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희노애락에 감사하며
나는 희로애락 모두를 사랑한다. 기쁨과 즐거움은 나에게 힘을 주어 나아가게 하고 분노와 슬픔은 나에게 힘을 거두어 성찰하여 성장하도록 이끌어 준다. 나는 내가 느끼는 감정들을 편애하지 않으려고 한다. 기쁨과 즐거움은 그 자체로 삶에 큰 에너지를 주지만 분노와 슬픔도 찬찬히 마주하다 보면 자신을 알도록 이끌어주는 안내자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물론 대면하기 싫은 사람과 마주할 때처럼 꺼려지고 지친다. 하지만 더 큰 생각, 그러니까 자신을 정말로 사랑하고 성장하고 싶은 욕구가 있다면 용기 내어 볼 만하다.
자신이 어느 때 분노의 감정이 일어나고 조절이 되지 않아 활활 타오르는 불길로 만들어 파멸로 안내하는지 그 과정을 돌아보지 않는다면 삶은 언제나 시한폭탄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것과 같을 것이다.
나의 분노와 오래 마주하고 알게 된 것이 있었다. 엄마는 늘 아팠고 기운이 없어 보여서 나라도 속을 썩이지 말아야지 하는 마음 때문에 참는 아이로 성장했다. 늘 착한 딸이라는 수식어가 앞에 붙었고 그 말은 구속복 처럼 옥죄었다. 나의 의견과 욕구는 늘 타인의 욕구에 밀리거나 아예 드러내지도 못했다. 그런 모습이 겉으로는 배려심 많은 인간으로 보이기 충분했지만 어떤 계기가 촉발하면 참았던 분노가 다 터져버려 수습하는데 애를 많이 먹기도 했다. 나의 분노는 결국 내가 내 의견이나 욕구를 주장하지 못함에서 기인했구나. 다음엔 그러지 않으려면 어떤 것을 연습하면 될까? 불안정한 감정을 다루는 법은 용기를 내어 그 감정을 마주하고 질문하고 생각하면서 찾아가는 것이다. 내 주위에 그런 환경적 조건에 놓인 사람들이 누가 있을까 찾는다. 그리고 나처럼 되지 않게 하려고 도와주고 싶어진다.
혼자서 남매를 기르려다 보니 내 성향과 자녀들의 성향이 다른 지점들도 많이 발견된다. 나의 위치는 엄마지만 때론 아빠 역할도 해야 한다. 역할 분리가 되지 않을 때 자녀와 갈등이 생길 확률도 높다. 호기심 많고 장난꾸러기 아들의 경우 아빠의 간결하고 엄한 훈육이 효과적이긴 하지만 우리 집에선 그런 것이 없었다. 그는 어린 시절에 겪은 상처 때문인지 아들의 훈육을 힘들어 했다. 그로 말미암아 그 역할은 고스란히 나에게 넘어왔고 질풍노도의 시기인 사춘기를 맞으면서 나는 거의 매일 울었다. 엄마가 우는 모습을 보이면 딸아이가 슬퍼하니 울지도 못하고 함께 있으니 울화가 치밀고 섭섭한 마음이 올라왔다. 널뛰는 감정들을 하나로 정리하기가 어려웠으니 새록새록 원망의 마음까지도 올라왔다. 그럴 때 나는 그만, 하고 소리친다.
지금 이런 상황에서 내가 놓치고 있는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나의 유년 시절의 경험으로 보자면 이 순간 딸아이의 감정을 살피는 것이 제일 중요했다. 사춘기 오빠의 자기중심적 생각과 도발을 힘들어 하고 아파하는 엄마의 표정을 보면서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고 있을 것이 보였다. 그렇다고 내가 거짓으로 웃는 모습으로 지낼 수는 없었다. 그건 예전의 나로 돌아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요즘 마음이 조금 불편하지? 엄마는 네마음 다 알아.”
“사춘기라 그런 거라면서?”
“하긴 엄마도 갱년기이긴 한데……둘 다 어마어마하지.”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는 속담 같아요.”
“그래, 그게 딱 맞네. 엄마도 어렸을 때 부모님 다툴 때 딱 그랬지.”
“그런데 힘들 때 소리쳐도 돼. 그만들 하라고 내가 불안하고 힘들어. 그만들 하라고. 이렇게 해도 돼.”
“소리쳐도 되는 거야?”
비폭력 방식으로서 자신의 감정을 표출하도록 안내했다. 그 일이 있고 난 후 등교 전 아침 식사 시간이었다. 크림 파스타에 돼지고기 볶은 것을 올려 주려다가 아들에게 된서리를 맞았다. 파스타 그릇에 머리를 처박은 채로 나에게 성질과 짜증을 부리는 거였다. 속으로 아니 이 녀석이 엄마가 만들어 주신 거 감사히 먹어도 모자랄 판에...이 말을 할까 말까 참고 있는데 딸아이가 그 광경을 줄곧 지켜보다가 입을 열었다.
“정말 속상하고 슬프다. 엄마가 해주신 거 먹으면서 짜증을 도대체 왜 내는 거야. 좋게 말해도 되잖아.”
그전까지는 조용히 분위기만 살피다 자리를 뜨는 아이였는데 정말 신기한 변화였다. 내가 불건강한 감정을 마주하고 원인을 찾았기에 내 자녀들에게 대물림하지 않을 것 같아서 너무 기뻤다. 슬픔의 감정도 마찬가지다. 내 슬픔의 근원을 들어가다 보면 충족되지 않은 욕구들이 보인다. 그 욕구들을 충족시켜 주면 슬픔이 자신을 먹어 치울 때까지 그냥 두진 않을 것이다. 자신의 감정이나 주변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에 대해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 것은 자녀도 구하고 어쩌면 사회까지 구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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