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 모험(冒險)
당나라 상선은 본국으로 돌아가는 길에 고구려의 남포에 들리게 되었다. 포구에 닻을 내린 상선의 뱃전에 선 양신은 감개가 무량했다. 산천초목은 의연했으나 자신은 너무 변해 있었다.
양신은 머릿속에 여선과 천동이 떠올랐다. 새로 가정을 꾸린 몸이나 그리움을 떨칠 수가 어 없었다. 여선은 그렇다 치고 천동을 생각하면 애틋한 감정과 안타까움을 금치 못할 노릇이었다.
가슴이 막막한 채 비감(悲感)에 젖어들었다. 그런 심정을 떨쳐내려 듯 고개를 젓다가 문득 을불 떠올랐다. 그를 한번 만나보고 고구려의 사정과 교역에 관한 의논을 해보고 싶었다. 그러나 배를 내리는 것은 위험한 일이 될 수도 있었다.
마침 선장은 남포에서 이틀간을 머물다 떠난다는 말을 했다. 양신은 그 틈에 만나 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배에서 내리게 되고 남들의 눈에 띄지 않게 산속으로 들어섰다. 염청(鹽聽)은 포구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양신은 능선을 타고 오르자 이내 포구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노을에 젖은 바다를 끼고 계속 산속을 걸었다. 염청이 가까워지자 을불의 집을 가까이 내려다볼 수가 있는 데로 접근했다.
그런데 마을 안엔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보이질 않았다. 을불의 집에 이르자 안을 들여다보려고 바짝 다가들었다. 그때 어디서 몰려온 10여 명의 병사들이 을불의 집을 에워쌌다.
양신은 심상치 않게 여기고 담장의 뒤쪽을 넘어 집안으로 들어갔다. 그와 동시에 병사들이 집안으로 쏟아져 들고 군관이 큰 소리로 외쳤다.
"협야노, 나와라."
집안에선 아무런 기척도 없었다.
"협야노, 순순히 나오지 않으면 집에 불을 지르겠다."
그제야 방 안에서 대답하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무슨 일로 날 찾아왔는가?"
"도해선님의 명을 받들고 왔다."
"도해선이 무슨 명령을 내렸단 말인가?"
"소금을 밀매한 죄로 널 체포하겠다."
"나는 그런 죄를 지은 적이 없다."
"아무튼 간에 연행을 해야 하겠으니 썩 나와라."
"도해선이 날 죽이려는 모양인데 차라리 집에 불을 질러라."
양신은 협야노(俠爺弩)가 을불의 아들인 것은 알고 있었다. 대수 전 때는 소년이었지만 지금은 어엿한 청년이 되었을 것이다. 군관에게 들키지 않게 담 모퉁이에 몸을 숨기고 지켜보았다.
군관의 눈짓을 받은 병사 두 명이 방문을 걷어차고 안으로 뛰어들어 갔다. 잠시 후 강제로 끌려 나온 협야노는 군관을 향해 외쳤다.
"날 끌고 가서 죽이기보다 여기서 죽여라."
"뭣들 하느냐? 협야노를 당장 포박해라."
군관의 명령이 떨어지고 밖에 있던 병사들까지 대문 안으로 다 들어왔다. 병사들은 몸부림을 치는 협야노를 강제로 묶었다. 양신은 그 틈을 타서 비호처럼 대문을 잠가 버렸다.
놀란 군관과 병사들도 칼을 뽑아 들고 양신을 둘러쌌다. 곧 접전이 벌어지고 깜짝할 사이에 양신에 의해 모두는 땅바닥에 쓰러졌다.
"협야노, 병사들의 몸을 빨리 묶어 놓게."
양신의 말에 협야노는 누군지는 모르나 대단한 검술 실력 앞에 입이 딱 벌어진 채 창고로 들어가 병사들을 묶을 새끼줄을 들고 나왔다. 병사들은 칼등으로 타격을 받았기 때문에 모두 정신만 잃었을 뿐이라 벌써 몸을 꿈틀거리는 자도 있었다.
협야노는 쓰러진 모두를 묶어놓았다.
"협야노, 병사들을 전부 창고에 가둘 수가 있겠는가?"
"창고가 커서 전부 처넣을 수가 있겠습니다."
그때부터 두 사람은 병사들을 들어 창고에 처넣었다. 일을 모두 마치자 협야노는 양신에게 절을 하고 물었다.
"제 목숨을 구해주신 분의 존함을 알고 싶습니다."
"내 이름은 양신일세. 들어는 봤는가?"
협야노는 매우 놀랐다.
"아니, 호위 무사님이군요? 저도 그럴 줄로 짐작했습니다."
양신은 나직이 물었다.
"협야노, 을불 염좌님은 어디에 계신가?"
"아버님은 이태 전에 돌아가셨습니다."
"을불님이 돌아가셨다고? 병환으로 돌아가셨는가?"
"아닙니다. 도해선의 손에 목숨을 잃으셨습니다."
"도해선의 손에?"
"누가 아버님에게 화살을 쐈는데 저는 도해선으로 봅니다."
"대체 도해선이 무슨 이유로 그런 짓을 저지른단 말인가?"
