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 국립현충원 뒷산 흑석동 거북이바위
과거 엄숙한 추모 공간의 이미지가 강했던 국립서울현충원은 순국선열과 호국영령들의 묘역이기도 하지만, 최근 시민들에게 열린 휴식 및 문화 공간으로도 그 영역이 변화하고 있다.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잘 가꾸어진 산책로 덕분에 많은 시민이 즐겨 찾고 있으며, 특히 벚꽃이 만개하는 봄에는 상춘객들로 붐빈다.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는 성역이자, 국민들에게는 역사 교육의 장이자 평화로운 휴식처의 역할도 하고 있다. 현충원 담장을 따라 조성된 동작충효길 2코스(현충원길)를 가다가 현충원 상도출입문과 사당출입문 사이 갈림길에 약수터도 있다.
국립서울현충원은 어떻게 시작되었나?
국립서울현충원은 6.25 전쟁으로 수많은 장병이 희생되자 이들을 안장할 국립묘지의 필요성이 제기되었고, 1952년 국방부의 국립묘지 설치 결의로 설립이 추진되었다.
현충원의 부지는 10여 곳의 후보지를 대상으로 7차례의 답사를 거친 끝에 최종 결정되었다. 당시 육·해·공군 3군 합동조사단의 조사를 통해 현재의 동작동 위치가 선정되었으며, 1953년 9월 29일 이승만 당시 대통령의 최종 재가로 확정되었다. 당시 이곳은 관악산의 한 줄기로, 지세가 안정되고 경관이 수려하여 국가의 성역으로서 적합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곳은 예로부터 명당으로 알려진 곳이기도 하다.
총면적 약 144만㎡ (약 44만 평)인 국립서울현충원에는 대한민국의 역사를 이끌었던 지도자부터 이름 모를 호국영령까지 수많은 분들이 영면해 있다. 이승만, 박정희,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을 비롯해 6.25 전쟁과 베트남전쟁 등에서 전사한 장병, 경찰관, 독립유공자, 그리고 국가와 사회에 크게 기여한 인사들까지 약 18만여 위에 달하는 호국영령들이 잠들어 있으며, 유해를 찾지 못한 10만 4천여 위의 호국영령들을 위한 위패봉안관도 함께 있다.
대한민국 대통령에 당선되면 제일 먼저 찾아오는 곳이 이곳이다. 국립서울현충원은 그야말로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는 곳이고, 국민들에게는 역사 교육의 장인 대한민국 성역 중의 성역인 곳이다.
나라를 위해 이렇게 많은 이들의 희생과 노고가 있었다. 천천히 국립서울현충원을 걸으며 이들에게 감사한다.
오늘은 오래전 1984년 2월의 청년시절, 처음 명상시간을 가졌던 때의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박정희 대통령 내외분 묘역 뒤 우측으로 가다가 흑석통문을 지나면 거북이바위가 있다.
지금은 거북이바위 주변으로 나무데크로 만들어진 도보길이 있지만 당시는 데크길이 없고 바위만 있었다.
기도터였던 거북이바위 너머에는 국립현충원 담장이 가로로 길게 이어진 곳이었다. 그곳의 현충원 철책담장이 지금은 이중으로 되어 있지만 당시는 한 줄로 된 소박한 블록담장이었다.
대학 졸업 직후 자아계발과 영성계발 분야의 공부를 하고자 마음을 먹었을 때, 이곳 거북이바위에서 선배 한분과 겨울밤 10시에 처음으로 명상을 했었다. 명상 기간을 40일로 잡았다. 한 달 열흘의 시간이 흘렀다.
40일째가 되는 마지막 날 - 명상을 끝내고, 하늘 뜻과 국가, 그리고 현충원 호국영령을 위한 기도제목으로 함께 기도했다.
