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 섬섬쇄광(閃閃碎光)
양신은 달빛 아래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전에도 가잠성에서 육로로 백제로 가본 적이 있었다. 국경까진 하루거리 밖에 되지가 않았다. 무조건 서쪽으로만 행해서 나가다 보니 큰 산줄기를 만나게 되었다.
날이 밝아 오기 시작해서 무조건 산을 타고 올라갔다. 어디쯤에서 시냇물이 졸졸 흐르고 있어 걸음을 멈추었다. 영지 모친이 마련해 준 떡을 꺼내어 아침 요기를 했다. 대강 시장기를 끄고 나자 밤새도록 걸은 탓에 졸음이 밀려들었다. 잠시 눈을 붙이려고 바닥에 몸을 눕히자 금세 잠이 쏟아져 들었다. 잠에서 깨어나자 어느새 해가 졌다.
어둠이 깔리는 속에 산을 타고 오르기 시작했다. 산줄기를 넘고자 쉬엄쉬엄 걸은 끝에 마침내 등성이에 올랐다. 백제와 신라는 산등성이를 국경으로 삼고 있었다. 이제부터 내려가면 백제국 땅을 밟게 되었다. 머리 위로 달을 이고 내리막길을 계속 내려가다 보니 집들이 몇 채 있는 마을을 만나게 되었다.
양신은 한 집으로 들어갔다.
"약재상입니다. 밥이 남았으면 한 끼 얻어먹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세요."
주인 아낙은 선선히 대답을 하고 밥상을 차려냈다. 양신은 밥을 얻어먹으면서 주인 남자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어느 나라건 백성들은 가난했지만 소박하고 인정들이 많았다.
양신은 배를 채운 뒤 주인이 일러 준 길을 따라 사비성으로 향했다. 사비성에 닿았지만 계백은 남해의 고계진 포구를 관할하는 도무(道武) 도독으로 근무를 하고 있어 이번엔 그쪽으로 향했다.
사비성에서 길을 물어가며 남쪽으로 계속 걸었다. 산길만 이어질 뿐 민가들은 드물었다. 밤에도 계속 걸었는데 새벽녘에 낮은 등성이를 넘고 나자 아래쪽에서 화광(火光)이 보였다.
어느 마을에서 화재가 난 걸로 생각하며 접근해 갔다. 어디쯤에 이르자 화광은 보이지 않고 작물들이 자라는 밭들이 있었다. 부근에 민가들이 보이는데 밭고랑에 쓰러진 사람이 하나 있었다.
양신은 적막감 속에 왠지 모를 으스스함을 느끼며 주변을 살폈다. 쓰러진 사람 쪽으로 조심스럽게 다가들었다. 청년 하나가 등에 칼을 맞은 채 얼굴을 땅에 처박고 있었다.
재빨리 주위를 살피고 청년의 가슴에 손을 대었다. 희미하게나마 심장의 박동을 느꼈다. 그 순간 뽑아는 밀두도는 허공을 후렸다. 그와 동시 2명의 사내들이 밤공기를 가르는 비명과 함께 땅바닥에 쓰러졌다.
양신은 전광석화로 제압한 뒤 주변을 면밀히 살폈다. 다른 자는 더 보이질 않아 쓰러진 청년을 살폈다. 무슨 이유로 해침을 당했는지 모르나 목숨을 잃을 정도는 아니었다. 반면에 양신의 손에 쓰러진 두 명은 칼등으로 제압을 당해 정신만 잃었을 뿐 생명엔 지장이 없었다. 이번엔 자상을 입은 청년을 안아 들고 산 밑으로 옮겨 놓았다. 상처를 살펴보니 다행히 생명엔 별 지장이 없을 정도였다. 급히 약상자를 열고 응급조치를 하려는데 등 뒤에서 인기척이 일었다.
"섬섬쇄광!"
양신은 칼을 뽑으려다 말았다. 어디서 나타난 노승(老僧) 하나가 부윰한 새벽빛 아래 엉거주춤한 자세로 걸음을 멈춘 채 서 있었다.
"나는 중이니 경계를 푸시오."
노승은 비쩍 마른 체수임에도 목소리만은 카랑카랑했다. 양신은 어딘지 범접하기 힘든 기상이 엿보이는 노승에게 물었다.
"스님, 혹시 이 청년을 아십니까?"
"내 암자에서 함께 살고 있는데 살아나겠소?"
"살아나겠습니다. 그런데 왜 이런 일을 당했습니까?"
"길손을 공격했던 자들에게 당했는데 천만다행이 아닐 수가 없겠소. 반대로 저들이 도리어 죽음을 당하는 처지가 되고 말았군?"
"저들도 죽지를 않았습니다."