양신은 그 말에 피가 역류될 만큼 큰 분노가 일어났다. 그때 협야노가 병사들의 칼을 하나 집어 들더니 다시 창고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협야노, 왜 그러는가?"
"군관은 제 손으로 죽이겠습니다."
양신은 급히 협야노의 팔을 잡고 제지했다.
"군관을 죽이려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놈은 제 아내를 도해선의 첩이 되게 만들었습니다."
"협야노, 그 심정은 이해가 되나 살생은 그만 두세."
협야노는 복받치는 감정을 못 억누르듯 주먹으로 눈물을 닦았다.
"호위무사님의 말씀이라 억지로 참을 수밖에 없겠습니다."
"나는 병사들을 전부 칼등으로 제압했다. 때문에 정신들을 잃고 있을 뿐이라 곧 깨어나게 된다. 그전에 입에 재갈을 물려놓아야 하겠네."
협야노는 칼로 병사들의 옷자락을 베어내고 그걸로 손을 뒤로 묶고 입에는 재갈을 물렸다. 개중엔 벌써 정신이 돌아와 신음을 흘려냈다.
"협야노, 집안에 다른 사람들은 없는가?"
"저밖에 없습니다."
"자네는 이제부터 어찌할 것인가?"
"그렇지 않아도 저는 오늘 밤에 고구려를 떠나려던 참이었습니다."
"고구려를 떠나면 어디로 갈 것인가?"
"저는 고구려 땅에서 발을 붙이고 살 수가 없게 되었으므로 어디로든 몸을 피해야 합니다. 호위무사님은 어디를 가시는 길입니까?"
"나는 중원 땅에서 살고 있네. 타고 가던 배가 포구에 정박 중일세."
"저도 호위무사님을 따라가면 안 되겠습니까?"
"자네가 원한다면 함께 가세."
"그러시면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협야노는 방안으로 다시 들어갔다. 그리고 잠시 후 장도와 준비해 두었던 보퉁이를 하나 들고 나왔다.
"호위무사님은 중원으로 가는 길을 달리 잡으셔야 되겠습니다."
"나는 포구로 나가서 타고 온 당나라 상선을 다시 타면 되네."
"그 배는 언제 뜹니까?"
"이틀간을 머물다 떠나기로 되었네."
협야노는 고개를 저었다.
"그 배를 타시면 안 됩니다. 포구의 수비군 책임자는 도해선의 심복입니다. 저를 끌고 가려던 병사들이 돌아가지 않으면 사정을 알아보려고 당장 병사들을 풀 것이며 경계령을 펴고 배들도 수색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나도 여길 서둘러 빠져나가야 하는데 어찌한담?"
"저는 이미 여길 뜰 준비를 마쳤습니다."
"어떤 준비를 했는가?"
"염전에서 쓰는 소금 배들 중 가장 큰 것을 범선으로 개조해 놓았습니다. 그걸 타고 떠나면 중원으로도 충분히 갈 수가 있습니다."
"자네 혼자서 바다에서 배를 띄우겠단 말인가?"
"제겐 따르는 수하들이 있습니다. 언제라도 모두는 절 따라나설 태세를 갖추고 있으며 오늘 밤에 염전으로 모여들게 되었습니다."
"그런가?"
"호위 무사님도 저하고 함께 가시는 게 좋겠습니다."
"당나라 상선을 타지 말고?"
"당나라 상선 역시 병사들의 수색을 피할 수가 없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호위무사님의 정체가 드러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내 정체가 드러난다? 생각을 해 보니 그렇게 되면 큰 문제이군!"
"저와 함께 소금 배를 타고 중원으로 가시면 안 되겠습니까?"
"소금 배를 타고 중원으로 간다?"
이미 어둠은 완전히 깔려 들었다.
양신도 이젠 협야노와 함께 움직이는 수밖에 없다는 판단이었다. 협야노를 따라 집을 나섰다. 멀리 남포의 저자 거리에 늘어선 객줏집들이 밝힌 야등(夜燈)들이 아련히 빛을 발했다.
"협야노, 자네가 탈 배는 어디에 있는가?"
"염전으로 나가시면 바로 탈 수가 있습니다."
협야노가 앞장을 서고 양신은 뒤를 따랐다. 널따란 염전을 비추는 달빛 아래 두 사람은 굴포천 변을 끼고 걸었다. 해변 가까이에 소금 창고들이 여러 개 보였고 그중에서 가장 큰 창고로 다가들었다.
"협야노, 자네 수하들은 여기에 있는가?"
"아닙니다. 제 수하들은 곧 이곳으로 모여들게 됩니다."
"수하들은 자네가 오늘 겪은 일을 알고들 있을까?"
"제 수하들은 우리 집에서 일어난 일들을 다 알고 있습니다."
그때 한 떼의 기병들이 염촌으로 달려가는 광경이 보였다.
"호위 무사님, 보십시오. 벌써 병사들이 출동을 했습니다. 저들은 우리 집 창고에 가둔 병사들을 곧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자네 수하들이 빨리 이리로 와야 하는데."
