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원에 대한 묵상' 시리즈는 묵상하고 살면서 문득 스치는 느낌(생각)들을 쓴 것입니다.
소설을 쓰다 보면 그 어떤 사건의 원인도 이것이면 설명이 된다. 애매한 플로트도 완성에 이르게 할 수 있는 마법 같은 이것 말이다.
이것은 바로 '사랑'이다. 단 이용과 이익, 조건이 전제된 사랑이 아닌 진실한 사랑만이 이 풀로트를 완성하게 할 수 있다.
굳이 소설이 아니라도 진실한 사랑에 의해 운명과 생명을 바친 역사와 역사적 사건의 예는 많다.
몇 가지의 예를 들어보자.
로마의 권력자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와 이집트의 여왕 클레오파트라의 사랑은 단순한 로맨스를 넘어 고대 서구 역사의 판도를 바꾼 사건이다. 안토니우스는 로마의 지배권을 놓고 옥타비아누스와 경쟁하던 중, 클레오파트라와 사랑에 빠지며 자신의 정치적 입지와 로마 시민들의 지지를 모두 저버렸다.
결국 기원전 31년 악티움 해전에서 패배한 후, 안토니우스는 클레오파트라가 죽었다는 오보를 듣고 자결을 선택했다. 뒤이어 클레오파트라 역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들의 죽음은 이집트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종말과 로마 제국의 탄생(제정 시대의 개막)이라는 거대한 역사적 전환점을 가져왔다.
고려의 공민왕과 원나라 출신 노국대장공주의 사랑은 국경과 정치적 이해관계를 초월한 예다. 당시 고려는 원나라의 간섭을 받고 있었으나, 노국공주는 원나라의 공주임에도 불구하고 남편 공민왕의 반원 개혁 정책을 전폭적으로 지지하며 고려의 독립성을 지키는 데 힘을 보탰다.
1365년 노국공주가 난산으로 사망하자, 공민왕은 극심한 슬픔에 빠져 국정을 돌보지 못할 정도로 무너졌다. 그는 공주의 초상화를 보며 식사하고 대화할 만큼 그녀를 그리워했으며, 이는 결국 고려 말기 정치적 혼란과 공민왕 자신의 비극적 최후로 이어졌다. 한 여인을 향한 진실한 사랑이 한 국가의 중흥과 쇠퇴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사례다.
1936년, 영국 국왕 에드워드 8세는 이혼 경력이 있는 미국인 월리스 심슨과의 사랑을 선택하며 왕위 계승 325일 만에 스스로 물러났다. 당시 영국 왕실과 정부, 교회는 이 결합을 강력히 반대했으나, 그는 "사랑하는 여인의 도움 없이는 국왕으로서의 책무를 다할 수 없다"는 연설을 남기고 퇴위했다.
이 사건은 영국 군주제의 성격을 변화시켰으며, 그의 동생 조지 6세가 즉위하고 현재의 엘리자베스 2세로 이어지는 왕실 가계도를 확립하는 계기가 되었다. 권력의 정점인 왕관보다 한 사람과의 진실한 삶을 선택한 이 행보는 현대판 '세기의 사랑'으로 기록되어 있다.
퇴위 후 에드워드 8세는 '윈저 공'이라는 칭호를 받았으나, 영국 왕실은 심슨 부인에게 '전하'라는 호칭을 사용하는 것을 끝내 허락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사실상 영국에서 쫓겨나 프랑스 파리에서 여생의 대부분을 보냈다. 왕의 자리를 버린 대가는 생각보다 혹독했으며, 그는 평생 고국을 그리워하면서도 돌아가지 못하는 망명객의 처지로 살아야 했다.
에드워드 8세 쪽에서의 사랑은 죽는 순간까지도 절대적이고 맹목적이었다. 그는 자신의 선택을 단 한 번도 후회하지 않는다고 공언했으며, 모든 일상의 중심을 심슨 부인에게 맞추었다. 1972년 후두암으로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도 그는 아내의 손을 잡고 그녀의 안위를 걱정할 정도로 지독한 사랑을 보여주었다.
