 온 사오가 권하는 터라 마지못해 응하고 말았다. 이튿날 저녁때 여선과 주랑은 처음으로 여양 거리로 나섰다. 상점들이 등불을 내건 저잣거리는 전쟁 중인 나라 같지 않게 그윽한 정취를 담은 야경(夜景)이 펼쳐져 있었다.

요리 집엔 사근의 가족이 미리 와 자리를 잡고 기다렸다. 양신의 가족이 합석을 하자 이번엔 뜻밖에도 양적선이 들어와 자리에 끼어들었다.

양적선은 사근이 따르는 술잔을 점잖게 받으면서도 눈길은 연방 주랑 쪽에게 던졌다. 회식 자리가 끝나서 집으로 돌아가려는데 양적은 따로 양신을 부른 뒤 드디어 흑심을 드러냈다.

"양만춘 대정, 나는 자네 처와 처제처럼 천하절색의 미인들은 처음 봤네. 처제는 아직 미혼으로 알고 있는데 내 첩실로 삼게 해 주게. 그러면 자네를 승급시켜 오위에 오를 수 있게 힘을 쓸 것을 약속하겠네."

양신은 뻔뻔스러운 말의 싹을 자르기 위해 둘러대었다.

"장군님, 주랑은 처제가 아니고 실은 제 두 번째 아내입니다."

"무슨 소린가? 자매를 아내로 삼을 수가 있단 말인가?"

"고구려에선 쌍둥이 자매를 함께 아내로 취하는 풍습이 있습니다."

양신은 남의 부인을 넘보지 말라는 뜻으로 잘라 말했지만 양적선은 속으로 코웃음을 치면서 대답했다.

"대정 따위가 아내를 둘이 거느리다니? 하나는 내게 넘기게."

양적선의 노골적인 협박에 양신은 입을 다물고 있기만 했다.

황제는 요동성만 포위를 한 채 공격을 가했으나 좀체 함락을 시킬 수는 없었다. 상조 참군과 만돌은 함께 여양을 떠나 전선으로 갔다. 그리고 상조는 옹장을 만났고 만돌은 거기서 어디로 떠났다.

상조는 옹장에게 낙구창의 형제들이 전부 양신에게 죽음을 당했음을 알렸다. 옹장은 그렇지 않아도 연락이 끊겨 이상한 생각이 들던 참인데 날벼락같은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치가 떨려서 당장 복수를 하러 쫓아가고 싶으나 황제에게 매인 몸이었다. 일단 지공과 구회만을 보낼 수밖에 없는데 3명이 감당 못한 자를 2명이 가능할지는 의문이었다. 미덥지 않고 더 큰 화를 부를 수도 있다는 판단에 황제의 힘을 빌려서 체포해 끌어다 처형을 하는 방법을 택하기로 했다.

황제는 이때 도무지 풀리는 일이 없고 곡사정까지 고구려로 망명을 해서 분기가 탱천 할 지경이었다. 반면에 신하들은 공연히 들들 볶기만 하는 황제의 심기를 건드릴 일은 일체 피하며 곁에 있기조차 꺼리며 피하려고 들었다. 더욱이 모두는 입들을 봉하고 있어 양현감이 반란을 획책하고 있는 것조차 황제는 모르고 있었다. 그런 가운데 옹장은 한 가지 꾀를 내었다.

"폐하, 신은 여양 관아로부터 뜻밖의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너는 무슨 소식을 들었기에 그러느냐?"

"꺼우리 왕제인 건무의 처남이 여양에 있는 걸 알아냈습니다."

"아니?! 그런 자가 왜 중원 땅에 와 있단 말인가?"

"폐하, 그 자는 첩자로 온 것인데 양상서가 호위무사로 곁에 두고 쓴답니다. 신은 도저히 묵과할 수가 없는 일이라 말씀을 드리게 됩니다."

"양현감이?! 꺼우리 첩자를 곁에 두고 쓴다? 짐은 벌써부터 그 자를 수상쩍게 여겼는데 양쪽을 다 체포해 이리로 압송시켜 목을 베겠다."

옹장은 황제의 대답을 듣고 다른 말을 꺼냈다.

"폐하, 양상서는 보급품을 조달하는 막중한 업무를 수행하고 있사옵니다. 중요한 보급품 공급 업무에 차질을 빚을 수도 있겠습니다. 가뜩이나 어려운 전선의 사정만 더 꼬이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양상서는 당분간은 그냥 놔두시고 꺼우리 왕제의 처남만 체포해 압송시키게 하소서."

"네 말도 일리가 있겠다."

황제는 그런 대꾸를 하며 속으로 다른 생각을 했다. 건무의 처남이란 자가 압송돼 오면 곡사정과 교환을 제의해서 분을 풀어볼 속셈이었다.

"폐하, 그러시면 양상서에게 압송을 시킬 명령을 내려주소서."

옹장은 그렇게 해서 황제로부터 명령서를 받아낼 수가 있었다. 그리고 지공과 구회에게 명령서를 지니고 즉시 여양으로 떠나게 했다.

여양에선 양현감과 이밀이 반란을 놓고 의논만 거듭하고 있었다. 이밀은 거사에 관한 모든 작전을 짜는 참모 역할을 맡고 양적선은 병사들과 모여든 무리들을 관리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이밀은 황제가 요동에서 머물고 있는 틈을 타서 거사를 하는 게 성공할 가능성이 크다고 부추겼다. 그러나 양현감은 결정을 내리길 주저했기 때문에 두 사람은 자신감을 갖게 하려고 여러 면으로 부추겼다.

그런 중에도 양적선은 주랑에 대한 흑심을 버리지 못해 양신에 대한 압력과 협박을 가했지만 통하지 않자 다른 방법을 찾고 있었다. 그걸 아는 양신은 하루속히 떠나고 싶은데 가의는 집을 팔지 못했다.

어느 날 양적선은 형과 이밀에게 의문을 제기하는 말을 꺼냈다.

"형님, 저는 양만춘 대정에게 의심스러운 구석이 크단 생각을 합니다."

"아우님은 어떤 의심을 품는단 말인가?"

"양대정이 중원 땅으로 온 것은 다른 속셈 때문입니다. 제 나라의 위급함을 구하고자 중원 땅에서 첩자 노릇을 하면서 우리 거사에도 적극 참여를 하는데 그건 수국의 내부 분란을 조장시킬 목적이 큽니다."

양적선이 양신을 의심하자 이밀은 속으로 고소를 금치 못했다.

"양장군의 말씀은 일리가 없지도 않겠소. 그러나 양대정은 조국에서 도망칠 수밖에 없는 사정을 잘 아는데 이치에 맞지 않을 의심 같소."

양현감도 동생의 터무니없는 주장을 탓하게 되었다.