"지금쯤 서로들 연락을 취하고 각자 은밀히 움직이고 있습니다."
양신은 조금 전 마을로 들어간 기병들의 숫자를 헤아려 보았다. 대략 30명 안팎으로 파악이 되었다. 벌써 마을 안에선 개 짖는 소리들이 요란하게 일어나서 양신은 좀 초조해졌다.
"자네 수하들이 빨리 와야 하는데."
"조금만 더 기다려 주십시오."
협야노도 어둠 속의 주변을 이리저리 살폈다.
"협야노, 소금 배가 얼마나 큰데 황해를 건너갈 수가 있단 말인가?"
"거뜬히 건너가고 남습니다. 다만 날씨가 좀 걱정이 될 뿐입니다."
"자네 수하들이 떠나게 되면 그 가족들은 무사하지 못할 게 아닌가?"
"그런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어찌 걱정이 되지 않겠는가?"
"제 수하들은 이곳에 집이 없는 모두 떠돌이들입니다."
"무슨 사정들이 있기에 떠돌이들이 되었단 말인가?"
"지금 고구려의 백성들은 다시 살기가 매우 어려워졌습니다."
"고구려 백성들이 왜 다시 살기가 어려워졌단 말인가?"
협야노는 말하고 그에 대한 설명을 했다.
고구려는 큰 전쟁을 치른 끝에 겨우 안정을 되찾았다. 그러나 국왕을 비롯한 귀족들은 다시금 안일에 빠져들었다. 백성들을 돌보지 않고 착취만 일삼게 되고 보니 살기가 어려워져 고향 땅을 등지고 타향이나 타국으로 떠나는 자들이 늘어나고 있었다.
"제 수하들은 모두 그런 유랑자들입니다."
"유랑자들이 많다니. 고구려는 그렇게 인구가 날로 줄어들다간 앞날이 매우 어렵게 될 것이 큰 걱정일세."
양신이 한숨을 쉬는데 협야노는 유랑자들이 많은 실정도 알렸다.
"유랑을 하는 자들은 먹고사는 게 여간 힘들지 않습니다. 야장방이나 염전으로 들어가 잡부 노릇이나 할 수가 있는 자는 그나마 다행입니다. 그렇지도 못한 자들은 구걸을 하거나 도적질을 하게 되므로 인심만 흉흉해지게 만들고 있습니다."
"나는 고구려가 이 지경에 이르렀을 줄은 몰랐네."
"그런 중에도 젊은이들은 큰 꿈을 꾸는 게 있습니다."
"어떤 꿈을 꾼다는 말인가?"
"검술을 연마해서 타국 땅으로 떠나는 꿈입니다."
"타국 땅에서 견문을 넓히려고 그러는가?"
"견문을 넓히는 것도 있지만 정착해서 살 곳을 찾으려고 합니다."
"타국 땅에서 사는 걸 쉽게 생각해선 안 될 일일세."
"젊은이들이 그런 마음을 먹는 덴 호위무사님이 끼친 영향이 큽니다."
"내가 무슨 영향을 끼쳤다는 말인가?"
"호위무사님은 모든 젊은이들이 떠받드는 우상이 되셨습니다. 호위무사님처럼 검술로 타국 땅에서도 영웅 대접을 받고 계신 소문이 나서 검술을 연마하려는 자들이 부쩍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양신은 그 말을 듣고 갈사문문에 관한 소문이 고구려에도 알려져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호위무사님은 뛰어난 검술로 지니셔 대수 전 때 가장 큰 공훈을 세우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왕실로부터 목숨의 위협을 받고 중원 땅으로 떠나셔야 했지 않습니까? 그러나 빼앗긴 부인을 왕실로부터 되찾으셨습니다. 젊은이들은 그런 용기에 열광을 했습니다. 다만 나중에 도해선에 의해 여선부인은 중원 땅에서 납치를 당해 오셨습니다. 그로 인해 백성들은 왕실을 여간 비난을 하지 않습니다. 그 영향은 젊은이들로 하여금 호위무사님처럼 장도 한 자루만 지닌 채 중원 땅으로 떠나는 바람이 불게 되었습니다."
"중원 땅으로 간들 무슨 수가 생긴다고 그런단 말인가?"
"백성들을 왕족과 귀족들에 대한 환멸을 크게 느끼고 있습니다. 백성들은 수국의 침공을 받았을 때 목숨을 던져 싸웠고 그렇게 지켜낸 나라부터 외면을 당해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호의호식을 하는 왕족과 귀족들은 위세만 더욱 부리고 있습니다. 그에 비해 중원 땅에 새로 들어선 당은 백성들이 편안히 살게 해주는 걸로 알려졌습니다. 또 거기선 능력이 있으면 누구든 나라에서 발탁을 해서 쓴답니다. 젊은이들은 그런 나라에서 입신출세를 해보고자 떠나는 마음을 먹을 수밖에 없습니다."
양신은 고개만 끄덕이는데 협야노가 물었다.
"호위무사님은 고구려에 무슨 일로 오게 되셨습니까?"
"나는 중원 땅에서 장사를 하고 있네. 이번에 백제와 교역 길을 트고자 교섭 차 갔다가 남포를 거쳐서 돌아가는 배를 타게 된 것일세."
