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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치한 삶이 좋아 Sep 26. 2022

아버지를 찾아가다

   친정아버지를 뵈었다. 지금 요양원에 입원 중이시다. 지난 5년이라는 시간을 그곳에서 머무르고 계셨다. 아버지는 얼마 전부터 처자식 손주들을 알아보지 못하셨다. 자주 가지 못한 나에게 비친 아버지의 모습은 현저히 달라지고 있다. 몸의 기능이 하나씩 멈추는 중이다. 코에 기다란 호수가 매달려 있고 식도로 연결한 호수는 아마도 입을 벌리지 않아서 음식을 섭취하지 못하는 아버지에게 액상으로 된 식이를 제공하기 위햔 요양사들의 선택이라고 한다. 줄곧 아버진 머리를 심하게 끄덕이셨고 그것은 파킨슨 병증이라고 했다. 그런 아버지를 앞에 두고 나는 더 이상 울음을 삼키고 있지 못하고 왈칵 쏟아내었다. 나는 안 울 줄 알았다. 5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는 동안 아버지는 서서히 무너졌다. 쓰러지기 전 모습이 그 순간에도 생생하니 더욱 오열할 수밖에. 


   너무도 치열하게 살아왔었던 아버지를 잠시 원망하기도 했다. 완강하고 권위적인 가부장이었던 아버지를 집안은 늘 억압이고 통제이고 포기였다. 짓눌려 살아야 했던 나의 유년시절엔 늘 아버지 그늘로부터 탈출하고 싶었다. 그 당시 나에겐 세상을 자립할 수 있는 능력이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아버지의 통제 아래 많은 것들을 포기하고 살아야 했다. 너무 답답하고 암울한 청년기를 보내야 했다. 그런 아버지가 지금 내 눈앞에 있다. 아버지의 삶을 탓하진 않는다. 너무 가난했기에 그 가난을 벗어나고자 너무 열심히 살아야만 했던 아버지였다. 운이 닿았는지 50세 넘어 아버진 장사로 많은 돈을 벌어들였다. 가세가 점점 위로 일어나고 누가 보아도 부자라 칭할 정도로 재산을 불렸다. 

   

   인생은 알 수 없다더니 그런 아버지에게 또 다른 시련이 찾아왔다. 대를 이어 줄 아들이 결혼 후 심각한 질병으로 그로 인한 파경으로 망가졌다. 아버진 그 아들의 손을 놓을 수가 없었다. 자신의 영혼마저 그 아들을 위해 내놓으신 듯했다. 굴렁쇠 돌 듯 아버지의 노년을 보내었다. 쓰러지기 전까지. 영혼도 재산도 아픈 아들을 위해 기꺼이 내놓으신 것이다. 정체된 삶을 받아들이지 못하셨다. 아버지 자신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은 순간이 되더라도 처와 아들의 삶은 지켜주고 싶으셨던 것이다. 내가 그런 아버지를 향해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이해는 하지만 아버지가 이루어 놓은 많은 것들을 어느 누구도 맘껏 누리지 못했다. 엄마도 나의 형제들도 나도. 가족 중 난치병을 앓는 이가 있다면 그 외 가족들에겐 평생 족쇄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20년 이상의 시간을 지나온 우리에게 더 그렇다. 지쳤다. 같이 병들어 가고 있다. 

   

   아버지가 쓰러지고 얼마 전 엄마마저 암수술을 받으셨다. 정말 나만 겪는 일은 아니지만 머리가 하얗다. 망망대해에 조각배가 지표 없이 둥둥 떠있다는 느낌으로 살아간다. 아픈 엄마가 아버지를 닮아간다. 아버지의 부재로 맘껏 엄마 자신을 위해 누리고 살아갈 줄 알았다. 아버지의 통제로 너무 많은 걸 희생하고 살아온 엄마였기 때문에 나는 당연히 엄마가 이기적으로 시간을 보낼 줄 알았다. 참 모를 일이다. 같이 있을 땐 남편인 아버지를 그리도 원망하며 남편을 향한 강한 애증으로 살아온 엄마도 아버지의 고단한 삶을 데자뷔 하고 있다. 병들고 노쇠한 체구라도 병든 아들을 위해 자신의 시간은 개의치 않고 있다. 엄마는 부모는 자식에 대해 이럴 수밖에 없다고 극구 명분을 삼으시니 나의 만류에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오히려 나에게 부정적이다. 안타깝지만 나는 그런 엄마를 바라볼 수밖에 없다. 


   요양원에서 아버지와의 면회는 비대면이었다.  10분 정도. 노쇠한 아버지를 감촉으로 느낄 수 없었다. 그저 등을 돌려 오열하는 것 밖에. 아버지는 내가 거기에 있다는 걸 알아채셨을까. 나를 못 알아봄이 슬프기보다 아버지가 자신의 존재를 잃어 가고 있음이 더 슬펐다. 


   전례 없던 전염병으로 이제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상황이 만들어 낸 서글픔이다. 아버지 엄마의 부재도 커다란 서글픔일 터이지만. 아직 그 시간은 오지 않았다. 노쇠한 몸을 지탱하기 위해 힘겹게 숨을 들이켜고 있는 아버지 엄마를 위해 내가 무엇을 해 드릴 수 있나 생각해 본다. 


  아버지

  엄마

  사랑합니다

  아주 많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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