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 왕방산 가을 임도
장림고개는 경기도 포천시와 동두천시의 경계에 위치하며, 왕방산 임도 도보의 주요 출발 지점 중 하나이다. 경기도 포천시와 동두천시에 걸쳐 있는 왕방산과 해룡산은 오지재고개(탑동 왕방마을)를 사이에 두고 이어져 있어 함께 종주 산행을 하는 경우가 많다.
왕방산 (王方山 / 737m )은 신라 헌강왕 3년(872년)에 도선국사가 이 산에서 수도할 때 국왕이 직접 찾아와 격려했다 하여 '왕방산'이라 이름 지어졌다고 한다. 또한 조선 태조 이성계가 왕위에서 물러난 후 한양으로 돌아가던 중 왕자의 난 소식을 듣고 마음을 달래기 위해 왕방산에 있는 왕산사(王山寺)에 머물렀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해룡산 (海龍山 /661m)은 '바다 해(海)'와 '용 룡(龍)' 자를 쓴다. 옛날 큰 홍수가 났을 때 산 위에 살던 이무기가 용이 되어 승천했다는 전설이 전해져 내려온다. 해룡산과 왕방산을 연결하는 오지재고개를 넘는다. 왕방산에는 둘레길 성격의 임도길이 잘 조성되어 있다. 이 임도는 자전거 라이딩(MTB) 코스로도 유명하며, 비교적 완만한 경사를 따라 걷기에도 좋다.
맑은 하늘과 시원한 날씨, 전형적인 가을의 기운이 옴몸에 스며든다.
포천 근처 왕방산 도보여행 22킬로-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곳이다. 지난번 양평 산음 도보와 비슷한 곳이거나, 단순한 임도길인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진입로부터 범상치 않았다. 나는 아마도 오늘 잘못 걸린 듯싶었다.
왕방산 산신은 우리에게 잘 익은 '칠색가을주(酒)'를 충만히도 준비하고 있었다.
산에 들어서자마자 가을의 서정을 주워 담기 바쁘다. 진입기부터 산의 색기에 빠져버린 것이다.
가을주라는 술에 약한 자는 처음에 되돌아가는 것이 나았다. 그만큼 단풍 든 왕방산은 나를 취하게 했다.
신은 화가고 자연은 화폭이다. 우리는 숨겨진 길을 열어 그 작품을 감상한다.
가을이라는 작품소재에는 물감비용이 많이 들어간다. 다양한 색깔들이 총동원된다.
우리는 비싼 비용들인 신의 작품을 거저 감상한다. 그것은 순수 그 자체다. 순수한 것에는 상업성과 영업성이 없다. 마음만 오고 갈 뿐이다.
붉음을 마실까요
당신을 마실까요 나를
드릴까요
아니 산다는 것 그저 붉음에게 맡기는 게
낫겠는데요
지난 시절 분홍 파랑 하양 따위 기억일랑 죄다 버리고
그저 붉음으로 말이에요
- 가을 붉은 주스 한잔으로
시를 써본다. 부족하다.
다시 가을이 왔다
천하가 또다시 피의 전쟁을 시작한다
산은 왜
그 흔한 그리움, 사랑 따위로 칼을 갈고 말을 먹이고 또
다시금 서로의 상처를 찌르고 기억을 찢고
아픈 임종의 숨결을 나누어야 하는지
산은 피를 부르고
또다시 피는 사랑을 나누고
- 가을은 피인가
그러나 시보다 자연의 보여줌이 백배 천배 낫다. 나는 붓을 내려놓는다.
지난번 그 뜨거웠던 여름의 열기는 다 어디로 갔을까. 갈대는 무상한 시간의 섭리를 백은색(白銀色)으로 대신하고 있다. 가을은 내게 '몸뚱이는 죄 빼고 네 마음을 내놓아라'라고 말한다.
가을이란 참 이상하고도 수상한 계절이다.
