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사이. 결혼기념일
우린 겨울 바다를 보기 위해 자주 여행을 떠난다.
겨울바다를 좋아해서가 먼저인지, 결혼기념일이 겨울이라서 찾다 보니 좋아진 건지 모르겠지만, 언제부터인가 사람이 붐비지 않는 바닷가가 쓸쓸하면서도 조용함이 좋다. 결혼 47년째, 올해도 여전히 여행계획을 짜놓은 남편덕에 바다를 보러 떠났다. 1뱍2일 일정으로 가까운 안면도 주변을 돌아보기로 했다. 신혼 때처럼 재잘거리지 않아도, 예전처럼 손을 잡거나 팔짱을 끼고 걷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을 읽을 수 있을 만큼 많은 세월이 흘렀다. 그 많은 시간이 가져다준 여유로움을 오롯이 느껴보는 계기가 되었지 않았나 싶다.
안면도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곳이 드르니항이었다.
항구 이름이 특이해 이정표를 따라 들어갔다. 순수 우리말로 들르다에서 따온 이름인데 일제강점기 때 신온항으로 불렸다가 십여 년 전에 본래 이름인 드르니항으로 바뀐 곳, 대하랑 꽃게랑 다리. 순수해상 인도교로 차량은 다닐 수 없다 일출과 일몰을 볼 수 있고 야간 조명에는 더없이 예쁘다는데, 추운 날씨에 바닷바람이 살갛을 에이는 듯했지만,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가봐야지! 하며 바다를 가로질러 놓인 다리 끝까지 걸어봤다. 바닷바람에 떠밀려 웅크리고 정신없이 걷고 오니 뭘 보고 느꼈는지도 모르게 다녀왔다. 서둘러 차를 타고 다리 반대편 수산시장으로 향했다. 싱싱한 회와 뜨끈한 매운탕 먹을 생각밖에 없었다. 메뉴판에 눈길을 가게 하는 게국지. 유명세를 많이 탄 집이라 소개되어 있지만, 한 번도 먹어보지 않아 선뜻 주문을 못했는데 다음에 오면 꼭 한 번은 먹어봐야겠다.
일몰이 아름다운 대천 바닷가. 숙소 입실 시간에 맞춰 도착해 짐도 풀지 않은 채 바닷가로 나갔다. 사람이 없는 우리만의 바다를 실컷 누리고 싶었다. 한참 시간이 지났나 한 사람 한 사람 붉게 물들어가는 낙조를 보기 위해 사람들이 모여든다. 사람들을 뒤로하고 우리는 숙소에 들어와 뜨거운 차 한잔 마시며 바다로 떨어지는 해를 봤다. 잠깐 사이에 자취를 감춰버린다. 하지만 일몰은 바다에 떨어진 해가 빨갛게 바닷물을 적셔놓은 듯 퍼질 때가 더욱더 아름다움의 극치를 이룬다.
다음날 조금 일찍 숙소를 빠져나와 예산상설시장을 찾았다. 고향을 살려보겠다고 민관 합동 사업으로 다시 살아난 예산상설시장. 2023년 1월에 새 단장을 마치고 오픈했다니 딱 2년째. 평일이고 추워서인지 손님도 없었지만, 유명세만큼 볼거리와 먹을거리도 특별하진 않았다. 구경 겸 점심을 먹기 위해 들른 곳인데 점심은 패스하고 다음 코스인 솔뫼성지를 찾았다.
한 번은 와보고 싶었던 곳. 드문드문 솔뫼성지 입구 주차장에서 불편한 몸의 노부모를 부축해 모시고 온 자녀들을 볼 수가 있었다. 그 자녀들 나이도 중년에 들어선 듯하다. 부모가 데려가 달라고 했을까? 자녀가 먼저 모시고 왔을까? 하는 쓸데없는 추측을 해보며 무엇이 먼저이건 참 보기 좋은 모습이었다.
솔뫼성지는 한국의 베들레헴으로 불리기도 하는 김대건신부님의 탄생지이다. 입구에서부터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인자하신 모습에 압도당하고 성당내부 전시물에 또 한 번 숨을 죽이게 된다. 유럽의 오래된 성당을 많이 다녀봤다 생각했는데 이렇게 훌륭한 솔뫼성지를 이제야 찾았다는 게 조금은 창피고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다음엔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다시 한번 방문하리라 마음먹고 돌아섰지만, 또 언제가 되려는지는 기약 없다.
47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잊지 않고 우리가 처음 만난 날부터 생일, 결혼기념일들을 챙겨주는 고마운 당신. 앞으로도 건강한 모습으로 함께 여행할 수 있는 날이 계속계속되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