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보수우파 시민의 시대 성찰
나는 원래 중도에 가까운 사람이었다.
보수는 질서와 책임을, 진보는 약자 보호와 변화의 가치를 대표하며
서로 균형을 이루는 것이 건강한 민주사회라고 믿어왔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이 나라는 ‘진보’란 말이 무색해졌다.
남은 건 오직 이념에 매몰된 좌파뿐, 그리고 그들이 만들어낸 위선의 정치였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자칭 진보세력은 더 이상 합리적 개혁세력이 아니다.
그들은 이념에 갇혀 파괴와 부정만을 반복하며,
자신들과 생각이 다른 이들을 혐오하고 배척한다.
보수우파가 잘못한 것은 반드시 비판받아야 마땅하다.
그러나 좌파는 보수의 모든 것을 무너뜨리는 데만 몰두하고,
자기편의 불의와 위선에 대해서는 철저히 눈을 감는다.
그들은 북한을 끝까지 비호하며, 종북이라는 지적에는 격하게 반응한다.
하지만 그 반응은 오히려, 자신들의 정체성을 숨기려는 반증처럼 보인다.
미국과 자유민주주의를 맹비난하면서도
자신들의 자녀는 미국에 유학 보내고, 부의 사다리를 먼저 탄다.
그들의 반미는 구호이고, 그들의 삶은 오직 자기 안위의 자유주의다.
진보좌파가 주장하는 “공정과 정의”는 말뿐이었다.
조국 사태는 그 상징이었다.
그들은 입으로는 평등을 외치면서도
실제로는 자기 자식에게 특권을,
자기편에게만 정의를 적용했다.
김남국의 수십억 코인 거래, 정청래의 막말,
좌파 지식인들의 위선과 국민 무시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기득권 보수’를 욕하면서
자신들이 또 다른 기득권이자 지배 계급이 되었다.
그들에게 국민은 ‘개·돼지’이고,
그들은 ‘지도 계층’이라는 듯 행동한다.
그들은 ‘1%의 독점’을 비판하면서,
실제로는 그 1%가 되기 위해
자유와 자본의 혜택은 남몰래 챙긴다.
보수우파가 잘했다는 이야기를 하자는 것이 아니다.
보수 또한 기득권의 타성, 부패의 그늘에서 자유롭지 않다.
그러나 지금처럼 국가 정체성조차 흔들리고,
북한과 중국에 대한 맹신이 도를 넘는 시점에서,
나라의 미래와 안정을 위해선 보수우파의 길이 더 현실적인 선택처럼 보인다.
보수는 대한민국의 기반인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안보 중심의
현실주의를 지키는 최소한의 울타리다.
좌파는 그것마저도 허물고,
모든 것을 평준화·집단화·통제 속에 가두려 한다.
결과의 평등을 강요하며 기회의 평등을 파괴하고,
실패를 경쟁의 탓이 아니라 사회 구조의 탓으로 몰아간다.
세계는 언제나 1%의 역량 있는 인재들이 이끌어왔다.
좌파는 이를 부정하고 “모두가 평등해야 한다”라고 외치지만,
그 실상은 “우리만은 예외”라는 위선으로 가득하다.
동등이라는 이름으로 국민을 통제하고,
자신들은 그 위에 군림하려는 것이다.
진짜 평등은 기회의 공정함에서 비롯되어야 한다.
그러나 좌파는 결과의 균일함을 추구하며
사회 전체를 하향평준화 시키고,
도전과 경쟁의 정신을 말살하고 있다.
좌파는 도덕성을 팔고, 정의를 외치지만
그들의 입에서 나온 말들은 행동으로 증명되지 않았다.
국민은 더 이상 진보좌파의 ‘말’을 믿지 않는다.
이제는 행동, 실천, 결과로 판단해야 한다.
나는 더 이상 중도파가 아니다.
나는 대한민국의 자유와 안정을 위해
보수우파의 길을 선택한 사람이다.
정치는 누구의 편이 아니라 국민을 위한 것이고
이념은 깃발이 아니라 국가의 미래를 향한 수단이어야 한다.
우리는 다시 깨어 있어야 한다.
진짜 위협은 ‘틀린 보수’가 아니라
‘속이는 좌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