"그러셨군요? 저도 교역 차 백제에 여러 번 다녔습니다."
"자네는 염창의 일을 보는 직무인데 왜 교역에 나섰단 말인가?"
"선친의 염좌직을 이었지만 도해선에 의해 교역으로 내몰렸습니다."
"도해선이 그러는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도해선도 교역에 손을 대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도해선이 교역에 손을 댔다고?"
"도해선은 지금 재물을 축적하기에 혈안입니다. 처음엔 제 선친으로부터 여러 가지 자문과 도움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교역의 규모가 점점 커지게 되자 배은망덕하게 선친을 해치게 되었던 것입니다."
"도해선은 살인마인데 자넬 교역으로 내몬 이유는 무엇인가?"
"도해선은 염전을 장악하고자 함이었습니다."
"염전을 장악한다?"
"교역을 위해 소금까지 제 마음대로 처분하려고 들었지만 저는 염좌로써 그걸 막으려고 했지 않습니다. 그 때문에 절 강제로 교역선을 타게 만들었습니다. 그런 뒤 염좌직을 내놓게 만들려는 목적이었습니다."
양신은 다른 걸 묻게 되었다.
"근래 장안성 왕궁에 대한 얘기를 들은 것은 얘는 없는가?"
협야노는 양신이 궁금해하는 점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제가 이런 말씀을 드려도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말을 해 보게."
"여선 부인은 왕자를 낳으셨기 때문에 빈이 되셨습니다."
"협야노, 나도 중원 땅에서 그 정도는 풍문으로 전해 듣고 있네."
협야노는 양신이 더 알고 싶어 하는 점을 들려주기로 했다.
"천동 왕자님은 이제 헌헌장부가 되셨습니다."
양신도 자신의 핏줄인 천동의 나이가 20세가 되었음을 알고 있었다. 이젠 부자지간의 관계가 끊긴 형편은 여간 마음을 아프게 하지 않았다.
"요즘 고구려의 내부 사정도 듣고 싶네."
"폐하는 여타 부는 물론 귀족들을 전부 굴복시킨 형편입니다."
"그건 여전히 되풀이되고 있군?"
"폐하의 독단이 더욱 심해지셨고 귀족들은 아부만 하고 부귀영화를 누리는 데만 관심이 클 뿐입니다. 때문에 날로 느는 건 사치뿐입니다. 심지어 죽어서 들어갈 무덤 속을 꾸미기에 재화를 퍼붓고 있습니다."
"나도 그 점은 전부터 크게 걱정을 했던 일일세. 생전에 그처럼 영화를 누리고도 무덤 속까지 그럴 재현을 시키려고 화려한 그림을 그려 넣는데 막대한 돈을 쏟아붓다니!"
"백성들도 나라가 곧 망할 징조라는 한탄들만 하고 있습니다."
"귀족들의 사치가 그 지경이라면 그럴 수밖에 없겠네!"
"거기다 해마다 흉년이 들어 백성들은 굶주림에 시달림에도 왕실과 귀족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불법과 수탈은 만 더해지는데 특히 폐하의 신임이 큰 도해선은 일부 귀족들과 짜고 염촌에선 소금을 빼돌리고 야장방마다 강제로 철제품을 빼돌려서 착복을 하는데 혈안입니다."
"염전과 야장방에 비리를 저지른다고? 이건 한 마디로 나라 전체가 복마전이나 다름이 없게 되었군!"
"때문에 야장촌과 염촌의 어려움이 여간 크지가 않습니다. 조정이 부과하는 물량이 너무 늘어나서 그걸 대기에 뼈골이 빠지게 일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양곡과 생필품 공급은 오히려 줄어들어 어려움이 여간 크지가 않습니다. 과다한 생산량을 요구받는 염전과 야장방은 혹사로 내몰려 큰 고통을 받다 못해 소금과 철제품을 암매로 처분하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
"한 마디로 고구려는 전체가 썩어가고 있군?"
"동돌궐이 그러다 망했다는데 고구려도 그 짝이 날 것입니다."
"동돌궐이 망했다니 언제? 그게 사실인가?"
"지난여름에 당이 침공해 힐리 칸을 포로로 끌고 갔습니다."
양신은 신라와 백제를 도는 사이에 그런 일이 일어났음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때문에 중원 땅으로 빨리 돌아가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는데 젊은이 하나가 급히 달려왔다.
"마리. 혼자서만 왔는가?"
협야노가 마리(麻璃)라고 부른 젊은이는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염좌님, 무사하셨군요?"
"모두는 떠날 준비를 마쳤는가?"
"예, 지금 모두가 배를 탔습니다. 빨리 움직이십시오. 지금 마을로 들어간 병사들이 수색전을 펼치게 됩니다. 염좌님을 체포하러 갔던 병력들이 없어진 걸 알게 되면 이쪽으로도 수색을 벌이게 될 것입니다."
협야노는 그 말을 듣고 양신에게 말했다.
