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째 붙어있던 탁자들 사이를 떼어 놓으면 어떨까. 찰나처럼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생각이란 놈에게 틈을 주지 않으려고 바로 손목에 힘을 주어 탁자 하나를 옆으로 밀었다. 뭔지 모를 시원함이... 뭐지?
이윽고 예상하지 못한 감정이 밀물처럼 번졌다. 탁자 사이 벌어진 틈은 나의 동선을 보다 효율적으로 가성비 좋은 공간으로 충분했다. 이를 두고 뒷걸음 치다 얻어걸린 횡재라고 해야 하나.
그리고 벽면으로 붙여진 탁자에선 낯선 안정감이 느껴졌다. 별 거 아닌 게 짧게나마 격하게 마음을 진동시킬 수 있다니 신기했다. 마치 나의 숨구멍이 또 하나 생긴 듯 나의 호흡마저 더 편안해지는 것이다.
눈을 뜨고 의식이 깨어있는 동안 문득 일어나는 생각을 수없이 흘려버렸다. 그것이 일상이라고 했고 그저 평범한 삶이라고 착각했는지 모른다. 단 한순간도 단 하루도 되풀이되는 것은 아닌데 그렇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지루하고 답답하다고 아우성치고 회의감에 빠져 세상 고뇌를 다 짊어진 듯 힘들다고 했다.
산소가, 빛이, 소금이 어쩌니 저쩌니 하는 나부랭이들을 더할 나위 없이 식상해하면서도 부정하지 못했다. 당연하다고 여기며 간과했으니 그로 인한 청구서는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마감 직전에 찾아든다. 잃은 것이 많아 더 이상 청구서에 응하지 못할 지경에 이르러서야 깨달은 어리석음에 고통은 가중이 되고 만다. 도착하기 전에 모래알 같은 기미를 눈치챘더라도 삶의 종착역에서 그리 슬프진 않을 텐데 말이다.
글을 쓸 때에도 줄과 줄 사이 여백이 있으면 보다 편안하게 읽힐 것이고,
먹색보다 종이색이 더 많을수록 멋들어짐이 세지는 수묵화를 볼 때도 그렇고,
노동 중 잠깐의 휴식도 짧은 낮잠이 달콤한 꿀맛처럼 느껴지는 것도
틈이 있어 좋은가 보다.
사람 사이에 놓인 틈은 적당한 때에 만들지 않으면 세상천지 전무후무한 최고의 재앙이 되는 것이고.
부부간, 부모 자식 간, 형제간, 고부간, 장서 간, 이웃 간, 세대 간, 인종간, 종교 간, 종족 간 등등.
관계란 것이 좋기도 하고 불편할 수도 있으니 보통 인간으로 사는 동안 깨달기는 쉽지 않겠다.
몸속에서 방사형으로 뻗어 있는 혈관도 내장도 틈을 못된 지방으로 메워져 있으면 그로 인해 지불해야 할 청구 비용을 혹독히 치러야 할 것이고.
밀도가 높은 골목길에서 느끼는 정겨움도 같은 맥락이겠지.
빽빽이 들어선 집들 사이사이로 어디까지 뻗어 있는지 가보지 않으면 전혀 가늠이 안 되는 골목길이 좋은 이유도 틈 때문일 것이다. 물론 그곳에서 생계를 겪어내야 하는 이들에겐 고통일 수도 있겠지만.
사진을 찍으러 가끔 그런 곳들을 찾아가면 이중적인 감성으로 혼란스럽긴 해도 골목길 이미지 담고 오는 날은 아날로그에 흠뻑 젖을 수 있어 나는 감사하기만 할 뿐이다.
어쩌다 벌려 놓은 틈을 놓고 개똥철학 같은 썰을 나열 하다 보니 나 자신에게 웃음이 난다.
인테리어적인 감각은 꽝이지만 새로운 계절을 맞으며 커튼을 침구를 아우터를 바꾸듯,
대청소를 하듯 묵은 것들과 선을 긋고 틈을 내어야겠다.
삐죽삐죽 올라오는 나물들로 밥상 위 틈도 내어보고.
겨울 추위 탓하며 온기 충만한 집 울타리에서 그 품에 안겨 지내왔는데
기온이 오르고 계절이 바뀌는 시점, 따스한 햇살을 잔뜩 머금은 바깥으로 나오라는 시그널이 잡힌다.
이제 나와 집 사이에 틈을 만들어야 하는 시기인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