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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스콘 Nov 05. 2021

핏빛 폭죽이 우정의 비로 변할 때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

*스포일러를 포함합니다*


제임스 건이었기에 열광했고, 제임스 건이었기에 실망했다.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는 분명 제임스 건이 적임자였을 것이다. 이미 마블의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로 유쾌하고 경쾌한 우주 활극을 성공적으로 선보인 바 있으니, 수어사이드 스쿼드도 어울릴 거라 기대했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난 후, 나는 깨달았다. 조금만 다르게 생각하면, 이 영화는 제임스 건이 절대로 맡아선 안 됐다고.


두려울 게 없는 제임스 건

오프닝은 환상적이다. 서번트(마이클 루커)의 등장, 아만다 월러의 아주 짧은 브리핑, 수어사이드 스쿼드 멤버 집결, 그리고 작전 투입까지 10분도 채 되지 않는다. 심지어 이후에 펼쳐지는 건 지상 최악의 범죄자들이 작전을 성공시키는 장면이 아니다. 처절하고 끔찍하게 죽임을 당하는 장면이다. 슈퍼히어로 영화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잔인함이다. 이런 예측불허의 장면 뒤로 두 번째 수어사이드 스쿼드가 출연한다. 이러한 전개는 크레이그 조벨의 <헌트>를 연상케 한다. B 영화가 즐겨하는 전개인데, 초반부터 중요한 인물인 것처럼 보이게 만든 후 가차 없이 죽여버리는 것이다. 이러한 비틀린 플롯은 의외의 충격과 재미를 선사한다.


제임스 건 특유의 뻔뻔함도 인상적이다. 그는 두려울 게 없다. 그저 자신의 취향을 적극적으로 표현할 뿐이다. 이를테면, 할리 퀸(마고 로비)의 여러 신들이 그렇다. 할리 퀸이 쿠데타를 일으킨 루나(후안 디에고 보토)와 사랑을 나누며 환상에 젖는 장면은 정말 뻔뻔스럽게 다가온다. 이후 반군들에게 포박당한 할리 퀸이 기지를 발휘해 탈출하는 신도 마찬가지다. 반군들을 제압할 때마다 피가 꽃으로 시각화되어 흩뿌려지는데, 이는 할리 퀸의 정신 상태를 표현한 것이다. 정신이 나간 캐릭터가 나오는 정신이 나간 영화를 정신이 나간 감독이 연출하면 이렇게 된다는 걸 여실히 보여준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내가 가장 놀란 건 미국의 패권주의를 풍자하는 신이다. 수어사이드 스쿼드는 거대한 미국 국기를 배경으로 등장한다. 이들을 지휘하는 건 아만다 월러(비올라 데이비스)다. 그녀는 세계의 평화를 운운하지만, 사실은 그 누구보다도 냉혈하고 자국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인물이다. 즉, 그녀는 미국 패권주의의 상징이다. 미국의 지휘를 받으며 움직이는 수어사이드 스쿼드는 실수로 릭 플래그(조엘 킨나만)를 구해준 저항군을 학살하기에 이르는데, 이 역시 미국의 무분별한 행동을 풍자한다. 후반부에 펼쳐지는 피스메이커(존 시나)와 릭 플래그 간 대결은 미국 패권주의와 미국의 현실을 깨달은 자의 구도이기에 흥미롭다. 이렇듯 유쾌하고 황당한 장면들만 나올 줄 알았지만, 현실을 진지하게 살피고 풍자하는 장면이 뻔뻔하게 연출되어 나오기도 한다. 이런 뻔뻔함은 미친 캐릭터를 연출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요소다.


그럼에도 편히 웃을 수 없는 이유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는 분명 2016년에 개봉한 데이빗 에이어의 <수어사이드 스쿼드>보다 낫다. 2016년작은 수어사이드 스쿼드라는 팀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확신이 없어 보였다. 그저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를 따라 하기에 급급했고, 캐릭터들의 매력을 그대로 살리지도 못했다. 그런 의미에서 다양한 캐릭터들의 매력을 살리려 노력했고, 수어사이드 스쿼드라는 팀을 어떤 방향으로 이끌어야 할지 고민했다는 점에서 제임스 건에게 박수를 쳐주고 싶다.


하지만 영화를 볼수록 나는 웃기는커녕 정색을 하며 봐야 했고, 영화가 끝난 후에는 씁쓸함을 감추지 못했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첫 번째는 제임스 건의 취향 과다 복용이다. 앞서 말했듯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는 제임스 건이 하고 싶은 걸 다 해버린 결과다. 병맛 개그, 본인의 최애 플레이리스트, B 정서의 이미지들이 계속해서 나열된다. 이런 연출이 늘 효과적이지 않았다. 하나씩 떼서 보면 분명 눈과 귀가 즐겁지만, 이어 붙이면 산만해지고 과하게 다가와 거부감이 든다. B 영화를 향한 찬사를 보내려 한 건 이해된다. 하지만 B 정서의 가장 큰 매력은 예측불허의 상황이 주는 쾌감이다. 이 영화에서 예측불허의 상황은 계속 찾아오긴 하지만, 항상 재미나 쾌감과 병행하진 않는다.