"나도 포산공 말씀에 동감일세. 양대정은 고구려 왕제의 첩실을 끌고 중원 땅으로 도망을 쳐왔는데 어떻게 첩자로 몰아붙일 수가 있겠는가?"

이밀이 그 말을 한술 더 거들었다.

"상서 대감의 말씀대로입니다. 설사 양 대정이 첩자라고 한들 무슨 대수겠습니까? 우리는 그를 잘 관리하면서 득이 되는 쪽으로 써먹읍시다."

두 사람은 양적선이 양신의 처제를 탐내고 있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쓸데없는 사단을 벌여 거사계획에 차질을 빚을 우려에 극구 말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양적선은 엉큼한 생각을 접으려 하지 않았다.

며칠 뒤 오위 한 명이 양현감에게 보고했다.

"상서 대감, 황제의 칙서를 지닌 자들이 도착했습니다."

양현감은 좀 놀라며 이밀에게 물었다.

"포산공, 황제가 또 무슨 명령을 내리려는 것인지 모르겠소?"

이밀은 병력과 군수 물자를 독촉하는 게 아니라면 양현감이 패업의 뜻을 세운 게 소문나서 경고를 발하는 칙서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는데 양현감이 또 움츠려 드는 태도를 보였다.

"지금부턴 포산공이 모든 걸 맡아서 처리해 주기 바라오."

그때 밖에서 들어온 양적선이 말했다.

"형님,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어떤 점이 이상하단 말인가?"

"황제의 전령이면 낭장급 이상이 수행해야 합니다. 그런데 효과에 지나지 않을 하급자들이 온 것은 매우 예외적인 일로 생각됩니다."

"자네 말을 듣고 보니 나도 이상하단 생각이 드는군."

"형님, 게다가 온 자들이 누군지 아십니까?"

"누구란 말인가?"

"형님을 감시해 왔다는 태산팔협입니다."

그 말에 이밀이 조언을 했다.

"혹시 황제가 보낸 자객들 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자들은 칙서를 전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척하다 돌변해 위해를 가려 들지도 모릅니다."

양적선도 그 말을 거들었다.

"형님, 양만춘 대정을 호위로 세우고 만나보도록 하십시오."

양현감은 양신을 불러들여 호위로 세워 대비를 했다. 양신은 태산팔협이 암기를 잘 쓰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에 대한 대비를 했고 양적선은 밖으로 나가 두 사람의 몸을 수색해서 단병기를 압수했다.

지공과 구회는 맨손으로 안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것만으로도 불안을 느끼는 두 사람은 더욱이 양현감 곁에서 양신이 호위를 하는 걸 보고 잔뜩 위축이 되고 말았다.

양현감이 입을 열었다.

"원로에 수고들이 많았다."

"폐하의 칙서를 받잡고 왔습니다."

"폐하께서 칙서를 내리셨다니 무슨 내용일까?"

양현감의 반문에 지공이 입을 열었다.

"상서대감, 저희들은 이곳에 있는 고구려 첩자를 압송해 오라는 폐하의 명령을 받고 왔을 뿐입니다."

양현감은 속으로 뜨끔해서 중얼거리듯 반문했다.

"이곳에 무슨 고구려 첩자가 있다는 말인가?"

구회는 손을 들어 양신을 가리켰다.

"상서대감, 저 자가 누구인지 알고 계십니까?"

"나의 호위 임무를 맡고 있는 양만춘 대정이다."

"상서대감, 저 자는 아국을 정탐하러 온 고구려 첩자입니다."

양현감이 아무런 대꾸도 않자 이밀이 입을 열었다.

"양만춘 대정이 첩자라니 무슨 근거로 그런 말을 하는가?"

지공은 이밀을 무시하듯 대답했다.

"상서대감, 폐하의 칙서부터 먼저 올리겠습니다. 칙서를 보시면 첩자에 대한 모든 것을 아시게 될 것입니다."

지공이 품속에서 봉서를 꺼내 들고 양현감에게 접근하려고 들자 양신이 가로막은 뒤 대신 받았다. 양현감은 이번 사태로 자신이 위기에 처했음을 실감하게 되자 될 대로 되라는 심사로 뜻밖의 말을 흘려냈다.

"폐하의 옥체는 무양하신가?"

양현감의 입에서 나온 말은 귀를 의심케 하지 않을 수가 없어 지공과 구회는 안색이 변하고 말았다. 황제에겐 도저히 쓸 수가 없는 무엄한 언사에 지공은 격한 감정을 억지로 누르며 대답했다.

"폐하께선 지금 원기 왕성하시게 전군을 직접 지휘하고 계십니다."

구회가 그 말을 받아서 한 마디 더 거들었다.

"폐하께선 주야로 요동성에 대한 공격을 가하고 계십니다. 함락은 시간문제이나 다만 후방의 지원이 원활치 못해 심려가 크십니다."

양현감은 칙서를 뜯어보질 않는데 이밀이 뜯고 읽은 뒤 말했다.

"황제는 후방지원이 원활하지 못하다고 책망을 하는 칙서로군?"

"상서 대감이 하실 답변을 댁은 대체 누군데 나서는 거요?"

"내가 누군지 알건 없고 여긴 황제의 명을 전처럼 무겁게 받아들일 사람은 없음을 알아둬라. 굳이 변명을 하자면 지금 두건덕이 통제거의 수로의 일부를 막아서 수송선들의 발이 묶여 통행이 어려워졌다."

이밀의 대답에 지공과 구회는 비로소 자신들은 심상치 않을 사태에 직면했음을 깨달았다. 여양의 분위기가 어떤 것임은 대강 알고는 왔지만 자신들이 올 곳이 못 된다는 후회가 일었다.

"상서대감, 무슨 말씀이라도 해주셔야 하시지 않습니까? 소관은 이곳에 당도해서 운하부터 둘러봤습니다. 그런데 가득 들어 차 있는 수송선들마다 선원들은 한 명도 보이질 않았습니다. 두건덕이 운하의 일부를 막고 횡행을 한다지만 여기서부터 북으로 가는 수로는 안전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수송선을 띄우지 않으시는지 알고 싶습니다."

양현감은 계속 침묵만 지키다가 건방진 언사에 화가 치밀었다.

"발칙한 놈들! 일개 효과 따위가 어디서 함부로 입을 놀리는가?"

"폐하의 신하로 책임을 다 하지 않는 상서대감이기에 그럽니다."

"황제는 그동안 무리한 일만 시켰지만 나로선 할 만 큼은 다했다."

양현감이 변명을 하자 구회는 두려움 속에서도 겁을 주려고 했다.

"상서 대감은 여양에서 반역자로 소문이 난 것을 알고는 계십니까?"

"황제가 날 반역자로 취급한 것은 오래된 일이 아닌가?"

