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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혼 초에 만난 인연의 끈이 끊어진 날.

사람사이. 신생아가 되어버린 어른.

by 샤이니


우리의 삶은 언젠가는 만났다 헤어지는 게 정해진 이치이지만 생의 마지막이라는 그 순간을 맞닥뜨리게 되면 변함없이 당황스럽고 감정을 주체하기 힘들다.


남편의 직장상사로 만난 지가 52년째. 1973년도였으니 강산이 다섯 번도 변한 까마득히 긴 시간이다. 1979년 결혼 후 가장 먼저 신혼집을 찾아주신 정 많고 고마우신 분이다.


어찌 생각하면 초대하지 않았고 더군다나 신혼여행을 다녀온 지 얼마 안 되었기에 무례하고 경우 없는 분이라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자신이 가장 아끼는 후배이기에 참을 수가 없었다며 퇴근길에 양손 가득 선물을 안고 찾아주셨다. 내가 성격이 좀 급한 사람이라며 당황스러워도 이해하라 하신다. 그 이후로도 세월이 흐르고 근무처도 바뀌었지만 여전히 챙김을 주셨던 고마우신 분.


퇴직 후 전국으로 흩어져 만나기가 어려워지니 모임을 형성해 주기적으로 만남을 가져왔었다. 부부동반이 아니기에 자주 뵙기는 힘들었지만 모임 끝날 때는 항상 가족 가져다주라며 선물을 챙겨 남편들 손에 들려 보내셨다. 따뜻하고 지혜로우신

어른이셨는데~





우리나라 최초로 손난로(핫팩)를 만들어 특허권을 가지고 계신 분이다. 연금도 받고 특허권이 있어 돈도 많이 나온다며 항상 먼저 지갑을 여시고 "늙으면 입은 닫고 지갑을 열어야 하는 거다"를 실천에 옮기셨던 멋쟁이 노신사,


91세 나이로 머나먼 소풍길을 떠나셨다. 떠나시는 길도 깔끔하셨다.


처음 들어본 이야기를 전해보고 싶다. 모든 사람들이 세상을 하직하기 전 사연들은 그야말로 각양각색 천차만별이다.


지병으로 당뇨병을 갖고 계셨지만 사십여 년 동안 하루 세끼 식사 후 30분 운동을 철칙으로 삼고 실천하셨기에 당뇨 합병증이라는 무서운 병들도 피해 가셨다.


아드님 말로는 돌아가시기 한 달 전 주무시고 아침에 기상하셨는데 갑자기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치매환자가 되셨단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일반적인 치매가 아니었다.

하룻밤 사이에 평생을 해오던 모든 일상을 잃어버린 거다. 세수하는 것도 아침식사하는 것도 그 어떤 행동도 할 수 없는 상태. 갓 태어난 신생아가 되어 버린 아버지를 병원으로 모신 지 한 달 만에 눈을 감으셨다는데 이런 경우는 처음 들어본다. 성격만큼이나 깨끗하게 생을 마감하신 분이다.

100세 시대에 외치는 구구팔팔이삼사를 실천하시고 가신 듯. 우리 모두의 바람이다.

하느님 나라에 가셔서 편히 쉬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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