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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스콘 Oct 06. 2021

예정된 실패

<강철비2: 정상회담>이 걸어간 실패의 길

*스포일러를 포함합니다*


영화를 보고 난 후, 나는 양우석 감독이 상당히 빼어난 속편을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강철비2: 정상회담>(이하 <정상회담>)은 전편에 이어 보다 확장된 담론을 형성한다. 1편이 한반도 문제를 중점적으로 다루었다면, 2편 <정상회담>은 한반도를 넘어 동북아 정세와 미중 갈등을 다룬다. 이전에 양우석 감독은 2편이 1편과 상호보완적 관계에 놓여 있다고 한 바 있는데 이는 정확하다. 그는 현재 우리가 처한 정치적 상황이면서 가장 까다로운 소재 중 하나를 사용했다. 그럼에도 양우석은 이를 무서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논쟁에 불을 붙이고 위험할 정도로 돌진했다. 그래야만 담론이 형성되고 많은 사람들이 논쟁을 벌일 테니까. 나는 이러한 감독의 태도에 대해 탄복을 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의 한국 영화계에서 양우석의 뚝심은 실로 진귀하다.


탁월하고 영리한 연출

또 하나 놀란 점은 연출이다. '한반도 평화를 남과 북이 결정할 수 있다면?'이라는 질문에서 시작된 게 1편이라면, <정상회담>은 '한반도 평화는 남과 북이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라는 체념에서 시작한다. 이러한 체념의 태도는 영화에서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대한민국은 한반도 평화 이슈에서 배제된 존재다. 남북미 정상회담에서 한국이 북한과 미국의 논쟁에 끼어들지 않거나, 미국과 중국, 그리고 일본이 한반도 문제에 개입하는 동안 노심초사하는 한국 정부의 모습에서 이를 느낄 수 있었다. 한국 대통령은 그저 비공식 석상에서 북한 위원장과 미국의 대통령에게 첨언만 하는 게 전부다. 남북문제를 다룬 영화 중 이런 시선과 연출을 한 역사가 있었나 싶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양우석의 연출에 반가운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오히려 이 연출 덕분에 양우석 감독이 공부를 많이 한 티가 역력했다고 느꼈다. 강대국들의 입장과 이해관계, 첨예한 대립은 얕은 지식만으로 알 수 없는 것들이다. 자국의 이익을 최우선 하는 미국, 한반도 통일을 막고자 뒤에서 음모를 꾸미는 일본과 중국, 한반도 평화를 정착하려는 대한민국. 이렇듯 복잡하게 얽힌 이야기들을 양우석은 관객이 어려워하지 않도록 설계했다. 적재적소에 정상 간 대화와 각 정부의 상황, 잠수함에서 벌어지는 액션을 배치해 관객이 기대하는 것들을 보여준다. 또한 엔딩의 경우 전편이 극우에 가까운 보수적 관점에서 마무리 지었다면, 이번에는 진보적 관점에서 마무리 지었다. 이는 양우석 감독이 특정 성향이 치우치지 않고 두 입장을 나타낸 것이다. 즉, <정상회담>은 반드시 <강철비> 연장선상에서 바라보아야 하며 이를 통해 양우석의 중립적 위치를 확인할 수 있다.


관객들이 간과한 체념의 태도

이러한 양우석의 연출에 대해 반감을 표하는 관객들이 예상보다 훨씬 많았다는 건 놀라운 일이다. 이를테면, <정상회담>이 친북반미 메시지를 노골적으로 보인다는 평이다. 미국 대통령을 악하고 무지하게 그렸으며 북한 지도자를 선하고 멋지게 그렸다는 게 그 근거다. 나는 이들이 완전히 잘못짚었다고 생각한다. <정상회담>은 절대 친북반미 영화가 아니다. 한경재(정우성) 대통령이 조선사(유연석) 위원장에게 대놓고 면박을 주는 장면은 약하지만 통쾌함을 준다. 쿠데타를 일으킨 박진우(곽도원)와 그의 세력은 북한이 얼마나 불안정한 정치체제를 갖고 있고, 강경파가 얼마나 맹목적인지 보여준다. 스무트(앵거스 맥페이든) 대통령은 어떠한가. 그가 조롱에 가까운 풍자를 당한 건 맞다. 그러나 후반부로 갈수록 그는 성숙한 지도자가 되어가지 않나. 정말 반미 메시지를 내포한다면, 미국이 한반도 문제 개입을 포기하고 끝까지 악한 세력으로 남아야 한다. 하지만 영화는 한경재 대통령이 스무트 대통령에게 공을 넘기려 하거나 남북미가 화합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여기에 어떤 반미 메시지가 있단 말인가.


