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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나라 39. 납치

39. 납치

by 정완기

39. 납치(拉致)


"내가 북을 한번 울리면 낙양성은 깨진다."

양현감의 희떠운 말에 10여만 명의 무리들은 낙양성으로 진군을 개시했다. 백성들의 호응도 높아 여인들은 길에서 손을 흔들었고 반군에 가담하겠다고 뛰어드는 자들이 속속 늘어났다.

반군은 일단 낙구창에서 진군을 멈추었다.

양현감은 무리의 숫자를 더욱 늘릴 속셈에 진군 속도를 내지 않았다. 반군들도 대부분 농민들이라 싸움보다 전리품을 얻게 되지 않을까 하는 욕심들을 품은 자들이 많았다. 그럴지라도 호대한 세를 과시는 하는 건 매우 중요한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낙양성엔 반란군이 쳐들어온다는 소문이 전해졌다. 방비할 병력 숫자가 적어 벌써부터 동요가 일었다. 이밀은 진격 속도를 빨리 할 것을 재촉했으나 양현감은 여전히 자신감이 없어 미적거리는 태도를 보이다가 낙구창에 이르자 그냥 주저앉듯 멈추었다.

이밀은 불만이 실망으로 바뀌었다.

"초공, 빨리 당도하면 할수록 낙양성 함락은 유리해집니다."

양현감은 이밀의 독촉에 못 이겨 낙구창의 창고에 남은 양곡을 전부 마차에 싣고 출발했다. 반군들이 흩어지지 않게 만들려면 매 끼니를 배불리 먹이는 방법밖에 없다는 생각이었다.

낙양성을 지키는 번자개는 반군의 진군 속도가 느려서 국도인 대흥성의 병력 중 일부를 지원을 받아 방비를 얼마쯤 강화시키고 태원 쪽에도 병력 지원을 요청해 두었다.

이연은 요동에 있는 황제에게 상황을 보고하고 회답을 기다리는 중이라며 병력을 보내지 않았다. 반면 뒤늦게 양현감이 반란을 일으킨 걸 알게 된 황제는 여간 놀라지 않았다.

황제는 내심 걱정을 했던 일이 일어나자 생각을 바꾸지 않을 수가 없었다. 사태의 심각성이 큰 만큼 전선의 병력 중 일부를 회군시켜 급히 진압시킬 것을 명령했다.

반군은 여양을 출발한 지 열흘 만에 겨우 낙양성에 접근해 들었다. 그런데 진중에선 황제의 병력이 황하를 건넜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로 인해 동요가 일자 양현감은 또다시 진군을 멈추었다.

반군들은 관군이 육박해 든다는 소문이 돌면서 위기의식을 크게 느낀 나머지 슬금슬금 도망을 치기 시작했다. 이밀은 전조가 좋지가 않다는 판단에 양현감에게 신속한 진군을 재촉했다.

"관군 병력이 낙양성에 당도하기 전에 공격을 해야 합니다. 우리가 먼저 성을 점령하고 농성을 해야 버틸 수가 있지 그렇지 못하면 반군 병력은 하루아침에 다 흩어질지도 모릅니다."

양현감은 그렇게 하는 게 이로울지는 모르나 처음부터 낙양성 함락은 어렵다는 회의적인 생각이었다. 두려움은 더욱 커져 가서 끝내 목표를 바꾸자는 말을 꺼내고 말았다.

"아무래도 차선책인 낙양 성보다 대흥성을 치는 게 좋겠소."

이밀은 양현감이 갑자기 목표를 바꾸자 낙양성보다 대흥성은 상대적으로 약할 것으로 여기며 수긍을 했다. 그러자 반군 무리도 위험한 전투에 투입되는 걸 꺼려해 쌍수로 환영을 했다.

반군은 낙양성을 버리고 그냥 지나쳐 진군했다. 그런데 가는 도중에 홍농궁(弘農宮)이란 별궁(別宮)이 있었다. 그곳의 노인들은 반군을 맞자 별궁에 양곡이 많이 쌓여 있다고 알렸다.

백성들은 그동안 황제에게 착취를 많이 당해 반감이 큰 데다 양현감이 낙구창의 양곡을 백성들에게 풀었다는 소문을 듣고 자신들도 홍농궁의 양곡을 나눠 받을 기대감 때문이었다.

양현감은 그 보고를 받고 내심 잘 됐다는 생각에 홍농궁부터 점령을 하기로 했다. 공격 명령을 받은 반군 무리는 즉시 홍농궁을 향해 다투어 달려갔고, 거길 지키던 병사들은 도망을 쳤다.

홍농궁의 문들은 굳게 잠겨 있었다. 반군들은 문짝들을 부수다가 조급한 마음에 불을 질렀다. 그러나 불을 너무 과도하게 질러서 건물 전체를 휘감고 번져서 양곡도 함께 탔다.

물욕에 눈이 어두운 반군과 백성들은 각자 번지는 불길 속으로 뛰어들었다. 죽기 살기로 양곡을 꺼내려고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뒤늦게 도착한 양현감은 그 광경을 목격하고 혀를 찼다.

"철수하라!"