"곧 우리 집 창고 속에 가둔 병력을 찾아내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포구와 해안에 봉쇄령이 떨어지게 될 것입니다. 그땐 빠져나가기가 힘들게 되므로 지금 배를 타고 빨리 떠나가 합니다."
"염좌님. 배를 띄울 준비를 마쳤는데 어디로 향하게 됩니까?"
마리의 질문에 협야노는 대답했다.
"중원으로 간다."
협야노는 양신에게 권했다.
"어서 배를 타러 함께 가셔야 합니다."
"그럴까."
세 사람은 즉시 그곳을 떠나 바닷가에 당도했다. 이미 10여 명의 젊은이들이 배를 타고 대기 중이었다. 양신은 협야노에게 물었다.
"배가 작은데 너무 많은 인원을 태운 게 아닌가?"
"걱정을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모두는 노를 잡고 젓자 배는 움직이기 시작했다. 돛을 올리지 않고 노만 저어 앞으로 나갔다. 그러나 너무 느려서 육지와 거리는 좀처럼 벌어지질 않아서 양신은 불안감을 느끼며 물었다.
"협야노, 왜 돛을 올리지 않는가?"
"돛을 올리면 밤바다임에도 눈에 띄기가 쉽습니다. 어느 정도 멀리 나간 뒤 전함의 추격을 피할 수가 있는데서 돛을 올리려고 합니다."
"노만 저어선 언제 이 해안을 벗어날 수가 있을지 모르겠네."
"지금은 어쩔 수가 없습니다."
"만약에 전함들이 추격해 오게 되면 어떻게 해야 되겠는가?"
"저도 그 점을 젤 걱정하고 있습니다."
"차라리 배를 돌려서 뭍으로 올라가 퇴로를 찾는 게 어떨까?"
"이제 뭍으로 돌아가 봐야 죽음을 당할 일만 남았습니다."
양신은 그 말에 더욱 난감해지는 심경이었다.
달빛이 밝지가 않아서 밤바다는 전체적으로 검었다. 소금 배는 육지에서 조금씩 멀어져 갔다. 어디쯤서 협야노는 돛을 올리라는 명령을 내리고 돛을 올렸지만 배는 여전히 속력을 못 냈다.
눈이 밝은 젊은이 하나가 외쳤다.
"염좌님, 저기 수군 전함 한 척이 뒤쫓아 오고 있습니다."
협야노는 급히 몸을 일으켜 그쪽을 살폈다. 모두는 당황하는 분위기 속에 긴장감에 휩싸여 들었다. 양신의 눈에도 뒤를 쫓아오는 전함의 형체가 들어오고 있어 물었다.
"협야노, 전함의 승선 병력은 대략 얼마쯤으로 보는가?"
"저 배는 중선으로 속력이 가장 빠릅니다. 전투 시엔 20명에서 30명을 태우고 작전을 합니다."
"이 배에 비해 속력이 얼마나 빠른가?"
"세 배 이상은 빠를 것으로 봅니다."
"그렇다면 이 배는 곧 잡히고 말게 되지 않겠는가?"
협야노는 그 말에 어두운 표정으로 대꾸를 하지 못했다. 양신은 절망감이 커지는 가운데 한편으론 또 다른 생각을 하게 되었다.
"전함이 우리 배를 따라잡는 데는 얼마나 시간이 걸리겠는가?"
협야노는 양신을 말을 듣고 난감한 표정만 지으며 대답을 못했다.
"협야노, 나는 차라리 잘 됐다는 생각이다."
협야노는 좀 어이가 없는 듯 반문했다.
"잘 되었다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나는 이 배가 너무 작아 걱정을 하던 중이었다. 이 배를 타고 항해를 하는 건 무리라 생각일세. 우리가 전함을 빼앗아 타기로 하자."
"전함을 어떻게 뺏을 수가 있다는 말씀입니까?"
"전함의 승선 인원이 30여 명 정도라면 해볼 만하다."
"우리가 30여 명을 어떻게 할 수가 있겠습니까?"
"나는 처음부터 이 배를 타고 중원 땅에 당도할 수가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왕지사 큰 위험에 빠진 상황이라면 한번 맞서 우리가 전함을 뺏어 타고 갈 길을 모색해 보자."
양신의 말에 젊은이들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러나 이판사판에 처한 상황이고 보면 죽기 살기로 한판 붙어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양신은 모두를 향해서 외쳤다.
"고구려 전함이 접근해 들게 우리가 먼저 배를 순순히 세우자."
그 말에 모두는 의아한 표정만 지었다.
"우린 스스로 나포를 당하는 태도를 취하는 자세를 보이자. 그리고 쫓아온 전함이 우리 배와 뱃전을 맞댈 수게 만들어준다. 그렇게 한 뒤 전함이 어떤 태도를 취할지 따라 우리도 대응책을 찾아보자."
양신은 그렇게 말하고 고구려 병사들을 제압할 방법을 여러 가지로 제시를 했다. 협야노와 젊은이들도 그것 놓고 여러 가지 의견을 나누었다. 그런 끝에 몇 가지 대비책을 세우고 그에 따라 맞설 방법을 정했다.