두 번째 문제점은 빌런이 빌런 같지 않다는 점이다. 이는 가장 큰 문제점이며 내가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문제다. 수어사이드 스쿼드는 빌런들의 집단이다. 악랄한 범죄를 저질렀기에 지상 최악의 감옥에서 수십 년간 복역 중이었고, 감형받기 위해 목숨을 걸고 임무를 수행한다. 안타깝게도 시간이 지날수록 이들은 빌런이 아닌 마음 여린 인물 같아 보인다. 자신의 사연을 구구절절 늘여놓고, 잠깐 만났던 인물이 죽자 눈물을 흘리며 슬퍼하고, 시키지도 않았지만 세상을 구하기 위해 발 벗고 나선다. 수어사이드 스쿼드는 통제가 거의 불가능한 악랄하고 교활하고 위험한 빌런들의 집단이다. 정의와 도덕성은 찾아볼 수 없고 빌런들이 주는 광기와 공포와 혼란이 주는 쾌감이 핵심이다.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는 이러한 요소가 부족하다. 오히려 에이어의 <수어사이드 스쿼드>가 선명하게 떠올랐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이들은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지만 서로 사연을 주고받고, 친구가 되고, 서로를 위해 눈물을 흘린다. 초반의 경쾌함과 뻔뻔함은 그렇게 의외의 뭉클함으로 휘발되어버렸다.


어째서 이런 일이 발생했을까. 다시 이전으로 되돌아가 보자. 우리는 왜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를 기대했을까? 제임스 건이 연출을 맡았기 때문이었다. 왜 제임스 건이었기에 기대했을까? 그가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로 경쾌하고 유쾌한 히어로 영화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코믹스의 매력을 잘 이해한 인물이다. 또한 <슈퍼>로 유혈 낭자 코미디 액션 영화를 연출한 이력도 있다. 누가 보더라도 수어사이드 스쿼드라는 팀을 연출하는데 적격이었을 것이다.


이 점이 패착이었다. 그의 대표작이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였기에 기대했지만, 오히려 실망하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이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인가? '각자 결여를 가진 루저들의 좌충우돌 연대기'다. 이들은 우주의 범죄자들이지만 일련의 사건들을 겪으면서 서로를 채워주게 된다. 결국 친구, 가족이 된다. 병맛 정서가 가득하지만 애틋한 우정과 가족애를 내포한다. 이는 수어사이드 스쿼드에게 있어선 안 될 요소다. 나의 경우, 악질적인 범죄자들이 서로를 의심하고, 죽이려 하고, 배신과 연합을 반복하는 무질서를 기대했다. 마치 쿠엔틴 타란티노의 <저수지의 개들>처럼 말이다.


제임스 건은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처럼 수어사이드 스쿼드 멤버를 위험한 범죄자가 아닌 애틋한 루저로 바라보았다. 마지막에 랫 캐쳐 2(다니엘라 멜키오르)가 쥐들을 불러 스타로를 물리치는 것에서 확실해진다. 쥐는 사람들에게 가장 멸시받는 존재다. 즉, 아만다 월러의 말처럼 '잡것'들인 수어사이드 스쿼드 멤버들을 은유한다. 따라서 가장 멸시받는 존재가 세상을 구하는 장면은 루저들을 향한 제임스 건의 찬가다. 혹자는 이러한 방식이 빌런에게 매력을 부여하고, 사람들이 해당 캐릭터들을 좋아하도록 만든다며 원작처럼 인간쓰레기 집단으로 표현해선 안 됐다고 반론한다. 나는 이 반론에 동의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쿠엔틴 타란티노의 영화들이 그 반례이기 때문이다. 그의 영화에는 구구절절한 사연이 없다. 그럼에도 그의 영화 속 빌런들은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는다. 설령 잔인하고 악랄하더라도 말이다.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는 분명 전작보다 낫고 유쾌하게 터지는 영화다. 하지만 피도 눈물도 없는 범죄자들의 광기와 대혼란을 기대한 나는 여러 면에서 실망했다. 유머와 배경음악은 과하게 다가올 때가 있었고 전개를 거듭할수록 빌런은 빌런 같지 않았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뭉클한 드라마는 오히려 영화의 재미를 깎았고 일부 캐릭터는 안타깝게 낭비됐다. 가장 기대한 부분이 가장 실망스럽게 다가올 수 있음을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는 명확한 예시로 알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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