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시절의 여름휴가

2025년 7월 30일 오후의 일기..

by 대전은하수 고승민

[여름휴가, 그때 그 시절의 풍경]

내일이면 7월의 마지막 날.
요즘은 본격적인 휴가철이다.

모두 휴가를 떠났는지, 거리는 한산하다.
달아오른 아스팔트 위로 아지랑이만이 피어올라, 눈을 어지럽힌다.


요즘은 대부분의 공무원들과 규모 있는 회사들이 주 5일 근무를 한다.
하지만 오래전, 우리나라가 경제 성장의 속도를 높이던 시절엔
국영기업이든 사기업이든, 토요일까지 풀로 일하는 것이 당연했다.


그 무렵, 외국계 회사들이 국내에 투자를 시작하며
한국 지사를 설립했고, 이들과 함께 ‘주 5일 근무제’라는 새로운 문화가
조금씩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나는 당시 제약회사에 다니고 있었다.
제약 업계는 외국 유명 제약사들의 영향력이 컸기에
그 변화의 흐름을 가장 먼저 받아들인 업종 중 하나였다.

7일 중 하루를 더 쉰다는 것,
그게 이렇게 좋을 줄 몰랐다.
삶에 여유가 생기고, 활력이 돌기 시작했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쉼'이 주는 진짜 가치를 깨달았다.


경제가 급성장하면서
근로자의 권리와 인권도 서서히 제자리를 찾아갔다.
주 5일 근무제가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었고,
금요일 오후부터는 ‘주말’이라 불리기 시작했다.
‘불금’이라는 신조어도 그 무렵 생겨났다.


예전의 주말은 오직 ‘토요일’이었다.
월급쟁이들은 토요일 저녁, 한 잔의 술로
한 주의 피로를 풀곤 했다.

월급도 요즘처럼 통장에 찍히는 게 아니라,
봉투에 담긴 현찰로 받았기에
10일이나 25일이 되면 술집은 인산인해였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지나며
드디어 ‘마이카 시대’가 열렸고 누구나 차를 사고,
가고 싶은 곳을 마음껏 다닐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하지만 그전엔,
서울에서 해운대나 경포대 바닷가에 가려면
기차나 버스를 타고 7시간, 길게는 10시간이 걸렸다.
설악산이든, 무주구천동 계곡이든
거의 모든 휴가는 대중교통을 이용해 다녔다.

그래서 그 시절의 여름휴가는
‘쉼’보다는 ‘고생’을 사서 하는 여행 같았다.


해외여행은 극소수 부유층의 특권이었고,
대부분은 친구들과 가족들, 회사 동료들과 함께
끼리끼리 공동 휴가를 떠났다.

형편이 넉넉지 않은 이들은
아예 휴가를 포기하거나
서울 외곽, 세검정이나 일영,송추계곡에서
등목으로 더위를 견디며 하루를 보냈다.

그래도 다녀오고 나면,
온몸이 햇볕에 새까맣게 타 있었다.
그게 곧 ‘나, 여름휴가 다녀왔어’라는
무언의 자랑이자 풍경이었다.


요즘은 연중 원하는 시기에 자유롭게 휴가를 간다.
그러나 예전에는 여름휴가 하면
거의 7월 말에서 8월 초 사이,
딱 그 시기에 집중되어 있었다.

나는 중고등학교 시절,
교회에서 열리는 여름 수련회가
곧 휴가였다.


포도밭, 복숭아밭 나무 그늘 아래에서
수박을 나눠 먹고, 웃고 떠들며

그때 그 여름,
고단하고 불편했지만
어쩌면 지금보다 더 짙고 소중했던
진짜 여름휴가의 기억이다.


요즘처럼 열대야에 잠 못 이루던 어젯밤,
누가 자꾸 나를 부르는 것 같았다.
정신을 차려보니, 무주구천동 계곡이 부르고 있었다.


졸졸 흐르는 계곡물은 바위에 부딪히고
낮은 폭포를 따라
뽀골뽀골 포말을 만들어내며 부서졌다.
그 위로 스치는 선선한 바람은
꿈결 속에서도 살결을 스치듯 기분이 좋았다.


그래서 결심했다.

내일은 큰맘 먹고,
아내와 함께 무주구천동 계곡을 다녀오기로.

모처럼,
한여름 속에서
우리 둘만의 데이트를 즐겨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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