양현감이 호통을 치자 이밀이 대신 나섰다.

"상서 대감, 그 칙서라는 것은 읽어 보지 않아도 알만합니다."

이밀은 양현감이 내주는 칙서를 받아 뜯지도 않고 말했다.

"상서 대감은 이런 가짜 칙서를 읽지 않으시는 게 좋겠습니다."

지공은 그 말에 발끈하고 말았다.

"가짜 칙서라니 그런 무엄한 말을 함부로 하다니!"

"너희들은 태산팔협이 아닌가? 그동안에 세 놈은 낙구창에서 상서대감을 감시하는 역할을 맡고 있었다. 양만춘 대정에 의해 세 놈이 죽음을 당하자 너희들은 보복을 하려고 왔다. 황제의 명을 빙자해 양만춘 대정을 체포해서 끌고 가려는 속셈인데 그렇게 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밀의 말에 지공은 갑자기 공손해진 음성으로 양현감에게 물었다.

"상서 대감, 저 사람은 누구인데 칙서를 넘기십니까?"

"포산공은 나를 보좌하시며 모든 일을 위임받아서 처리를 하신다."

양현감의 말도 안 될 대답에 지공은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상서 대감, 저희들은 그저 폐하의 칙서를 받들고 왔을 뿐인데 무슨 의심을 하신다면 이대로 돌아가는 수밖에 없겠습니다."

"누가 너희들을 그냥 돌아가게 해 준다는 말을 했는가?"

이밀의 반문에 더럭 겁이 난 구희는 양현감에게 매달리려고 했다.

"상서 대감, 포산공이 우릴 돌려보내지 않겠다니 어찌해야 됩니까?"

"나는 모든 걸 위임했다고 했지 않은가? 포산공의 말씀을 따르라."

양현감의 말을 받아 이밀이 결정을 내리듯 말했다.

"너희들은 양만춘 대정에게 복수를 하려고 왔을 뿐이다. 그러므로 지금부터 양쪽이 겨뤄서 결판을 낼 특별한 자리를 마련해 주겠다."

이밀의 말에 당황한 지공과 구회는 서로 바라보기만 했다. 사세가 크게 불리해졌단 판단에 지공은 더욱 저자세가 되며 공손히 말했다.

"상서 대감의 뜻을 잘 알겠습니다. 그렇지만 저희들은 폐하의 지엄한 명을 받드는 게 우선이므로 대결은 다음 기회로 미뤄야 하겠습니다."

"대결은 폐하의 뜻이 아니고 내 뜻이므로 하고 가야 한다."

양현감이 잘라 말하자 구회는 끝내 반박 조로 입을 열었다.

"상서 대감, 저희들이 폐하의 명을 받드는 게 중요합니까? 대감의 명을 받드는 게 중요합니까? 가뜩이나 나라 안은 불순한 움직임을 보이는 자들이 늘어나 걱정이 크신 폐하를 생각해야 하시지 않겠습니까?"

그러자 지공이 얼른 변명처럼 입을 열었다.

"폐하께선 상서 대감이 반란을 일으킬 기미를 전혀 모르고 계십니다. 그 이유는 신하들이 폐하의 심기를 건드릴 말은 일체 하질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게 언제까지 비밀에 부쳐질 수는 없습니다. 폐하께서 일부 병력만을 회군시켜 토벌에 나서면 상서 대감은 화를 피할 수는 없게 될 것입니다. 저희들은 돌아가서 쓸데없는 말은 전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돌아가지 못할 경우 상서대감은 도리어 의심을 받게 되십니다."

이밀은 그에게 같잖다는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너희들은 지금 나라 안 형편이 어떤지 알고나 지껄이는 소린가? 굶어 죽는 백성들이 속출하는 가운데 장정들은 전부 전쟁터로 끌려가서 목숨을 잃고 있다. 때문에 민심의 이반은 필연적으로 일어나게 되었다. 그럼에도 신하들은 백성들을 고통으로 몰아넣는 황제에게 간하는 자가 하나도 없으니 모두는 쓸개가 빠진 자이다. 상서대감은 백성들의 고통을 벗겨주고 이런 난국을 수습할 대의의 기치를 세우셨다. 그걸 안다면 너희들도 여기서 대의에 동참해야 마땅한데 도망을 칠 궁리만 하고 있다."

두 사람은 그런 질타를 받고 입을 다물고 말았다. 그런데 양적선이 이밀과 귓속말을 나눈 뒤 누고 밖으로 나갔다. 잠시 후 이번엔 병사들이 몰려들어와 사색이 된 지공과 구회를 끌고 나갔다.

연병장 둘레는 많은 장졸들에게 둘러싸였다. 그런 가운데 양현감은 밖으로 나와서 사열대 위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양신은 먼저 연병장 가운데에 서 있고 지공과 구회도 병사들에게 끌려 들어갔다.

양현감은 단상에서 몸을 일으킨 뒤 큰 소리로 입을 열었다.

"내가 아끼는 장졸들이여! 지금부터 무림의 최고수들끼리 생사를 가르는 대결을 벌이게 되었다. 장졸들은 대결을 벌이다 불리해서 도망을 치려는 자가 나올 경우 그런 자의 목숨을 가차 없이 끊어 놓기 바란다."

그 말을 듣고 난 지공은 악을 쓰듯 외쳤다.

"우린 우린 불리한 대결을 할 수가 없소."

이밀이 큰 소리로 반문했다.

"너희들은 천하의 태산팔협을 자처하고 있지 않는가? 1대 2로 싸우는 게 불리하다는 말을 한다면 참으로 부끄러움을 모르는 자들이로다!"

양적선은 더욱 놀리고 부아를 지를 말까지 했다.

"얼마 전에 태산팔협 3명이 낙구창에서 양만춘 대정을 해치려고 들다가 전부 목숨을 잃었다. 그러므로 어찌 두려움을 느끼지 않을까만 힘껏 맞서 태산팔협의 불명예를 씻을 기회로 삼는 게 마땅하지 않겠는가?"

그런 말을 듣고 연병장을 에워싼 장졸들은 자못 흥미진진한 표정들이 되었다. 반면 지공과 구회는 복수를 하기보다는 큰 위기에 처한 현장을 당장 벗어날 생각들뿐이었다.

지공은 태도를 바꿔 비굴하게 양현감을 향해 비는 투로 말했다.

"상서 대감, 저희들을 제발 그냥 돌아가게 해 주십시오. 그렇게 되면 대감의 구명을 위해 적극 노력을 하겠습니다. 부디 청을 들어주소서."

구회는 땅바닥에 무릎까지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그러나 양현감의 입에선 냉담한 음성만 흘러나왔다.