명령이 떨어졌으나 반군 무리는 따르지 않았다. 백성들과 반군은 홍농궁에서 꺼낸 양곡을 서로 뺏고 빼앗기는 싸움마저 벌였다. 그런데 관군이 벌써 홍농궁에 근접해 든다는 소문이 퍼졌다. 그러자 각자 챙긴 양곡을 가지고 뿔뿔이 흩어져 버렸다.

그것으로 반군은 완전히 와해 상태로 빠져들었다. 10여 만 명이 순식간에 수천 명으로 줄어들었다. 양현감은 곧 들이닥칠 관군에 꼼짝없이 체포를 당할 판이라 어찌할 바를 몰랐다.

가뜩이나 대가 약한 양현감은 관군에 체포돼 극형에 처해질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차라리 자살을 택하려고 동생에게 자신의 목을 베어 줄 것을 청했다. 양적선 역시 절망감에 빠진 터라 형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형을 죽인 뒤 자신도 자결하기로 하고 형의 목을 베었다.

양적선은 형을 죽인 뒤 통곡을 하면서 이밀에게 자신의 목을 쳐줄 것을 부탁했다. 그러나 이밀은 좀 더 상황을 지켜보다 죽어도 늦지 않는다며 그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다.

그런 일로 미적대는 사이에 낙양성의 번자개는 병력이 끌고 들이닥쳤다. 이밀은 재빨리 도망을 쳤으나 허탈감에 빠져 그대로 있던 양적선은 관군에 체포를 당하는 몸이 되었다.

번자개는 양적선을 기둥에 묶어 놓고 병사들로 하여금 창으로 찌르게 했다. 그로 인해 양적선의 몸은 수많은 창칼을 받고 만신창이가 되었다. 양현감도 마찬가지로 너덜너덜해진 형제의 시체들은 거리에 내던져서 백성들의 구경거리가 되었다.

이밀은 약삭빠르게 도망쳤지만 관군의 검문에 걸려들어 체포를 당했다. 그렇게 된 이유는 그의 준수한 외모와 화려한 의관을 보고 군관이 그냥 놔 주려는데 병사 한 명이 공손히 절을 했기 때문이다.

"나릴 여기서 뵙게 되는군요?"

이밀은 자기를 알아보는 병사가 있자 여간 당황하지 않았다. 모른 체했으면 오죽 좋으련만 그로 인해 신분이 밝혀지게 되고 말았다. 군관은 이밀을 당장 포박하게 했다.

관군은 이밀을 끌고 낙양성으로 향했다. 그러다 해가 지자 한 마을에서 묵게 되었다. 이때 이밀은 자신을 알아본 동향의 병사를 가만히 불렀다. 병사도 자기로 인해 정체가 드러난 이밀이 처형을 당할 생각을 하자니 여간 미안하고 후회가 되지 않았다.

이밀은 허리춤에서 돈주머니를 하나 꺼내 들었다.

"동향인, 나는 어차피 죽을 몸일세. 이 돈은 자네가 갖게."

그러자 동향의 병사는 손사래를 쳤다.

"나리께서 이렇게 된 게 저 때문인데 어찌 돈을 받겠습니까?"

"이 보게, 내 운명인 걸 어찌하겠나? 나는 이제 죽을 몸이라 돈도 필요가 없게 되었네. 이 돈을 받고 내 부탁을 하나 들어줄 수는 없겠나?"

"무슨 부탁이신가요? 나리."

"나는 죽고 나서 고향에 뼈를 묻히게 하고 싶네. 자네가 이 돈으로 내 시체를 수습해서 고향으로 보내 주었으면 하네. 나는 자네 때문에 죽게 된 사람이 아닌가? 미안한 마음이 든다면 내 소원을 들어주게나."

동향의 병사는 이밀의 부탁을 외면할 수가 없었다. 할 수 없이 돈주머니를 받아 드는데 이밀이 또 다른 돈 주머니를 꺼냈다.

"먼저 받은 돈주머니는 자네 몫으로 챙기게. 이번 것은 군관과 동료들에게 내놓고 내 시체를 수습해 집으로 옮기게 해 줄 걸 청해주게."

이밀은 병사의 대답도 듣지 않고 세 번째 돈주머니를 꺼냈다.

"나는 내일 낙양성에 들어가면 처형을 당할 몸일세. 오늘 밤 마지막으로 좋아하는 술이나 한 잔 마시고 싶네. 다른 병사들도 나 때문에 노고가 많을 것이므로 술을 대접하고 싶네. 동료들에게 내 뜻을 전하고 술을 사고 남는 돈이 있으면 병사들끼리 나눠 가지면 좋겠네."

동향의 병사는 이밀의 뜻대로 해주고 싶었다. 우선 자기 몫은 품속에 감추고 동료들에게 돌아가서 2개의 돈주머니를 내놓았다. 그리고 이밀이 한 말을 그대로 전했다.

모두는 이게 웬 떡이냐 싶어 반겼다. 군관은 자기 몫을 더 챙기고 돈을 분배했다. 남은 돈으로 술을 받아오게 해서 동향의 병사는 이밀의 포승을 풀고 술을 마시게 해 주었다.