양신은 그에 따라 젊은이들이 각자 맡을 역할 분담도 나누고 그걸 수행할 연습을 하고 행동도 숙지를 시켰다. 전함은 점점 가까워지고 젊은이들은 결의에 찬 표정으로 대비에 들어갔다.
"모두는 작전을 꼭 성공을 시켜야만 한다."
"예, 우리는 해내고 말겠습니다."
"다 죽을 판에 죽기로 해볼 수밖에 없습니다."
20대 초반의 젊은이들이라 겁도 없이 해보겠다는 결의에 차 있었다. 양신은 모두가 분발할 태세를 보여서 각자 맡을 임무를 나누고 연습도 시켰다. 그러는 사이 고구려 전함은 다가들고 외치는 소리도 일어났다.
"명령에 따르지 않으면 불화살을 쏴 배를 태워버리겠다."
협야노가 뱃전으로 나가서 대답했다.
"시키는 대로 하겠습니다."
전함은 소금배가 움직임을 멈추자 바짝 접근해 들었다. 전함과 소금배의 뱃전이 맞붙게 되었다. 그렇게 되자 전함에선 병사들이 던져진 서너 개의 밧줄을 소금 배 안으로 떨어졌다.
"밧줄로 배전을 단단히 묶어라."
군관의 명령을 받은 소금배의 젊은이들은 시키는 대로 했다. 밧줄로 두 배가 단단히 고정이 되자 병사들은 전함과 소금 배 사이에 판자를 걸쳐 놓은 뒤 또 명령을 내렸다.
"모두는 전함으로 옮겨 타라."
소금배는 그렇게 될 것으로 예상을 했기 때문에 맞서는 계획을 펼치면 되었다. 양신이 맨 먼저 전함으로 옮겨 가면서 병사들에 대한 공격을 가했다. 수적인 우세를 믿는 데다 반격을 받을 것을 예상을 못했던 병사들은 그대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별 접전도 없이 순식간에 병사들을 추풍낙엽처럼 쓰러지게 되고 말았다
양신의 전광석화와 같은 가격을 병사들은 절반 이상이 쓰러졌고 나머지 병사들은 겁을 먹은 채 스스로 무기를 내려놓고 항복하는 자세를 취했다. 그것으로 상황은 순식간에 끝이 나고 말았다.
나머지 병사들은 양신의 검술 실력에 혼비백산인 상태라 젊은이들에게 순순히 항복하고 포박을 받았다. 칼등으로 제압을 당한 병사들 중엔 잠시 후 몸을 움직이는 자가 나왔다. 젊은이들에게 역시 포박을 당했다.
협야노는 포박을 당한 병사들을 전원 소금배로 옮기게 만들었다. 그리고 병사들의 부상 상태를 점검하고 생명엔 지장이 없음을 확인하자 양신의 다음 지시를 기다렸다.
전함과 소금 배는 주인이 바뀌게 되었다. 젊은이들은 소금 배의 두 폭 돛을 찢고 노들도 전부 바다에 던져버렸다. 고구려 병사들은 굴비 두름처럼 묶인 채 꼼짝을 못 하는 처지가 되었다. 그래도 목숨만은 건진 채 작은 소금배에 빼곡히 들어앉아 불안한 표정들이었다.
협야노는 병사들 중 한 명만 포박을 풀어주고 수하들에게 말했다.
"곧 밀물이 밀려들 때가 되었다. 소금 배는 파도가 밀어붙여 해안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혹여 잘못되어 모두는 죽을 수도 있겠지만 그건 너희들의 운명에 달린 일이다."
말이 끝나자 전함과 소금배와 묶은 줄을 끊어냈다. 그리고 지체 없이 전함은 항해로 들어갔다. 그러나 양신이 걱정스럽게 말했다.
"만약에 소금배가 해안에 닿지 못하면 어쩐다?"
"그보다 우리가 최대한 멀리 도망치는 게 더 급합니다."
"나는 무고한 생명들이 무슨 일을 당하게 될지 몰라 걱정일세."
"곧 날이 밝게 됩니다. 그러면 지나가는 배들에게 발견이 되고 구조를 받을 수가 있으므로 더는 걱정하지 마십시오."
양신은 속으로 병사들이 무사하길 빌고 있었다.
협야노와 수하들은 능숙하게 전함을 조종해 거침없이 밤바다를 헤쳐 나갔다. 전함은 소금 배보다 속력이 훨씬 빨라 어느새 밤바다에 홀로 떠 있는 소금배가 보이지 않았다.
양신은 전에 신라 야장선을 타고 동해를 지났던 경험이 있기 때문에 항해술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다. 협야노와 젊은이들은 상당한 항해술을 지니고 있는 듯해서 마음이 놓였다.
또 교역선을 건조할 마음을 먹고 있었는데 전함을 얻게 되어 교역선으로 쓸 생각도 들었다. 자신은 고구려를 위해 많은 기여를 했으므로 전함 한 척쯤 빼앗은 걸 도적질로 여기고 싶지 않았다.
점한은 밤새도록 항해를 한 끝에 아침을 맞았다. 어디를 봐도 바다뿐이었다. 남녘 하늘 자락을 검은 구름이 뒤덮고 있었다. 바람도 점차 거세지면서 끝내 비를 뿌리고 파도가 거칠어졌다.
