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개월 만에 대학병원에서 퇴사한 간호사 이야기
2년 동안 타 병원 취업 및 개인적인 사정으로 글쓰기를 중단하였고, 드디어 여유란 게 생겨서 글을 쓰게 되었다. 먼저 2년 전쯤 2022년 8월, 11개월 만에 잘 다니던 대학병원을 그만둔 이야기부터 시작하려고 한다.
사실 내가 글쓰기를 그만둔 건, 대학병원을 급하게 퇴사했을 때 병원에 대한 이야기에 대해 글을 쓸 수 없을 정도로, '트라우마'가 내겐 너무 심했었다. 다신 대학병원 근처는 못 갈 것 같았고, 간호사 일을 아예 접으려고 했었다. 퇴사 자체가 내겐 상처였고, 그간의 일들을 내가 소화해 내기엔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래서 '간호'와 관련된 글을 쓰는 걸 주저하게 되고 미루고 미루다 잊혀 2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이 글은 신규 간호사들에게 퇴사를 장려하는 것도, 퇴사에 부정적으로 말하는 글도 아니다.
그저 매우 개인적이고 주관적으로 퇴사를 하게 된 한 간호사의 수기이다.
그때 당시, 퇴사 후 내가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이 말이었다.
“11개월? 12개월도 아니고? 한 달만 더 버티지..”
“퇴직금도 못 타고 경력 1년도 1달 남기고 못 채웠네. 아쉽다.”
주위의 반응은 다들 이랬다. 표현의 차이지 다들 ‘아깝다, 아쉽다, 애매하다.’라는 반응이다.
그것도 내가 그토록 지양하고 싶었던 응급 퇴사(응사)이다. 지난 2022년 1월에 신규간호사들이 독립하자마자 응급 사직을 한 글을 작성했었다. 그때 나는 반드시 ‘응사’를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으나, 정말 사람 일은 모르는 것 같다.
“그런데 왜?”
“무슨 사건이 있었어?”
다들 아쉽다는 반응 다음에 오는 것은 왜? 어째서?라는 궁금한 반응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리 거창한 이유도 아니었고, 참고 참다가 못 참아서 스트레스가 이상하게 터져서 미쳐버릴 것 같아서 충동적으로 퇴사를 하게 되었다.
사실, 사람이 갑자기 퇴사 결심을 내릴 때는, 그 누구와 싸우지도, 누구에게 엄청난 부조리, 불이익을 받았거나, 심각한 사고나 사연이 있어서는 아니다.
흔한 예를 들자면, 남녀가 헤어질 때, 어느 날 갑자기 싸워서 갑자기 홧김에 헤어지는 경우는 사실 드물다. 그렇게 헤어진 대부분 커플은 감정이 진정이 되면 다시 붙더라.
최근 친구에게 들은 말을 인용하자면 ‘남녀가 헤어지는 이유는 어느 한 사건이 원인이 아니라 어느 순간 헤어질 시기가 되어서, 그동안 참고 왔던 것들이 쌓이다 어느 순간 놓아주게 되는 거야.’이다.
또, 남녀가 결혼하는 이유도 사실 그리 거창하지 않다고 한다. 대부분 ‘오래 만나다 보니까 혹은어 쩌다 이 사람과 그렇게 되었다.’라고 한다.
