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나를 마주하는 시간

2025.7.30 일기.. 술과 나를 회상하다

by 대전은하수 고승민

[술, 나의 기쁨과 실수의 역사]

오늘은 술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아주 오래전,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엔 나는 술에 대해 전혀 몰랐지.
부친이 술, 담배를 전혀 하지 않으신 분이셨으니
집에서 술 마시는 모습을 본 적도 없었고, 그저 낯선 세계였을 뿐이야.


내가 술을 처음 접한 건, 미대를 가기 위해 잠시 다녔던 화실에서였어.
선배가 운영하던 그 화실에 어느 날 도착하니 아무도 없더라고.
입시 걱정도 있고, 그림은 손에 안 잡히고… 그래서 아래층 가게에서
소주 한 병과 오징어땅콩을 사가지고 올라왔지.

처음 마시는 술은 쓰기만 했어.
‘왜 이런 걸 마시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한 잔, 두 잔 마시다 보니 어느새 혼자 한 병을 다 비워버렸지 뭐야.


술이 오르니까 어지럽더라고.
긴 나무 의자에 누웠는데, 천장이 빙빙 돌고
어딘가 빠져드는 듯한, 생전 처음 느껴보는 이상한 감각들...
그날의 기억이 썩 좋진 않았지.
그래서 난 술과는 안 맞는다고 생각했어.


하지만 대학에 들어가 학과 친구들과 어울리고, 서클 활동을 하다 보니
술을 멀리할 수가 없더라고.
잘 마시지도 못하면서 사람들과 어울리려니 마실 수밖에 없었고,
그러다 보니 점점 늘더라고, 이게 또.

아니, 술이라는 게 말이지…
맛은 둘째 치고, 취기가 오르면 세상이 다 내 것 같고,
자신감이 솟고, 괜히 흥분되고...
참 나, 나도 모르게 술이 좋아지기 시작했지 뭐야.


스케치 AI

직장에 들어가니 학교 다닐 때의 술 마심은 애들 장난인 거야

1차 2차 3차 하다 보면 날이 밝고 옷만 갈아입고 또다시 출근하고..

당시는 총각이었으니 가능했지만, 결혼 이후엔 그런 정도는 없었어.

아무래도 돈이 있으니 마시는 종류도 양도 씀씀이도 커지더라고.

그 이후로 지금까지도, 나는 나름 애주가가 되어 살고 있어.
뭐 그렇게 술과 친하게 지냈다 이 말이지.


어떻게 보면 술은, 필요악이야.

적당한 술은 기분 전환이나 인적 교류에 참 좋은 매개체가 되지만,
한 잔이 두 잔 되고, 셋넷으로 넘어가면 꼭 문제가 생기더라고.

물론 내가 큰 사고를 친 건 아니지만,
술에 취하면 근거 없는 자신감, 자만감이 생겨.

속에 감춰져 있던 악마가 되는 것 같아
그리고 주워 담지 못할 말실수나 행동의 오점이 남지.

정말 많이 마시면 ‘블랙아웃’이 되는 거야.
눈 뜨면 집이고, 어떻게 들어왔는지는 기억도 안 나고.
그럴 땐 등골이 서늘하지.
“어제 내가 뭘 했지?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싶고.
도대체 집은 어떻게 찾아 들어온 건지...
이게 말로만 듣던 귀소본능인가 싶더라니까.


솔직히 이런 얘기를 글로 남긴다는 게 창피하긴 해.
하지만 이것도 나의 역사고, 나의 생활이니 숨길 생각은 없어.

여자들과는 술 마신 적이 별로 없어.
아내와 딸들, 친척들 외에는 거의 없었지.
여성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남자들의 술 습성은 참 희한해.

마치 세상을 술 마시기 위해 사는 것 같아.


기분 나쁘면 술로 풀고, 기분 좋으면 또 한잔 하자고 하고.
비 오면 막걸리, 더우면 시원한 맥주, 겨울엔 긴 밤을 술로 견디고
눈 오면 풍경에 취해 술에 또 한 번 취하지.
세상 어떤 이유라도 대서 술을 마시려는 게 남자의 본능 같아.


마시다 보니 요령도 생겼지.
빈속에 마시면 큰일 나고, 속을 든든히 채우고 마셔야 덜 취한다는 것도 알게 됐고.
도수가 세고 이것저것 섞어 마시면 끝내주는 죽음의 맛인 거야.

그래도 도수가 센 술은 여전히 힘들어.
역시 술은 서민의 술이라는 소주가 제격이지.

친구들과 웃고 떠들며 마시기에도 좋고 말이야.


이제 와 돌이켜보면, 술은 단순한 알코올이 아니었어.

젊은 날의 치기, 설렘, 쓸쓸함, 위로 같은 것들이
한 잔 한 잔에 녹아 있었던 것 같아.

좋아하던 선배와 떨리는 마음으로 처음 마셨던 술.
실연한 친구와 새벽까지 마시며 서로 등을 토닥이던 그 밤.
그 모든 순간들이 내 기억 속에 술과 함께 남아 있어.

그림 ai

어느 순간부터 술은 단순한 기분 전환의 도구가 아니라
‘나 자신을 마주하는 시간’이 되었어.
혼자 막걸리 한 사발 마시며 하루를 정리하고,
잔잔한 음악 한 곡에 지난 시간들이 떠오르는 그런 밤 말이야.

요즘은 예전처럼 많이 마시진 않아.
술이 줄어든 게 아니라, 그 술자리에 기대던 감정이 줄어든 것 같아.

이젠, 마음이 통하는 사람과 진심 어린 대화를 나눌 수 있다면
술 한 잔 없어도 충분히 따뜻한 밤이 되니까.


최근엔 혼 술의 기쁨과 즐거움을 알아 버렸지 뭐야

컴퓨터 앞에 앉아 그때그때 감정에 어울리는 음악을 틀고

글을 써 내려가면 여기가 세상 낙원처럼 느껴지기도 해.


이젠 나이도 있고 건강도 신경 써야 하고,

사실 그것보다는

아내와 두 딸과 집에서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면서 간단한 술 한잔 하는 게

세상에 둘도 없는 낙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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