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를 향한
내가 남편을 향한
내가 아들과 딸을 향한 마음을 달리하고 싶어서
이제까지 나를 부를 때 썼던 '엄마'라는 호칭 말고
대신
잊고 있던 나의 이름, 신분을 확인할 때만 소환되었던 나의 이름을 불러 달라고 가족에게 요청했다.
결혼 후 한 남자의 아내로, 아이를 낳고 키우며 아이들의 엄마로 살아오면서
나의 호칭은 이름 석자가 아닌 ㅇ ㅇ의 아내, ㅇㅇ 엄마, 어미야, 동서, 형님, 올케로 바뀌었다.
심지어 친구들과 만날 때도 장난스레 호칭을 명명하다 보니 이제는 내 이름 석자가 나조차 어색하다.
녹음된 나의 목소리를 내가 들을 때처럼 이질감이 느껴졌다. 낯선 생소함.
그래서 서글프냐고 자문한다면... 글쎄...
감정이란 걸 느낄 여유조차 없이 바쁘게 살아오느라 고개를 뒤로 돌려 본들 지나온 것들에 대해
어떻다 말하기도 그렇다.
그렇게 대수롭지 않게 살아왔으면 됐지 이제서
나를 향한 호칭을 달리 한다고 나의 삶에 얼마나 영향을 줄까 하는 생각도 했다.
별스런 의미를 부여하고자 함도 아니었고
다만 변곡점에 놓인 나를 리뉴얼하고 싶었다.
나부터 상대에게 ㅇㅇ씨라고 하니 절로 존대어가 술술 나왔다. 신박함에 짜릿했다.
엄마를 ㅇㅇ씨라고
아들에게 ㅇㅇ씨라고
딸에게 ㅇㅇ씨라고.
ㅇㅇ씨... 태어나면서 불렸던 내 이름이 아들과 딸의 입으로부터 소환되었다.
흔쾌히 엄마를 이해한다는 듯 엄마라는 호칭대신 카톡이나 전화통화할 때 혹은 만나면 그렇게 나를 불러주었다. 고마운 자식들...
불편함은 없었냐고? 아주 잠깐 민망한 정도.
뻔스럽게 오가는 인사말과 배꼽인사로 장난기가 발동된 분위기는 폭풍 웃음으로 이어졌고, 나락으로 떨어질 것 같았던 엄마로서의 권위는 다행히 변함이 없었다.
우려는 우려일 뿐.
서로 오뚝이 인형처럼 배꼽인사를 수차례 나누는 동안 부모 자식 간 만남이 더 유쾌해졌다.
아들과 딸이 더 살가워졌다. 감사한 일이다.
나도 남편도 자식들을 대하는 마음이 서서히 달라졌다.
호칭 서프라이즈는
직장인으로 당당히 자립해 부모 앞에 선 자식들에게 부모가 그들에게 존경을 표할 수 있는 기발한 신의 한 수가 되었다.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개방적인 가정 분위기 덕분에 점점 자식들과 소통은 더 유연하게 되었고, 친밀도 역시 더 견고해졌다.
오십 대 후반인 남편도 가장의 권위를 고집하지 않고 거부감 없이 그 분위기에 동화되었다. 참 멋진 남편.
고객을 대하듯 가족에게 인사를 나누고 경청하는 일은 장난스럽지만 경박스럽지도 않았다.
'고객님 안녕하십니까!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불편하신 사항은 없으셨습니까?'
'네, 괜찮습니다. 수고하십시오'
상황극 하듯이 배꼽인사를 곁들인 만남은 호들갑스러웠다.
한 달에 서너 번 집을 찾아온 아들 딸에게 편안한 집이 되게 하려면 사랑과 관심이라는 명목으로 쓸데없이 그들의 삶을 간섭하고 끼어드는 과오를 하지 말아야지 생각했다.
호칭 서프라이즈로 인해 부모 자식 간 적당한 거리 두기가 가능해졌고 부모의 자세를 재정비할 수 있는 기회가 된 것도 바람직했다.
자칫 사랑이라고 포장해 행하는 부모의 간섭도 점점 줄이고
응원, 격려, 위로를 해주는 건강한 거리가 나와 남편 그리고 아이들 사이에 생겼다.
너무도 감사한 일이다.
성년이 되어 자립을 이룬 자식들에게 부모랍시고 한마디 한마디 건네다 보면 받는 쪽은 성가신 잔소리로 변질되어 균열이 생기기 시작. 알아채지 못하고 미련하게 지속하다 극지방 크랙을 부모와 자식 사이에 만드는 참사가 벌어진다.
'나이 들어감에 입은 닫고 지갑은 열라'
아들, 딸이 30대 문턱을 넘고부턴 자식들 대함에 부모의 언행이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직장 근처로 자신들의 거주지를 마련해 독립하니 내가 자식들을 대면하는 날의 간격이 점점 길어졌다. 바쁜 시간 쪼개서 찾아주는 자식들에게 잠시라도 편안하게 머물다 가도록 해 주고 싶었다. 정성스레 차린 밥상도 좋았고 소소한 각자의 일상을 주거니 받거니 하는 것도 좋았다. 감사한 일이다.
부부 사이에도 이렇게 한다면 오랜 시간 덕지덕지 묻어 있었던 군내를 씻어낼 수도 있겠다 싶었다.
본디 변화라는 것이 불안과 막연으로 시작되니
그 점을 각오하고 일단 남편에게도 존칭과 존대어로 응대했다. 동갑내기 남편임에도 불구하고.
나를 가볍게 대하는 참을 수 없는 상황이 온다 해도 이미 각오했다면 문제 될 것이 없었다.
아침 첫 대면부터 '안녕히 주무셨어요, 컨디션은 어떠신지요?' 말을 건넸다.
당황스러운 기색이 얼굴에 한가득임에도 아닌 척 '응'하던 남편도 시간이 지나면서 나와 같은 톤으로 나에게 인사한다. 대만족.
출근길에도 퇴근길에도 나의 인사는 존대어였다.
'안녕히 다녀오세요'
'고생 많으셨어요'
옷매무새를 고쳐주고 얼굴을 손으로 감싸주며 조금씩 조금씩 남편에게 나의 체온을 나누어 주었다.
그리고 남편의 말에 경청을 했다. 그의 말에 동조하고 응원하고 위로하는 말로 반응했다.
추대받는 느낌이 들었는지 남편의 언행에 변화의 바람이 불어왔다.
그렇게 부부간의 대화는 달콤하고 부드럽고 따뜻해졌다. 감사한 일이다.
얼마 전부터 저녁 식사 후 남편의 발을 마사지하기 시작했다. 남편의 변화는 이때부터 가속이 붙었다.
'용감한 자가 기회를 미인을 얻는다'
내가 먼저 하면 어떤가. 자존심이 상할 것도 아닌데. 남편의 존립이 나의 존립과 일맥상통하거늘.
부부의 연을 맺고 있는 한.
결국 작은 것들을 내주고 큰 것들을 얻은 승자의 기분이다. 나의 자존감은 상승 중.
생각을 실행으로 옮기느냐 그저 생각에서 멈추고 날려버리느냐 고민을 거듭해 왔다. 중병으로 정해진 시한부 인생이 아니더라도 유한한 시간을 그렇게 소모하는 일은 줄이고 싶다. 일단 시작하고 행하고.
내가 행하는 사랑은 결단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