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원에 대한 묵상 20

by 전영칠


50. 개인의 삶과 조직(단체)의 삶



1.

개인의 삶과 조직(단체)의 삶에 대해 말하기 전에 조직(단체)에 대한 폐해를 통렬하게 고발한 한 작가의 작품을 보기로 한다.

이오네스코(1909~1994)는 루마니아 출신으로 프랑스 국적인 작가이다. 작품 속에 자주 등장하는 '집단 광기에 대한 공포'는 그가 젊은 시절 루마니아에서 목격했던 파시즘의 득세와 깊은 관련이 있다. 그리고 그는 유럽 전체에서 히틀러의 나치즘과 무솔리니의 파시즘, 그리고 공산주의라는 전체주의가 인간을 어떻게 말살하는지 목격했다(제2차세계대전으로 사망한 자는 8000만명, 1917년 볼셰비키혁명 이후 최근까지 공산주의 국가 소련, 중공, 북한에서 전쟁, 숙청, 기근 등으로 사망한자는 약 1억명이다).

이오네스코의 희곡 코뿔소를 보자.


어느 날 마을에 나타난 코뿔소는 처음에는 공포와 경계의 대상이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사람들은 스스로 코뿔소가 되기를 선택한다. 사람들은 코뿔소의 강력한 힘, 야생성, 그리고 무엇보다 '다수'라는 점에 매료된다. "모두가 코뿔소가 되는데 나만 인간으로 남는 것이 오히려 비정상 아닌가?"라는 의문이 공동체를 지배하기 시작한다. 평소 논리적이고 도덕적이었던 인물들(장, 논리학자 등)이 각자의 궤변을 늘어놓으며 코뿔소로 변해가는 과정은, 이데올로기 앞에 무너지는 지성의 비겁함과 취약함으로 폭로된다.

극 중 '논리학자'는 엉터리 삼단논법을 늘어놓으며 본질을 흐린다. 이는 전체주의 체제에서 언어가 선전 도구로 전락하여 진실을 은폐하는 과정을 상징한다.


주인공 베랑제는 특별한 영웅이 아니다. 그는 알코올에 의존하고 무기력한 평범한 직장인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 '평범함'과 '결점'이 그를 집단 광기로부터 보호한다.

코뿔소는 개성이 거세된, 단단한 가죽과 뿔로 무장한 '집단'의 상징이다. 이들은 생각하지 않고 오직 돌진할 뿐이다. 모두가 코뿔소로 변해 괴성을 지르는 세상에서 홀로 인간의 언어를 사용하는 베랑제의 처지는 인간 실존의 근원적 고독을 보여준다.


작품의 결말은 비극적이면서도 숭고하다. 베랑제는 거울 속의 자신(나약한 인간)과 밖의 코뿔소(강력한 집단)를 비교하며 잠시 흔들리지만, 결국 외친다.


"나는 끝까지 인간으로 남을 것이다! 나는 절대로 굴복하지 않는다!"



2.

이오네스코가 코뿔소를 통해 고발한 단체(조직)는 파시즘과 나치즘, 공산주의라는 전체주의이다.

규모를 축소해 어느 사회에도 인간이 사는 사회는 조직과 단체가 있게 마련이다.

조직과 단체는 운영을 위한 규약과 규정이 있다.

파시즘과 공산주의라는 전체주의가 아니라도 우리가 경험하는 사회의 조직과 단체, 개인의 삶에는 엄연한 차이가 있다. 단체에는 엄연한 룰이 있다. 그것을 지켜야 단체가 유지된다. '조직의 쓴맛'이라는 말이 있다. 그 말은 개인이 가지는 편안함과 자유로움과는 다른 것이다.


단체가 강할수록 단체는 별도의 생물이 된다. 그것이 잘못 커지면 괴물이 된다.

한번은 지인이 인연이 되어 개인이 만든 문인들 단체에 가입하여 활동한 적이 있었는데, 회원들의 가입이 증가함에 따라 회장의 '권력화'와 공사구분을 하지 못하는 행동을 보고나서 인연을 끊고 말았다. 단체를 이끄는 대표는 그 단체가 어떻든 이미 그 단체의 공인에 해당한다. 공인은 공평무사해야 한다.

겪어보면 알게 된다. 사적 조직이든 공적조직이든 공평무사한 조직이 얼마나 될까.


신지학 협회에 의해 인류를 구원할 메시아인 '세계의 교사'로 선정된 크리슈나무르티(1895~ 1986)는 영국으로 건너가 서구식 교육을 받았다. 신지학 협회는 이를 지원하기 위해 거대한 국제 조직인 '동방의 별'을 만들었다.

그러나 1929년 8월 3일, 네덜란드 옴멘에서 열린 모임에서 크리슈나무르티는 수천 명의 추종자들 앞에서 조직의 공식적인 해체를 선언했다. 해체 이유로 그는 진리가 어떤 조직이나 종교, 수행법을 통해서도 도달할 수 없는 영역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다음과 같은 유명한 말을 남겼다. "진리는 길 없는 땅이다. 어떤 조직, 어떤 종교, 어떤 종파를 통해서도 진리에 접근할 수 없다."

그는 자신을 따르던 추종자들을 모두 돌려보내고, 어떤 권위나 위계질서도 인간의 내면적 자유를 가져다줄 수 없음을 몸소 실천했다. 이후 그는 독립적인 연설가로 활동하며 "나를 추종하지 말고, 스스로를 관찰하라"고 강조했다.


지금의 나는 어느 친목단체든 조직이든 탈퇴하여 거의 정리한 상태다.

정기모임 참가 등 제대로 단체의 룰을 지키지 못한다면 탈퇴하여 서로를 깨끗한 관계로 유지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만나고 싶을 때는 개인 대 개인의 자격으로 만나면 된다.


조직과 단체에는 완장이 있다. 완장은 인간을 서열 짓게 만든다. 서열과 완장은 개인의 자유를 침범할 수 있어 부자유스럽다. 나는 '채질적으로' 조직과 단체, 완장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것들은 단지 방편에 지나지 않으나 그것들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인간 개인의 자유와 생명을 말살하고 상처 입혀 왔는지 역사는 입증한다. 조직과 단체는 인간들의 집합체이지만, 인간이라기 보다 인간과 유사한 존재가 될 가능성이 더 높다.

회장과 대표는 너무나도 쉽게 조직과 단체, 단체의 회원들을 자신의 권력의 도구로 이용하려 든다. 그것은 조직 전체를 또다른 감옥으로 만드는 행위이다. 인간과 인간들이 만든 조직과 단체는 그처럼 허약하다. 의(義)는 멀고 권(權)과 이(利)는 가깝다.



대통령을 비롯한 의원, 장관, 공무원, 기업의 회장과 임원들도 조직과 단체의 완장에 해당된다. 그 완장 역시 인간 자유에 대한, 자유를 위한 방편일 뿐이다. 대통령은 권력을 부리라고 만든 직책이 아니다. 나라를 책임져 잘되게 가꾸라고 맡겨놓은 자리다. 대통령과 고위 공직자들은 국민의 행복과 자유를 위한 머슴의 자리이다.

마찬가지로 완장은 책임을 진 자리이지, 권력을 부리라고 만든 자리가 아니다. 권력의 완장에 굽실거리는 모습 또한 진정한 인간 삶의 모습이 아니다. 그러나 세상은 자꾸만 거꾸로 간다.



근원의 세계에서 인간들의 명함과 완장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인간은 자유롭고 행복한 존재다. 단체와 조직은 인간의 자유와 행복을 위한 방편일 뿐이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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