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눈이 뜨여 뒤척이다
책장이 눈에 들어왔다
읽은 책 보다 읽히지 않은 책들이 많아 한구석에 희미하게 보이는
책표지의 연한 빛이 시선을 당긴다.
제목도 모르지만, 책장 가장 구석에 꽂혀 손길이 끊긴 자리에
한 권의 책이 나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먼지는 시간의 이불이 되어 책 위에 가만히 쌓여있고
그 안에는
글쓴이의 뜨거웠던 밤과 식지 못한 이상
끝내 풀어내지 못했을지 모를 얽히고설킨 매듭이 있겠지만
그 많은 것들이 활자로 찍혀 있다.
책의 운명은 기다림인가
누군가 무심히 먼지를 털어 첫 장을 넘기는 순간
멈춰있던 이야기들이 맥박이 뛰듯이 말을 건넬 것이다.
그러나 모든 것이 읽혀야만 가치가 있는가.
아무도 펼치지 않는 책은 끝내 실패한 것인가.
기다림은 존엄인가, 방치인가.
책은 누군가의 손길을 기다리고
나는 창밖 눈을 기다린다.
눈은 아직 내리지 않았지만 분위기는 막을 올리기 직전이다.
보이지 않는 눈송이들의 사연을 생각한다.
높은 하늘의 구름 속에는 차가운 고독을 깎아
제 몸에 새긴 육각의 문양들이 막이 오르기를 기다리고 있다.
눈은 하늘이 땅에게 보내는 읽히지 못한 편지.
슬프게 내리는 눈은
누구의 기억에도 남지 못한 이야기 같다.
읽히지 않은 책이 실패라면
아직 내리지 않은 눈은 무의미한가.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것들을
아직 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지워버리는가.
어느 새벽
단 한 번이라도 다정한 눈길이 머무는 순간
그들은 가장 눈부신 기록이 된다.
비도 눈도 내리지 않는 건조한 새벽이라도.
어쩌면 우리는
읽히지 않은 책이 아니라 아직 읽히지 않은 우리 자신을
두려워하고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