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년 나의 좌우명
2026년이 불과 21일 남았다.
20대는 하늘의 뭇별들이나 많은 남은 날 탓인지 더디 간다. 세월을 걱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순식간에 40, 50대를 보내니 세월이 화살처럼 간다는 말이 실감 난다.
2025년 4월에 있었던 일이다.
퇴근 후 내가 사는 아파트 입구에 도착했을 때 나와 친하게 지내는 아파트 시설관리 팀장이 급하게 출입구를 돌아 반대편 출입구로 돌아가라고 팔을 들어 신호를 했다.
- 무슨 일인가요?
그는 손으로 입을 가리며 조그마한 소리로 말했다.
- 사람이 옥상에서 추락해 죽었어요.
그 말에 자세히 보니 한 사람이 천에 덮혀진 채 인도와 차도 사이에 누워 있었고 머리와 허리 사이로 검붉은 피가 보였다. 경찰 3명 중 한 명이 그의 팔뚝 맥을 짚었다. 옆의 경찰은 무엇인가를 기록하고 있었고 잠시 후 119차가 도착해 죽은 사람을 차에 태웠다. 2동 8층 살았던 40대 남자였다. 나는 2동 4층에 산다. 내가 현재 살고 있는 아파트에서 20년을 살았으니 서로 말은 섞지 않았지만 엘리베이터 등에서 수도 없이 마주쳤을 것이다. 젊은 중년의 나이에 목숨을 던질만한 사연이 있었을 것이다. 그 자세한 내막은 모른다
출입구를 돌아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기다릴 때 80세 정도 되어 보이는 할머니 한분이 지팡이를 짚으며 아주 천천히, 천천히 한 걸음씩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그 할머니 역시 출입구 가까이에 하얀 천으로 덮여있는 같은 아파트 사는 이의 사고를 보았다. 그러나 30분 전의 추락사고도 그 노인의 속도를 빠르게 할 수는 없었다. 생로병사(生老病死)는 '인간이라는 모든 종족'에게 공평하게 주어진 것이다. 나는 그 노인이 탈 수 있도록 엘리베이터를 멈추고 기다렸다.
격렬한 생사의 현장은 한 시간이 채 되지 않아 흔적도 없이 말끔히 정리되었다. 언제 그랬냐는 듯 아파트 입구는 오가는 주민들로 평온을 되찾았다.
다음 날 나는 그곳을 지나치며 그분이 떨어진 자리에 철쭉꽃 한 송이를 놓고 명복을 빌었다.
살고 죽는 것은 종이 한 장 차이다. 사람은 내일을 모른다.
나는 1997년 시로 등단했다. 그동안 개인시집 2권, 동인지 21권 그리고 두권 분량의 수필원고가 내 문학적 생산량이었다. 많지 않은 활동량이어서 이것 가지고 작가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할 정도였다. 그러나 최근에는 그나마 더 창작활동이 줄었다. 먹고사는 게 바빠서 - 나는 그렇게 과작핑계를 둘러대었다. '시는 돈이 안 돼서'라는 이유도 분명히 있었다.
내가 내일은 어떻게 될까? 정말 사람은 내일을 모른다.
건물관리소장은 타 직장에 비해 이직률이 높은 편이다. 계약기간 만료, 입대의 와의 원만한 관계가 지속되어도 자못 삐끗하면 이직할 가능성이 나타난다. 그런 저런 일이 쌓여 8년간 다닌 직장을 떠나게 되었다. 떠나면서 생각해 보았다.
굼벵이도 기는 재주가 있듯, 하늘은 인간 모두에게 한 가지 정도의 재주는 주었다는 데,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뭐지? 엔지니어? 아니다. 소프트웨어전문가? 아니다···
분명한 한 가지는 글쓰기였다. 아주 작은 재주. 그러나 그것은 분명했다. 그다음 생각해 보았다. 내가 또 좋아하는 일은 무엇인가? 정신세계, 자기 계발 그리고 음악과 여행 정도.
그것은 내 가슴을 뛰게 하는 거였다.
다른 것은 없었다. 그래, 하늘이 주신 재주가 이것이라면 글을 쓰자. 언제 죽어도 후회 없을 글을 쓰자. 날마다 깊은 속을 토해내듯 유서처럼 내 모든 것을 다시 한번 쏟아보자.
쓰다가 죽자. 가수가 무대에서 노래하다가 죽으면 무슨 여한이 있을까.
직장을 그만둔 직후, 나만의 집필실용 작은 사무실을 얻기 위해 집에서 가까운 오피스텔 등을 돌아보았다. 아무리 작은 곳이라도 월세, 보증금, 관리비 등이 지출되어 부담스러웠다. 글을 쓴다고 당장 돈이 되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절충해 보자. 8시간짜리 노동을 줄여 4시간짜리 직장을 선택해 보면 어떨까. 그런 직장이 내게 연결이 될 수 있을까?
나는 24년 동안 건물 관리소장일을 해왔다. 이제는 하루의 1/2이라도 전업작가의 이름을 걸고 싶었다.
그런 직장을 찾아보다가 마침 오후 1시부터 오후 5시까지 4시간 근무를 하는 건물관리소장 자리가 처음으로 연결되었다. 면접을 보니 나 혼자 사용할 수 있는 사무실이 있는 5층짜리 26개 학원 전문 건물이었다.
일이 많지 않아 개인 사무실로도 활용할 수 있는 그런 직장이 내게 연결된 것이다.
게으른 자에게 독자와의 연재 약속은 채찍이 된다. 그래서 2025년 7월 브런치를 두드리고 연재를 시작했다.
나는 원래 소설을 썼었다. 시로 등단했다. 시로는 만족을 못한다. 양이 안 찬다. 쓰고 싶은 것 마음껏 써보자......
문학의 열정이 뜨겁던 시절이 있었다. 재수생 때부터였다. 그 불이 다시 붙기를 소망한다.
나는 책상 위에 2026년 나의 좌우명을 써 붙였다.
그러나 왕성한 모닥불처럼 뜨겁게 불타오르던 20대의 그런 열정이 아니고 마지막까지도 꺼지지 않는 따듯하고 은은한 숯불이기를 소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