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다
사람들은 인고의 시간을 견뎌내고 찾아온 봄을 반기고 봄을 부르는 음악을 듣고 부르며
꽃을 찬양하며 봄에 대한 아름다운 글들을 쏟아 내고 있지만, 어느덧 4월 중순이다
난 봄에 대한 그리움은 보다는 알 수 없는 무거움과 불쾌함을 가진다
오로지 가을예찬과 겨울의 쓸쓸함과 그리운 향수에 젖어 살아왔다
봄바람은 겨울의 찬 공기를 밀어내고 훈풍을 몰고 오지만 그 속에는 강력한 황사와 미세먼지가 덮치는
봄의 생동감과는 아주 다른 불쾌한 기운이 덮쳐온다
얄밉게 느껴지는 봄바람이 남아 있는 벚꽃을 우수수 날려 버리고 화려함을 지우고 있다
기쁨 속에는 슬픔이 내포되어 있듯 아름다움은 잠시 머물다 실망만을 남기고 사라진다
요즘 한낮의 장시간 운전은 에어컨 없이는 견딜 수 없이 숨 막히게 차 안이 덥다
봄바람을 느껴보려 창문을 열자니 미세먼지의 습격이 걱정되어 잠깐 환기 외에는 창문을 꼭 닫는다
이쯤 되면 아~ 이 여름은 코앞이고 한여름을 어떻게 넘길지 은근히 걱정이다
봄의 햇빛은 생각보다 강해 피부에 자외선 손상을 입기가 가을의 햇빛보다 높다고 한다
3년 전 어는 봄날에 아내와 두 딸과 오랜만에 같이 식사하며 담소하고 있었다
"아빠, 이게 뭐야? 얼굴에 뭐가 묻었어" 둘째가 내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더니 손으로 가리켰다
"어 뭐? 뭐가?" 옆의 아내가 거울을 가져다줘다
왼쪽 뺨에 꺼멓게 얼룩이 져 있다 " 어 이게 뭐지?" 손으로 만지고 쓰러 내려봤다
"아빠 이거 검버섯 같은데?'
"뭐야? 검버섯? 무슨 소리야 내가 왜?"
나이 60이 지난 지도 몇 해인데 피부 관리에 무신경했던 결과가 얼굴에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피부 관리한다고 뭐 크게 달라질 것은 없겠지만 얼굴에 뭐 바르는 걸 좋아하지 않는 나로서는 충격을 먹었다
세안 후에도 소량의 로션만 바르고 마무리하는 나의 습관에 벌써부터 아내의 잔소리는 시작되었지만
별로 신경을 안 썼던 지난 시간이 약간의 후회가 되었다
그 후부터 아내가 사다준 선크림을 열심히 발랐다 하지만 역시 가볍게 바르는 흉내만 내는 나를 보고
"그렇게 바르면 아무 효과도 없어, 두껍게 펴서 고루 잘 발라야지" 아내의 얘기였다
3년의 시간이 흐르면서 아침마다 거울을 보며 선크림을 바르고 있지만 검버섯은 조금씩 넓혀 자리를 차지한다 벌써부터 더욱 강렬한 한 여름의 햇빛이 걱정이다
세월의 무게엔 장사가 없고 노력으론 잠시 시간을 늦출 순 있어도 막을 순 없다는 진리를 또 깨닫는다
뭐 이런저런 나의 몸에 걱정이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올해도 여름을 지낼 생각에 엄살이 시작된다
옛날 옛적 어린 시절엔 전혀 느껴보지 못했던 여름의 징그러움이 세계적으로 문제가 되는 환경의 변화 탓일 것이다
아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악마의 물방울이 온몸을 때리고 이마와 등을 타고 흐르는 끈적함은 벌을 받는 느낌이다
6월부터 8월 사이의 과거 여름이 요즘은 5월부터 9월까지 늘어난 것 같다
1년의 반 가까이가 여름이라니... 여름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미안하지만
난 역시 여름 하고는 별로 친하지가 안아서 가까이하고 싶지 않다
오래전 까탈스러운 나의 성격에 덥다고 징징 거리니 옆의 친구가 나지막이 말한다
"그림처럼 앉아 있어, 그럼 안 더워"
오랫동안 그 소리가 맴돌아 요즘도 더울 때면 그 친구의 말이 생각나 혼자 웃곤 한다
하지만 나에게도 여름이 좋고 사랑스러운 부분도 있다
장맛비를 사랑한다 장맛비는 나에게 잠시 숨을 쉴 틈을 준다
온종일 새벽부터 한 밤중까지 쏟아지는 장맛비는 빗줄기를 바라보는 시각적 즐거움과
차 지붕을 때리는 소리의 느낌, 도로에 웅덩이를 차가 쏴~ 하고 물을 튕기는 장면, 검은색부터 알록달록 온갖 색채의 이마를 맞대는 우산의 움직임은 세상을 예쁘게 색칠하고 있는 것 같다
여름의 아무리 불쾌하고 밉기도 하지만 장맛비가 내리는 날이 좋은 것처럼 다른 계절에 보지 못하던 것들을
발견하고 느끼고 즐기는 맛은 그런대로 여름을 넘기는 슬기로움이야
난 오늘 봄의 가장자리에 서서 여름을 걱정하며 장맛비를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