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집착, 인간의 본능

by 대전은하수 고승민

인명은 재천이다 – 삶에 대한 집착에 대하여

살면서 자주 쓰는 말이 있다.
“인명은 재천이다.”
사람의 목숨은 하늘에 달렸다는 뜻이다.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이니 체념하거나 받아들이자는 위로의 말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말은 너무 가볍게 여기저기 쓰이고 있다.
“운명은 재천이잖아, 일단 해보자.”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지.”
목숨이라는 단어가 들어 있음에도, 결심이나 도전 앞에서 쉽게 꺼낸다.

하지만 진짜 ‘인명은 재천’이란 말의 무게를 느끼는 순간은
누군가의 생명이 위태로울 때다.
그제야 비로소, 목숨이라는 단어가 얼마나 무거운지를 실감한다.


아버지를 통해 본 삶의 집착

나의 아버지는 올해 만으로 91세가 되셨다.
허리 아래가 마비된 채 누운 지 6년이 넘었다.
몸은 움직이지 못해도 정신은 또렷하시다.
그렇기에 더더욱 삶을 포기하지 않으신다.
조금만 아파도 병원에 가자 하시고,
조금만 이상이 있어도 반드시 확인하려 하신다.

나는 병간호가 힘들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어찌 보면 자식 된 입장에서는 감사한 일이다.


나는 다만,
그토록 강하게 ‘살고자’ 하는 아버지의 마음,
그 삶에 대한 집착을 보며 많은 생각에 잠긴다.

무엇이 한 사람을,
이토록 오랜 고통 속에서도
살고 싶게 만드는가?


인간은 본능적으로 산다

우리는 종종 말한다.
“삶이 아름다워서 살아간다.”
하지만 나는 아버지를 보며 깨닫는다.
삶이란, 아름다워서가 아니라 살아 있기 때문에 사는 것이다.

삶은 이성으로 판단되는 것이 아니다.
본능이다.
마음은 지쳐도, 육신은 붙잡고 늘어진다.
숨이 이어지는 한, 생은 스스로를 놓지 않는다.

누군가는 죽음을 입에 올리지만
정작 죽음 앞에서는 누구도 쉽게 삶을 포기하지 못한다.
그게 인간의 본성이다.


삶은 선택이 아니라 부여받은 것

우리는 때로,
“운명은 스스로 개척하는 것”이라며
주어진 인생을 이겨내려 한다.

그러나 그 노력조차도 어쩌면
그 사람 안에 이미 포함된 운명의 일부는 아닐까.

나는 오래전부터 믿어왔다.
사람은 갈 길을 품고 태어난다.
그가 어떤 길을 가든,
그 길 역시 그의 삶 안에 이미 준비되어 있었던 것.

‘인명은 재천’이라는 말은 그래서 더욱 실감이 난다.
운명을 거스를 수 없다는 게 아니라,
운명의 일부로서 삶에 대한 집착조차 포함되어 있다는 뜻이다.


집착이 아니라 생에 대한 애착

누군가는 아버지를 보며 말할지도 모른다.
“이제 그만 놓아도 되지 않나.”
“편히 떠나셔야 하는 거 아니냐.”

하지만 나는 쉽게 그 말을 할 수 없다.
아버지의 하루하루는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아 있는 시간이다.
움직일 수 없어도,
말수는 줄어들어도,
그분은 여전히 생의 끈을 부여잡고 있다.

그 집착은 단순한 고집이 아니다.
삶에 대한 애착이고, 존재에 대한 마지막 저항이다.


그러니 나는 생각한다

인명은 재천이다.
그 말이 진실이라면,
삶을 놓지 못하는 것도 하늘의 뜻일 것이다.
아버지가 그렇게 사는 것도,
아버지에게 주어진 마지막 여정이리라.

나는 오늘도 그 곁을 지킨다.
그 삶의 끝자락이
어느 날 조용히 마무리될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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