서서 눈을 감고 각자 소리 내어 기도하는 중에 갑자기 군인들이 국립현충원 담장을 그대로 통과하며 우리를 향해 뛰어 왔다. 수 십 명이 우리를 향해 달려왔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눈을 감고 있어도 그 군인들이 보였다. 어떻게 해야 하나, 눈을 뜨고 기도를 중지해야 하나, 하는데 덜커덕하는 장전을 푸는 소리가 나고 M16을 든 군인 두 명이 현충원 담장을 넘어 우리를 향해 총을 겨누고 있었다. 나는 눈을 떴다. 수십 명이 아니라 실제로 총을 겨눈 군인 두 명이 우리 앞에 서 있었다.
- 손 들어!
우리는 순간 당황했다. 이 무슨 상황이지?
- 무슨 일이시지요?
두 손을 든 채로 선배형이 그들에게 물었다.
- 이 밤에 거기서 뭐 하는 겁니까?
- 기도 중이었습니다.
우리 앞에서 군인 중 한 명이 우리에게 다시 물었다.
-조사할 것이 있으니 우리를 따라 오시오.
그들은 현충원 담을 넘어 들어가며 우리에게 담을 넘어 들어오라고 말했다. 군인 하나가 담 위에서 우리 손을 잡아주었다. 그래서 현충원 담을 처음으로 넘어보는 형국이 벌어졌다. 현충원 담 안쪽 산 아래 좌측 길을 따라 10분 정도를 걸었다. 그들은 우리를 현충원 관리책임자에게 넘겼다. 작업복에 넥타이를 맨 관리책임자는 신분증을 요청하며 여기에 왜 왔는지를 물었다. 우리는 주민등록증과 학생신분증을 보여주고 40일 동안 밤 기도 중이며,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는 설명을 했다. 그는 신분증 확인 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 학생들, 신분은 확인되었습니다. 내일 스페인 후안 카를로스 국왕이 현충원을 방문합니다. 그래서 특별 경계를 하고 있던 중이었지요.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 아, 그렇습니까? 당황스러웠습니다.
- 그러셨습니까? 편안한 마음으로 계셔도 됩니다.
그는 우리를 안심시키고는 일어서서 한가득 들어있는 과일접시와 과자를 내왔다.
- 나라의 안위를 위해 기도하고 있었다니, 여기 호국영령도 감사할 것입니다. 여기서 편안히 쉬시다가 아침에 가시기 바랍니다.
- 감사합니다. 덕분에 현충원 안은 처음 들어와 봅니다.
선배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총을 겨누던 분위기가 180도 달라졌다. 그는 온화한 모습으로 말했다.
- 기왕 여기까지 왔으니 현충원에 대해 궁금한 점이 있으면 물어보세요. 알려드릴 수 있는 한도 내에서는 얼마든지 알려드리겠습니다.
그는 우리가 궁금해하는 내용들을 현충원 현황판을 보여주며 브리핑하듯 자상하게 대답해 주었다.
그렇게 우리는 현충원에서 본의 아니게 하루를 보내게 되었다. 편안한 침대 잠자리도 제공받았다. 현충원 담가에서 기도하지 않았다면 이런 별스런 경험은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다음날 돌아오면서 나는 선배에게 기도 중 담장을 지나 우리에게 뛰어오던 군인들에 대해 물어보았다.
- 기도 중에 선배님도 군인들을 보셨나요?
-나도 호국영령을 봤지요. 수 십 명이 우리를 환영하더군요. 나라와 호국영령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을 40일 동안 듣고 감사하다고 우리를 초청한 것 같습니다. 덕분에 현충원에서도 1박 하는 특이한 경험을 했군요.
- 그랬군요. 덕분에 40일 기도 무사히 마무리한 것 감사드립니다.
우리는 웃으며 헤어졌다.
나는 이 경험을 통해 인간의 영혼은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과, 명상과 기도를 하면 반드시 어디에선가 명상의 울림을 나누는 곳이 있고, 천지신명이 기도를 듣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신하게 되었다.
18만 국립현충원과 10만 대전현충원, 14만 위패를 모신 호국영령들, 2,300여 명의 부산 UN묘지, 군번 없는 학도병 등 유명을 달리하신 호국영령들이 아니었으면 어떻게 이 나라가 유지되었을까. 오늘도 그들에게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