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와 오늘, 그리고 위기의 지금
대한민국 근대사에서 기독교는 단순한 종교가 아니었다.
기독교는 이 땅에 학교를 세우고, 병원을 세우고, 언론을 세우며 민족의 눈을 열었다.
일제 강점기에는 3·1 운동을 비롯한 독립운동의 정신적 지주였고,
전쟁과 폐허 속에서는 교육과 복지를 통해 사회 회복의 중심에 서 있었다.
산업화의 물결 속에서도 기독교는 정의와 양심을 외치며,
민주화의 과정에서는 불의한 권력 앞에서 굽히지 않고 진리의 편에 섰었다.
기독교의 뿌리는 언제나 나라와 민족을 위한 위국충정이었고
이 땅에서 교회는 단순한 종교기관이 아니라, 국민 정신의 토대였고
국가의 나침반 역할을 해 왔다.
그러나 오늘날 교회는 그 빛을 잃어가고 있다.
세상의 신뢰를 얻지 못한 채, 내부 갈등과 분열에 휘말려 있으며.
언론은 교회를 조롱하고, 국민은 교회의 도덕성을 의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은 여전히 교회를 바라보고 있다.
나라가 흔들리고 도덕의 기둥이 무너질 때,
교회가 예언자적 목소리와 도덕적 나침반이 되어주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지금 한국 교회의 과제는 단순한 ‘신앙 유지’가 아니라,
잃어버린 신뢰를 회복하고, 사회적 소명을 다시 붙드는 것이다.
오늘 대한민국은 좌파 정권의 폭주 속에 흔들리고 있다.
법치가 무너지고, 자유민주주의의 뿌리가 위협받고 있으며,
경제는 포퓰리즘 정책으로 침몰하고, 사회주의적 실험은 국가의 정체성을 훼손하고 있다.
이럴 때 교회가 침묵한다면, 그것은 주님의 부르심을 외면하는 것이다.
거짓과 선동이 판치는 시대에, 교회는 “무엇이 진리인가”를 분명히 선포해야 한다.
기독교는 단순히 예배당 안에서의 신앙이 아니라,
나라와 민족의 앞날을 지키는 예언자적 공동체여야 한다.
문제는 외부의 공격만이 아니다.
교계 내부에서조차 좌파 정권의 논리에 동조하며,
기독교 방송과 일부 인사들이 정권의 나팔수 역할을 하고 있다.
이것은 외부의 공격보다 더 치명적이다.
적이 밖에서 공격할 때는 방어할 수 있지만, 안에서 무너질 때는
교회 전체가 흔들리기 때문이다.
역사 속의 기독교는 분열이 아니라 연합으로 나라를 지켜냈고,
앞으로도 지켜내야 한다.
공산주의·사회주의 체제의 본질은 종교를 부정하는 데 있다.
마르크스가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고 했던 것처럼,
그들의 이념은 인간의 궁극적 가치와 진리를
하나님 대신 국가와 혁명 이데올로기에 두고 있고
북한은 김 씨 일가를 신으로 모시는 세뇌를 당하고 있다.
그런데도 대한민국 내부에서 일부 기독교 세력이
좌파 이념과 손잡고, 그들의 선동에 동조하는 모습은
분명 이율배반적 모순이다.
신앙을 내세우면서도 실제로는 기독교의 본질인
진리, 자유, 인간 존엄을 부정하는 길에 서 있는 셈이다.
3·1 운동 때도, 전쟁의 폐허 속에서도, 산업화와 민주화의 고비에서도
교회는 ‘나라를 위한 하나 된 믿음’으로 시대를 이겨냈다.
오늘날에도 교회는 스스로 정화해야 한다.
좌파적 선동에 동조하는 세력과는 단호히 선을 긋고,
진리와 복음을 기준으로 다시 하나 되어야 한다.
한국 사회의 위기(외부의 폭주)와 교계 내부의 혼란(내부의 붕괴)은
따로 떨어진 문제가 아니다.
이 둘은 맞물려 돌아가며 대한민국을 흔들고 있다.
기독교가 다시 진리와 정의의 나침반으로 서지 못한다면,
대한민국은 방향을 잃고 무너질 수밖에 없다.
지금은 교회가 권력과 이념의 눈치를 볼 때가 아니다.
위국충정의 신앙, 예언자적 사명으로 나라와 국민을 지켜야 할 때다.
역사 속에서 교회는 늘 이 나라의 마지막 방파제였다.
오늘도 그 소명은 유효하다.
그리고 그 소명에 응답할 때, 한국 교회는 다시 빛을 발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도자가 나서야 한다.
목사님들이 앞장서 나라를 위해 기도하고 몸소 실천하는 자세를 가져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