"길손은 사람을 죽여 놓고 무슨 소리요? 사람 목숨을 그처럼 파리 목숨을 잡듯 하다간 그 업보를 어찌 다 받으려고 그러오?"
양신은 왠지 노승의 말이 고깝게 들리지가 않아 손으로 가리켰다.
"스님, 조용히 계십시오. 저기를 보십시오."
그때 멀찍이 밭고랑에 쓰러져 있던 자들이 몸을 일으켜 세우고 있었다. 노승은 적잖이 놀라는 표정이 되며 낮은 음성으로 말했다.
"아니? 저 자들이 살아있지 않소? 이게 어찌 된 일이요?"
"칼등으로 제압을 했기 때문에 잠시 정신을 잃었을 뿐입니다."
자객들은 몸을 일으켜 세운 뒤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서로 무슨 말을 주고받더니 황망히 어디로 사라져 버렸다.
"스님, 이 부근에서 화광이 보였는데 화재가 났습니까?"
"방금 전 혼쭐이 나서 도망을 친 자들이 내 암자에 불을 질렀소."
"스님, 저들은 왜 암자를 태우고 청년을 해치려고 했습니까?"
노승은 먼저 양신이 누군지 알고 싶었다.
"길손은 어디서 온 사람이요?"
"저는 중원 땅에서 왔습니다."
"중원 땅에서? 백제엔 무슨 일로 왔소?"
"만날 사람이 있어 고계진으로 가던 중입니다."
"만나려는 사람이 누군지 말해 줄 수는 없겠소?"
"고계진의 도무로 있는 계백이란 사람입니다."
"계백?"
노승은 반문을 하며 양신의 얼굴을 이윽히 바라보았다. 양신도 어딘지 스님의 낯이 익어 보였다. 두 사람은 새벽빛 아래 자세히 마주 바라보았다. 피차는 상대를 알아보는 눈길들이 되었다.
"저는 스님을 처음 뵙는 게 아닌 듯싶습니다."
양신은 그렇게 말을 했지만 긴가민가했다.
"길손의 이름은 혹시 양신이 아닌가?"
"스님은 백기 좌장님이시군요?"
"그럴세."
양신은 그 자리에서 백기에게 큰 절을 넙죽 올렸다.
"저는 장군님을 찾아뵙고 사죄를 드려야 할 사람입니다."
"양신, 내게 사죄를 할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주랑 낭자 때문입니다."
양신은 힘겹게 입을 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더는 말을 잇지 못하는데 백기가 담담한 음성으로 말을 흘려내었다.
"나도 주랑에 관한 소문을 듣고 있었네. 중원 땅으로 가서 생부의 원수를 갚으려다 태산팔협이란 자들에게 목숨을 잃은 걸로 알고 있네."
"좌장님, 주랑낭자가 목숨을 잃게 된 것은 저 때문입니다. 위기에 빠진 절 구하려고 스스로 몸을 던져 막으려다 그렇게 되었습니다."
양신은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했다. 백기도 소매 자락으로 흐르는 눈물을 훔쳐내면서 한숨과 함께 입을 열었다.
"자세한 일까진 모르고 있었네만 가슴이 여간 아프지가 않네. 따져보면 내 곁에서 18년간을 살았던 주랑은 어느덧 그만큼 세월이 흐르고 난 지금은 추억마저 아득하네. 누가 주랑의 운명이 그럴 줄은 알았겠나?"
"좌장님, 저는 죄인으로 너무 늦게 찾아뵙게 된 점 용서해 주십시오."
백기는 양신의 말에 다른 말만 했다.
"나는 이젠 좌장이 아니고 중일세."
"좌장님은 어떻게 스님이 되셨습니까?"
"평생을 전쟁터를 누빈 업보를 조금이나마 씻고 싶었네."
그때 정신을 잃고 누워있는 청년이 신음 소릴 흘려내었다.
"목제야, 그만 정신이 좀 들었는가?"
백기가 물었지만 의식은 차리지 못한 청년은 다시금 조용해졌다.
"스님, 젊은이는 다행이도 상처가 그리 깊지가 않습니다. 그렇지만 치료를 제대로 하자면 어디로 데려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야만 하는데 암자로 데려갈 순 없고 마련이 많네."
백기는 그렇게 입을 떼고 목제(木梯)에 관한 얘기를 들려주었다.
목제의 조부는 목돈이고 부친인 목등이었다. 그들 부자는 의자 태자에게 함께 목숨을 잃었다. 그러나 부친과 반목이 심했던 목제는 집을 나와서 살았다. 때문에 화를 면할 수가 있었지만 역시 생명의 위협을 느껴서 백기의 암자를 찾아와 몸을 숨기고 있었다. 백기는 목제가 정적인 목등의 손자였지만 숨겨 주었다. 그런데 태자의 심복들이 어떻게 알아냈는지 자객들을 보내어 그런 일이 벌어진 것이었다.
