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기준을 넘어, 지속 가능한 공동체로 가는 길
오죽 심각해 보였으면,
방송에서 일론 머스크가 한국의 저출산을 언급하며 ‘국가 소멸의 신호’처럼 가볍게 말하는 장면이 나왔을까.
그 말투는 가벼웠지만, 그 장면은 이상하게 마음에 오래 남았다. 외부자의 시선이어서가 아니라, 우리가 애써 외면해 온 현실을 너무 단순한 한마디로 요약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전쟁 이후 태어난 필자와 같은 베이비붐 세대가 겪었던 ‘콩나물시루 교실’은 가난의 풍경이었지만, 분명한 미래가 있는 희망의 공간이었다.
반면 요즘 시골을 여행하다 보면 폐교가 낯설지 않고, 도심에서도 줄어든 학급 수와 텅 빈 교실이 일상이 되었다. 풍요 속에서 오히려 미래에 대한 확신이 사라진 풍경이다.
젊은 세대가 아이를 낳지 않는 현실을 우리는 너무 쉽게 재단한다.
의지의 문제일까, 이기심일까.
어쩌면 그것은 감당할 수 없는 구조 앞에서 내린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자, 말 없는 저항일지도 모른다.
이 위기의 중심에는 무너져 가는 연금과 복지, 그리고 현실과 동떨어진 ‘노인’의 정의가 놓여 있다.
우리는 사람을 너무 빨리 노인으로 만든다.
만 65세. 여전히 일할 체력과 수십 년의 경험, 숙련된 판단력이 절정에 이른 나이다. 그러나 국가는 이들을 생산 인구에서 밀어내고, 단순한 복지의 대상으로만 분류한다. 이는 개인에게는 존재의 부정이며, 국가적으로는 거대한 인적 자원의 낭비다.
이제 ‘노인 연령 70세 상향’과 ‘정년 연장’은 선택이 아니라 시대적 과제다.
65세에서 70세 사이의 나와 같은 세대는 보호의 대상이 아니라, 여전히 기여할 수 있는 ‘장년’으로 재정의되어야 한다.
필자는 환갑을 넘기며 프로필에 이렇게 적어두었다.
“환갑이니 청춘이다.”
물론 건강이나 경제 여건이 어려운 이들을 위한 사회적 안전망은 더 촘촘해져야 한다. 하지만 일할 의지와 능력이 있는 이들에게까지 일괄적인 퇴장을 요구하는 사회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 더 오래 사회의 허리를 맡길 때, 연금 고갈의 속도를 늦추고 젊은 세대가 계산기 속에서 느끼는 절망도 함께 덜어낼 수 있다.
다만 이 변화는 기성세대의 결단만으로 완성될 수는 없다.
어려웠던 시대를 직접 겪지 않은 젊은 세대에게 과거의 고통을 감내하라고 요구할 수는 없지만, 부모 세대와 이 나라가 어떻게 버텨왔는지에 대한 이해와 상상은 필요하다.
우리가 지나온 가난과 압축 성장의 시간은 자랑이 아니라, 지금의 사회가 만들어진 배경이다. 힘든 일을 무조건 피하고 거부하는 태도 역시 개인에게는 합리적인 선택일 수 있지만, 공동체는 누군가의 부담 위에서만 유지될 수는 없다.
물론 그 ‘부담’은 다시 청년에게만 돌아가서는 안 된다.
그 부담의 상당 부분은 먼저 제도를 만들고, 혜택을 누려온 세대가 감당해야 한다.
세대 갈등을 풀기 위해 필요한 것은 비난이 아니라 이해다.
기성세대는 기득권을 내려놓고, 젊은 세대는 외면하지 않을 때, 세대 간 협력의 문은 열린다.
윗세대가 자리를 지키는 것이 아랫세대의 기회를 빼앗는 일로 보이지 않으려면, 노인의 역할 역시 바뀌어야 한다. ‘버티는 노인’이 아니라 ‘연결하는 시니어’로, 경험과 판단을 나누고 다음 세대에 길을 넘겨주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시니어는 숙련된 지혜를 나누고, 주니어는 새로운 동력을 만들어내는 상생의 협치 모델이 필요하다.
여기에 우리 사회 상층부의 결단이 더해진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정치적 유불리를 넘어, 진정으로 국가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말이다.
경제적 여유가 있는 자산가나 고소득 연금 수급자들이 자발적으로 연금 수령을 유예하거나, 그 일부를 취약계층 청년을 위해 기부하는 ‘연금 나눔 운동’은 어떨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이런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실천은 세대 간 불신을 허무는 강력한 상징이 될 수 있다.
사람은 수입할 수 있어도, 공동체는 수입할 수 없다.
외국인 노동자가 빈자리를 메울 수는 있어도, 우리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우리가 쌓아온 문화적 유대까지 대신해 줄 수는 없다. 결국 해법은 우리 안에 있다.
아이를 낳으라고 요구하기 전에,
아이를 낳아도 버틸 수 있는 구조를 먼저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어른들이 먼저 기득권을 조금씩 내려놓으며 다음 세대의 짐을 함께 나눠져야 한다.
제도보다 사람이 먼저 버텨온 이 나라의 저력을 믿으며, 이제는 ‘나이의 벽’을 넘어 세대가 함께 생존할 수 있는 길을 열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