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4시 40분, 핸드폰 알람이 울렸다. 나는 늘 핸드폰을 잠자리 가까이에 둔다. 몇 시에 일어나든, 혹은 일어나지 못하든 이미 습관이 되어버렸다. 특히 미국에 온 이후로는 언제, 어떤 이유로 핸드폰 벨이 울릴지 모르기 때문이다.
2023년, 미국에서 보낸 첫 겨울. 그해 겨울은 나에게 잊을 수 없는 시간으로 남아 있다. 내가 머물고 있는 이 지역은 눈이 많이 오고, 5월까지도 눈을 볼 수 있다고 들었지만 정작 내가 도착한 해에는 그렇지 않았다. 눈을 유난히 좋아하는 우리 두 딸과 나에게는 조금 아쉬운 겨울이었다.
미국에 온 지 꼭 100일째 되던 날. 그날은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난다. 둘째는 내키지 않던 졸업여행을 떠났고, 남편은 다른 지역으로 출장을 가느라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렇게 혼자와 다름없던 늦은 저녁,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잠깐 내리다 말겠지 싶었는데, 생각보다 많은 눈이 쌓였다.
큰딸과 나는 이유 없이 그 추위 속으로 나가고 싶어졌다. 눈을 맞고, 집 앞을 깨끗이 쓸고 싶었다. 우리는 눈오리 인형을 무려 백 개나 만들어 길을 꾸몄다. 한참을 웃고, 손이 얼도록 눈을 만지다 모든 걸 마치고 집 안으로 들어오던 그 순간—한국에서 전화가 왔다.
떨리는 남동생의 목소리는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그렇게 나는 아버지의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 급히 한국행 비행기 표를 끊고, 네 시간이나 떨어진 곳으로 졸업여행을 간 작은딸을 데리러 갔다. 큰딸은 혼자 집에 남아 한국에 갈 짐을 쌌고, 남편은 출장을 취소했다. 그날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아버지는 내가 한국에 도착할 때까지 기다려 주셨다. 내가 미국에 정착할 수 있도록 100일을 기다려 주신 것처럼, 장례를 치를 수 있을 때까지 또 한 번 나를 기다려 주신 것 같았다.
그래서일까. 겨울만 되면 이유 없이 눈물이 난다. 특히 올해 겨울은 유난히 눈이 많이 내렸다. 일기예보에도 없던 눈이 며칠째 계속 내리고 있다. 보고 싶다. 전화드리고 싶다. 그런데 이제는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 수가 없다.
계실 때 잘할 걸. 너무 늦은 후회라는 걸 알면서도 마음은 자꾸 그 자리로 돌아간다. 누구나 하는 후회라는 것도 알지만, 왜 우리는 늘 곁에 있을 때는 소중함을 미루는 걸까.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배우자에게, 두 딸에게 감사해야 한다는 걸 안다. 하지만 힘들다는 이유로, 슬프다는 이유로, 화가 난다는 이유로 날이 선 말들을 내뱉고 상처를 준다. 후회하면서도 또 반복한다.
오늘 새벽, 이런저런 생각과 함께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다짐해 본다. 적어도 오늘 하루만큼은, 칼날 같은 말들을 꺼내지 말자고. 그렇게 조심스럽게 하루를 시작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