"양신, 새벽빛에 자네 얼굴을 가만히 보니 맑은 호수를 대하는 것 같네. 그만큼 자네 얼굴은 남의 마음을 편안해지게 만드는 데가 있네."
"스님, 너무도 과분하신 말씀입니다. "
"나는 불도를 수도한 지 겨우 5년밖에 되지 않네. 그러나 그 덕분에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눈이 조금쯤은 틔었네."
"무슨 뜻으로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나와 자넨 검도의 길로 들어서 오랜 수련을 쌓았네. 그런데 나와 자넨 같을 줄로만 여겼는데 그렇지가 않음을 알게 되었네."
"스님, 어떻게 다르다는 말씀입니까?"
"조금 전 자네가 자객들을 물리치는 걸 보고 깨달은 점이 있네."
"무슨 깨달음이 있으셨다는 말씀입니까?"
"자네의 검술 수련은 상극이 아닌 상생이 있네."
"상생의 수련이란 무슨 뜻으로 하시는 말씀입니까?"
"자넨 그런 수련을 했기에 얼굴엔 오랜 구도 생활을 한 사람의 영적인 흔적이 드러나게 되었네."
"도무지 모를 말씀만 하시는군요?"
"나는 상극의 검도를 해왔던 사람일세. 다만 불도에 귀의하면서 그것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있을 뿐인데 자넨 그게 가득한 얼굴이 되었네."
"스님, 제게 무슨 말씀을 하려고 이러십니까?"
"자네는 살상을 피하는 검술을 펴고 있는 사람일세. 그런 생각을 한 번도 못해 나로선 더욱 불도에 정진을 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드네."
백기가 담담히 겸양의 말을 하자 양신은 무슨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스님, 저는 계백을 만나러 가는 길이었습니다."
"그러면 잘 되었네. 그전에 날 좀 도와줄 순 없겠는가?"
"스님, 무슨 일을 도와 드리면 되겠습니까?"
"자네도 저 아이의 아비인 목등과 인연이 전혀 없자가 않네."
"그렇습니다. 가잠성에서 고구려로 돌아갈 때 도움을 받았습니다."
"이젠 암자가 불타서 나는 더 있을 데가 없어졌네."
"그러시겠습니다."
"도망을 친 자객들은 계속 눈에 불을 밝히고 목제를 찾아다닐 것이므로 그들의 손아귀를 벗어나지 않으면 다시 위험해질 수밖에 없네. 숨을 곳으로 찾지 않으면 안 되는데 나 혼자선 목제를 옮길 수가 없네."
"스님, 달리 옮길 만한 데는 있습니까?"
"남쪽에 있는 삼신산으로 들어가면 안전하게 숨을 수가 있겠네."
"스님, 삼신산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나 제가 돕도록 하겠습니다."
"삼신산은 계백을 만나러 갈 고계진 못미처에 있는 산일세."
"그렇습니까? 그러면 잘 된 일이 아니겠습니까?"
"자네가 목제를 옮기자면 업고 갈 수밖에 없는데 가능하겠는가?. 며칠이 걸려야 당도할 수가 있는 먼 길을 감당해 낼 수가 있겠는가?"
"스님, 며칠이 걸려도 제가 업고 가겠습니다."
"나로선 고맙기 그지없지만 너무도 미안할세."
"스님, 걱정 마십시오. 저도 젊은이가 이 자리에서 더 머물러 있다간 위험에 빠질 걸 잘 압니다. 서둘러 제가 업고 가겠습니다."
해가 이미 동쪽 하늘에서 떠오르고 있었다.
양신은 목제를 등에 업고 앞장을 선 백기를 따라 산속을 걸었다. 매우 힘이 들었지만 노쇠해진 백기가 자주 쉬려고 들어 행정은 매우 느렸다. 그렇게 이동을 하면서 쉴 때마다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
"스님, 그동안에 저는 상처만 받고 절망과 패배 의식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삶을 살았습니다. 그걸 질식 상태 지전에 겨우 벗어났습니다."
"그래 지금은 어떻게 지내는가?"
"제게 자각의 계기가 생겼습니다."
"어떻게 말인가?"
"제가 옛 갈사국 왕실의 후손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조상의 나라를 한번 재건해 보고 싶은 포부가 생겼습니다."
"그런가?"
"그게 분에 넘치고 허망한 망상으로 끝날 일일지도 모르겠으나 끝까지 노력을 기울여 야망을 달성시켜 보고자 합니다."
양신은 그런 말과 이미 말갈을 비롯해 북3국에서 갈사무문의 도장을 세워 많은 문생들을 길러냈고 중원 땅에서 교역을 해서 재물을 축적하고 있는 사실들을 밝혔다.