협야노와 부하들은 좌우로 심하게 흔들리는 배를 조종하기가 힘들어졌다. 거칠어지기만 하는 바람은 산더미처럼 파도를 키워 배는 요동질을 치기만 했다. 깊은 물속으로 빠져들었다가 튕겨져 오르길 반복하는 뱃속에선 모두가 큰 위험에 빠져들고 말았다.
양신은 바다가 그처럼 무서운 줄은 처음 알았다. 바다에 익숙한 협야노와 부하들도 정신을 못 차렸다. 끝내 산더미처럼 큰 파도에 휩쓸려든 배는 조종이 불가능해졌다.
배가 전복될 지경이라 협야노는 수하들에게 목이 터져라 외쳤다.
"이대로 죽을 수는 없다. 모두는 필사적으로 자기 위치를 지켜라."
모두는 생사기로에 처하고 말았다. 각자는 자기 위치를 지키며 필사적으로 매달렸지만 한계점에 이르렀다. 아무것도 먹지를 못해 허기가 져서 힘도 쓸 수가 없었다. 얼굴을 뒤덮는 빗물과 바닷물을 혀로 핥으면서 사투를 벌이면서 하루 종일 시달렸다.
그런데 해 질 녘에 파도와 비바람이 잦아들었다. 그때부터 모두는 하나 둘 그 자리에서 주저앉거나 드러눕고 말았다. 구름이 벗겨진 서쪽 하늘에 붉은 노을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양신은 극도로 지친 몸으로 뱃전에 기대앉자 더 이상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모두는 잠시 숨을 돌린 뒤 겨우 몸을 일으켜 세웠다. 양신은 구름이 걷힌 하늘만 보면서 곁에 있는 협야노를 향해 물었다.
"협야노, 우리는 이제 살아난 것인가?"
"그렇습니다."
"나는 육지에선 죽을 고비를 수없이 넘겼지만 바다는 처음일세. 그리고 오늘에서야 비로소 내 목숨이 질긴 것임을 새삼 알게 되었네."
"대인."
협아노가 갑자기 양신을 그렇게 불렀다.
"협야노, 날 왜 대인이라고 부르는가?"
"저는 앞으론 대인으로 부르겠습니다."
"날 그렇게 부르는 건 너무 과하지 않는가?"
"저는 결코 과하단 생각을 않습니다. 대인은 이 세상에서 진정으로 큰 분이란 생각이 드는 건 저만 아닌 모두가 같을 것입니다."
협야노의 말에 젊은이들도 고개를 끄덕여 동의하는 태도를 보였다.
"그렇게 생각을 한다니 무엇 때문에 그런단 말인가?"
양신의 반문에 협야노가 대답했다.
"대인께선 우리들의 목숨을 구해주시지 않았습니까?"
"내가 그대들의 목숨을 구했다니?"
"저는 소금 배를 타고 황해를 건너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얼마나 무모한 짓이었음이 방금 전에 금방 드러나지 않았습니까?"
"하긴 소금 배를 타고 황해를 건너는 것은 무모했지."
"그렇습니다. 대인께서 전함으로 옮겨 타게 만들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모두 바닷속에서 물고기의 밥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럴지도 모를 일이었군?"
"사람들은 대인을 두고 불사조라는 말들을 합니다. 그렇게 불리는 이유는 어떤 어려움도 헤쳐 나온 분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대인의 운이 좋아서만은 아니고 모든 어려움을 스스로 해결해 나갈 능력을 지니셨다고 생각합니다. 아제부턴 우리들을 안전하게 이끌어 주실 걸로 믿습니다."
협야노의 말에 젊은이들도 한 마디씩 했다.
"대인께선 저희들의 목숨을 구해주신 은인이십니다."
"저는 불사조이신 대인의 곁을 떠나지 않겠습니다."
양신은 이구동성으로 호응하는 젊은이들을 향해 물었다.
"정말 내 곁을 떠나지 않을 것인가?"
"그렇습니다. 대인 어른."
모두의 합창을 듣고 양신은 기쁨을 금치 못했다. 한꺼번에 많은 동지를 얻게 된 데다 어떨 결에 바다를 항해할 큰 배도 획득했다. 앞으론 그걸 움직여 해상 교역에 나설 여건도 갖추게 되었다.
"협야노, 이만한 배라면 교역선으로 쓸 수가 있겠지?"
"대인, 쓰고도 남습니다."
"모두는 죽을 뻔했던 바다에 또 나설 용기가 나겠는가?"
"솔직히 말씀을 드리자면 우린 소금 배로 너무도 혼이 났으나 이젠 바다를 항해할 수가 있는 전함인데 무슨 주저가 있겠습니까?"
"나는 앞으로 백제와 교역을 시작할 계획이네. 때문에 큰 배를 한 척 건조할 필요성을 느끼던 참인데 큰 전함을 얻게 되었네."
"혹시 대인께선 그런 목적에 전함을 뺏은 게 아니십니까?"
협야노의 농담에 양신은 빙그레 웃기만 했다.
