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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날, 샹송을 들으며

by 대전은하수 고승민

어제부터 하늘이 꾸물거리더니 오늘 오전부터 장마가 시작되었는지 종일 비가 내린다

빗줄기는 가늘지도 굵지도 않고 소리 없이 몇 시간째 도로를 적시고 있다.

비가 오는 날이면 생각나는 것은 '파전에 막걸리',

우리 남자들은 어떻게든 핑곗거리 찾아 술을 마시려 하는데 비 오는 날은 누구도 막지 못하지

아주 좋은 핑곗거리보단 불문율 같은 거야

술 마신다고 잔소리하는 아내도 비 오는 날 막걸리 한잔은 살짝 흘겨보지만 모른 체 넘어간다.

그런 낭만이 아직은 살아 있는 것 같아.


비 하면 또 음악이다

가요에도 비와 관련된 노래가 수도 없이 많이 있다

요즘 나오는 청춘들의 노래는 잘 모르겠지만 오래된 7080 시절의 비와 함께 한 노래들은,

내가 좋아했던 김현식의 '비처럼 음악처럼'이 가장 먼저 떠오르고 최헌의 '가을비 우산 속'이 기억난다


양수경의 '사랑은 창 밖의 빗물 같아요',

'비 오는 날의 수채화', '화요일엔 비가 내리면', '잃어버린 우산', '그댄 봄비를 무척 좋아하나요' 등등

참, 그리고 최백호의 '뛰어'란 곡은 "쏟아지는 빗 속을 뛰어봐요'로 비 속에 토해내는 듯한 노래도

옛 시절에 즐겨 불렀던 노래다


이처럼 비와 음악과 세월을 함께 보냈다

선 술집에서 깡통으로 만든 원형의 테이블에서 막걸리를 들이키며 친구들과 함박웃음 속에서 주절대고,

조용한 분위기의 카페 창가에서 커피 한잔과 창을 타고 흐르는 빗물에 손을 맞대 보고 창 밖의 풍경에

심취해 센티해져 가는 나의 모습도.


요즘은 비가 오면 일찍 귀가해 혼술을 즐긴다. 세상 고민 혼자 다 뒤집어쓴 양 홀짝 거린다.

세월 앞에 장사 없다더니 힘이 점점 빠져가는 체력의 한계인지 혼술에 작은 기쁨을 느낀다.


비 오는 날이면 듣는 음악이 예전엔 비와 가요였고 또 영화음악에 취하기도 한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요즘은 샹송과 칸초네를 많이 듣게 된다.

비와 함께하는 샹송, 샹송은 원래 가을만 되면 매일 아침저녁으로 들었다. 가을 분위기와 너무 잘 어울리는

감성의 음악이다

그런데 비 오는 날에도 이상하게 샹송이 자꾸 떠오르고 듣고 싶다는 느낌이 절로 다가온다.


가만히 생각해 봤다

비와 샹송의 연결고리에 대해서,


사실, 나는 샹송과 칸소네를 잘 구분하지 못한다. 이 노래가 샹송인지 칸소네인지 상관없다.

그냥 모두가 샹송이라 생각하고 들으면 그만이다

느리면서 강하고 서정적이며 격정적이다

빠트리샤 카스, 밀바, 세미 고즈, 에디트 피아프 등, 이름은 제대로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

'쉘부르의 우산' '나 만의 남자' '리멘시타' 등 누구나 알 수 있는 음악들, 이 음악에 매료되면 헤어나기 힘들다.


샹송은 서정적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정서다. 콧소리 나는 발음에서 간드러지는 바이브레이션,

사랑을 노래하고, 그리움을 중얼거리고, 때론 삶의 외로움을 고백한다.
과장되지 않으며 절제된 선율, 그 감정의 곡선은 비 오는 날의 풍경처럼, 고요하고 느리다.


프랑스어는 속삭이듯 들린다.
그 언어 특유의 유연한 발음과 리듬은, 마치 창가에 흘러내리는 빗물처럼 나의 감정에 부드럽게 스며든다.
가사는 이해 못 한다. 번역해 보기 전까지는, 그러나 샹송은 이해가 아니라 ‘느낌’으로 다가오니까.

비와 샹송은 묘하게 닮았다. 쓸쓸한데 아름답고, 고독한데 따뜻하다.
마치 잔잔하게 내리는 빗속을 우산 없이 걷는 연인의 뒷모습처럼, 어딘가 멈춰 서게 만들고, 생각하게 한다.

그래서일까.


비 오는 날, 나는 샹송을 즐겨 듣는다. 외롭기 때문이 아니라, 외로움을 벗어나고 쉼을 얻기 위해.
감정을 숨기기보다는, 그 감정과 함께 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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