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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순수한 사이가 있을까?

by 전영칠

세상에서 제일 순수한 사이는 어느 것일까.


1. 부모자식지간

2. 남녀 간의 사랑

3. 스승과 제자


자못 순수한 관계는 이 세 가지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부모자식지간은 세상에서 가장 질긴 줄인 탯줄이라는 천륜으로 엮여졌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부모가 자식을 위해 희생하는 사례는 많다. 지구와 우리들 사는 세상이 이 정도라도 유지되는 것은 부모의 순수한 내리사랑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상대를 위해 고귀한 생명까지도 희생하는 것은 드라마로서만 가능한 것은 아니다. 진실로 사랑하는 남녀의 관계에서 가능할 수 있다. 그런 스토리는 우리들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전통적인 스승과 제자의 예에는 돈이 끼어들지 않았다. 달마와 혜능, 도제, 무예나 판소리의 전수 등에는 스승과 제자의 교육적 가치, 모든 것을 제자에게 쏟아붓는 관계였지 서로 이익을 나누는 관계가 아니었다. 그야말로 '제자는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았다'.


그러나 이 세 가지 사항은 자식을 버리는 부모, 재산 우선인 사랑, 스승은 스스로 노동자로 자처하고, 또 학교에서 폭력 쓴다고 핸드폰으로 스승을 고소하는 제자들 사례 등 등으로 이 또한 순수한 관계의 영역이 사라져 간다.

다만 이 척박한 세상에서 다른 분야에 비교해 아직도 이 3가지는 태생적으로 순수한 정도는 지니며 가고 있다고 보인다.


인간은 환경의 영향과 지배를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런 환경은 자연의 환경 등도 있지만 인간사회와 국가의 체제와 이념에 대한 환경도 있다. 그 영향력은 막대하다.

자본주의 세상에서 살아남으려면 오늘도 기업과 개인들은 '이익'과 '이익을 위한 영업'을 해야 한다. 자본주의 세상은 '이익'을 나누어 살아가는 세상이다. 상대를 이익의 대상으로 보는 관계는 이익이 끊어지면 관계도 사라진다.


또한 '계급 없고 평등한 세상'을 만들기 위한 공산주의는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일으켰지만, 그 세계는 세상에 다시없는 철저한 계급과 불평등의 사회가 되었다. 사랑의 신(神)은 없는 세계이고, 정반합의 '뒤엎을' 반(反)으로 필요하면 언제든 상대를 쳐내야 하는 세상이니, 인간들끼리의 보이지 않는 스트레스는 또 어쩔 것인가. 자본주의 국가나 공산주의 국가의 이념은 어느 쪽도 순수한 사랑과 순수한 가치로서의 세상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그런 거창한 내용 이전에 오늘은 스승과 제자 간의 조그맣지만 예쁜, 순수한 사례 하나를 소개하고자 한다. 내가 속한 고등학교 동창들의 예이니 꾸밀 것도 없는, 있는 그대로의 사항이다.

우리 동창 제자들은 매년 스승의 날 스승님들을 모시고 그 앞에서 큰 절을 한다. 스승들은 찾아준 제자들을 보는 기쁨을, 제자인 우리들은 지식과 가치를 가르쳐준 스승들을 보는 기쁨을 나눈다. 우리는 매년 돈 주고도 얻지 못할 순수의 가치를 맛본다. 이런 예는 당연히 이념과 체제 이전의 순수한 인간관계에서 나오는 것들이다.

이 당연한 스승과 제자의 관계를 '특별하다'라고 스승의 날 사은회를 매일경제 기자가 취재를 해갔다.




영등포고 師弟 31년째 `특별한 만남`

<매일경제 이승환/ 박소운 기자>


11회 졸업생들 "한분만 남아도 사은회"
백발의 은사들 "그저 반갑고 대견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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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영등포고 11회 졸업생들이 지난 13일 교정에서 백발이 된 은사들을 만났다.

이미 50대를 넘어선 제자들이지만 선생님 앞에서는 10대 까까머리 학생으로 돌아간 듯했다.

영등포고 11회 졸업생들은 1978년부터 시작해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스승의 날 사은회를 열어 왔다. 올해 15일이면 31년째 사은회를 하는 셈이다. 이들에겐 '스승의 날=동문회 날'인 것이다.

(중략)


11기 동문회장을 맡고 있는 오규남 두산인쇄 부사장은 "1978년 당시 은사님 마흔두 분을 모시고 시작했는데 지금은 스물한 분만 살아계시다"며 "마지막 단 한 분의 스승이 계실 때까지 사은회 모임을 계속하겠다"라고 말했다.

박동춘 씨(83ㆍ영어)는 제자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던 시절 입던 양복을 매년 사은회에 입고 나온다.

"낡은 옷이지만 추억이 고스란히 담긴 옷이니 자식들에게 가보로 물려줄 거예요."

물리를 가르쳤던 박봉상 (67)씨는 "우리 같이 부족한 스승을 스승으로 대해 주는 제자들이 있어 복 받은 거"라며 "이제는 인생의 친구가 되어 인연을 계속할 수 있으니 너무 행복하다"라고 소감을 전했다.

제자 전영칠 씨는 "촌지 문제로 아예 스승의 날엔 학교를 쉬자는 얘기가 나오고, 언론을 통해 학부모가 교사를 폭행한 사건이 보도되는 등 학교 환경이 점점 삭막해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며 "사은회 모임과 함께 스승과 제자가 모두 나이 들어가는 아름다운 자리를 다른 학교에서도 많이 만들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나는 오늘도 이런 '스승과 제자의 관계가 특별하다'라고 생각되지 않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 왜?

그래도 순수한 것에 마음이 끌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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