백기는 그런 말을 들을수록 많은 수난을 겪은 양신에겐 그만한 능력이 충분히 있어 가능성이 크다는 생각을 했다. 무엇보다 남다른 강인한 의지와 뛰어난 통찰력을 지닌 자임을 알아서 허황된 꿈으로만 치부할 수는 없었다.
"나는 생각도 못할 일이라 무슨 조언을 할 수가 없네. 그러나 남다른 운명을 타고났고 매우 큰 시련을 모두 극복해냈네. 그럼에도 자네 얼굴엔 그런 시련과 장애를 겪은 흔적을 전혀 찾아볼 수가 없네. 그것은 남에게 없을 큰 축복일세. 거기다 뛰어난 지략까지 갖춰서 성공하겠네."
양신은 고무되는 말에 감사를 표했다.
"스님, 그처럼 격려를 해주시니 더욱 노력을 기울이겠습니다."
"창업자는 휘하에 거느릴 무리를 모으는 게 가장 어려운 일인데, 자네는 한삼국 땅이 아닌 데서 찾으려 하니 다시 보게 되네."
"저는 특정한 종족에만 국한시키는 나라를 세우고 싶지 않습니다. 모든 종족이 함께 어울려서 살아갈 수가 있는 나라를 만들고 싶습니다."
"좋은 생각일세. 때문에 충고를 하나 하고 싶네."
"어떤 충고를 하시렵니까?"
"중인 내 입에서 나올 말은 아니지만 한 마디 해야 하겠네. 창업자가 갖출 덕목 중엔 적당한 잔인성과 엄혹 성을 지닐 필요성이 있네. 상생의 길만을 걷고자 칼등만을 쓰려고 든다면 그건 지나친 이상일세."
양신은 그 말에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백기는 양신의 손을 꽉 잡아주었다. 가는 도중에 목제도 조금씩 회복이 되어 갔다. 때문에 양신에게 무리를 주지 않고자 스스로 걷기 시작했다. 백기는 쉴 때마다 양신에게 굳어진 몸을 풀 겸 검술 수련을 해보일 것을 청했다.
백기는 양신이 펼치는 불함도기의 기본기를 유심히 관찰했다. 그리고 목제에게 그 동작을 따라서 해보길 권했다. 목제는 따라 하면서 관심이 커지는 듯 도법(刀法)에 대한 질문을 자주 했다.
양신은 목제가 검법에 관심을 보이자 배우고 싶으면 중원 땅으로 자길 오길 권했다. 백기도 내심 바라던 터라 목제에게 적극 권했다. 세 사람은 이레 만에 삼신산에 당도할 수가 있었다.
백기는 산속에 있는 성엄사(性嚴寺)를 찾아가서 주지인 성법(性法) 스님에게 부탁해서 당분간 요사 채에서 머물 수 있게 해 줄 것을 청했다. 주지는 선선히 허락을 했다.
이튿날 백기는 양신에게 말했다.
"양신, 그동안에 너무도 큰 신세를 졌네. 여기서 고계진으로 가서 계백을 만나 일을 보게. 그리고 우리가 이곳에 있음도 알려주게."
"스님, 언제 다시 뵐지 모르나 앞으로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양신, 나는 자네의 꿈이 이뤄지길 축원하겠네."
백기는 계백에게 보낼 서찰을 내주는데 목제가 입을 열었다.
"은인께서 제게 베푸신 고마움 평생을 두고 잊지 않겠습니다."
"목제 군, 빨리 건강을 회복하게."
"저는 은인께선 중원 땅 여양에서 사시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럴세."
"불함도기 검법을 배우고 싶습니다."
"그렇다면 방법을 찾아보세."
"제가 중원 땅으로 찾아가서 배우면 안 되겠습니까?"
"날 찾아오겠다면 기꺼이 받아들이겠네. 그 일에 위해 나는 계백님을 만나게 되면 상의를 해 보면 될 걸로 생각하네."
"도무님도 그렇게 하길 바라고 계실 걸로 생각됩니다."
양신은 거기서 그런 두 사람과 작별했다. 성엄사를 떠나 고계진으로 향한 지 이틀 만에 포구에 당도했다. 포구는 남가라 못지않게 많은 상선들이 정박해 있었다.
관청으로 찾아가서 양신이 찾아왔음을 알렸다. 그러자 계백은 매우 놀라며 직접 밖으로 뛰어나왔다.
"양신님, 이게 웬 일이오? 살아 계셨구려!"
"계백님, 나도 반갑기 그지없소."
두 사람은 반가움에 어쩔 줄을 모르며 기쁨 속에 마주 앉았다. 계백은 양신이 전하는 백기의 서찰을 뜯어 읽은 뒤 좀 어두워진 표정이 되었다.