나의 퇴사 원인도 그렇다. 그날 누구에게 심하게 혼났거나, 누구에게 태움을 당해서 탈탈 털렸거나, 환자 상태가 너무 안 좋아서 숨이 차고 머리가 아프고 물 한 모금도 못 마시고 일했던 것도 아니다. 혹은 환자가 말도 안 되는 갑질을 해서 너무 힘들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냥 평소와 같이 스트레스받고 잔잔히 힘든 날이었다. 내가 후배라고 일 잘 안 하고 대충 넘기는 선배에게 인계를 받았고, 그날따라 나이트 오더 보는 게 힘들었고, 하필 그날 인계를 주는 선배가 너무 꼼꼼하고 빡빡하게 구는 선배여서 전 선배가 못했던 일까지 내가 못 걸러서 그것까지 처리하고 가느라 1시간 늦게 퇴근한 것 밖에 없었다. 이런 부조리야 간호사들 사이에서 하루 이틀도 아닌데 익숙했을 법도 했다. 더 힘들고 펑펑 울었던 날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날은 예고도 없이 찾아온다. 나이트 근무 끝나고 집에서 자다 일어난 후 당장 전날 일부터 시작해서 예전일까지 힘들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그리고 다시 노예처럼 일을 갈 생각에 내 인생이 너무 비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에 앞으로 퇴사까지 3개월이나 남았고, 그 사이에 오프 수가 적은 나의 duty 표를 보니 도망갈 구멍이 없어 보여 숨이 턱턱 막혔다. 그날따라 한계에 부딪힌 것처럼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더 이상 못 하겠어. 오늘도 또 화나는 일이 기다리고 있겠지.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아.’
평소에도 ‘더 이상 못하겠다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달고 살아서 먼저 응사 경험을 한 사람들의 글이나 동영상을 보기도 하고, 퇴사를 하면 어떻게 되는 건지 생각하면서 한편으로는 퇴사한 사람들이 너무 부럽기도 하고, 퇴사할 용기가 나지 않는데 이런 글들을 보면 위로는커녕 더 우울해지곤 했다.
나의 유일한 정신적 지주이자 내 편이셨던 같은 병원 선배 한 분에게 고민 상담을 했는데, 내가 너무 힘들어 보이셨는지 위로를 하시면서
“그만둬도 돼. 정말 너무 힘들면 갑자기 그만둬도 되고, 아프다고 안 나와도 돼.
꼭 반드시 계속 다니라는 법은 없어. 그렇게 그만둔 사람 많아. “라고 말씀해주셨다.
나는 그 어떤 위로보다 이 말이 가슴에 사무치게 다가왔다.
마치 계곡에 물이 순식간에 넘쳐흘러 범람이 되듯이 막혔던 내 안의 무언가가 터지는 것 같았으며 강렬하게 도망가고 싶었고, 눈물이 펑펑 흘러나왔다.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나의 눈물은 격정적으로 나왔으며 나는 입사 이후로 한 번도 이렇게 크게 목 놓아 운 적이 없었다. 정말 나라를 잃은 사람처럼 오열을 하였다.
너무 고마웠고, 위로가 되었으며 한편으로는 이렇게 해야 하나. 1년 경력이 뭐라고, 퇴직금이 뭐라고, 왜 이런 생각을 하면서 평소에 살아야 하지 하고 회의감이 세게 들었고 나 자신이 불쌍해지기 시작했다. 그 강렬한 울부짖음이 내 머릿속에서 한 달이 지나도 잊히지가 않는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너무 울었는지 혹은 너무 감정이 북받쳤는지는 모르겠으나,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진정이 되지 않았고, 급기야 과호흡을 하면서 호흡곤란이 왔다.
한 30분가량 호흡곤란이 오면서 마치 panic attack처럼 죽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숨이 쉬어지지 않는다고 선배한테 연락을 하였고, 오늘 못 하겠다고 말하였다.
선배는 일단 진정하고 이브닝 chief nurse 선생님한테 연락하라고 했고, 전화로 펑펑 울면서 숨이 안 쉬어진다고 일 못하겠다고 말했다.
그 선생님은 무섭기로 유명한 선생님이었는데, 차분하게 일단 진정하라고 했고, 일 못 나올 것 같으면 무책임하게 못 나올 수 있는 게 아니라, 어른으로서 책임을 지어야 하니 응급실이라도 가야 본인이 같이 일하는 동료들에게 커버라도 쳐줄 수 있지 않겠냐고 하셨다.
그래서 나는 그 밤에 헐떡이는 숨을 붙잡고 최대한 빨리 내가 다니는 병원 응급실로 걸어갔다.
나는 눈물 콧물 범벅이 되었고 눈이 시뻘게졌으며 다행히 도착하니 걸어서 그런지 호흡곤란이 나아졌다. 난생처음 응급실 진료를 받으니 생각보다 기다림이 많았고, 절차도 많았다.