그때부터 군관과 병사들은 진탕 술을 마시며 기분이 좋아서 놀았다. 이밀은 혼자 술잔을 기울이며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선심을 쓴 효과가 나타나 병사들은 점점 해이해진 분위기가 되었다. 미소를 머금고 보는 동안에 병사들은 하나 둘 골아떨어졌다. 마침내 조용해지자 유유히 그 자리를 떠나 도망을 쳤다.

황제는 양현감의 반란에 극도로 화가 나고 자존심이 상해 전 군에 회군 명령을 내리고 말았다. 그러나 체면이 말이 아니고 참담한 심경이라 국도로 가지 않고 낙양성으로 들어갔다. 더욱이 하찮은 양현감이 일으킨 반란에 10만여 백성들이 호응을 한 것에 여간 큰 충격을 받지 않았다. 백성들이 괘씸할 정도가 아니고 모두들 이상해졌다는 생각에 신하들을 모아놓고 말했다.

"짐은 하찮은 양현감의 반란에 그처럼 많은 백성들이 따라나선 걸 이해를 할 수가 없다. 이렇게 된 원인은 짐의 부덕한 소치도 있겠지만 짐을 이 지경으로 몰아넣은 너희들의 무능함 때문이다."

신하들은 그런 말을 듣고 황제가 무슨 분풀이를 하겠다는 경고로 받아들였다. 때문에 긴장하며 더욱 몸들을 도사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짐의 생각은 이렇다. 반란을 일으킨 양현감에게 뇌화부동을 한 백성들이 많은 이유는 인간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인간들이 많아지면 나쁜 짓을 하는 자들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 짐은 이번 기회에 그걸 막기 위해서 아예 싹을 도려낼 조치를 취해야 하겠다."

황제는 그런 말을 하고 관군은 출동시켰다. 관군은 그때부터 낙양성 인근의 마을들을 돌며 반란에 가담한 자들을 색출한다며 백성들을 마구잡이로 체포했다. 그리고 반란에 대한 응징으로 마구 죽였는데 그 숫자가 너무 많아 처형을 하기조차 힘들어 구덩이를 파고 생매장을 시켰다. 그처럼 잔인한 수법에 걸려들어 목숨을 잃은 자가 3만여 명에 이르렀다. 뿐더러 억울하게 죽은 자의 친척들도 노예로 삼아 낙양성 부근의 마을들은 모두가 도망쳐서 텅텅 비게 되었다.

황제는 양현감을 위해 격문을 쓴 관리가 체포당하자 기둥에 묶어놓고 신하들로 하여금 과녁으로 삼고 활을 쏘게 했다. 화살을 받은 관리의 몸은 끝내 고슴도치처럼 변하고 말았다.

백성들은 포악한 황제가 사람을 죽이길 놀이처럼 즐긴다며 치를 떨었다. 여양에도 황제가 잔인한 보복을 한다는 소문이 전해져 사람들의 탈출 소동이 벌어졌다. 더욱이 여양은 양현감이 반란을 일으킨 근거지라서 더욱 큰 화를 면치 못하기 때문이었다.

여양도 목숨을 구하고자 집을 떠나는 북새통을 이루었다. 사근은 누구보다 극도의 공포감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양현감과 거래도 있었기 때문에 누구보다 큰 보복을 당할 게 뻔했다. 때문에 산해관(山海關)으로 피신할 준비를 하며 여선에게도 함께 떠날 것을 권했다. 누구보다 사오가 적극 권했으나 여선은 양신을 기다리겠다며 응하질 않았다.

그런 때 도해선이 여양에 잠입해 들었다. 만돌은 양적선의 별장에서 양신에게 박정한 내침을 당한 뒤 복수심을 품었다. 그리고 위기에 처한 상조 참군과 한께 요동으로 갔고 다시 도해선을 찾아갔던 것이다.

도해선은 만돌을 통해 여선이 만춘장에서 거처를 하는 걸 알게 되었다. 처음엔 침투할 엄두를 못 냈지만 양신이 동돌궐 감옥에 갇혀 있는 것을 이용할 마음을 먹었다.

만돌은 도해선이 여선의 거처로 인도해 줄 것을 요구하자 그 대가를 요구했다. 도해선은 들어주기로 하고 무예가 능한 부하들 20여 명을 선발한 뒤 마침 남포에 머물던 백제 상선을 고용해서 타고 왔다.

배가 여양에 당도하자 만돌은 혼자서 만춘장으로 갔다. 사근은 흉흉한 분위기 속에 가족과 산해관으로 떠날 일로 걱정이 컸다. 재물을 챙겨서 육로로 가기엔 너무도 위험했다. 그런 고민을 하던 중 만돌의 방문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도해선이 여선을 데려가려고 배를 끌고 온 것을 알게 되자 즉시 도해선을 만나보려고 만돌과 함께 나섰다.

사근은 도해선을 만나 얘기를 나눴다. 두 사람은 각자의 목적을 위해 서로 돕기로 했다. 도해선은 사근의 가족을 산해관까지 태워주고 사근은 여선을 고구려로 데려가는 일을 돕기로 합의를 봤다.

두 사람은 흥정이 끝나자 구체적인 계획을 세웠다.

"사근님, 이 일은 신속하고도 조용히 끝을 내야만 합니다. 다만 여선 부인을 어떻게 하면 조용히 배에 태울 수가 있느냐가 큰 걱정이요."

