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리치한 삶이 좋아 Nov 02. 2022

생은 멸이 되면 또 다른 생이 되고


잎들이 식음을 서서히 멈춥니다

지니고 있던 본연의 색마저 내보냅니다

있던 자리까지 다음 해에 태어날 잎눈들에게 내어 줄 준비를 합니다

머금고 있던 물기가 메말라 가도 참아냅니다

바스락바스락 거리는 소리가 점점 커집니다 

그래도 마른 잎사귀들은 한 방울의 물기 조차 받을 생각이 없습니다

한결 가벼워져 보입니다

홀가분하게 늙은 나뭇잎들이 하나 둘 셋

이내

힘없이 건듯건듯 나부끼며 땅으로 땅으로 내려앉습니다

더 내려갈 수 없는 곳에 다다르면 그제야

살포시 눕습니다 

점점 자신의 존재가 옅어지고 있음을 느끼지만 

그로 인해 슬퍼하지 않습니다

그저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려는 듯

잎들은 편안히 하늘의 뜻을 기다립니다


우리네 삶도 그럴 테지요

한 해를 마무리하는 즈음

문득 네 계절을 지나오는 동안 나의 비어 있던 그릇이

얼마나 채워져 있는지 궁금해집니다

점점 그 그릇은 채워지기 어렵겠지요

아쉬움이 남아 겹겹이 쌓이더라도

토닥토닥 제 어깨를 두드려 줄 겁니다


'수고 많았다'라고.

'많이 사랑한다'라고.

작가의 이전글 명동길이 낯설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