"나는 너희들의 구명을 받을 생각은 없다. 그보다 나는 대결에 흥미가 더 클 뿐이므로 너희들은 양만춘 대정과 맞서기에 힘을 쓰거라."

연병장 둘레의 장졸들 또한 여간 관심들이 커서 호응하는 함성만 크게 질러댔다. 그때 양신은 양현감에게 경례를 하고 먼저 밀두도를 뽑아 들었다. 그걸 본 지공과 구회도 할 수 없다는 듯 칼들을 뽑아 들었다. 그리고 상대에게 안요독(眼要毒)을 품은 시선을 쏘아 보냈다.

양신은 경험상 태산팔협은 속임수에 능함을 잘 알고 있었다. 때문에 영활(靈活)한 타산으로 대결에 임할 마음을 먹었다. 반면에 지공과 구회는 하늘과 땅바닥을 올려다봤다 내려다보기만 했다.

지공과 구회는 전에 양신과 맞선 경험이 있어 여간 두려운 상대로 여기지 않았다. 상대의 강한 힘과 빠른 동작은 소름 끼칠 일이었다. 더욱이 3명이 못 당했는데 2명은 더욱 어림도 없다는 위축감에 빠져 있었다.

연병장 둘레의 장졸들은 고수들끼리 목숨을 건 대결을 놓고 숨들을 죽였다. 그런데 절망감에 빠진 지공이 갑자기 째지는 음성을 터뜨렸다.

"장병들이여, 반역자 양상서를 가만히 두고만 보고 있으려는가?"

장졸들은 일촉즉발의 순간을 앞둔 기대와 호기심에 차 있다가 이게 무슨 김 빠질 소리냐는 듯 우하며 야유를 보냈다. 구회는 완전히 궁지에 몰렸다는 판단에 이번엔 하소연을 하듯 외쳤다.

"장졸들이여! 양만춘 대정은 중원 땅에 침투한 고구려 첩자다!"

그 말에 연병장 둘레에선 장졸들의 웅성거림이 일어났다. 그러자 이밀이 몸을 일으킨 뒤 장졸들을 향해 큰 소리로 변호하는 말을 했다.

"양만춘 대정이 고구려 사람인 것은 맞지만 그가 중원 땅으로 도망을 치지 않을 수가 없었던 사정을 알면 첩자로 의심할 점이 없다."

이밀은 그렇게 입을 뗀 뒤 양신이 고구려에서 당한 일로 중원 땅으로 도망을 칠 수밖에 없었던 사정을 밝혔다. 그 얘기를 듣고 난 장졸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내를 빼앗겼다가 되찾은 뒤 할 수 없이 중원 땅으로 도망쳐온 처지에 동정을 금치 못하며 고개들을 끄덕여 보였다. 이

"양대정의 처지가 이럴진대 누굴 위해서 첩자 노릇을 할 것인가?"

이밀이 다시금 외치자 장졸들은 모두가 수긍을 하는 빛을 보였다.

"지금 연병장에 선 근위군 효과 두 명은 황제의 명을 받고 왔다. 그 목적은 제군들을 요동 벌로 끌고 가는 데 있다. 장졸들이여! 요동으로 끌려가서 개죽음을 당할 것인가? 망나니 황제를 타도해 고통을 받는 백성들을 구할 것인가? 이 자리에서 결정을 내려주기 바란다."

이밀이 던진 말에 장졸들은 저마다 한 마디씩 했다.

"백성들에게 고통만을 가하는 황제는 타도되어야 합니다."

"우린 요동으로 끌려가서 죽고 싶지가 않습니다."

"이러다 우린 다 죽게 되므로 황제를 쫓아내고 새 황제를 맞자!"

장졸들은 황제를 타도의 대상으로 볼뿐이었다. 쫓아내지 않으면 자기들이 죽게 된다는 자각이 일어나서 양현감이 앞장을 서 준다면 하나같이 따르겠다는 태도로 호응하는 소리를 질러댔다.

양현감은 그런 광경을 보고 비로소 용기가 크게 생겼다.

"제군들의 그처럼 큰 호응을 받으니 나로선 대의의 기치를 세우지 않을 수가 없다. 나는 오직 백성들이 잘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자 일생일대의 결심을 한 것이지 한낱 요행을 바라고 하는 일은 아니다."

그 말에 장졸들은 더욱 열광적으로 호응하는 분위기 속에서 이밀은 장졸들을 향해 다시 목청을 높였다.

"장졸들의 호응이 이처럼 크다면 우리의 앞날은 예상이 가능하다. 우선 양만춘 대정과 2명의 효과들 간의 검술대결에서 그걸 찼기로 하자. 황제의 효과들이 이기면 제군들은 요동 땅으로 끌려가고, 양대정이 이기면 상서 대감과 함께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데 동참을 하자."

그 말에 장졸들은 열렬한 화답으로 환호성을 질렀다. 그때 연병장 안에서 한 줄기 회오리바람이 일어났다. 바람은 흙먼지를 일으키며 묘하게 연병장 둘레를 따라 돌아서 장병들은 모두 조용해졌다.

이밀은 고요함 속에 자신의 존재를 부각할 말을 꺼냈다.

"상서대감과 나는 전조인 북주의 개국공신 팔주국 가문에 속한다. 그건 장졸들도 이미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 역시 북주의 신하였던 황제의 가문은 우리보다 밑에 있었건만 황제가 되었다. 그렇다면 상서대감과 내가 새 나라를 세우지 못할 법은 없는 것이다. 장졸들이여! 새로운 나라를 세우는 일에 동참해서 모두가 개국 공신이 되는 건 어떻겠는가?"

양적선은 그 말을 받아 장졸들을 더욱 선동하려는 말을 했다.

"장졸들은 낙양성을 깨고 고관의 집에 쌓인 금은보화를 손에 넣자!"

장졸들은 그 말에 무엇보다 더 열광하는 분위기가 되었다.

지공과 구회가 모두가 들뜬 분위기를 틈타 서로 눈짓을 나누고 양신에게 공격을 가했다. 그로 인해 연병장 둘레는 고요해졌다. 냉혹하고 치열한 사생결단의 공방전을 지켜보았다.

날카로운 금속성만 이어지는 사생결단의 공방전이 펼쳐지자 장졸들은 손에 땀을 쥐고 지켜보았다. 때로는 숨을 끊고 때로는 한숨을 흘려내는 가운데 양측의 우열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었다. 혼자인 양신의 공격이 강화되면서 지공과 구회는 방어를 하기에 쩔쩔매는 모습을 보였다.

지공과 구희는 몸들이 점점 무거워지며 움직임마저 둔화되었다. 때문에 공격보다 방어에 급급하게 되었다. 그걸 느끼고 있는 양신은 더욱 무차별적인 공격을 가하고 있었다. 그러나 두 사람은 필사적인 방어에만 치중하고 반격을 하지 않아 결정적인 가격이 어려웠다.