사명을 다하면 스스로 스러질 줄 아는 낙엽은 스승 같은 존재다. '나를 내려놓았으니, 깊숙이 더 깊숙이, 갈 때까지 갈 때까지 즐거워하라' 그렇게 중얼거리는 것 같다.
도중하차 하여 되찾은 안정된 구속됨보다는, 치명적인 유혹에 함몰당하는 인생의 맛을 한두 번쯤 겪어보는 것 또한 괜찮지 않을까. 나는 이 산 가을 맛을 우리들 인생에 대조해 보기도 한다.
그러다가 가을 길가에 털썩 앉는다.
산들이 오색물결로 파도타기를 하고 있지 않는가! 그들을 찬찬히 보다가 나 역시 서핑보드로 파도를 타고 그 물결 위를 미끄러지듯 걷는다.
나도 가을꽃 하나로 슬쩍 끼어든다. 이건 뭐람, 가만히 있어도 트랜스 상태쟌아.
나는 형형의 색깔들 중 하나를 베어 물었다.
너무 아름다우니 이만 나도 낙엽처럼 나를 포기하기로 한다. 나를 내려놓고 너와 하나 되는 것이다.
나를 내려놓으니 네가 나로구나.
이대로 이들과 하나 된다. 왕방산의 가을산은 무아(無我)다. 무아 되면 하나 되는 것이다.
동점(銅店) 마을은 경기도 동두천시 동쪽 산골에 위치해 있고 왕방산에서 발원한 조그만 계곡이 흐르는 조용한 산골 마을이다. 마을 입구 계곡가 바위에 '一二三四', '六七八九', '黃中元吉' 등 12자가 새겨져 있는데, 이 글은 토정 이지함(李之函, 1517~1578) 선생이 포천 현감(동두천과 인접한 지역) 재직 시에 새긴 것으로 전해진다.
'一二三四', '六七八九'는 사방팔방의 기운과 조화를, '黃 中 元 吉' 중에서 황은 오행의 흙(土), 중(中)은 중심을 의미하며, 원(元)은 으뜸, 길(吉)은 길함을 뜻한다.
토정 이지함 선생은 이 암각문을 통해 '동점마을이 사방팔방의 기운이 모이는 중앙이며, 따라서 으뜸으로 길한 땅'이라는 선언을 한 것이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이 이 이 마을을 방문하면, 동점 마을의 좋은 기운을 많이 받아가시기 바란다. 이 암각문은 동두천시 향토유적 제11호로 지정되어 보존되고 있다.
쇠목마을은 마을 근처 쇠목계곡 입구 폭포 아래의 깊은 연못과 관련된 전설에서 이름이 시작되었다.
옛날 쇠목마을 입구 폭포 아래의 깊은 연못(沼)에는 큰 이무기가 살고 있었다.
이 이무기는 마을 사람들이 매어 놓은 소를 끌고 연못으로 들어가곤 했다.
마을 사람들은 회의를 열어 지혜로운 결정을 내렸다. 이무기를 없애는 대신 농사에 이용하기로 했던 것이다. 가뭄이 들면 주민들은 연못물을 퍼내고 징을 쳐서 시끄럽게 했다. 이에 화가 난 이무기가 비를 내렸고, 주민들은 가뭄 걱정 없이 농사를 지을 수 있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소(牛)를 끌고 간 이무기가 살던 곳'이라는 전설이 지명에 남아 현재의 쇠목마을이라 불리게 되었다.
2025년 10월이다.
어느 해보다 무더웠던 여름이었다. 왕방신 임도는 넓고 완만한 굴곡이어서 가족이나 연인들이 어렵지 않게 갈 수 있는 곳이다. 가을의 아름다운 풍경에 취해 보려거든 왕방산 임도를 걸어 보기를 권한다. 피크는 10월 말에서 11월 초까지이다. 수도권과 경기도에서 이만큼 절창(絶唱)의 가을 모습을 보이는 곳은 거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