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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스콘 Nov 29. 2021

되돌아보는 여정

<그린 나이트>

*스포일러를 포함합니다*


황홀하다. <그린 나이트>는 황홀한 영화다. 소련의 영화감독 세르게이 에이젠슈타인은 '황홀'을 영화와 관객 간의 감정적이고 정서적인 관계 중 최고 단계로 정의 내렸다. 관객이 영화에 완전히 몰입할 때, 지적이고 감정적인 활동을 일깨울 때 황홀함을 느낀다. <그린 나이트>의 경탄스러운 비주얼과 탁월한 촬영 덕분이다. 가히 영화만 해낼 수 있는, 시네마가 해낼 수 있는 이 아름답고 몽환적인 장면들은 탄복을 부른다. 하지만 겨우 이런 시청각적인 충격만으로 이 영화가 걸작의 반열에 올랐다는 의미는 아니다. 보다 근본적인 무언가가 더 있다. 중세 서사 《가웨인 경과 녹색 기사》를 원작으로 하는 이 영화는 무엇이 특별해 황홀한 걸작이 되었을까.


<그린 나이트>는 기사도를 해체하고 욕망에 빠진 인물을 들여다본다. 이를 위해 가웨인(데브 파텔)을 원작과 다른 성격의 인물로 각색했다. 원작의 가웨인은 정직하고 강인한 기사다. 영화 속에서는 어떨까. 눈이 내리는 크리스마스. 가웨인이 잠에서 깨어난다. 아기 예수가 태어난 날에 가웨인이 깨어난 곳은 집창촌으로 보인다. 가장 신성한 날에 그는 욕망이 극에 달한 공간에서 처음으로 등장한다. 가웨인은 위대한 아서왕(숀 해리스)의 조카로 기사가 될 날을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어머니(사리타 초우드리)의 보살핌을 받으며 연인 에셀(알리시아 비칸데르)과 방탕한 나날을 보낸다. 즉, 그는 욕망에 몸을 맡긴 인물이다. 시간이 흘러 카멜롯 성에 찾아온 녹색 기사(랄프 이네슨)의 게임 제안에 가웨인이 나선 이유도 용감한 기사가 되어 무용담을 전해주고 싶은 '욕망' 때문이다. 사사로운 감정, 사사로운 욕망에 휘둘리지 않고 언제나 고결함을 잃지 않는 기사의 모습과 반대된다.


그리고 1년 뒤 녹색 기사를 찾아가는 여정 역시 일반적인 기사 문학과 다르다. 녹색 기사의 목을 쳐 모두의 박수를 받은 가웨인이지만, 그는 여전히 방탕한 생활을 하며 시간을 헛되이 보낸다. 왕이 그를 찾아와 녹색 기사를 찾아 목을 내어주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묻자 가웨인은 "그저 게임 아니었습니까. 어찌 저를 위험에 빠뜨리려 하십니까."라며 원망한다. 그럼에도 가웨인은 게임의 끝을 내기 위해 녹색 예배당으로 향한다. 이는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한 여정이다. 가웨인은 단지 게임으로 받아들였고 목숨을 잃고 싶지 않았기에 가길 원치 않았다. 하지만 왕은 그가 게임을 완수함으로써 진정한 기사로 거듭나 명예를 드높이길 바랐기에 어쩔 수 없이 여정을 떠나게 된다. 여정의 시작은 고귀함과 거리가 멀다.


타의에 의한 여정을 떠난 가웨인은 이후에도 기사로서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다. 좀도둑들에게 물건을 빼앗기거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여인에게 무언가를 바라는 등 기사 문학의 낭만과 거리가 멀다. 가장 두드러지는 건 성주의 아내(알리시아 비칸데르)와의 에피소드다. 먼저, 성주의 아내는 가웨인의 연인 에셀과 똑같이 생겼다. 알리시아 비칸데르가 1인 2역을 연기했기 때문인데, 이는 가웨인의 욕망을 여실히 보여준다. 앞서 언급했듯 가웨인은 욕망에 빠진 자다. 그의 욕망을 형상화하기 위해서는 성주의 아내와 에셀을 동일한 배우가 연기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었을 것이다. 성주의 아내가 가웨인에게 녹색의 허리띠를 건네는 장면을 보자. 이 허리띠는 여정의 시작에서 가웨인의 어머니가 선물한 것으로 보호의 용도이다. 도둑에게 빼앗긴 이 허리띠를 어떻게 성주의 아내가 갖고 있는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가웨인이 이 허리띠를 탐한다는 것이다. 정말로 그 허리띠가 마법을 지니고 있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가웨인은 굳게 믿고 있다. 녹색 예배당에 있는 녹색 기사가 도끼로 자신의 머리를 내리쳐도 가웨인은 허리띠 덕분에 살 수도 있다. 허리띠를 얻기 위해 가웨인은 성주의 아내와 성적인 관계를 맺는다. 기사로서의 자질을 확인하는 여정, 여러 고난의 연속에서 가웨인은 변한 게 없다. 여전히 그릇된 욕망에 빠져 허우적대는 인물이다. 허리띠에 묻은 가웨인의 정액은 이를 가장 잘 표현한다. 이 욕망의 절정과도 같은 이미지는 가웨인이 진정 기사가 되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동시에 불멸을 욕망하는 유한한 인간을 은유하기도 한다. 녹색은 생명, 죽음, 그리고 불멸을 의미한다. 녹색 기사는 원작과 달리 인간보다 나무에 가까운 형상이다. 그는 자연 그 자체처럼 보인다. 자연의 색, 생명의 색이다. 반대로 죽음의 색이기도 하다. 고대 이집트는 삶과 죽음의 신인 오시리스의 안색을 위해 녹색을 보존한 바 있다. 흥미롭게도 녹색은 불멸의 상징이기도 하다. 녹색 기사는 목이 베어도 다시 일어난다. 즉, 그는 불멸의 존재다. 반대로 빨간색은 욕망의 상징이다. 이는 가웨인의 색이다. <그린 나이트> 포스터에는 빨간색이 가웨인을 감싸고 있다. 이 영화는 욕망하는 인간에 대한 이야기다. 또한 붉은여우가 가웨인에게 녹색 예배당으로 향하지 말라고 하는 것 역시 비슷한 맥락에서 바라볼 수 있다. 정리하자면, 가웨인의 여정은 욕망하는 이(빨간색)가 불멸(녹색 허리띠)을 원하지만 결국 죽음(녹색 기사)으로 향하는 것을 의미한다.