동료 간호사 선생님들이 일하다가 오셔서 나의 상태를 확인하고 가셨다. 처음엔 내가 과장을 하거나 거짓말을 치는 것 같아서 오신 건가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으나 진심으로 내가 걱정되어서 오신 걸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죄송하고 감사했다. 마치 교실의 ‘문제아’가 된 기분이었다.
처음으로 간호사가 아닌 환자로서 대학병원에서 진료를 받았으며, 각종 기본 검사들을 받았다. 난생처음 의료진 앞에서 브래지어를 올려 심전도를 찍었으며, 나 같은 간호사가 굵은 바늘로 정맥주사도 놓고 수액도 맞았고 응급실 침대에 누워있었다. 불편하면서도 신선한 경험이었다.
사실 기다림은 길었다. 3시간 정도 기다리고 나서야 피검사와 모든 검사결과를 의사에게 들을 수 있었다.
결과는 젊은 20대 여성답게 ‘정상’이었다.
응급실 의사 선생님은 내게 말했다. 호흡곤란과 심박수의 증가 원인이 심장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신체적 문제가 아닌 정신적인 스트레스 문제인데 평상시에도 이런 적이 있었냐고 물었다.
그래서 나는 평상시에 일할 때도 가끔씩 숨이 막힐 듯이 답답한 기분은 들었지만, 정말로 호흡곤란이 온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고 말했다.
의사 선생님은 원한다면 정신과 상담을 받아보는 것도 좋다고 하셨다. 흔히 공황장애와 같은 사람들이 곧 죽을 것 같다고 119타고 응급실에 오면 그 순간만 그렇고 막상 도착 시엔 아무런 이상이 없는 적이 많아서 이런 경우에는 심리적인 요인이 원인인 것 같아서 응급실에서 해줄 수 있는 일이 없다고 하셨다.
나는 알겠다고 하였고 밤 12시 반이 지나서 그날 근무는 가지 않았다. 이미 못 간다고 말을 해 놓은 상태였다. 그리고 응급실 침대에서 3시간 동안 생각하고 또 생각한 결과, ‘당장 그만둬야겠다.’
누군가 말하길, 사람이 돈도 싫다고 뒤도 안 돌아보고 그만두고 싶을 정도면 정말 그만두는 게 맞다고 하였다. 나는 1년 채우면 퇴직금이 나오는 걸 알았고, 그 정도 돈이면 꽤 되는 것도 알았다.
1달만 채우고 응급 사직을 하라는 둥, 그래도 좀 버텨라 아깝다 혹은 그곳은 있을 곳이 아니다. 당장 그만둬라 등 주위 사람들의 반응은 제각각이다.
그러나 나는 알고 있었다. 다시 그 병동에 돌아가서 일할 수 없음을.
콕 집어서 무엇이 너무 힘들어서, 너무 싫어서 그만뒀다고 말하기 어렵다.
넷플릭스의 드라마 ‘루머의 루머의 루머’의 여주인공 Hannah가 자살한 이유가 생각났다.
그 여주인공이 자살한 이유는 특정 사건 하나 때문도 아니고, 누구 한 명 때문도 아니고, 뭐 하나 딱히 집어서 형용하기 어려운, 여러 가지 사건과 사람들과 상황이 복합적으로 그녀의 목을 서서히 조여와서 참고 참다가 생을 그만두게 되었다.
나도 그녀처럼 최선을 다해 보기도 하고,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고 좋은 날도 나쁜 날도 있었고, 많이 노력했다. 쉽게 포기하지 않으려고.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스트레스를 그동안 안고 살아왔으며, 하루하루 버티듯이 살다가
벽에 조그마한 금이 결국은 건물을 붕괴시키듯 그렇게 나의 마음도 무너져버렸다.
그렇게 1달 남기고 아깝지만 바로 다음 날 사직서를 쓰겠다고 다짐했다.
나는 그렇게 그만두게 되었다. 숨 막힐 정도로 참을 수 없어서 결국.
그러나, 그다음 날 기적은 시작되었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