"도해선님, 설득을 하다가 정히 안 되면 강제로 끌고 갈 수밖에 없지 않겠소? 다만 그럴 경우 주랑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게 큰 문제요."

"주랑이 막으려고 든다면 처치해 버리겠소."

도해선의 단호한 답변에 사근은 고개를 저었다.

"주랑은 검술을 지녔소. 충돌이 일어나면 큰 불상사를 빚게 되고, 적지로 들어온 도해선님에겐 매우 불리해져 위험이 닥칠지도 모르오."

"나도 그 점은 우려가 되나 조용히 해결할 방법이 없지 않겠소?"

만돌이 그런 말을 나누는 두 사람 사이로 끼어들었다.

"그 일은 제게 맡겨주시면 깨끗이 해결을 하겠어요."

"만돌은 그 일을 어떻게 해결할 수가 있단 말인가?"

도해선은 만돌에게 기대와 의문에 찬 눈길을 보냈다.

"저는 이번에 고구려에 가서 양신이 동돌궐 감옥에 갇혀 있는 걸 알았게 되었어요. 그걸 이용해 주랑을 속이고 만춘장에서 끌어내겠어요."

만돌의 대답에 사근은 이상하다는 듯 물었다.

"양신이란 사람은 대체 누구를 가리키는 것인가?"

"양만춘 대정의 본래 이름예요."

"그런가? 나는 양대정이 동돌궐 감옥에 갇힌 걸 이제야 알았네. 그렇지 않았다면 벌써 돌아왔을 사람인데 또 그런 일을 당했군!"

만돌은 여선에게서 주랑을 떼어낼 속임수를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태산팔협의 형제들은 일곱 명이나 양신에게 목숨을 잃었다. 때문에 우두머리 옹장은 복수를 하려고 낙구창으로 왔다. 그는 병력을 거느리고 동돌궐을 다녀오는 양신의 길목을 지켰다. 그러다가 양측은 충돌을 빚었다. 양신은 중과부적으로 큰 부상을 입고 겨우 목숨을 건진 채 도망을 쳤다. 그러나 숨을 데가 없어 다시 양적선의 별장으로 숨어들었다. 양신의 딱한 처지 때문에 만돌은 가족에게 알리려고 만춘장을 찾아왔다.

도해선은 그 얘길 듣고 무릎을 쳤다.

"참으로 좋은 계책일세!"

사근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만돌은 나와 함께 당장 주랑을 만나러 가세. 그러나 주랑을 만나되 여선부인이 모르게 만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일세."

만돌은 그 말을 수긍을 하며 사근에게 부탁했다.

"제가 밖에서 만나게 사근님은 주랑을 끌어내 주세요."

"그건 어렵지가 않네. 그 대신 만춘장에서 끌어낸 주랑을 얼른 어디로 끌고 가지 않으면 안 되네. 그 사이에 우린 여선부인을 데려가서 배에 태우는 일을 끝내지 않으면 안 되니까."

도해선도 고개를 끄덕이며 걱정을 표했다.

"나도 꼭 그렇게 되어야만 한다는 생각일세. 그런데 만돌이 주랑을 속여서 일을 무사히 마칠 수가 있게 될지가 의문일세."

만돌은 두 사람의 우려를 씻게 해 주고자 자신 있게 대꾸했다.

"저는 실수가 없게 하겠으니 낭패를 볼 걱정은 마세요. 주랑을 어떻게든 멀리 끌고 갈 것이니 사근님도 제게 큰 보상을 해주셨으면 해요."

"어떤 보상을 요구하는가?"

"수고비랄까? 큰 대가가 있어야 잘 해낼 수가 있지 않겠어요?"

만돌의 말에 사근은 알았다는 듯 선선히 대답했다.

"만돌이 성공만 시킨다면 충분한 보상을 해주고말고."

"저는 사근님이 약속을 믿고 두둑한 사례금을 기대하겠어요."

도해선과 사근은 사례금이 문제가 아니고 과연 뜻대로 될지가 아직도 의문인데 만돌이 품속에서 단검을 하나 꺼내 보였다. 사근은 그걸 보고 놀라며 물었다.

"자넨 그 칼로 주랑을 해치우기라도 하려는 것인가?"

"해치다니 무슨 말씀예요?"

"아니라면 어떻게 하겠단 말인가?"

"이 단검이 누구 것인지 아세요?"

"그게 누구 것인지 내가 어찌 알겠나?"

"바로 양대정 꺼예요."

"양대정 꺼라고?"

"주랑도 이 단검을 알아 볼 테니 제 말을 믿지 않을 수가 없겠죠?"

도해선과 사근은 만돌의 설명을 듣고 가능성이 크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마침내 사근이 앞장을 서 모두는 배에서 내린 뒤 만춘장으로 향했다. 큰 떼거리를 이루었지만 사근의 안내를 받아 마음들을 놓고 무사히 만춘장에 당도할 수가 있었다.

사근은 즉시 집안으로 들어갔다. 도해선은 부하들과 함께 부근의 산속으로 들어가서 몸들을 숨겼다. 잠시 후 주랑이 사근을 따라 밖으로 나왔다. 만돌은 주랑에게 다가들며 입을 열었다.

