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창구에서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무슨 사연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고객으로 보이는 중년 여성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격앙되었다. 창구에서 직원과 상담을 하던 중 뭔가 꼭지가 돌았는지 직원을 향해 목에 핏대를 올리며 따지고 있다. 자신의 주장을 꼭 관철시키고야 말겠다는 듯 자리에서 선 채로 또박또박 한 마디씩 강하게 어필한다 . 곁에 딸인 듯 보이는 이가 안절부절. 내 눈에 비친 그 사람은 처한 상황이 몹시도 창피해해 하는 듯하다. 그러다 말겠지 하던 나의 바람은 바람일 뿐. 은행 직원들의 만류에도 아지매의 분노는 사그라들기는커녕 점점 기세등등하다. 한 성깔 하는 그 아지매가 어떠한 이유로 화가 났던지 간에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이들의 감정도 험악해지고 있다.
번호표 뽑고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술렁술렁거린다. 사태를 수습하느라 은행직원들의 업무마저 차질을 빚게 되니 점점 대기하는 시간도 덩달아 길어지고. 또 그것을 마냥 속절없이 기다려야 하는 것도 짜증스러울 수밖에. 인내도 임계치에 다다른 모양이다. 험악해지는 분위기만큼 번호표 뽑고 기다리던 사람들의 표정이 잔뜩 일그러졌다.
그 시각 나도 은행 직원과 상담 중이었는데 옆자리에서 터지는 고성으로 대화가 점점 어려웠다. 같은 내용을 두세 번 묻고 답하였다. 짜증나네. 부글부글. 내 머리에도 스팀이 돌기 시작했는지 뚜껑이 들썩들썩. 도저히 안 되겠다. 더는 참을 수 없어 상담을 잠시 멈추고 그녀에게 가서
"저기요, 화가 나신건 이해하는데 고성으로 인해 옆자리에서 대화가 어려워요. 목소리를 작게 해 주셔야겠는데요. 저도 급하고 중요한 내용이라서 쫌 불편하네요." 했다. 통쾌.
나를 향해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알. 겠. 습. 니. 다."한다. 미안함보단 억지춘향스런 표정이 폭주한 아지매 얼굴에 역력하다. 어이없게도.
자신의 불편함을 거칠게 어필하는 동안 자신이 주변에 또 다른 불편함을 유발하고 있음을 일깨워 주고 싶었다. 사람의 화가 극도로 치달을 땐 주변은 아랑곳하지 않으니 아전인수격이 되어 상황은 더 골로 빠지게 마련이다.
꼭 그래야만 했을까.
강한 분노를 표출하면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해결되는 것은 아닐 텐데 말이다.
갑을 관계라고 착각했던 것일까. 그 순간만큼은 갑질을 하는 JS처럼 보였다.
화를 내는 일이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지만 공공성을 띤 장소에서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는 일은 삼가야 한다고 여겨왔다. 자신의 감정이 균형 감각을 잃게 되면 오히려 자신에게 화가 더 미칠게 될 것이란 걸 알았더라면 어땠을까. 오늘도 세상공부 한 건 했다.
그나저나 그 아지매 은행에서 볼 일은 제대로 마치고 나왔을까. 궁금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