양신은 그 때문에 자신에게 일부러 빈틈을 보여 반격을 유도해야만 했다. 그런데 그걸 이용하려고 들던 구회가 끝내 말려들고 말았다. 그 결과는 목이 썩둑 베어지는 걸로 끝이 났다.

지공은 구회의 목이 떨어지는 걸 보자마자 그냥 도망을 쳤다. 그러나 연병장 둘레의 장졸들은 칼을 빼어 들고 가로막았다. 그래도 뚫고 나가려고 들다가 한 장수의 칼날을 받고 말았다.

그것으로 대결은 끝이 났다. 연병장 둘레는 물을 끼얹은 듯 고요해졌다. 장졸들은 신뇌열풍(迅雷列風)같은 양신의 검술에 탄복했고, 이젠 요동으로 끌려가지 않게 되었다는 안도감에 젖었다.

그때부터 양현감을 받들고 황제를 타도할 대열에 동참하자는 장졸들의 목소리들이 터져 나왔다. 그런 외침이 계속되자 양현감은 반란에 호응하겠다는 분위기로 받아들여 자신감도 더욱 생겼다.

양현감은 장졸들만 따라 준다면 황제에게 불만이 큰 백성들의 가세도 클 것임으로 이젠 바란을 일으킬 마음을 완전히 굳히게 되고 이밀의 얼굴에도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러나 양신의 마음은 달랐다. 대결이 끝난 심경은 참담했고 원치 않는 살상을 거듭 저지르게 되는 자신이 싫어졌다. 죄책감을 감당할 수가 없어 그만 관아를 나서 집으로 돌아갔다.

양신은 가의의 방으로 먼저 들어갔다.

"참군님, 잡숫다 남은 술이 있으면 한 잔만 주십시오."

가의는 창백해진 양신의 얼굴을 보며 잔에 술을 딸아 주었다. 양신은 단숨에 술잔을 비우고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가의는 안색이 흐려지며 걱정스럽게 묻게 되었다.

"양대정,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가?"

"참군님, 저는 검술을 배운 것을 처음으로 후회합니다."

그렇게 입을 뗀 양신은 오늘 관아에서 일어난 일들을 들려주었다.

"아니?! 이건 여간 큰일이 아니로군?"

가의는 아연실색을 하며 비로소 자신의 속내를 털어놨다.

"지난 번 낙구창에서 양대정이 겪은 일을 알고 있는데 또 벌어졌군?"

"참군님은 그걸 어떻게 아셨단 말씀입니까?"

"사근에게서 들었네. 그러나 자네 가족들에겐 함구를 했네. 그러나 양대정의 개인사와 양현감의 반란이 겹쳐진 사태에 이르고 보면 나로선 하루라도 더 여양에서 있어선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네."

"저는 양상서의 반란에 장졸들의 호응이 그처럼 클 줄 몰랐습니다."

"그건 황제의 자업자득일세. 그리고 백성들의 고통과 질곡이 얼마나 심각한지가 여실하게 드러나고 민심의 이반이 거기에 이르렀음이 여실히 드러난 증거이나 중원 땅은 또다시 피비린내를 풍길 일만 남았네."

"그런데 양적선은 장졸들에게 낙양성을 함락시켜 약탈을 하자는 선동을 했습니다. 대의를 표방한 사람 입에서 어찌 그런 말이 나옵니까?"

"그건 군중들을 유혹하려고 늘 써 온 수법일세. 인간은 누구나 다 이기심의 덩어리라고 말하지만 그중에서 가장 심한 자는 바로 황제일세."

"황제의 자리에 앉아 무슨 이기심을 더 품을 게 있다는 말씀입니까?"

"지위가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이기심도 더 커지기 마련일세. 황제는 인간의 그런 이기심을 이용해서 신하들을 조종하고 자신의 지위를 공고히 하는데도 적극 이용을 하게 되는 것일세."

"황제가 지금 그런 일을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까?"

"1차 고구려 침공에서 실패한 뒤 황제가 벌인 일을 보면 그걸 잘 알 수가 있네. 못마땅한 신하들에겐 패배의 책임을 지워 처형하고 숙청을 했고, 그들로부터 몰수한 재산을 대신과 장군들에게 나눠줘 선심을 썼네. 신하들도 그런 수법에 길들여지게 되고 마는데 2차 전역도 실패할 경우 그런 수법은 되풀이 쓸 것일세."

"벼슬을 살지 않는 이밀이 역심을 품게 된 원은 무엇일까요?"

"그건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에 지나지 않을세. 물론 그 원인의 제공자는 황제인데 그로 인해 이젠 몰락의 길로 접어들고 말았다고 나는 보네."

"참군님, 그래선지 저는 이밀이란 사람을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다시 보게 되었단 말은 무슨 뜻인가?"

"제가 보기엔 지금 반란을 주도하는 자는 이밀로 보고 있습니다. 양상서는 거기에 얹혀 가는 사람처럼 보여서 그런 말씀을 드리게 됩니다."

"잘 봤네. 이밀은 많은 사람들을 모을 여건이 못 되기 때문에 양상서의 직위를 이용하려는 것일세. 그러나 끝내는 양상서를 제치고 나설 것이나 나는 양상서나 이밀은 다 같이 천자가 될 그릇으로 보진 않네."

"황제는 이번 반란자들을 진압할 수가 있겠습니까?"

"도처에서 기승을 부리는 반란은 모두가 도적 떼에 지나지 않네. 다만 양현감은 다른데 문제가 있네. 그는 어느 정도 세력을 모을 수가 있는 위치에 있으므로 황제는 즉각 진압에 나설 걸로 보네. 아무튼 간에 중원 땅은 또 피 비린내가 진동할 것이고 죄 없는 백성들만 큰 피해를 입네."

"진압은 반란자들에 국한될 일인데 백성들이 왜 피해를 입습니까?"

"그 이유는 황제의 군위군 때문일세. 근위군은 허장성세만 강한 군대라 전투에선 몸을 도사리네. 강군을 만나면 무르게 나가고 약하거나 도적떼 같은 무리들은 깔보고 무자비하게 치는 잔인성을 보이네. 그런 습성이 몸에 밴 터라 반란군을 칠 때도 사세를 봐가며 다룰 것이나 그보다도 더 큰 우려는 그런 기회를 이용해서 공연한 백성들을 반란자로 몰아가며 민가들을 약탈하고 행패를 부릴 게 큰 걱정일세."

가의는 여양을 떠날 일에 더욱 조급증을 느끼는데 양신이 말했다.

