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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문화와 죽은 문명

< 공자와 맹자가 있어도, 대한민국에 자존심 털리는 중국 >

셰익스피어와 단테가 있으면 이태백과 두보가 있고,
소크라테스와 아리스토텔레스가 있으면 공자와 맹자가 있다고
큰소리치는 나라.

그러나 오늘날 문화의 무게는 다르다.
그 찬란한 문명과 긴 역사를 가졌다는 중국이 정작 대한민국의 문화 앞에

자존심을 잃고 있다.


< 살아 있는 문화와 죽은 문명 >

셰익스피어가 여전히 세계인의 무대에서 숨 쉬는 이유는,
그의 언어가 오늘의 인간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공자와 맹자는 권력의 손에 의해 ‘복종의 철학’으로 변질된 사상으로 남았다.
과거의 문명이 아니라 현재의 생명력이 문화의 자존심을 결정한다면,
지금 중국은 이미 문화대국이 아니다.

한국의 문화는 작지만 살아 있고, 중국의 문화는 크지만 이미 박제되었다.


< 창조를 잃은 모방의 제국 >

중국은 기술도, 예술도, 산업도 발전했지만 그 뿌리에는 자기 철학이 없다.
혁신이 아니라 모방, 자유로운 상상보다 권력의 허락이 우선하는 사회에서
창조는 싹트지 않는다.
그래서 중국의 자부심은 언제나
“우리가 먼저였다”라는 과거 회상으로 귀결된다.
그러나 세계는 과거를 평가하지 않는다.
오늘의 감동을 만든 나라만을 기억한다.

화면 캡처 2025-10-08 084517.jpg

< 대한민국이 보여준 ‘작은 나라의 자신감’ >

대한민국은 전쟁의 폐허 위에서 한 세대 만에 문화와 기술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K-팝, K-드라마, K-게임, K-뷰티..
이 모든 것은 생존을 예술로 바꾼 사람들의 땀과 열정이었다.
그 바탕에는 자유와 개인의 창의가 있었다.

힘이 아니라 열정과 자유의 에너지로 전 세계 젊은 세대의 마음을 사로잡은 나라,
그것이 바로 오늘의 한국이다.
문화는 거대함이 아니라 진정성에서 피어난다.


< 국뽕의 늪에 빠진 ‘중국몽’ >

문명적 자신감이 사라진 중국은
이제 과거의 영화에 취해 ‘중국몽(中國夢)’을 외친다.
하지만 그것은 현실을 외면한 국뽕이다.
김치도, 한복도, 한글도 자신들의 것이라 우기며 자존심을 세우려 하지만,
그럴수록 세계의 평가는 냉정해진다.
스스로 위대함을 증명하려다 국제적 인심마저 잃고 있는 나라.

공자와 맹자가 있어도, 그들의 지혜가 현재의 자유와 연결되지 않는다면
그건 더 이상 자부심이 아니라 박물관의 전시품일 뿐이다.


< 패권의 꿈, 그러나 신뢰를 잃은 제국 >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정책 이후
세계는 미국과 중국 중 어느 편에 설지 시험대에 올랐다.
중국은 이 기회를 ‘패권의 재도약’이라 여겼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인권 탄압, 기술 절도, 체제 통제..
이 모든 요소가 중국을 ‘신뢰할 수 없는 강국’으로 만들었다.

과연 미국과 중국 중 하나를 택하라면 몇 나라가 중국의 손을 잡을까?
북한과 러시아를 제외하면, 자유와 투명성을 중시하는 대부분의 국가는
미국의 편에 설 것이다. 그것이 곧 문명의 방향이다.


< 결국, 지도자가 될 수 없는 이유 >

중국은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문명을 가졌으나
그 문명을 오늘의 가치로 되살리지 못했다.
대한민국은 문명을 빌려 배웠지만 그 속에서 새로운 문화를 창조했다.

지도자는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따르고 싶어질 때 비로소 지도자가 된다.
중국이 세계의 지도자가 되지 못하는 이유는,
힘은 있으나 신뢰가 없고, 역사만 있으나 미래가 없기 때문이다.


공자와 맹자가 무슨 소용인가.
그들의 지혜가 자유로운 인간의 삶을 비추지 못한다면,
그것은 살아 있는 사상이 아니라
스스로 만든 굴레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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