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 생각의 힘과 방향성

_희노애락에 감사하며

by 조안나

나는 희로애락 모두를 사랑한다. 기쁨과 즐￱거움은 나에게 힘을 주어 나아가게 하고 분노와 슬픔은 나에게 힘을 거두어 성찰하여 성장하도록 이끌어 준다. 나는 내가 느끼는 감정들을 편애하지 않으려고 한다. 기쁨과 즐￱거움은 그 자체로 삶에 큰 에너지를 주지만 분노와 슬픔도 찬찬히 마주하다 보면 자신을 알도록 이끌어주는 안내자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물론 대면하기 싫은 사람과 마주할 때처럼 꺼려지고 지친다. 하지만 더 큰 생각, 그러니까 자신을 정말로 사랑하고 성장하고 싶은 욕구가 있다면 용기 내어 볼 만하다.


자신이 어느 때 분노의 감정이 일어나고 조절이 되지 않아 활활 타오르는 불길로 만들어 파멸로 안내하는지 그 과정을 돌아보지 않는다면 삶은 언제나 시한폭탄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것과 같을 것이다.


나의 분노와 오래 마주하고 알게 된 것이 있었다. 엄마는 늘 아팠고 기운이 없어 보여서 나라도 속을 썩이지 말아야지 하는 마음 때문에 참는 아이로 성장했다. 늘 착￸한 딸이라는 수식어가 앞에 붙었고 그 말은 구속복 처럼 옥죄었다. 나의 의견과 욕구는 늘 타인의 욕구에 밀리거나 아예 드러내지도 못￸했다. 그런 모습이 겉으로는 배려심 많은 인간으로 보이기 충분했지만 어떤 계기가 촉발하면 참았던 분노가 다 터져버￶려 수습하는데 애를 많이 먹기도 했다. 나의 분노는 결국 내가 내 의견이나 욕구를 주장하지 못함에서 기인했구나. 다음엔 그러지 않으려면 어떤 것을 연습하면 될까? 불안정한 감정을 다루는 법은 용기를 내어 그 감정을 마주하고 질문하고 생각하면서­ 찾아가는 것이다. 내 주위에 그런 환경적 조건에 놓인 사람들이 누가 있을까 찾는다. 그리고 나처럼 되지 않게 하려고 도와주고 싶어진다.


혼자서 남매를 기르려다 보니 내 성향과 자녀들의 성향이 다른 지점들도 많이 발견된다. 나의 위치는 엄마지￶만 때론 아빠 역할도 해야 한다. 역할 분리가 되지 않을 때 자녀와 갈등이 생길 확률도 높￴다. 호기심 많고 장난꾸러기 아들의 경우 아빠의 간결하고 엄한 훈육이 효과적이긴 하지만 우리 집에선 그런 것이 없었다. 그는 어린 시절에 겪은 상처 때문인지 아들의 훈육을 힘들어 했다. 그로 말미암아 그 역할은 고스란히 나에게 넘어왔고 질풍노도의 시기인 사춘기를 맞으면서 나는 거의 매일 울었다. 엄마가 우는 모습을 보이면 딸아이가 슬퍼하니 울지도 못하고 함께 있으니 울화가 치밀고 섭섭한 마음이 올라￳왔다. 널뛰는 감정들을 하나로 정리하기가 어려웠으니 새록새록 원망의 마음까지도 올라왔다. 그럴 때 나는 그만, 하고 소리친다.


지금 이런 상황에서 내가 놓치고 있는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나의 유년 시절의 경험으로 보자면 이 순간 딸아이의 감정을 살피는 것이 제일 중요했다. 사춘기 오빠의 자기중심적 생각과 도발을 힘들어 하고 아파하는 엄마의 표정을 보면서­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고 있을 것이 보였다. 그렇다고 내가 거짓으로 웃는 모습으로 지낼 수는 없었다. 그건 예전의 나로 돌아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요즘 마음이 조금 불편하지? 엄마는 네마음 다 알아.”

“사춘기라 그런 거라면서?”

“하긴 엄마도 갱년기이긴 한데……둘 다 어마어마하지￶.”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는 속담 같아요.”

“그래, 그게 딱 맞네. 엄마도 어렸을 때 부모님 다툴 때 딱 그랬지.”

“그런데 힘들 때 소리쳐도 돼. 그만들 하라고 내가 불안하고 힘들어. 그만들 하라고. 이렇게 해도 돼.”

“소리쳐도 되는 거야?”


비폭력 방식으로서 자신의 감정을 표출하도록 안내했다. 그 일이 있고 난 후 등교 전 아침 식사 시간이었다. 크림 파스타에 돼지고기 볶은 것을 올려 주려다가 아들에게 된서리를 맞았다. 파스타 그릇에 머리를 처박은 채로 나에게 성질과 짜증을 부리는 거였다. 속으로 아니 이 녀석이 엄마가 만들어 주신 거 감사히 먹어도 모자랄 판에...이 말을 할까 말까 참고 있는데 딸아이가 그 광경을 줄곧 지켜보다가 입을 열었다.


“정말 속상￳하고 슬프다. 엄마가 해주신 거 먹으면서 짜증을 도대체 왜 내는 거야. 좋게 말해도 되잖아.”


그전까지는 조용히 분위기만 살피다 자리를 뜨는 아이였는데 정말 신기한 변화였다. 내가 불건강한 감정을 마주하고 원인을 찾았기에 내 자녀들에게 대물림하지 않을 것 같아서 너무 기뻤다. 슬픔의 감정도 마찬가지다. 내 슬픔의 근원을 들어가다 보면 충족되지 않은 욕구들이 보인다. 그 욕구들을 충족시켜 주면 슬픔이 자신을 먹어 치울 때까지 그냥 두진 않을 것이다. 자신의 감정이나 주변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에 대해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 것은 자녀도 구하고 어쩌면 사회까지 구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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