"내 이름은 만돌이예요."

"만돌?"

주랑은 들었던 이름이고 색목인(色目人)인 그녀가 양적선의 첩이었던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녀가 내보인 단검을 보고 몹시 놀라면서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 단검은 형부 것인데 왜 댁이 갖고 있나요?"

"양대정은 낙구창에서 태산팔협과 겨루다 큰 부상을 입었어요. 지금 양적선 장군의 별장에서 제가 치료를 해드렸어요. 제가 알리고자 여길 오겠다는 말을 하자 지니고 가라고 내주신 거예요."

"형부는 전에 도적 떼와 싸웠는데 이번엔 태산팔협과 싸웠다고요?"

"태산팔협의 일곱 형제들이 양대정에게 목숨을 잃은 걸 몰랐어요?"

주랑은 처음 듣는 말이라 사근에게 물었다.

"사근님은 혹시 그 사실을 알고 계신가요?"

"알고 있었소. 그러나 양대정은 식구들이 아는 걸 원치 않았소. 더욱이 낭자는 원수를 갚겠다고 위험한 일에 나서려고 해서 더욱 입을 다물기를 바랐소. 이번에 양대정과 옹장 간에 또 충돌이 일어날 줄이야!"

사근의 말에 만돌이 대답했다.

"옹장은 병력을 끌고 길 몫을 지키다 양대정을 덮쳤어요. 양대정은 큰 부상을 입었으나 겨우 목숨을 건질 수가 있었어요. 그런 몸으로 여양으로 올 수가 없어 또 양적선의 별장으로 숨어들 수밖에 없었어요."

주랑은 크게 놀라면서도 어떤 의문이 일어서 물었다.

"만돌님은 거길 떠났다는 소문을 들었는데 어떻게 거기에 있지요?"

"양현감 형제가 반란을 일으켜서 나는 위험해질 처지에 이르러 일단 친정으로 피신을 했어요. 그런데 양현감 형제가 반역자로 처형을 당하자 나로선 욕심이 생기지 않을 수가 없었어요."

"어떤 욕심이 생겼단 말인가요?"

"나는 양적선의 첩이예요. 때문에 주인을 잃은 별장을 차지할 생각에 다시 돌아갔어요. 그런데 또 숨어든 양대정을 만나게 된 거예요."

주랑은 여러 가지 말을 들어본 결과 수긍이 가는 점이 있었다. 만돌은 눈치를 보면서 또 입을 열었다.

"나도 별장에 더 있으면 위험하단 판단에 나갈 참이었어요. 그걸 알게 된 양대정은 내게 가족들에게 알려 줄 것을 부탁했어요. 나로선 인정상 큰 부상을 입은 양대정의 처지에 동정을 금치 못함으로 그 요구를 들어주기로 마음을 먹었어요. 때문에 친정으로 돌아가는 길을 일부러 멀리 돌아서 여길 들린 거예요."

"만돌님, 그곳엔 지금 형부를 돌봐 줄 사람이 있는가요?"

"별장엔 하인들마저 전부 도망을 쳐서 남은 자가 없어요. 오늘이라도 관군이 들이닥칠지 모르니 어서 가서 양대정을 데려오도록 하세요."

만돌은 말하고 몸을 돌려세웠다. 주랑은 그녀를 다급히 붙잡았다.

"만돌님, 제가 형부를 데려올 수 있게 도와주실 순 없겠어요?"

"내가 어떻게 도와줄 수가 있겠어요?"

"저는 형부가 있는 장소를 몰라 갈 수가 없어서 그래요."

"낙구창으로 가서 양적선 별장을 물으면 모르는 사람이 없어요."

"만돌님, 절 좀 도와주세요. 부탁입니다. "

주랑이 간절한 표정으로 말하자 만돌은 더 겁을 주려고 했다.

"사정은 딱하지만 지금 낙양성 부근의 마을들은 관군에 의해 쑥대밭이 되고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어요. 더욱이 양대정을 놓친 옹장은 낙구창 일대를 대대적으로 수색을 벌일 건 불을 보듯 뻔한 일예요. 그런데 아무리 사정이 다급하다고 해도 저보고 그런 사지로 다시 들어가자는 말씀을 어떻게 하실 수가 있어요?"

만돌은 이젠 불쾌한 표정까지 지으며 그대로 떠나려고 했다. 제정신이 아니게 된 주랑은 울먹이면서 더욱 매달리게 되었다.

"만돌님, 형부를 살려내게 도와주시면 평생의 은혜로 알겠어요."

"나는 인정상 사정을 알려드린 것만도 고맙게 여겨야 하지 않겠어요? 다시는 사지로 들어갈 수가 없으니 주랑님이 해결을 하도록 하세요."

주랑은 이제 안색이 납색으로 변해버렸고 사근이 입을 열었다.

"만돌, 이왕에 좋은 일을 했으니 주랑 낭자를 좀 도와주게."

"왜 사근님까지 저보고 사지로 들어가란 말씀을 하세요?"

"오죽하면 이러겠나? 나도 양대정 가족들이 너무 딱해서 그러네. 자네가 도움을 준다면 나는 크게 사례를 하겠으니 다시 생각을 해주게."

