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리치한 삶이 좋아 Sep 26. 2022

50대 살이, 앓이

 외장 하드 메모리가 더이상 작동을 하지 않았다. 나의 기록이 갇혔다.

세월의 손때가 잔뜩 묻어 있는 나의 외장 메모리. 벗겨진 케이스는 비닐 테이프로 칭칭 감겨져 있다. 10년 세월이 지나도록 나와 함께 했다. 나의 어설픈 글과 사진이 그 곳에 담겨 있다. 언젠간 꺼내 보리라 하며 저장해 두었는데 이런 사태가 벌어졌다. 연결된 장치로 데이터가 나오지 않았다. 외장 하드 메모리를 무한 신뢰했던 무지함으로 이 지경이 되어 버렸다. 


지난 봄부터 징후가 나타나긴 했는데 내가 간과한 것이다. 노트북과 외장 메모리간 접촉 불량으로만 여기고 연결선을 구하면 되겠지라는 근거없는 믿음으로 나의 안타까움을 가라앉혔다. 짧지 않은 시간, 10년이란 시간은 강산도 변하게 한다는데... 쌓이는 난감함을 애써 뒤로 하고 그 뒤로도 사태 수습에 서두르지 않았다. 하긴 화급을 다투는 일도 아니었으니 당연한 나의 대처일 수도. 


더이상 미루고 말자는 결의로 외장메모리를 들고 '용산 전자상가'로 향했다. 7~8년만인가. 오랜만에 찾아간 그 곳은 주말임에도 인적이 드물었다. 주변은 상전벽해라도 일어난 것처럼 고층 건물들이 차 있고 노후된 상가들도 재건축을 고지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내가 그곳을 자주 방문했던 당시만해도 오가는 사람들의 숫자가 많았었고, 즐비한 상가들엔 활기도 넘쳤었다. 사진 찍기에 막 입문한 때라 필요한 장비를 구입하기 위해 나 역시 그 곳에 자주 다녔었다. 세상에 존재하는 전자 장비들은 그 곳에 다 있는 듯했다. 보는 것만으로 시간 가는 줄 모르던 시기였었다. 이젠 그런 열정도 사그라진 상태이지만. 속도전이라도 벌일 것처럼 세상은 숨가프게 변해가고 있음을 인지하더라도 나는 주변인으로 계속 남아 있겠지. 서글픔이 몰려든다. 현수막이 바람에 나부끼는 노후 상가들에서 내 모습이 베어 나온다. 싱싱 달리는 자동차들의 속도로 나의 시간도 흘러 가겠지. 


수리공에게 메모리 상태에 관한 말을 들었다. 파일이 깨졌고 기기 불량은 아니라고. 복구는 가능하나 그리 중요하지 않은 내용이 저장되어 있으면 궂이 비용 들이며 복구할 필요는 없다는 말을 들었다. '중요'라는 말에 나의 머릿 속은 생각들이 갈리기 시작했다. 누구를 위한 '중요'인가. 내 인생 마디를 누가 평가할 수 있을까. 단지 15만원이라는 비용 때문에 나의 기록이 매몰되어져야 하는가. 순간 나 역시 돈에 관해 편하지 않았지만 잠시였다.  일단 보류하기로 했다.



작가의 이전글 귀한 시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