"탈취가 아닌 보상을 받은 셈으로 치자. 전에 고구려를 위해 싸웠던 보상으로 배 한 척쯤 받는다고 해서 그리 과할 건 없지 않겠나?"
모두는 그 말을 농담이 아닌 진담으로 들렸다.
"당연히 그만한 보상은 받고도 남으십니다."
"나도 나이도 어린 자네들의 항해술이 뛰어남에 기대를 걸겠네."
양신의 말에 협야노는 자랑스럽게 대꾸했다.
"저는 도해선 때문에 강제로 교역에 나서야 했습니다. 그러나 훌륭한 수하들을 두게 된 것으로 충분한 보상을 받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협야노, 백제와 해상교역을 하려는데 자네가 도와주게."
"대인께선 우리의 생명을 구해주셨는데 당연히 도울 일입니다."
"고맙네. 모두가 날 도와준다면 그에 대한 보답이 있을 것이네."
그 말에 젊은이들은 관심이 커지는 표정들이었다. 모두는 바다에서 죽을 뻔했다가 살아나게 되었는데 뜻밖의 말을 듣고 용기와 의욕이 솟는 기분들인데 협야노가 양신에게 물었다.
"대인께선 어떤 보답을 해주실 생각이십니까?"
"나는 한 나라를 세울 포부를 지니고 있다."
양신의 말에 모두는 조용해지고 말았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을 생전 처음 보게 되는데 더욱이 흠모의 대상이라 숙연해질 지경이었다. 앞으로 지지하며 따를 분위가 자연스럽게 생겨났다.
그런 가운데 양신은 말을 이었다.
"모두는 날 따르고 도와주길 진심으로 바란다. 내가 교역에 나서려는 목적은 재물을 축적해 부호가 되려는 게 아니고 한 나라를 세울 군자금을 마련하기 위함이다."
모두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세상에 태어나서 한 나라를 세우겠다는 사람이 자신들에게 도움을 청했다. 감격해지다 못해 몸들이 굳어지며 숙연해진 분위기가 되었다.
"옛날 우리 조상들이 세운 부여란 나라가 있었다."
젊은이들은 대부분 부여란 나라를 들어본 적이 없으나 다음 말을 기다리고자 조용히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부여의 임금은 백성들이 잘 사는 일에만 힘을 썼다. 한 번도 다른 나라를 침략하는 전쟁을 일으킨 적이 없이 평화를 지키기에 힘을 썼다. 부여는 한삼국은 물론 말갈과 왜국까지 모두의 뿌리가 된다."
협야노는 그 말에 아는 체를 하며 입을 열었다.
"대인, 부여는 나중에 고구려에 멸망을 당했다고 들었습니다."
"그렇다. 그런 부여에서 동부여란 한 가닥이 생겨났고, 거기서 또 생겨난 갈사국이란 나라가 있다. 갈사국이란 이름을 들어봤는가?"
양신의 질문에 아무도 대답을 하는 자가 없었다.
"나는 갈사국 왕실의 후손으로 그 나라를 부활시키려고 한다."
협야노가 물었다.
"대인께선 갈사국을 고구려 땅에서 일으키실 겁니까?"
"고구려 땅이 아닌 다른 곳을 찾을 것이다."
양신은 그렇게 대답하고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말갈족은 아직까지 통합 왕조를 이루지 못했다. 처음엔 그곳에 자리를 잡고 무리를 모으고자 갈사무문을 세워 문생들을 길러냈다."
모두는 갈사무문이 여러 군데 세워진 것은 알고 있으나 그게 나라를 세우기 위한 동력을 얻고자 함임을 처음 알게 되었다.
"내가 세우게 될 나라는 부여국처럼 백성들을 위하는 나라가 될 것이다. 모두가 평등하고 사람으로 존귀한 대접을 받는 세상을 만들겠다."
"우린 적극 동참하겠습니다."
협야노의 말에 젊은이들도 각기 한 마디씩 했다.
"세상에 그런 나라가 있다면 거기서 살겠습니다."
"저는 그런 나라를 세우기 위해 대인을 따르겠습니다."
젊은이들이 호응하는 말에 양신은 흐뭇해서 대답했다.
"고맙다. 모두는 이제부터 동지가 되었다."
"대인 어른을 따르며 도울 것을 맹세합니다!"
젊은이들의 하나같이 호응을 얻은 양신은 약속했다.
"내가 왕이 되면 백성들 위에 군림하지 않을 것이다. 백성들은 모두 능력과 노력만으로 대접을 받게 될 세상을 꼭 만들 것이다. 또 특정한 종족만이 아닌 모든 종족을 평등하게 아울러 살기를 바란다."
모두는 감동을 하지 않을 수가 없는데 아리가 불쑥 입을 열었다.
"대인께선 저희들에게 검술을 지도해 주실 수는 없겠습니까?"
"지도해 주마."
젊은이들은 그 말에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다.
마침내 배는 황하 하구에 이르렀다. 거기서부터 강줄기를 거슬러 오른 뒤 마침내 여양에 당도했다. 양신은 모두 데리고 만춘장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사흘 전 사오가 아들을 낳아 경사 분위기로 들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