"억만금을 받는다고 한들 누가 목숨을 걸려고 하겠어요?"

"나는 이렇게 생각을 하네."

"어떻게 생각을 하신다는 말씀인가요?"

"관군이 낙구창에 들이닥치려면 며칠간은 더 시간이 걸릴 것 같네. 그만한 여유가 있으므로 부탁을 하는 것일세. 당장은 위험하지가 않을 것이므로 그 틈을 타고 응해 주게나. 제발 부탁을 함세."

"그러시면 사근님이 직접 가서 데려오면 되지 않겠습니까?"

"나는 지금 산해관으로 떠날 준비로 눈코를 뜰 새조차 없을 지경일세. 양대정은 양현감의 호위무사였기 때문에 앞으로 가족들은 무사하지 못할 게 불을 보듯 뻔한 일일세. 나는 여선부인에게 함께 산해관으로 피할 것을 권하고 있으나 양대정을 기다리겠다며 듣지를 않네. 그러므로 양대정을 데려올 수만 있다면 함께 여길 뜰 수가 있겠네."

주랑도 간절한 표정으로 또다시 매달렸다.

"만돌님, 매우 위험한 것은 저도 잘 알아요. 그러나 한 사람의 목숨을 구해야 만 하니 적선을 하시는 마음으로 다시 생각을 해주시기 바라요."

사근은 그 말을 거들고자 보상을 하겠다는 제의를 했다.

"나는 만돌의 친정이 곤궁하게 사는 걸로 아네. 이번 일을 도와준다면 나로선 후한 사례금을 내놓을 용의가 있음을 말하겠네."

만돌은 후한 사례금이란 말에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입을 열었다.

"저도 돈 욕심은 나지만 목숨보다 더 중요하겠어요? 그렇지만 이처럼 간청들을 하시므로 거부만 할 수도 없겠어요. 그렇지 않아도 저는 먼 길을 떠나야 하는데 지금 수중에 지닌 돈이 없어요. 앞으로 길을 떠나자면 노자 돈도 필요하고 친정 식구들을 먹여 살려야 할 걱정도 커요. 사례금이라면 얼마나 내놓으시겠어요?"

"은전 1백 량이면 되겠는가?"

"그 말씀대로 해주신다면 다시 생각을 해봐야 하겠습니다."

"그럼 이만 결정이 난 걸로 하세."

사근은 그렇게 말하고 주랑에게도 일렀다.

"낭자도 얼른 길을 떠날 준비를 하오."

만돌은 그 말을 듣고 또 입을 열었다.

"저는 돈 욕심 때문에 죽음을 무릅씁니다만 양대정을 데려오자면 낭자 혼자선 안 되겠어요. 양대정의 부인도 함께 가는 게 좋겠어요."

사근은 그 말에 강하게 고개를 저었다.

"여선 부인은 두 아이들이 딸린 몸인데 말도 안 될 소릴!"

"하긴 그런 처지라면 오히려 짐이 될 수도 있겠군요."

만돌은 이해를 하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딴 요청을 했다.

"우리가 빨리 다녀오려면 말을 타고 가야만 해요. 말 두 필이 필요한데 내주실 수가 있겠어요?"

"그런 걱정은 하지 말게."

사근은 그렇게 대답하고 주랑을 돌아다봤다.

"낭자는 여선 부인에게 양대정에 관한 말을 꺼내면 안 되겠소."

"그렇게 하겠어요. 그런데 장도는 지니고 가야만 하겠어요."

"장도를 지니고 나가면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겠소?"

"늘 하는 검술 수련을 하겠다고 둘러대겠어요."

주랑은 그렇게 대답을 하고 급히 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사근은 말 2 필을 끌고 주랑은 장도를 등에 메고 밖으로 나왔다. 만돌은 사근이 내준 주머니 속을 들여다보고 두 눈이 번해지며 고맙다는 듯 연방 절을 했다.

"만돌, 그만한 돈이면 만족하겠나? 어서 떠나게."

만돌이 먼저 말을 타자 주랑이 말했다.

"사근님, 제가 다녀올 동안만 떠나시는 걸 기다려 줄 순 없겠어요?"

"화급을 다툴 일이나 양대정을 데려오면 함께 떠나도록 하겠소."

주랑도 말에 오르자 만돌이 앞장을 서 말을 몰아나갔다. 그때 도해선은 숲 속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두 사람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자 부하들과 함께 만춘장의 대문 앞으로 다가들었다.

도해선은 사근을 따라 집안으로 들어갔다. 하인들이 짐들을 꾸리느라 소란스럽기가 그지없었다. 여선은 갑자기 검술 수련을 하겠다며 장도를 메고 나간 주랑을 이상하게 여기고 있었다.

사근은 도해선을 별채로 데려간 뒤 말했다.

"여선 부인, 손님이 찾아오셨소."

여선은 방문을 열다가 화들짝 놀랐다. 뜻밖에도 사근 곁에 도해선이 서 있어서 그를 뚫어지게 바라보기만 했다.

"부인 오래간만에 뵙겠습니다."

도해선은 허리를 굽혀 절을 했다. 여선은 잠자코 있기만 했다.

"소인은 저하의 명을 받들고 여기에 오게 되었습니다."

여선은 겨우 입을 떼었다.

