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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치한 삶이 좋아 Dec 09. 2022

어떤 게 좋을까

송년 모임 공지가 떴다.

'12월 ㅇ일 ㅇ요일 오후 7시, 사진 교환이 있을 예정이오니 준비하시기 바람. 블라블라~~'

벌써?

송년이란 글귀가 어색하다.

사계절의 끝자락이 오기 전 월동준비를 마친 후 한가로이 시간을 보내고 있었던 터라 그런가.

연령대 속도로 시간의 흐름을 느낀다는데 아직 그런 말을 운운하고 싶진 않다.


사진을 준비하라니. 심란하다.

파일을 들춰 본 들 뭐하랴 싶다. 현장에서 제대로 찍어겠지 했어도 모니터로 보인 이미지는 늘 결핍이었다. 생각대로 안되니 자존감도 출렁이고.

어쩐다.

난감하네 난감하네.


'휴'

깊게 들숨 날숨을 서너 번 거듭해 본다.

머리가 복잡해지면 대상과 거리 두고 명상이나 산책을 하라던데 도움이 된 듯하다.  

나의 시선, 내가 만든 이미지가 엉성해도 나임에 변함이 없으니

생각통을 비우고 그냥 찾아보자!


남편이 생일 선물로 사진기를 사주면서 시작된 사진 찍기.

백지 위에 그림을 그리듯 네모 틀에 세상을 담아 왔다.

거기에 나도 녹아들고.

내가 먹는 것이

내가 행하는 습관이

내가 내뱉는 말이

내가 보는 것이 나인 것을 알게 되면서

사진 속 이미지는 신기하게 나를 닮아 있다.



많은 이유로 사진에 입문하겠지만 나는 어쩌다 우연히 듣게 된 셔터 소리 때문이라면 이상할나나.

'차알칵'하는 소리가 나의 힐링 세포를 건드린 모양이다.

막혀 있던 숨통이 트이며 비로소 호흡이 편해지고 살 것 같았다.

그 순간의 각인은 내 희망의 표식이 되어 주었고,

그때가 사진을 반려 삼은 1일 차가 되었다.  그러면 오늘은...


나이 듦서 남자에겐 동굴이, 여자에게 놀이가 있어야 한다는데

자의든 타의든 사진 찍는데 즐기기를 다하니 나의 놀이로는 더할 나위 없다.

하마터면 나의 지루함이 극에 달해 우울통에 빠져 허우적거릴 뻔했는데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다행이랄까 운이 좋았다고나 할까.

유형학, 기호학, 미학에까지 이른 배움은 인증샷을 넘어선

인문학적인 것까지 발을 담그도록 했다.

배움에도 휘발성은 강한지라 비우고 채우기를 거듭하여 가끔 쭈그러들기도 하지만.

기억력보다 센 지우개가 내장된 탓에 지적인 소양을 향한 욕심. 접은 지 오래다.

사력을 다함도

기력을 소진함도 이젠 손사래 치고 싶다.


그나저나 적당한 사진을 골라야 하는데... 휴.

타인에게 나의 솜씨를 내보이는 일은 언제고 어렵다.

내 속살을 보이는 같아서

건네는 나의 손이 부끄럽고

건네진 것에 닿는 타인의 시선이 신경 쓰일 수밖에 없다.

그 순간만큼은 선천적인 넉살이 왜 내게 없을까 원망스럽기까지 하다.


실체가 있든 없든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내 품에 있을 땐 내 식으로 그것이 읽혔더라도

내 손을 떠나면 더 이상 아닌 게 되고,

더 이상 '라떼는 말이야'가 통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떠나보내기 전에 더 잘하고 싶은데 실력이 따라주지 않으니

그저 통탄하며 받아들이는 수밖에 어쩌겠나.  

나의 자존감도 덩달아 출렁거리니 어지럽기 그지없다.


그래도

사진을 찍는 놀이를 함에  지금까지 후회한 적 없다. 신기하다.

왜냐고.

그냥.

좋다.

준전문가용 사진기를 들고 다니면 폼도 나고 그럴듯해 보이지만,

(나이 들매 주책스레 폼생폼사스러워지니 어쩔꼬)

어깨로 손목으로 느껴지는 무게감 때문에 점점 견디기 힘들어진다.

노안이 오니 선명하게 이미지를 담기도 점점 어려워지고.

이제 꾀가 난다.

멀리 가자는 제안에 고민하는 횟수가 늘고,

남이 찍은 사진들 보며 시간을 낚는 날도 숫자가 늘어난다.

예전에 아이들이 내가 사진을 찍고 있으면

"엄마 대포 쏘는 것 같아"라는 말에 잠시 웃기도 하면서 힘든 것도 넘겨 버렸는데

세월에 장사 없는가 보다.

그래도 계속하고 싶다.

'내가 그땐 세상을 이렇게 보았었구나'하며 내가 썼던 기록들을,

내가 만들어 내었던 이미지를 들추면서 나이 듦에 익숙해지고 싶다.


내친김에 사심 가득한 욕심 살짝 내볼까.

지금은 내가 이런 글을 기록하고 있다는 걸 나의 가족이 모른다.

언젠가 읽게 되는 날이 온다면

무거운 사진기와 고군분투하고 있는 나를 안쓰러워하길.

그렇다고

나에게 가벼운 걸로 선물해 달라는 것은 절대 아니다. 다만...

사진기가 무거워 죽겠다고 무겁다고 손목이 나갈 것 같다고 매일 구시렁댈 뿐. 그리고

나는 이렇게 말하겠지.

"어깨고 손목이고 아프면 약 먹으면 돼"

"근력 키울 겸 좋지 뭐"

"애고애고 어깨야"


그나저나 관람을 미루고 있던 사진전이 있는데

오늘 날도 따뜻하니 슬슬 외출 준비하고 보러 가야겠다.

소개해 준 이가 '강추'라 해서 검색해 보니 구미가 당겼다.

<프랑코 폰타나 : 컬러 인 라이프>

내가 선호하는 사진들이 많아 보인다.

그래서 오늘은 사치 좀 부려 볼까 한다.

집에 돌아와 숙제를 해야지. 사진 선택이 좀 수월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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