앞서 언급했듯, <그린 나이트>는 중세 기사 문학과 기사도, 명예를 해체하는 시도를 한다. 기사와 거리가 먼 가웨인이 여정을 떠나면서도 기사로서의 덕목을 보이지 않는다는 점, 결국 죽음 대신 삶을 택해 무의미한 명예를 쟁취한 가웨인의 기구한 운명이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이 여정은 한 인물이 자신을 되돌아보는 것이다. 다시 말해, <그린 나이트>는 중세 기사 문학을 다시 되돌아보는 연출을 취한다. 이를 가장 잘 나타내는 건 캐릭터 포스터다. 캐릭터 포스터 속 인물은 시선을 앞에서 점점 뒤로 향한다. 특히 처음과 끝, 앞모습과 뒷모습을 가웨인이 장식하는 건 흥미롭다. 가웨인이 여정을 떠나면서 만난 여러 사건들이 자신을 되돌아보게 만든다는 의미이기도 하며, <그린 나이트>가 이를 통해 중세 기사 문학을 다시 되돌아보며 새로운 해석을 낳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를 통해 <그린 나이트>는 기사도, 명예에 냉소적인 반응을 취한다. 방탕한 삶을 즐긴 가웨인, 만용이 부른 운명론적 게임, 타의로 시작한 여정, 죽음 대신 삶에 집착해 자신과 국가를 파멸시킨 가웨인의 최후. 그뿐만 아니라 얼마 전까지 보잘것없었던 자가 며칠 간의 여정만에 위대한 인물로 변한다는 모순, 전설적인 기사들이 녹색 기사의 게임 제안에 소극적으로 임하는 모습은 이 영화가 어떤 태도를 지니고 있는지 명확하게 알려준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영화의 결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도대체 가웨인은 어떻게 된 것이란 말인가. 삶을 택한 미래의 가웨인은 헛된 명예와 욕망을 안고 살아가다 파멸한다. 무언가 결심한 그는 마법의 허리띠를 마침내 벗고 목이 잘려 죽는다. 다시 녹색 예배당, 죽음을 택한 가웨인은 마법의 허리띠를 벗고 녹색 기사의 도끼가 자신의 머리를 내려치길 기다린다. 후자의 가웨인은 지난 여정의 순간들에서 깨달음을 얻은 상태이다. 자신이 삶에 집착해봤자 죽음을 막을 수는 없다. 자신의 유한성을 깨닫고 죽음을 받아들이는 그의 모습은 그가 진정으로 성장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러자 녹색 기사는 가웨인의 선택을 기특해한다. 그리고 말한다. "Off with your head." 이 대사는 "너의 목을 자르겠다"로 해석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너의 목을 가져가라"라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이러한 중의적 표현은 영화의 결말을 더욱 모호하게 만든다. 그리고 가웨인의 마지막 선택은 삶을 택했을 수도, 죽음을 받아들였을 수도 있다. 더 나아가 녹색 기사가 가웨인을 살려주었을 수도, 정말로 죽였을 수도 있다. 중요한 건, 가웨인이 죽음을 받아들인 그 순간, 기사가 되었다는 점이다. <그린 나이트>는 기사도와 명예를 해체하고 재해석하여 새로운 담론을 형성했다. 동시에 압도적인 비주얼과 음악으로 영화적 체험을 하게끔 만들었다.


원작에서 가웨인은 죽음이 두려워 허리띠를 숨겼다. 영화의 가웨인은 명예의 실체를 목도하고 녹색 기사의 도끼를 받아들인다. 자신을 되돌아보는 여정에서 그는 마침내 한층 성장했다.


아기 예수가 태어난 날, 가장 신성스러운 날, 그는 그렇게 기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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