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진 선생님이 나오는 방송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젊은 시절 팝을 좋아했었고 즐겨 부르던 노래 중에 "crazy love"라는 '폴 앵카'의 노래가 있었다고 말하면서 그 노래를 흥얼거리신다.
폴 앵카의 'Crazy Love'. 그 소리를 듣는 순간 머릿속을 스치는 얼굴이 있었다. 잠시 잊고 살았던, 하지만 늘 마음 한구석에 걸려 있던 그리운 친구였다.
교복을 입었던 청춘 시절, 우리는 정말 단짝처럼 붙어 다녔다.
그 친구는 늘 입에 달고 살았던 노래. "크~레 에에에 에 에 지 럽".
덕분에 옆에 있던 나도 뜻도 '미친 사랑' 제목 외에는 가사와 내용의 뜻도 모른 채 그 부분만을 반복적으로 따라 부르곤 했다. 그렇게 친하게 지내던 우리는 대학과 직장을 다니며 조금씩 간격이 생겼다.
그러다 내가 직장 때문에 대전으로 내려오면서 사이가 소원해졌다.
내 철없는 행동이 오해를 샀고, 서로 마음이 불편해진 채 시간이 흘렀다는 것을.
그 벽의 두께를 부수지 못했다는 후회가 밀려와 언젠가는 깨 보리라 생각만 하고 있었다.
은행을 다니던 그 친구가 마흔 후반에 그만두고 식당을 차렸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도, 늘 마음뿐이지 한 번을 가보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가 세상을 등졌다는 연락을 받았다. 스스로 떠난 건 아니지만, 하늘의 부름이 너무 일찍이었다. 억장이 무너졌다. 오해를 풀고 예전처럼 마음을 열고 대화하고 싶었는데, 놓쳐버린 시간들이 가슴에 사무쳤다.
월차를 내고 서울 장례식장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내내 그 친구 생각을 했다.
그 친구는 의젓했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도 항상 웃음을 잃지 않았고, 오히려 나를 형처럼 안아주던 친구였다. 그런 친구를 내 못난 행동 때문에 다치게 했다는 생각에 마음이 너무 아팠다.
하지만 나는 항상 믿는 게 있다. 가장 슬픈 순간에도 기쁨은 함께 온다는 것이다. 장례식장에 도착하니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다른 친구들이 나를 맞았다. 친구는 떠나면서도 우리에게 재회의 자리를 마련해 준 것이다. 슬픔의 끝에서 친구가 우리에게 남긴 마지막 인사이자 선물이었다.
서로 슬픈 얼굴로 마주 앉았지만, 그 친구와의 추억을 하나씩 꺼내 들고 즐거웠던 시절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슬픔이 조금은 씻겨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나는 아직도 '크레이지 러브'라는 노래를 끝까지 부를 줄 모른다. 가사 내용도 잘 모른다.
하지만 그 음률 속에서 친구를 떠올리고 그 시절 추억을 다시 만날 수 있으니,
나에겐 이보다 더 큰 선물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