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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인드 무장 경찰 Nov 18. 2023

당신에게 가장 소중한 건

소중한 것을 지키려면

"여러분은 인생에서 소중한 게 뭐라고 생각하나요?"


내가 초임 형사 시절, 형사과장께서 질문한 말이다.


어느 날 입직 5년 미만 형사들을 회의실로 호출했다. 주로 각 팀마다 막내 형사들이 들어갔다. 당시 나는 경찰서 형사 2팀에서 막내로 근무 중이었다.

'뻔하디 뻔한 교양이겠지.' 아무 생각 없이 회의실에 간 나는 교양의 깊이에 생각보다 많은 것을 깨달았다.







내 옆에 후배 형사는 "돈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했다. 과장님은 화이트보드에 "돈"이란 단어를 쓰고 동그라미까지 그렸다. 그러고는 다른 형사를 지목하고 같은 질문을 했다.


"여자 친구입니다." 나는 누군가 이런 답변을 할 거라 예상했다. 과장님은 똑같이 보드에 "여자 친구"라는 단어를 썼다.


명예, 승진, 친구, 직업



다양한 말이 나왔다. 모두 인생에 있어 빼놓을 수 없는 것들이었다. 이제 내 차례가 왔다.

나는 당당하게 말했다.


"가족이 가장 소중합니다."


당연한 말 아닌가? 가족을 빼고 어떤 소중한 것을 논할 수 있을까?



과장님은 나의 소중한 것도 화이트보드에 쓰고는 말씀하셨다.


"여러분이 말한 게 전부 맞습니다. 틀리지 않았어요. 하지만 저는 이중에 '직업'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직업이 가장 중요하다고?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일까. 나는 인정할 수 없었다. 그렇지만 감히 형사과장님의 말에 토 달기 싫어 그냥 듣고만 있었다.



과장님은 직업이란 단어에 큰 동그라미를 그리고는 돈이란 단어와 연결했다.

"여러분. 직업이 없으면 돈을 벌 수 있나요? 수입이 없을 것입니다."


이번엔 직업과 가족을 연결하고는, "많은 가정이 돈 문제로 이혼하고 망가집니다. 직업이 없으면 가정도 지킬 수 없어요. 직업 없는 가장을 아내와 자녀들이 인정해 줄 거라 생각하나요?"


나는 조금씩 충격을 받기 시작했다.


과장님은 같은 방법으로 화이트보드에 적혀 있는 단어를 계속 연결하며 말씀하셨다.


"직업이 없는 사람을 친구들이 만나줄 거라 생각하나요? 여자친구와의 관계는요? 결혼은요? 모두 이룰 수 없어요."






실제로 많은 가정에서 실직한 가장이 인정받지 못하는 걸 자주 보곤 했다.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져 술로 해결하려는 사람도 많았다.

원인에는 "돈"이라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가 있었고, 돈은 직업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여러분이 가진 현재 직업을 소중히 여기셔야 합니다."


다른 형사들은 교양 시간을 어떻게 보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뭔가 얻어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당시 나는 경찰 생활에 염증을 느끼고 있었으니 말이다.


출근하는 게 싫었다. 지긋지긋했다.

배당된 사건은 물론이고, 민원인에 시달리고 싶지도 않았었다. 이전에 큰 징계받을 뻔한 일은 직업에 대한 염증을 더욱 심하게 만들었다.

한마디로 나는 직업에 있어서 슬럼프에 빠진 셈이었다.



부정적인 나의 직업관은  형사과장의 교양으로 순식간에 변해버렸다. 소중한 것을 지키려면 그만큼의 능력을 갖춰야 한다. 당시 나는 직업을 잃게 되면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던 상황이었다.


실제로 많은 경찰관들이 음주운전이나 비리로 인해 파면에 이르는 경우가 있다. 그러고 나서 잘 사는 사람을 나는 본 적이 없었다.



반드시 직업이 아니라고 해도 좋다. 직장인이나 공무원 말고도 소중한 것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은 많을 테니까.


단, 나의 소중한 것을 지킬 수 있는 무기는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한 여러분만의 무기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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