"양신님, 나는 삼신산 쪽의 일부터 조치를 하는 게 급하오."
계백은 말을 던지고 급히 밖으로 나갔다가 얼마 후 돌아왔다.
"양신님은 이번에도 신라를 거쳐서 오게 되었단 말이요?"
"그렇습니다. 그런데 계백님은 그걸 어찌 아오?"
"백온 스님의 서찰을 보고 알게 되었소."
양신은 계백의 말로 백기의 법명이 백온(百溫) 임을 알았다.
"나는 신라에 가서 비로소 해론님이 타계하신 것을 알게 되었소."
"나는 오래전에 아는 일로 애도와 동정을 금치 못하오."
그때 하인이 들어와서 말했다.
"도무님, 그만 정자로 나가십시오."
계백은 그 말에 몸을 일으켜 세웠다.
"양신님, 정자에 술상을 차렸다고 하오. 오래간만에 우린 옛 추억을 회상하면서 술이나 마십시다."
관청 뒤에 맑은 물이 흐르는 물가에 있는 정자엔 조촐한 주안상이 차려져 있었다. 계백은 양신을 데리고 정자에 오른 뒤 마주 앉았다. 계백은 술부터 따랐다.
"양신님, 축배를 드십시다."
"나는 해론님의 명복을 빌면서 들겠소."
"양신님, 나는 왜 그 생각을 미처 못 했는지 모르겠소. 그럽시다."
두 사람은 두 눈을 감고 잠시 고개를 숙여 묵념을 한 뒤 묵묵히 술잔을 비워냈다. 양신이 입을 열었다.
"계백님도 전쟁터에서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기셨을 텐데 이처럼 걸 건재한 모습을 보게 되니 우린 다 같이 복이 많은 편인 것 같소."
"나는 감히 양신님에게 비할 바는 못 되겠소."
계백은 대답하고 양신에게 경의가 담긴 시선을 보냈다.
"계백님, 백온 스님이 불도에 드신 덴 무슨 사연이 있는 것 같소?"
양신의 질문에 계백은 씁쓸한 표정이 되었다.
"나로선 스님의 속을 헤아리게 될 때마다 가슴이 아프오. 거기엔 전쟁을 치른 것보다 더 아프고 어려운 가정사 때문이요."
"나도 주랑님 때문으로 짐작은 되오."
계백은 양신의 말에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 점도 있겠으나 스님에겐 또 다른 큰 실의를 겪으셔야 했었소."
"백온 스님에게 또 무슨 일이 있었기에 그러오?"
"스님은 가잠성에서 한 여인에게서 염원했던 아들을 얻으셨소."
"아, 그러셨습니까?"
"그러나 애지중지하던 아들은 세 살 때 병으로 죽었소. 그 충격과 실의가 여간 크지가 않아 매일 술만 잡수시다 관직도 잃고 폐인처럼 되고 마셨소. 결국 심한 인생의 무상함은 절로 들어가시게 되었소."
"백온 스님이 그런 불행을 겪으셨을 줄은 몰랐소."
양신은 깊은 동정을 금치 못하는데 계백이 말을 이었다.
"나로서도 제대로 보살펴드리지도 못한 점 늘 죄송할 따름이요."
계백은 그런 대답을 하고 말을 이었다.
"나는 한때 입신출세에만 매달렸던 속물에 지나지 않았소. 그러나 늘 변방의 관직이나 지키는 것에 만족한 처지요. 앞날이 밝지가 않은 나로선 양신님이 여간 부럽지가 않소."
"계백님, 내게 부러울 게 뭐가 있다고 그러오?"
"나는 양신님이 그간에 모진 고난을 숱하게 겪고 모두 극복해 낸 것을 잘 알고 있소. 그런데 백온 스님의 서찰엔 내게 양신님으로부터 많은 걸 배우라는 충고를 하셨소. 그만큼 양신님은 중원 땅에서 호상으로 당의 고관들과 교류하는 신분이 되었으니 축하와 함께 큰 부러움을 느끼오."
"계백님 답지 않게 무슨 말씀이오? 나는 한낱 장사꾼에 지나지 않소."
"양신님, 나는 너무 큰 실의에 빠져 양신님이 부럽기만 하오."
계백은 그런 말을 하고 자신의 처지를 들려주었다.
처가인 목씨 가문은 교역으로 상당한 재력을 쌓았고 그 힘으로 장인인 목돈은 상좌평까지 오를 수가 있었다. 그러나 목돈은 조정을 장악할 정도로 세력가가 되면서 야욕을 품게 되었다. 그러나 그걸 눈치챈 의자 태자에게 멸문지화를 당하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그로 인해 계백은 중앙 관직에서 배제되었고 지방 관직만 전전하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소도 비빌 언덕이 있어야 하다는 말이 있소. 나는 처가로 인해 왕실로부터 경원을 당하는 처지라 출세할 가망성은 끊기게 되었소."
