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리치한 삶이 좋아 Nov 02. 2022

명동길이 낯설다.

2022년 초입의 겨울, 명동

몇 년이 흘렀을까. 가늠이 되지 않는다. 오늘처럼 명동길 사진 찍으러 갔던 때가. 

지금 그곳은 당시 사진을 찍으며 내가 거닐었던 거리도, 가끔 방송 매체를 통해 비친 그 거리도 아니었다.  을씨년스러운 공기만 가득하다. 오전 시각 하늘에서 내뿜는 햇살에도 따스함은 없었고, 다만 그 길엔  쓸쓸함이 더할 뿐이다. 2022년 이전부터  명동은  동력을 이미 잃어버린 듯하다. 활기라곤 어디에도 없었다. 어떤 구역은 이미 폐허가 된 채로, 또 다른 구역은 사람들의 흐름도 이미 메말라 있다. 허황된 갈망마저 그곳에서 증발되어 버린 모양이다. 어쩌다 이 지경까지 이르게 되었나 탄식이 절로 나왔다.


점심식사 시간이 되니 식당가가 형성된 골목은 그나마 간헐적으로 한 덩이 인파가 이동 중이고 , 맛집인지 아닌지 개의치 않아 보인다. 그 시각만큼은. 






여기저기 빈 상가들의 유리창엔 '임대문의'라는 글귀가 오래전부터 붙어 있었는지  군데군데 찢겨 나가고, 남아 있는 종이마저 바람에 볼품없이 나풀거린다. 마치 명동길을 상징하는 것처럼. 






역사의 뒤안길로 접어든 듯한 그 길은 상흔들로 차고 넘치었다. 간혹 짙은 슬픔이 배어 나오는 곳을 지나칠 때면 한동안 나의 걸음이 잡혀 있곤 했다. 

유치권 행사 중인 건물에 내걸린 현수막, 공실이 된 상가들 그리고 내부 시설 철거 후 잔존한 폐기물들로 가득 방치되어 있는 상가들이 즐비하다. 폐업을 고지한 점포들도 상당했다. 짙은 먹색이 거리를 잡아먹어 버릴 것처럼 포효하고 있었다. 미지의 공포였다.

거닐다 마주친 상인들의 얼굴은 흑빛을 띤 채 웃음기라곤 찾아볼 수가 없었다. 이미 사무쳐 병들어 버린 그들의 감정을 추스리기엔 시간이 꽤나 필요해 보인다.  


 예전 명동길은 화려했고 폭발적이었다. 지금은 아니다. '아~ 옛날이여~'일 뿐이다. 


명동 예술극장 앞에서 요구르트 판매하는 여사님이 내게 다가와 말을 건넨다. 그 시각 나는 사진을 찍고 있었다. 

"무얼 찍느냐?" 고. 

순간 긴장감이 감돌았었다. '나 잘못한 것도 없는데' 말이다. 내가 사람 찍는 줄 알고 초상권 운운하려는 건지 알 수 없어 살짝 졸았었다. 

여하튼 나는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여사님의 말을 계속해서 들고 있었다. 알고 보니 내게 부탁을 하려는 것이었다. 

여사님은 거리 바닥에 뿌려진 쌀과 그것을 쪼아 먹고 있는 비둘기를 찍어 세상에 알려 달라는 것이었다. 

비둘기의 개체가 늘면서 비둘기가 싸지르는 똥으로 인한 피해가 엄청나니 사진을 찍어 sns에 올려달라는 것이었다. 그 심정을 충분히 이해하지만 나는 난색을 표했다. 고발을 위한 사진 촬영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나는 사진을 배우는 중이고 그 시간은 촬영 수업이었다. 그리고 나에겐 그런 사명의식은 없었다. 선뜻 그리하겠노라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 

비둘기 똥이 문제가 된 것은 꽤나 오래전부터였고 비둘기에 공포감을 느낀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길바닥은 물론이고 건물 여기저기 덕지덕지 오물이 붙어 있었다. 비둘기가 비대해질수록 싸지르는 똥은 기하급수적으로 늘 텐데. 

내가 뭘 할 수 있었겠는가 말이다. 애먼 껌만 질경 질경 씹었다.


다시 예전의 영화를 되돌려 누리는 날이 올까. 

내가 사진을 찍는 이유 중 하나는 기록이다. 

먼 훗날 펼쳐보며

 '그땐 그랬지'

 '그래도 잘 버텨냈어'라는 말을 하고 싶어서. 




작가의 이전글 아직 10월인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