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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치한 삶이 좋아 Nov 01. 2022

아직 10월인데...

서리가 내린 걸 오늘에야 알아채다니!

동이 트고 얼마 지나지 않은 시각, 부산스러운 나의 발길은 집 근처 텃밭에서 멈추었다. 그곳을 머물다간 밤의 냉기가 아직 완전히 거치지 않은 탓에 춥다. 냉기가 초겨울 못지않다. 장갑을 끼지 않은 맨손이 시리다. 본능적으로 입을 동그랗게 오므리곤 조신하게 모은 두 손에다 대고 '호'하고 입김을 뿜어본다. 냉기가 콧방귀라도 뀌듯 별 효과가 없다. 

3일 만에 들른 터라 가을 작물들이 자라고 있는 텃밭은 어쩐지 생소하고 낯설게 나의 시선을 잡아 끌어당긴다. 아뿔싸! 희끗희끗한 서리가 작물들을 뒤덮고 있는 게 아닌가. 서걱서걱 거리는 것이 살얼음과도 같았고, 

흡사 서릿발 기운이 나를 마구 찌르는 것처럼 어색한 통증이 느껴졌다.

머리가 쭈벚 서고 나의 온 신경 세포가 동시다발적으로 이마 한가운데 몰리고... 넋 놓고 있다가 맞닥뜨린  시간의 흐름이 순간 당황스러웠다.

하긴 작물들이 계절의 변화를 외면하지 못해 순순히 받아들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있었더라도, 

얇고 투명한 살얼음이 작물들을 에워싸고 있는 걸 보니 적잖이 놀랐고 그래서 그 충격으로 머리가 띵했다. 

나의 동공은 광폭으로 확대되고 마치 무슨 일이라도 벌어진 것처럼 소스라치게 놀라 심장이 벌렁벌렁했다. 

그러곤 어이없게도 '피식' 웃음이 내 입가에 번진다. 현타가 온 것이다.

 '이게 뭐 그리 놀랄 일이라고'


냉기가 도는 시간이 길어지니 작물들 성장도 더디다. 안타깝다. 그래서 유난히  더 스산하다.

그럼에도 낮의 온도는 17~19도를 유지하고, 

햇살이 따스하게 내리고,

하늘은 더할 나위 없이 푸르르게 줄 사탕 엮듯이 나날이 이어가고,

여유롭게 계절의 진행을 따라 나의 시간도 지나가고,

유유자적한 한량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나에게 오늘 아침 맞이한 서리는 그리 반갑지 않은 손님이었다.


설악산 대청봉엔 벌써 한바탕 눈맞이를 한 모양이다, 벌써.

텔레비전 화면을 도배해 버린 그 소식 또한 반갑지 않다. 눈 내리면 좋아라 하기보단 길 미끄러울까 노심초사하는 메마른 감정이 앞서기 때문이다. 

아직 푸르른 가을을 보내고 싶지 않다.

선뜻 계절의 손바뀜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아서 심통까진 아니더라도 골은 내볼 심산이다.

말려서 들깨 수확하려 함

서리가 내리니 월동 준비도 곧 해야 한다.

가을 작물들을 심어야 한다는 생각에 텃밭 여기저기 씨를 파종하고 물 주고 퇴비 주고 천연살충제 뿌려 해충 몰아내고. 신나게 했다. 걷이 할 때를 생각하면 그리 신날 일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중노동'.

노동의 맷집이 강하지 않은 저질 체력이다 보니

김장용으로 재배한 작물들을 뽑고 다듬고 씻어 절이고 버무려 냉장고에 넣는 행위를 떠올리면 상상만으로도 아주 부담스럽다. 김장철이 지나면 동네 정형외과에서 물리치료받아야 하는 불상사도 각오해야 하기 때문이다.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그 고생을 사서 하나?'

'얼마나 아끼자고 쯧쯧'

하는 생각이 스몰 스몰 올라온다.

'아니지 아니지' 고개를 절레절레 좌우로 돌리며 생각을 고쳐 먹는다. 기꺼운 맘으로 해야지.

수확하려면 앞으로 한 달 정도 더 있어야 한다. 

지난해보다 작물의 성장이 더디게 보이지만 그래도 괜찮다. 병충해 덜하고, 단단하게 실하게 성장하면 된다.


타산지석 데이터가 쌓이고 올해도 어김없이 정산을 해야 한다. 텃밭 농사를 시작한 첫 해는 그야말로 좌충우돌과 커닝의 연속이었다. 주변 밭 따라 하다 시행착오도 많았다. 두서없고 질서도 없었다. 그 또한 지나가고 해가 바뀌니 임하는 자세도 변했고 좀 더 알차게 작물을 구성하게 되었다.

일단 시도해 보고자 했다. 진행 과정이나 결과물을 보고 점점 데이터 베이스를 키워가고 있는 중이다.

생각지도 못한 변수들이 너무 많아 대처하려면 지금은 우선  예상답안을 세우고 실험하는 자세로 텃밭을 관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행착오는 다양한 변수들로 인해  줄지 않을 것이지만 괜찮다. 정답은 없는 것 같기 때문이다.


서리가 덮인 배추 잎사귀를 보고 나니 생각이 너무 멀리 간 듯하다.

걱정도 팔자다. 

잔잔히 흐르는 시간 속에 어쩌다 볼록 튀어나온 한 점을 보고는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주절주절이 나의 소회를 적어본 것뿐이다. 역시 갱년기는 수다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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