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수산물 시장은 그야말로 도떼기시장 같았다. 주차할 곳이 없을 정도로 차들이 꽉 들어찼다.
제수용품과 음식 장만을 하러 나온 사람들로 통로마다 사람 어깨가 부딪혔다.
집과 사무실만 오가다 보면 명절인지도 모르고 지나가는데 시장에 오니 비로소 설이 온 것 같았다.
명절이면 세뱃돈 받는 재미와 왁자지껄한 분위기의 명절이 떠오른다.
배 터지게 먹던 명절 음식들, 그때 만나던 친척 형 누나들.
모처럼 아내와 함께 장을 보니 괜히 기분이 좋았다.
장바구니 하나 더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되는 것 같았다.
“혼자 장 보러 오면 힘들어 죽겠어. 이제 좀 알겠지?”
“밥 먹을 때라도 고생해서 만든 음식 맛있다고 해주면 어디가 덧나?”
괜히 어깨가 좁아진 느낌이었다.
그 복잡한 시장을 간신히 빠져나온 차는 복합터미널로 향했다.
명절 연휴를 맞이하여 작은딸이 모처럼 집에 오기 때문에 마중을 간다.
"큰 애가 이번에 우리 여행 가서 많이 힘들었을 거야, 걔 성격에 신경도 많이 쓰고 돈도 많이 쓰고..
도움도 못 주고 놀다만 왔으니.."
"쿠알라룸푸르가 그렇게 큰지 몰랐어, 틈 나는 대로 리프레시하러 다녀야겠어"
아내는 여행이야기를 쉬지 않고 이어갔다.
차를 타고 이동하는 순간에 많은 대화가 오고 간다고 항상 느낀다.
같이 앉아 대화할 시간이 별로 없으니..
터미널의 도착하는 곳은 각 지역에서 도착하는 버스들, 내리는 사람들의 손에는
모두가 선물보따리를 하나씩 들고 있다.
연휴에 가족들 만날 생각에 들뜬 표정에 나까지 기분이 좋아진다.
예전 직장에 다닐 때는 나도 저렇게 선물을 양손에 들고 귀가하곤 했지.
전화벨이 울렸다. "아빠, 어디 있어?" "어? 너 어디야 벌써 내렸어?" "아 입구 쪽에.. 거기 있어 그리 갈게"
멀리서 보이는 작은딸에게 손을 흔들었다.
"엄마! 엄마가 웬일로 나왔어?" 둘이 부둥켜안고 재회의 기쁨을 나눈다.
"고속도로에서 사고가 나서 차가 많이 막혔어, 많이 기다렸지?"
"아냐 너 피곤할 텐데 빨리 가서 맛있는 거 먹고 쉬자"
집 가까운 마트에 들렀다.
술도 사고 안주거리도 이것저것 집어 들고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집에 오자마자 닭 간장조림을 만들었다.
술 한잔과 닭조림 안주 앞에 밀린 이야기가 피어난다.
이렇게 모여 웃고 떠드는 날이 앞으로 몇 번이나 더 있을까.
예전에는 늘 있을 줄 알았다.
명절도, 부모도, 아이들도 그 자리에 그대로 있을 줄 알았다.
시간은 생각보다 빨랐고 함께하는 날은 생각보다 짧았다.
머리에 내린 하얀 눈과 얼굴의 깊어지는 골이, 언제 이렇게 자리 잡았는지.
해마다 돌아오는 명절, 그러나 지나간 명절은 다시 올 수 없다.
그때의 우리는 돌아오지 않는다.
그래도 옆에 아내가 있고 돌아오는 딸이 있다는 것.
무심히 흘러간 세월 속에서 건져 올린 작은 기쁨이다.
그것이면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