띵똥띵똥.
"누구세요?"
"수거 기사입니다."
"아 네"
며칠 전 폐가전 수거업체에 전화를 걸어 무상 수거 요청을 했고 오늘이 가져가기로 약속한 날짜였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내 성격상 미루다 끝내 버리지 못할 것이 뻔하기 때문에 이번만큼은 작정하고 실행하기로 했다.
망설임으로 주저하기 전에 휴대폰의 통화버튼을 눌렀다.
'폐가전 수거 업체'로.
압력밥솥 두 개, 캡슐 커피머신, 약탕기, 일체형 컴퓨터. 내가 의뢰한 품목들, 오형제이다.
수거 가능 여부를 물으니 된다고 해서 바로 수거 날짜를 잡았다.
통화를 끝냈는데도 마음속은 기어코 갈대처럼 흔들흔들. 그럼 그렇지.
'다시 전화를 걸어 취소한다고 할까
아니다'를 반복하며 나도 모르게 머리통을 도리질 치고 있었다.
이미 사망 선고를 받은 오형제를 대체할 새 제품을 구매해 쓰고 있다면 그것들을 더 이상 가지고 있을 이유가 없건만 사람의 성향이 쉽게 바꾸지 않으니 그게 탈이다. 섭섭함이 탈이다.
긴 시간 나로 하여금 본분에 충실하도록 보좌해 준 것들이라 그렇겠지.
토사구팽까진 아니더라도 야멸차게 내치는 형국이니 비록 무생물일지라도 오형제를 향한 미안함이 가득했겠지. 고마움도 크고.
언제 넣어두었는지 기억도 가물가물하다. 어두운 창고 선반에 가지런히 놓여 있던 오형제는 머무르고 있었던 시간만큼 켜켜이 쌓인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다. 날마다 청소를 했음에도, 자주 들여다보았음에도 창고 속 물건들 위 세월의 때가 두꺼워지는 것은 알아채지 못했다.
집 밖으로 내놓으려 두 손으로 부여잡고 옮기는데 오형제 하나하나에서 배어 나오는 나의 지나간 행태들과 여정들이 주마등처럼 전광석화처럼 눈앞을 스쳐갔다.
이 묘한 기분은 뭘까. 미련이다.
깨끗이 잊지 못하고 끌리는 데가 남아 있는 마음이다.
나의 일손을 덜어준 오형제.
덕분에 나의 삶도 윤택했다.
덕분에 나의 생활도 구구절절 맛깔스러웠다.
그대 가슴 깊이 묻어 버리고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죠
떠난 이에게 노래하세요
후회 없이 사랑했노라 말해요
그대 너무 힘든 일이 많았죠 새로움을 잃어버렸죠
그대 힘든 얘기들 모두 꺼내어 그대 탓으로 훌훌 털어 버리고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죠.
<걱정 말아요, 전 인권>
카톡카톡.
수거가 완료되었단다. 시원 섭섭.
아쉬움도 이내 없어질 것이다.
잘했다.
이번은 독해지기로 한 결정이 맘에 든다. 그래서 계속 독해지기로 했다.
기능을 상실한 채 덩어리로 우리 집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것들을 내치며 살고자 한다.
더불어 새로이 들여오는 것들에 좀 더 신중을 기해야겠다.
쾌적하게 살자고 마련한 공간을
온전히 내가 써야 하는 공간을
불필요한 덜 필요한 것들과 나눠 쓰고 싶지 않으니 독해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