"저는 양적선 걱정도 큰 데다 태산팔협의 우두머리에게 완전히 노출이 된 몸입니다. 앞으로 제에게 위해를 가하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것이므로 하루라도 빨리 여양을 떠나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집을 빨리 처분할 수가 없으니 어떻게 할 바를 모르겠네."

"참군님, 집을 처분하지 않고 그대로 떠나면 안 되겠습니까?"

"그러면 태원에서 살아갈 집이 없어 살 수가 없지 않은가?"

"참군님, 제겐 큰 금덩이가 있습니다. 그걸로 집을 사십시오."

"그런가? 그렇다면 당장이라도 서두르겠네. 그 대신 자네는 양현감에게 어떤 기미도 의심도 사지 않게 태연하게 근무를 하고 있게."

"그렇게 하겠습니다만 저는 태원으로 가는 것에 주저가 됩니다."

"무엇 때문에 주저가 되는가?"

"참군님의 말씀으론 태원 자사인 이연공이란 분도 천하를 얻을 만한 인물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런 분이 있는 곳은 제가 안전하게 지낼 수가 없을 것 같고 태산팔협의 우두머리의 영향력이 있을 것 같습니다."

"그 점은 걱정을 하지 말게. 나는 이연공과 상당한 친분이 있네. 내가 고향으로 돌아가려는 것도 그 때문이고 거기엔 자네를 염두에 마음도 있네. 왜냐하면 자네가 생계를 유지하게 하고자 거기서 군관 직을 얻어 줄 생각일세. 이번엔 내가 천거해서 확실한 성사를 보게 해 주겠네."

가의는 그런 말을 하고 앞으로도 계속 양신에게 얹혀살며 자신의 생계를 해결할 속셈이었다. 양신도 그걸 안다고 해도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가의와 함께 사는 게 안전하므로 양쪽이 맞 떨어질 일이었다.

"참군의 말씀대로 되면 좋겠으나 안 돼도 저는 생업을 찾겠습니다."

가의는 그런 대답을 고맙게 여겨 양신의 손을 잡았다. 이튿날 사근을 찾아가서 반값에 집을 팔겠다는 흥정을 해서 성사를 시켰다. 그러나 양신에겐 그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양현감은 이밀과 본격적인 반란 모의를 시작했다.

"포산공, 거사를 하자면 먼저 공격 목표를 정하는 게 매우 중요하오. 그에 대한 조언을 듣고 싶은데 어떤 계획을 세운 게 있소?"

"저도 공격 목표에 따라 성패가 갈린다고 봅니다. 때문에 합당한 공격 목표는 심사숙고해 신중하게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포산공은 우선적으로 공격 목표를 잡는다면 어디로 보고 있소?"

"첫 번째로 손을 꼽는 곳은 낙양성이 되겠습니다."

이밀의 대답에 양현감은 뜨악한 표정이 되었다.

"포산공, 낙양성을 생각하다니 그건 지나친 생각이 아니요?"

"낙양성을 목표로 삼는 이유는 상징성이 매우 크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상징성이 크다 해도 우린 그럴 힘이 없어 무리한 일이요."

"관군은 전부 출병을 해서 지금 낙양성은 겨우 3천여 병력이 지킵니다. 초공은 휘하 병력을 비롯해 모여든 무리가 10여 만에 이릅니다."

"3천에 불과하다고 해도 관군을 함부로 넘볼 일은 아니요!"

"관군이라고 해도 전쟁에 지쳐 사기가 크게 떨어졌습니다. 비록 오합지졸일지라도 우린 몇 곱이나 많습니다. 어마어마한 군세가 들이닥치면 관군은 뿔뿔이 흩어지거나 초공에게 가담해 올 자들도 많을 것입니다."

"거기다 낙양성을 지키는 번자개는 만만치가 않을 장수요."

번자개(樊子蓋)는 소문난 명장이었다. 황제도 그를 믿고 적은 병력으로나마 낙양성을 맡길 수가 있었다. 이밀도 명장과 관군이 지키는 성에 대한 공략은 만만치 않을 것이나 설득을 하려고 들었다.

"번자개가 녹녹지 않을 장수임을 모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비록 오합지졸일지라도 우린 수적으로 압도하고 사기도 매우 높습니다. 때문에 관군은 위축을 면치 못해 소극적으로 나올 것이라 성공 가능성은 큽니다."

"포산공, 나는 아무래도 낙양성을 공격하는 것은 주저가 되오. 거긴 피하고 또 다른 목표를 잡는다면 어디를 생각하면 좋겠소?"

"그다음이라면 국도인 대흥성 밖에 더 있겠습니까?"

"포산공, 국도를 치다니 그건 더 당치도 않을 말이요."

"초공, 우리가 국도나 낙양성을 목표로 삼는 이유는 대의명분을 그만큼 높이려는데 있습니다. 그래야만 백성들의 호응도 크게 불러일으킬 수가 있습니다. 또 국도나 낙양성을 점령하면 황제의 권위를 하루아침에 무너뜨릴 수가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관군들도 흩어지게 만드는 효과를 거둘 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초공께서 단 시간 내에 창업을 성사시킬 수가 있는 지름길이 된다는 점을 아셔야 합니다."

이밀은 말끝마다 우리를 강조했고 양현감은 고개만 계속 저었다.

"포산공은 큰 위험을 범할 우려를 생각지 못하오. 국도와 낙양성은 황제의 세력 기반이 어디보다 두텁고 탄탄해 섣불리 정할 목표가 못되오."

"대감은 이도 저도 아니면 결국은 포기를 하겠단 말씀입니까?"

"이제 와서 어찌 포기를 할 수가 있겠소? 그러나 가능이 적소."

"초공은 국도도 낙양성도 안 되면 혹시 목표를 삼을 데가 있습니까?"

"나로선 무리수를 써서 실패하기보단 실현성이 큰 데를 잡고 싶소."

"실현성이 큰 데가 있다면 말씀을 해 보십시오."

"여양을 기반으로 삼아 창업을 하는 게 안전하고 유리하단 판단이요."

양현감의 속내를 알고 난 이밀은 실망이 너무도 컸다.

"초공이 여양 땅에서만 안주하려고 드신다면 큰일은 어렵겠습니다."

이밀의 대꾸에 양현감은 자존심이 크게 상해 불쾌함을 느꼈다. 그러나 상대방은 자신에게 여간 필요한 존재가 아니라서 참아야만 했다.

"좋소. 포산공 말대로 한번 통 크게 나가봅시다. 국도는 여기서 너무 멀고 보다 가까운 낙양성으로 정하겠소."

"초공께서 통 큰 결정을 내리셨으니 이젠 발진할 일만 남았습니다."

"그런데 낙양성을 공격하자면 크게 꺼릴 점이 없지가 않소."

"초공께선 어떤 점을 거리 시기에 그러십니까?"