"날 데려가려고 온 것인가요?"

"아닙니다."

"아니라고?"

여선은 되뇌게 되었고 도해선이 대답했다.

"소인은 먼저 부인께 알려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뭘 알리겠다는 말인가요?"

"부인께선 양신이 지금 어디서 어떤 지경에 처했는지 모르십니다."

도해선의 말에 잔뜩 경계심을 품던 여선은 안색이 흐려졌다.

"서방님이 어디서 어떻게 되셨다는 말인가요?"

"양신은 동돌궐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

여선은 너무도 놀라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들었다.

"도해선님은 날 속이려고 꾸며낸 말이지요?"

"부인께서도 알고 계셨는지 모르겠으나 양신은 반란을 일으켰다가 죽은 양현감의 밀서를 지니고 동돌궐에 갔습니다. 그러나 거기서 체포를 당해 감옥에 갇힌 몸이 되고 말았습니다."

여선은 양신이 동돌궐에 간 것도 무슨 일로 갔음을 대강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곳 감옥에 갇혔다는 말을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모르겠는데 도해선이 봉서를 하나 꺼내었다.

"저하께서 부인께 보내신 서찰을 올리겠습니다."

여선은 글을 읽지 못해 사오를 불러서 대신 읽게 했다.

--여선 보오.

그대가 내 곁을 떠난 지도 벌써 3년이 가깝소. 이국땅에서 어떻게 지내는지 걱정을 하던 중 소식을 접하게 되었소. 정회(情懷)가 통하면 만리를 떨어져도 한 방에 있는 것 같다고 하는데 내 심경이 바로 그렇소. 그대가 내 곁에 있었을 땐 참으로 행복했소. 그러나 내 곁에 있기가 힘들어 떠난 사람이요. 그걸 알지만 아직도 그대에 대한 그리움은 사무치기만 하오. 가슴이 아파도 원망을 않겠소. 다만 시의(侍醫)와 시녀들의 증언(證言)으로 내 자식을 잉태했던 걸 알게 되었소. 이젠 출산을 했을 것이고 내 핏줄을 돌려받고 싶소. 간곡한 청을 들어주기 바라오. 양신은 동돌궐 감옥에 갇혀 처형을 기다리는 걸로 알고 있소. 그대가 내 요구를 들어준다면 구명(救命)에 힘을 쓰겠소. 마지막으로 내 소회(所懷)를 밝힌다면 내게로 돌아와 주길 바라는 마음이요. 고건무 씀

사오가 읽기를 마치자 도해선은 양신에 관한 일을 더 설명했다.

동돌궐 시피가한(始畢可汗)의 왕후(王后)인 가하돈은 수국 황실의 공주였다. 그녀는 양신이 본국의 반역자 양현감의 밀서를 지니고 온 것을 알게 되자 빨리 처형해 달라고 요구했다. 처형이 안 되면 본국으로 송환할 것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었다. 그러나 가한은 고구려 침공에 실패한 황제가 반란까지 맞았기 때문에 관망세로 돌아섰다. 대신 수국에 반감이 큰 힐리(詰利) 공자에 양신에 관한 처리를 맡긴 채 오불관언하는 태도를 취하고 있었다.

여선은 도해선의 말이 사실이든 아니든 간에 정신이 아득해질 뿐이었다. 그런데 주랑이 장도를 지니고 밖으로 나가고 나서 도해선 나타난 것을 두고 무슨 연관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주랑은 어찌 되었는가요?"

여선이 던진 질문에 도해선은 거침없이 대답했다.

"강제로 먼저 배에 태웠습니다."

"지금부턴 날 어찌할 생각인가요?"

도해선은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저는 부인께서 저하께 돌아가시길 바랍니다."

여선은 자신도 강제로 끌려가게 되었다는 생각인데 사근이 말했다.

"부인도 이곳의 사정이 어떤 것임을 잘 알고 계실 것이요. 우리 가족은 물론 부인도 여기에 남아 있으면 죽음을 면치 못하게 되었소."

사근의 말에 여선은 무어라 대답할 말이 없었다.

"부인은 양대정이 돌아오기만 무작정 기다린다면 안타깝기만 하오. 나로선 어떻게 해서든 부인의 목숨을 건지게 해주고 싶던 참에 도해선님이 이곳에 오셨소. 우리 가족은 고구려로 돌아가는 배를 얻어 타고 산해관까지 갈 것인데 부인도 일단 아이들과 함께 안전한 곳으로 옮겨가면 어떻겠소? 산해관에서 지내면 양대정이 돌아올 때까지 나는 안전하게 지낼 수 있게 해 주겠소. 함께 떠나길 간곡히 바라오."

사오도 부친의 말을 거들었다.

"여선 언니, 제발 떠나도록 하세요. 제가 잘 지켜드리겠어요."

도해선은 그런 말을 듣고 나서 입을 열었다.

"부인, 저는 사근님 가족을 산해관까지 태워다 주기로 했습니다. 부인도 이곳에 계시면 매우 위험하니 일단 배를 타시고 고구려로 가시든 사근님을 따라 산해관에서 내리시든 하십시오."

"날 고구려로 데려갈 속셈에 배에 태우려는 게 아닌가요?"