"내가 듣기론 계백님은 큰 전공을 세운 걸로 알고 있소."
양신의 말에 계백은 그에 대한 설명도 했다.
백제는 5년 전 신라의 남부 철산지 3곳을 공취할 수가 있었다. 계백은 그 작전에 선봉을 서 크나 큰 전공을 세웠다. 때문에 중앙의 요직을 얻기에 충분했지만 의자 태자의 심복들로부터 심한 견제를 당해 고계진의 도무직에 처박힌 채 영 벗어날 길이 없게 되었다.
"좌절하지 마시오. 사람은 누구나 시련은 있게 마련이고 완벽한 조건을 지녀도 뜻하는 바를 못 이룰 때가 많소. 계백 님도 포기하지 말고 용기를 내서 극복해나갈 의지를 다듬고 해결책을 찾으면 됩니다."
"나도 왜 그러고 싶지가 않겠소? 그러나 방법이 없소."
"계백님은 나와 함께 좌절을 극복하고 앞날을 개척해 나갑시다."
양신의 격려의 말에 계백은 조금쯤 마음의 동요가 생겼다.
"한번 사는 인생을 허투루 살고 싶지는 않으나 막막할 따름이요."
계백은 대꾸하고 술잔만 기울였다. 그러나 취기와 더불어 마음이 열리게 되면서 양신에게 조언을 구하고 싶은 미음이 일어났었다.
"그동안 나는 좌절에 빠져 바람 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삶을 맡겼던 사람이요. 그런데 양신님의 말을 듣고 자극이 되고 부끄러움을 느끼오. 모든 걸 남의 탓으로만 돌렸던 자신부터 반성을 해야 되겠소."
"계백님, 내가 너무 흰소리를 친 점 부끄럽게 여기오."
"아니오. 나는 양신님으로부터 배울 점이 많소."
"계백님은 무슨 과찬의 말씀을 다 하시오."
"나는 양신님의 대범성부터 배우고 싶소. 사나이로 태어나서 큰 뜻을 세우는 것은 아무나 할 수가 없는 일이기 때문이요."
"계백님은 사나이의 큰 뜻이라고 했소?"
"백온 스님의 서찰엔 양신님을 패업을 이룰 꿈을 지녔다고 했소."
"백온 스님이 그런 것도 쓰셨소?"
"그렇소. 나는 이대로 평생을 졸장부로만 살게 될지도 모르는데 양신님으로부터 큰 일깨움을 얻었소. 거기다 앞으로 나갈 바람직한 방향을 찾을 마음을 먹게 해 주었소, 나는 양신님한테 계속 배워야 하겠소."
"실은 내가 계백님을 찾아온 데는 도움을 청할 게 있어서요."
"내게 무슨 힘이 있다고 도움을 청한단 말씀이요?"
"그에 관한 얘기를 하기 전에 먼저 알아보고 싶은 게 있소."
"무엇을 말씀이요?"
"백제의 고계진 포구가 이처럼 클 줄은 몰랐소."
"그렇소. 양신님이 둘러본 소감은 어떻소?"
"고계진은 신라의 남가라에 맞먹을 만큼 대 포구로 많은 상선들이 정박한 걸로 봐서 타국과의 교역도 매우 성할 곳으로 보이오."
"요즘엔 남가라보다 고계진에 더 많은 타국 상선들이 드나든다고 하오. 중원, 왜국, 유구는 물론 먼 서역의 상선들까지 찾아오고 있소."
양신은 그런 말을 들으면서 다른 말을 꺼냈다.
"나는 중원 땅에서 장사를 하오. 앞으론 타국과 교역에도 힘을 쓸 계획이오. 때문에 여러 나라를 견문할 필요성을 느껴서 다니는 중이요. 계백님이 이처럼 큰 포구를 관할을 하고 있으니 제안을 하고 싶소."
"어떤 제안을 하려고 하오?"
"앞으로 서로가 도움을 주며 각자의 앞날을 개척해 봅시다."
"양신님과 내가 어떤 도움을 주고받을 게 있겠소?"
"나는 계백님과 함께 교역을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요."
"교역을?!"
"계백님이 교역을 해서 재물을 축적하길 권하겠소."
"재물을 축적한다?!"
"계백님의 앞날을 개척하는데 재물을 기반으로 삼을 것을 권하오."
양신의 제안에 계백을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재물이라, 그렇군! 백제의 귀족들이 상단을 꾸려 교역에 힘을 쓴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었소. 조정에서 세력 키워나가는 데도 제물만큼 큰 뒷받침은 없는데 내가 지금까지 왜 그 생각을 못했는지 모르겠소."
"계백님, 이제라도 늦지는 않소."