"낙양성이 공격을 당할 경우 태원 자사인 이연이 원병을 보낼 것이요. 이연이 거느린 부대는 정예의 강군이라서 꺼리지 않을 수가 없겠소."

양현감의 말은 사실이었다. 이연(李淵)은 황제와 이종 사촌 간으로 일찍부터 북방의 돌궐족을 막는 임무를 맡고 있었다. 때문에 막강한 기병을 보유했고 낙양성과 거리가 가까워 원병이 빨리 올 수가 있었다.

이밀도 수긍이 가는 터라 대답을 했다.

"그렇다면 남는 데는 국도인 대흥성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양현감은 대흥성 또한 피하고 싶지만 무어라 입을 열지 못했다.

이밀은 처음부터 우유부단한 양현감이 반란이란 어마어마한 거사를 감당해 낼 수가 있을까 하는 의문을 품고 있었다. 그런데 거사를 앞두고 또다시 주저와 소극적인 태도만 반복적으로 보여서 실망이 컸다.

가의는 여양을 떠날 날짜를 처의 기일(忌日)로 잡았다. 위패를 모신 영선사(潁宣寺)로 불공을 드리려 간다며 떠난다는 말을 했다. 양신도 그 날짜에 맞춰 양현감에게 휴가를 청했다.

양신은 가의가 불공을 드리려 교외로 나가는데 이러 도적 떼가 들끓어서 호위를 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허락이 떨어지자 절에 바칠 봉물을 담은 큰 궤짝을 수레에 싣고 그 속에 가족들을 숨겼다.

그런데 집을 떠나 교외에 이르자 양적선이 기병을 끌고 왔다.

"양만춘 대정, 멈추어라."

양신과 가의는 낯빛이 변한 채 수레를 멈출 수밖에 없었다.

"가의 참군, 무슨 돈이 그리도 많아서 봉물 궤짝이 이리도 큰가?"

양적선의 질문에 가의는 떨리는 음성으로 대꾸했다.

"정성을 좀 들이려고 하다 보니 좀 과한 듯싶었습니다."

"나는 궤짝 안에 무슨 봉물이 들었는지 한번 열어보겠다."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병사들이 움직였고 당황한 양신이 외쳤다.

"누구든 궤짝에 접근하는 자는 가만 두지 않겠다!"

양신의 험악한 기세에 병사들은 주춤했다.

"양만춘 대정, 너는 궤짝 속에 가족을 숨겨서 도망치는 걸 나는 알고 있다. 거역을 했다간 전부 목숨을 잃게 되니 순순히 포박을 받아라."

그때 궤짝 뚜껑이 열리고 주랑이 몸을 드러냈다.

"형부, 함께 무찌르고 나가야 해요."

그러자 마상의 기병들이 양신을 향해 일제히 활을 겨누었다.

"양대정, 반항하면 한 순간에 네 몸은 고슴도치로 만들 것이다."

양적선의 이죽거림에 양신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반항하면 전신에 화살을 받게 될 것이고 가족들이 위태해질 것도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처제, 칼을 거두오."

"형부, 이대로 당하면 형부는 죽고 언니와 저는 저 자의 첩이 되고 아이들도 어찌도 될지 몰라요. 차라리 죽기로 싸워 치욕을 면해요."

그러나 양신은 고개를 젓기만 했다.

"처제, 무모하게 싸워서 죽기는 쉽소. 그러나 이 땅에도 인정이란 게 있을 것이므로 나는 양상서 대감에게 호소해서 해결을 보겠소."

양신이 칼을 도로 칼집에 꽂자 양적선은 포박할 것을 명령했다. 병사들이 달려들어 양신이 포박을 당하자 이번엔 가의를 향해 호통을 쳤다.

"가의 참군도 목을 베야 마땅할 자다. 그러나 상서대감께선 옛정을 생각해 추방 명령을 내리셨다. 지체 없이 떠나지 않으면 처형할 것이다."

가의는 그 말을 듣고 얼굴은 흙색이 되었다. 그러나 목숨을 보존하는 걸 감지덕지로 알고 계영과 함께 수레를 끌고 지체 없이 떠났다. 양현감은 가족과 함께 끌려온 양신을 노려보며 물었다.

"양만춘 대정, 그대는 진정 고구려 첩자였던 것인가?"

"대감, 새삼 무슨 말씀을 하시옵니까?"

"나는 널 가문의 일족으로 거둬줬거늘 이런 배신을 하는가?"

"대감, 배신이란 말씀은 거둬주십시오. 소관이 대감의 후의와 은혜를 어찌 잊겠습니까만 이럴 수밖에 없었던 사정을 잘 아시지 않습니까? 양장군께서 제 가족들에 흑심을 품고 계신데 어찌하겠습니까?"

그 말에 양적선이 펄쩍 뛰었다.

"저 놈이 애무한 소리를 하는군! 나는 네놈이 도망치려는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 다 안다. 형님에게 접근해 반란을 일으키게 만드는 목적이 달성되자 이젠 더 있을 필요가 없다는 속셈이 아닌가?"

양신은 또 변명을 할 수밖에 없었다.

"저는 중원 땅에서 살아갈 사람입니다."

양현감은 동생의 말에 부끄러움을 느꼈지만 강하게 말했다.

"무슨 변명도 통하지 않고 양만춘은 군법에 따라 처형을 하겠다."

그러자 이밀이 입을 떼었다.

"초공께선 저하고 잠시 상의를 해주셨으면 합니다."

양현감은 반문했다.

"포산공은 무슨 상의를 하겠단 말씀이요?"

"중요한 건의를 드릴 게 있으므로 잠시 안으로 들어가십시오."

이밀은 양현감을 부추겨 세운 뒤 안으로 끌었다. 양현감은 영문을 모른 채 따라 들어가서 좌정을 하자 이밀이 입을 열었다.

"양대정을 당장 처형하는 건 재고를 해 주셨으면 합니다."

"무엇 때문에 재고를 하라는 말이요?"

"초공께선 대사를 앞둔 마당입니다. 이런 때 그런 일을 벌이신다면 장졸들에게 악영향을 끼칠 우려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명을 거두어 주신다면 저는 여러 가지 사정들을 참작해서 건의를 드릴 게 있습니다."

"포산공은 갑자기 무슨 건의를 하겠다는 말이요?"

"양대정은 그동안 초공의 대의를 돕는데 미력하나마 힘을 보태온 자입니다. 그러므로 목숨을 부지시켜 주겠다는 조건을 걸어 그에게 한 가지 중요한 임무를 부여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포산공은 그자에게 어떤 중요한 임무를 부여하겠단 말씀이요?"

"대감의 말씀대로 나도 앞으로 이연이 보낼 원병을 걱정하게 됩니다. 때문에 그에 대한 방비책을 세우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입니다."