"그건 어디까지나 부인께서 결정을 내리실 일입니다. 저는 부인의 결정을 존중하겠습니다. 그러나 제가 이곳에 온 목적은 다른데 있습니다."

"다른 목적은 어떤 것인가요?"

"부인이 여기서 출산하신 아기는 저하의 핏줄로 알고 있습니다."

여선은 그 말에 대답을 하지 않았다.

"부인, 저하의 핏줄을 돌려주시면 무슨 보답이 있으실 겁니다."

도해선은 여전히 묵묵부답인 여선에게 강한 음성으로 말했다.

"부인께서 아기를 내주시지 않으면 강제로 데려가겠습니다."

여선은 생각에 잠겼다. 절박해진 여양의 상황을 생각하면 자신도 떠나야만 했다. 그런 처지인데 도해선은 지동을 돌려주면 무슨 보답이 있을 것이란 말을 했다. 남편이 동돌궐 감옥에 갇힌 게 사실이라면 무엇보다 구해내는 일이 급선무였다. 고구려로 돌아가긴 싫으나 건무라면 남편을 살려낼 수가 있다는 판단이었다.

"도해선님은 아기를 돌려주면 보답이 있을 것이란 말씀을 하셨지요?"

"부인, 그렇습니다. 양신의 목숨을 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제 생각은 저하께 청을 드리자면 고구려로 돌아가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나보고 고구려로 다시 돌아가자고요?"

"저는 그 일을 강요하진 않겠습니다. 이젠 저도 여기서 더 이상 지체를 할 수가 없습니다. 부인은 어느 쪽이든 결정을 내리십시오."

도해선의 재촉에 여선도 결심을 하고 말았다.

"도해선님,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여선은 그렇게 말하고 방 안으로 들어가서 천동(天童)을 걸리고 지동(地童)을 품에 안은 채 밖으로 나와 도해선에게 말했다.

"내 품에 안긴 아기는 저하의 핏줄 예요."

도해선은 그 말을 듣고 첫눈에 구별을 할 수가 있었다. 서 있는 아이는 양신을 닮았고 품에 안긴 아이는 건무를 닮았다. 품에 안긴 아기를 뚫어져라 바라보며 입을 떼었다.

"부인, 제 눈에도 저하의 핏줄임을 분명히 알겠습니다."

"서방님은 저하의 핏줄을 두고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양신이 무슨 말을 했다는 말씀입니까?"

"저하의 핏줄을 잘 키워서 언제고 고구려로 돌려보내야 한다고 했어요. 그런데 마침내 그날이 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도해선은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 물었다.

"양신이 저하의 핏줄을 돌려주겠다는 말을 한 게 사실입니까?"

"그렇습니다. 나는 아기를 돌려주고자 고구려로 가겠어요. 그러나 도해선님의 말을 따르자면 거기엔 조건을 걸게 있어요."

"부인, 어떤 조건을 걸겠다는 말씀입니까?"

"서방님의 목숨을 구해주되 해치진 않겠다는 확답을 듣고 싶어요."

"부인, 다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양신은 지금 동돌궐 감옥에 갇혔습니다. 저하께서 양신의 처형을 부탁했다면 벌써 목이 떨어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하는 그러게 하시지 않았습니다."

도해선의 말에 여선은 마음이 크게 놓였다.

"다만 저하께서 양신의 석방을 요구할 마음이 있으실 진 모르겠고 제가 적지로 들어온 목적은 저하의 핏줄을 데려가려는 데 있습니다. 그러나 부인께 묻고 싶은 점이 있습니다."

"어떤 점을 물으려는 가요?"

"양신의 목숨을 진정으로 구하고 싶으신 마음이 있으십니까? 정녕 구하고 싶으시면 아기와 함께 고구려로 돌아가십시오. 저하를 직접 만나 뵙고 탄원을 올려야 확실하게 살릴 수가 있을 것입니다."

여선은 아무 말도 않는데 도해선이 설득을 하려고 들었다.

"부인께선 왕실의 후사를 이을 아들을 낳으셨습니다. 저하께선 어찌 그에 대한 보답을 하시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여선은 계속 생각에 잠기는데 이번에 사근이 입을 열었다.

"나도 부인께 조언을 드리고 싶소."

"무슨 조언을 하시겠습니까?"

"솔직히 말씀을 드리면 내 생각은 이렇소. 도해선님은 부인을 이대로 납치해 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질 않겠다고 하셨소. 또 아기는 아직 어려서 부인의 손으로 얼마간 더 키우는 게 좋겠습니다. 그렇게 하면 아기에게도 좋고 양대정도 살려낼 방법이 생길 걸로 생각됩니다. 더욱이 양대정을 살려낸 뒤 함께 어디로 떠나 살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여선도 마음을 굳히는데 이번엔 도해선이 입을 열었다.

"저는 부인께 더욱 강조하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무슨 말인데요?"

"지금도 동돌궐의 가하돈은 양신의 처형을 재촉하고 있습니다."

그 말에 여선은 입을 열었다.

"고구려로 가겠어요."

여선은 대답을 하고 별채에서 얼마 되지 않을 짐을 꾸려 나왔다. 그때부터 모두는 만춘장을 나선 뒤 배를 타러 부두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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