반면 심슨 부인의 감정에 대해서는 역사가들 사이에서 의견이 갈린다. 그녀는 왕이 자신을 위해 왕관을 버린 것에 대해 엄청난 중압감을 느꼈다. 그녀는 훗날 지인들에게 "그가 왕위에 머물렀더라면 내 삶이 더 자유로웠을 것"이라고 토로하기도 했다. 화려한 사교계 생활 이면에는 영국 왕실의 냉대와 대중의 비난으로 인한 우울함이 있었다. 일부 기록은 그녀가 다른 남성에게 관심을 보이며 방황했다는 설을 제기하기도 하지만, 대외적으로 두 사람은 늘 함께하는 다정한 부부의 모습을 유지했다.
에드워드 8세가 사망한 후, 심슨 부인은 급격히 쇠약해졌다. 그녀는 파리의 저택에서 외부와 단절된 채 약 14년을 더 살다가 1986년 89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말년의 그녀는 치매와 병환으로 고통받으며 "나를 윈저 공 곁에 보내달라"는 말을 남겼다고 전해진다.
결국 두 사람은 사후에야 영국 땅으로 돌아와 윈저 성 근처의 프로그모어 왕실 묘지에 나란히 묻혔다.
한국의 설화이자 역사적 사건으로 전해지는 낙랑공주와 고구려 호동왕자의 이야기는 사랑을 위해 조국과 목숨을 희생한 극적인 사례다. 낙랑공주는 적국인 고구려의 왕자 호동을 사랑하게 되자, 조국 낙랑을 지켜주던 신물인 '자명고'를 스스로 찢어버렸다.
북소리가 들리지 않아 방비하지 못한 낙랑은 결국 고구려에 멸망했고, 공주는 아버지 낙랑왕의 손에 죽임을 당했다. 자신의 안위나 국가적 이익이 아닌, 오직 사랑하는 사람과의 약속과 믿음을 위해 목숨을 던진 이 사건은 낙랑국 멸망과 고구려의 영토 확장이라는 역사적 결과를 낳았다.
무굴 제국의 5대 황제 샤 자한은 아내 뭄타즈 마할을 향한 지독한 사랑으로 유명하다. 뭄타즈 마할은 19년 동안 황제의 곁을 지키며 국정의 조언자 역할을 했으나, 14번째 아이를 낳던 중 세상을 떠났다.
그녀의 죽음 앞에 황제는 하룻밤 사이에 머리가 하얗게 셀 정도로 상심했고, 아내를 향한 영원한 사랑을 증명하기 위해 22년에 걸쳐 인류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무덤인 '타지마할'을 건립했다. 무리한 건축 비용 지출은 제국의 재정에 타격을 주었고 결국 그는 아들에게 유폐되는 비극을 맞았지만, 그의 희생으로 탄생한 타지마할은 오늘날까지 조건 없는 사랑의 상징으로 남아 있다.
이 다섯 가지 공통점은 사랑을 위해서라면 나라고, 권력이고, 생명이고 그 모든 것을 바칠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랑이 먼저일까, 생명이 먼저일까?
생명을 만든 것은 사랑이다. 그러므로 이 둘 중에 먼저를 택하라면 사랑이라 할 것이다.
-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
이 말은
- 태초에 사랑이 있었다.
라는 말과 다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내게 몇 분의 멘토가 있다. 수십 년씩 도와 기도생활을 한 분도 있다.
그중 한 분이 이렇게 말했다.
- 이제 물질문명이 끝나고 정신문명이 시작된다. 그러면서 천생연분의 시대가 시작된다. 남녀가 영육 아울러 완성되면 자기의 천생을 만나 완성된 자녀를 낳게 된다. 교육과 제도로 세상이 바뀌는 것이 아니라 완성된 자녀를 낳음으로써 세상이 바뀐다. 2026년부터 한반도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대전환의 시대가 출발되고, 천생의 시대는 이와 맛 물려 준비된 자부터 시작된다. 이 시대가 뿌리내리면 이혼이란 단어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 말에 어지러운 분도 있을 것이다.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하실 분도 있으리라 짐작한다. 참고만 하셔도 좋다. 그러나 기왕에 그런 시대가 오면 좋은 것 아닐까(그런 시대가 왔다고 우리가 별도의 세금을 내는 것 아니다. 손해 볼 것 없다. 현재 대한민국의 이혼율은 45% 정도이다. 이혼으로 인한 남녀의 상실감, 상처, 재산분배의 후유증 등과 부모가 찢어지는 현장을 보는 아이들은 또 어찌할 것인가. 이혼은 스트레스 덩어리다).
이런 말이 하고 싶다.
(2026.0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