"포산공은 어떤 방비책을 세우려고 하오?"

"이연이 원병을 보내지 못하게 만들 계책이 필요합니다."

양현감도 그건 가장 큰 걱정거리라 표정이 바뀌었다.

"그렇긴 하오. 그런데 어떤 계책이 있겠소?"

"이연의 출병을 막기 위해 외적의 힘을 빌리는 것입니다."

"외적의 힘을 빌린다면 어디서란 말이요?"

"동돌궐입니다."

양현감도 동돌궐을 끌어들일 수만 있다면 가능한 일로 여겼다. 동돌궐이 국경을 침입하기라도 해 주면 이연의 발목을 잡을 수가 있었다.

"포산공, 그건 묘책이긴 하지만 가능한 일이겠소?"

"동돌궐의 칸은 그동안 황제에게 복속하는 태도를 취해왔지만 내심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그런데다 고구려가 계속 꿋꿋하게 버티는 걸 보고 은근히 황제를 깔보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 자에게 큼직한 반대급부를 제의하고 북방의 국경을 넘보게 만든 유도책을 써보자는 것입니다."

이밀의 말에 양현감은 귀가 솔깃해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포산공, 그렇게만 될 수가 있다면 매우 좋은 계책이 아닐 수가 없소. 그러나 동돌궐 칸을 어떻게 움직이게 만드느냐가 문제가 아니겠소?"

"매우 큰 반대급부를 제의한다면 가능할 수도 있는 일입니다."

"매우 큰 반대급부란 게 대체 어떤 게 되겠소?"

"태원 땅의 절반을 베어주겠다는 조건이면 충분하지 않겠습니까?"

"포산공, 북방 영토를 떼어준다고? 더욱이 태원 땅은 북방을 지키는 중요한 요새지인데 그걸 떼어주자는 게 말이나 될 소리요?"

양현감이 불쾌한 표정마저 짓자 이밀은 씩 웃었다.

"대감, 미끼로 던질 소릴 진심으로 여기십니까? 우린 목적 달성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릴 형편이 못 됩니다. 동돌궐 칸도 황제가 민심을 크게 잃은 걸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다 고구려는 거뜬히 침공을 막아냈는데 자신은 복속을 해서 체면이 이만저만 떨어지질 않았습니다. 그런 비교로 백성들로부터 크게 깔보임을 당하는 처지입니다. 그러므로 말이 아니게 구겨진 체면을 만회하고자 뭔가를 한번 해볼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는 형편이라 우리의 제안을 외면만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이밀의 설득에 양현감도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그렇다면 그런 제안을 어떻게 하려는 것이요?"

"밀서를 보내는 방법이 있겠습니다."

"그 일을 잘 수행해낼 수가 있는 자가 없지 않소?"

"나는 그 일을 맡길 적임자로 양대정을 치겠습니다."

"양만춘 대정을? 그 일에 응할지는 모르지 않겠소?"

"양대정은 제 조국을 대한 걱정이 이만저만 크지 않습니다. 그 점은 대감께서도 잘 아시는 일이고 그 때문에 대감을 돕는 게 아니겠습니까? 만약에 동돌궐이 병력을 움직이게 되면 고구려가 유리해지는 걸 양대정도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거기다 자신의 누가 모르겠습니까? 더욱이 자신의 목숨을 구하게 되는 일을 왜 마다하겠습니까?"

"나도 생각을 해 보니 그렇긴 하겠소. 제 조국을 위하는 길이라면 적극성을 띨 자로 나로서도 누구보다 믿음이 가고 기대를 걸게 되오."

양현감은 즉석에서 동의를 했다. 이왕에 없앨 목숨인데 중요한 일을 시키고 그 임무를 마치고 돌아온 뒤 없애도 되겠다는 생각에 말했다.

"포산공은 문장력이 좋으니 동돌궐 칸을 움직일 글을 써보시오."

"그야 어렵지 않으니 당장 쓰겠습니다."

양현감은 이밀과 그런 합의 본 뒤에 일단 양신을 일단은 감옥에 처넣게 했다. 그런데 밤에 이밀이 감옥으로 가서 양신을 만났다.

"양만춘 대정, 나는 자네를 살리기 위해서 상서대감을 설득했다. 그러니 묻겠다. 그댄 살 것인지 처형을 당할 것인지 양자택일을 하라."

"무슨 뜻으로 하신 말씀인지는 모르나 당연히 살아야 할 일입니다."

"좋다. 그렇다면 자신의 목숨을 구하는 대신 수행해줄 임무가 있다."

이밀은 그렇게 입을 떼고 동돌궐을 다녀와야 할 일을 설명했다. 양신은 목숨을 부지할 수 있는 것도 여간 큰 다행히 아닌데 조국을 돕는 일까지 하게 된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는데 다만 가족들이 걱정이었다.

"소관은 다만 가족들이 걱정되어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자네 가족들은 내가 보호해 주겠으니 걱정을 말게. 동돌궐의 답장만 받아와 주게. 그러면 가족들과 다시 합쳐 살게 해 줄 것을 약속하겠다."

"소관은 장도를 압수당했습니다. 손에 익은 칼을 지니고 가겠습니다."

"그건 어려울 게 없다. 내가 찾아 돌려주겠다. 내일 일찍 길을 떠나야 한다. 다녀올 여비도 충분히 내주겠다. 꼭 성공해 주기 바란다."

이밀은 돌아간 뒤 곧 병사가 밀두도와 돈이 든 주머니를 전했다.

양신은 가족을 한번 만나보고 떠나길 청했으나 그건 거부당했다. 이튿날 할 수 없이 말에 올라 북으로 길을 잡아 떠났다. 그런데 어디쯤에서 뜻밖에 사오가 길가에 서 있었다.

사오는 눈물을 흘리며 그동안 양신에게 닥치게 된 모든 일들에 관해 서 들려주었다. 가의가 부친에게 반값에 집을 팔았고, 부친은 양신의 가족이 다시 만춘장으로 들어와서 계속 살기로 했다. 그 일에 대해 양신이 걱정을 하겠지만 자신이 책임을 지고 보호를 하겠다. 그러나 일을 마치고 무사히 돌아오기만을 빌겠다는 말을 했다.

양신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인 뒤 당부의 말을 했다.

"나는 사오양만 믿고, 머릿속엔 가족과 함께 사오양도 담아두겠소."

그렇게 말하고 손을 내밀어 사오의 얼굴을 어루만져 주었다. 사오는 그렇게 하는 남자의 애달픈 시선 받고 눈물을 주르륵 흘러내렸다. 그리고 싸들고 온 꾸러미를 내밀었다.

"대정님, 가시다 시장하실 때 드세요."

양신은 그것을 받아 들고 목이 메어 아무런 말도 못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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