"그러나 나는 맨 손이라 엄두를 낼 수가 없겠소."
"재력은 어느 정도 내가 도울 수가 있겠소."
"양신님이 그렇게 해주실 수만 있다면 한번 마음을 먹어보겠소."
"우린 중원 땅과 백제 땅에 나뉘어 있소. 그것은 도리어 좋은 조건이 되겠소. 중원의 여양과 백제의 고계진은 대외교역의 중심지요. 양쪽에서 서로가 협력을 하묘 교역을 하면 상생 발전을 기할 수가 있겠소."
"나는 무조건 양신님만 믿고 한번 해봐야 하겠소."
"그러시면 유념해 둘 게 있겠소. 장사를 하자면 재력도 필요하지만 폭넓은 대인 관계가 더 중요할 때가 많소. 나는 중원 땅에서 나름대로 인맥을 구축해서 장사를 하는데 활용하고 있소. 계백님도 그 점을 유념해서 인맥을 넓히는 일부터 힘을 써주셨으면 하오."
"양신님은 중원 땅에서 어떤 인맥을 구축하였소?"
양신은 품속에 지닌 봉투를 꺼내어 계백에게 내주었다. 계백은 봉투 속에서 종이를 꺼내 들고 읽어본 뒤 물었다.
"위징과 이세적은 대당의 고위관직에 있을 뿐만 아니라 황제의 신임이 매우 두터운 걸로 알려졌소. 그런 고관들이 양신님에게 이런 글을 써 줬다니 나로선 믿기지가 않을 일이요."
"그런 실력자들을 후견인으로 두고 여러 모로 도움을 받고 있소."
"양신님은 참으로 대단하오. 그러나 나도 충고를 할 게 있소."
"계백님, 어떤 충고를 하시려오?"
"어느 나라건 관직에 있는 자들은 조심을 해야만 하오. 관리들이란 공적인 것을 앞세워 사적 관계는 헌신짝처럼 내버리는 자들이요. 양신님도 그 점을 조심하고 경계를 게을리하지 않길 바라오."
"계백님의 충고 고맙게 여기며 유념을 하겠소."
"아무튼 간에 양신님은 대당에서 크게 성공을 거둔 만큼 앞으론 내가 일어설 수 있게 잘 이끌어 주실 걸로 기대를 하겠소."
"계백님도 재주와 능력이 뛰어나므로 틀림없이 성공할 것이요. 더욱이 대 포구인 고계진을 관할하는 직위에 있음으로 유리한 점이 있소."
"양신님의 말씀에 고무가 되지만 내겐 다른 사정이 생겼소."
"계백님, 무슨 사정이 있다는 말씀이요?"
"곧 임지가 바뀌어 임존성으로 가게 될 것 같소."
양신은 그 말을 듣고 표정이 어두워지는데 계백이 입을 열었다.
"임존성에도 관할하는 포구가 하나 있기는 하오. 여주 포구라고 하는데 타국 상선들은 드나들지 않는 작은 포구요. 다만 거기서 북쪽으로 조금 올라가면 신라의 당항성 포구가 있소."
계백의 말에 양신은 무슨 생각을 한 듯 입을 열었다.
"나도 당항성 포구에 대해선 잘 알고 있소. 신라의 대당 교역은 남가라와 당항성 포구가 양 축임을 알고 있소. 여주 포구는 작지만 교역이 성한 당항성 포구와 가까운 위치라 활용성이 클 수가 있겠소."
"타국 상선들이 드나들지 않는 포구에서 무슨 활용성을 찾겠소?"
"타국 상선들이 드나들지 않으면 오게 만들면 되오."
"양신님, 그렇게 만들 만한 무슨 방법이 있겠소?"
"상인들은 이익을 추구할 수가 있는 곳이면 어디나 찾아가게 되오. 다만 이익을 낼 물화가 있어야만 하오. 여주 포구의 주변에선 무슨 특산물이 나는지 알고 싶소."
"나는 잘 모르겠소. 전에 처갓집은 여주 포구에서 철제품을 중원과 왜국을 상대로 교역을 했소. 그런데 지금은 철제품으로 큰 이익을 남기던 시절은 다 지나갔소."
"때문에 큰 이익을 내는 특산품이나 사치품을 더 선호하게 되었소."
"백제국은 귀금속 같은 사치품은 구경하기가 힘드오."
"서역 상인들이 중원 땅에서 가장 많이 사가는 것은 비단이요. 내가 듣기론 백제국의 아낙네들도 비단을 잘 짜기로 소문이 난 걸로 들었소. 혹시 여주 초구 주변에서도 비단을 많이 짜면 좋겠소."
"백제 땅엔 어디서나 비단을 짜지만 수량은 많지가 않소. 그러나 비단 수요가 많아지게 되면 여인들이 열심히 짜려고 들 것이요."
"계백님의 임지가 임존성으로 바뀌게 되면 그 고을의 백성들이 비단을 많이 짜도록 장려해 보시오. 교역은 무엇 보디 물화의 확보가 중요하오. 비단은 아무리 양이 많아도 전부 소비를 시킬 수가 있소."
"양신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 한번 나서볼 생각이 드오."
양신은 문득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계백님, 중원 땅에선 장수들이 백제의 명광개란 갑옷을 매우 선호하오. 그만큼 유명한 광명개를 어느 지역에서 잘 만드는지 아시오?"
"명광개라면 바로 임존성 부근에서 많이 만들고 있소."
명광개(明光鎧)는 황칠(黃漆)을 바른 가죽 조각들을 이어 붙여 만든 갑옷으로 황금색을 띠었다. 장수들은 명광개를 입으면 위엄을 크게 드러내게 된다고 생각해 탐을 내는 물건이었다.
"계백님, 명광개를 많이 확보할 수만 있으면 큰돈을 벌겠소."
"그렇다면 내가 한번 알아보겠소."
"명광개를 만드는 장인들이 많을수록 생산도 많아지게 되오."
"양신님, 명광개를 많이 만든다고 그걸 다 팔 수가 있겠소?"
"명광개도 내가 전부 사들일 테니 염려하지 마시오."
양신은 말하고 금덩어리를 한 개 내놓았고 계백이 물었다.
"웬 금덩이를 내놓으시오?"
"명광개를 사들일 돈을 미리 내놓겠소."
"양신님, 나는 명광개 값을 모르오."
"중원 땅에선 이런 금덩어리로 두 벌쯤 살 수가 있소."
"그러면 여기선 이 금덩이로 몇 개를 사면 장사가 되겠소?"
"장인들도 부르는 값이 있을 것이나 중원의 값에 절반으로 사들여야 모든 경비를 제하고 적당한 이문을 남길 수가 있지 않겠소?"
"양신님, 내 생각은 이런 금덩이라면 대여섯 벌은 살 수가 있겠소."
"계백님, 장인들이 부르는 값을 너무 깎지 말고 후한 값을 쳐주시오. 그래야만 좋은 물품이 나오고 충분한 수량을 구입할 수가 있소. 다만 거래를 할 땐 남을 내세우고 되도록 은밀하게 하는 게 좋겠소."
"양신님의 말씀대로 하겠소."
"그러면 고맙겠소, 그런데 요즘 한삼국 간의 관계는 어떻소?"
"전반적으론 평온을 유지하고 있소."
"무엇보다 다행스럽게 여기오."
"한삼국 간의 관계는 언제나 좋을 것도 나쁠 것도 없소. 근본적으로 불신감이란 고질병이 깔려서 어쩔 수가 없소. 그럼에도 나는 연개소문과 은밀한 교류를 하는데 그가 늘 알고 싶은 게 뭔지 아오?"
"연개소문이 뭘 알고자 하오?"
"양신님에 관해서요. 늘 행방을 수소문하는 눈치인데 이번에 양신님이 이곳에 다녀가신 일을 그쪽에 알려줘야 하겠소."
"계백님, 그 말씀은 잘해 주셨으나 당분간은 나에 관한 일은 비밀에 부쳐주길 바라오. 적당한 시기를 택해서 내가 만나볼 생각이요."
양신은 그런 대답을 하고 또 다른 관심사를 꺼냈다.
"앞으로 백제와 교역을 하자면 선박이 필요하게 되었소."
"양신님, 그건 당연한 일이 아니겠소?"
"나는 선박이 한 척도 없소."
"선박이 없어도 상선을 고용해서 쓰면 되지 않겠소?"
"나는 선박을 소유해보고자 하오."
"선박 건조는 자금만 있으면 얼마쯤이라도 할 수가 있소."
"내가 백제에서 선박을 건조할 수가 있게 주선해 주시겠소?"
"내가 알아보겠소."
"계백님, 부탁하오."
두 사람은 그런 얘기를 나누고 각자의 기대감이 더 커졌다. 특히 계백은 교역을 해서 자신이 도약할 계기로 삼고자 기대를 넘어 은근히 흥분이 되는 심경이었다.
"계백님, 나는 일이 바빠서 오늘이라도 중원으로 돌아가야만 하오. 여기서도 중원으로 가는 배편을 구할 수가 있겠소?"
"그건 어렵지 않소. 마침 당나라 상선들이 몇 척 포구에 머물고 있소. 그중에서 양신님이 갈 방향의 배를 주선해 드리겠소."
"되도록 빨리 갈 수 있는 배편을 구해주시오."
"당장 알아봐 드리겠소."
양신은 사흘 뒤 당나라 상선을 얻어 타고 고계진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