또 하나의 이해할 수 없는 반응은 이 영화가 지나치게 낙관적이라는 평이다. 북한이 핵을 포기한다는 설정, 남북미 정상이 한데 모여 평화를 선포하는 메시지는 좀처럼 관객들이 받아들일 수 없었나 보다. 그도 그럴 것이 영화 개봉 얼마 전에 북한이 남북 연락사무소를 멋대로 폭파해 북한에 대한 혐오가 극에 달한 상태였기에 관객의 반감은 더 심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이 영화가 낙관적 태도가 아닌 체념의 태도를 취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생각해보라. 조선사는 우리가 평소 생각한 북한 위원장과 굉장히 다른 모습이다. 마른 몸매에 인민을 생각하는 마음, 그리고 핵을 포기하겠다는 개혁적인 성향을 띤다. 지금의 북한 위원장과 전혀 다르다. 스무트 대통령 역시 고집이 세고 막무가내이긴 하지만, 일련의 사건들을 겪으면서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고 한반도 평화를 위해 적극적으로 나선다. 이러한 판타지적 사건들이 있어야만 한반도 평화가 가능하다는 게 양우석의 결론이 아닐까? 지금의 상황으로는 평화는커녕 대화 자체가 불가능하다. 양우석 본인도 이를 알았을 것이다. 따라서 영화처럼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벌어져야만 한반도 평화가 실현된다는, 낙관적이기보다 비관적이고 체념적인 태도를 취한다.


더 대담해지고 직설적인 화법, 독이 되다

하지만 <정상회담>에는 전편에 없던 단점들이 우후죽순 나타나곤 했다. 그나마 예상이 가능했던 단점은 바로 직설적인 화법이다. 사실 이는 전편의 단점이기도 했다. 지나치게 노골적인 대사와 메시지가 약간 거부감이 들었다는 평은 꽤 많았다. 하지만 나는 이를 단점으로 여기지 않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이러한 화법이 극을 지탱하는 데 큰 역할을 했고, 한국 영화계에 좀처럼 나타나지 않는 강점이라고 생각했다.


<정상회담>은 조금 다르게 봐야 할 것 같다. 양우석 특유의 직설적 화법은 전편보다 더욱 선명하게 계몽적 태도로 변질됐다. 적어도 전편에서는 노골적인 대사와 장면이 나와도 상황에 맞게 배치해 거부감을 최소화했지만, <정상회담>에서는 그러한 안전장치마저 없었다. 이를테면, 한경재가 스무트에게 독도 강연을 펼치는 장면이나 스무트와 조선사를 혼내는 한경재의 모습, 쿠키영상에 배치된 한경재의 연설은 과했다. 내가 볼 때 이는 양우석 감독이 할 말이 너무 많아 생긴 문제 같다. 그는 이전에 "<강철비> 시리즈는 하고 싶은 이야기와 해야만 하는 이야기 중 후자에 속한다"고 한 바 있다. 그는 관객에게 해야만 하는 이야기를 너무 많이 쏟아냈다. 이러니 관객들은 금방 질리고 피로해질 수 밖에 없다. 차라리 미중 갈등에 대한 심화적인 이야기들을 풀어내고, 각 정부 간 수싸움을 더 진지하게 다루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부재의 연속

그렇다면 전편에 없던 단점들은 무엇이었을까. 우선 디테일의 부재다. <정상회담>에는 전편의 섬세함이 없다. 물론 전편도 극의 진행을 위해 고증의 생략이 있긴 했지만, 이는 개연성에 큰 지장을 주지 않았다. 하지만 <정상회담> 속 디테일의 부재는 심각하다. 이를테면 쿠데타 시퀀스를 뽑을 수 있겠다. 남북미 정상이 모인 회담 자리에서 쿠데타가 발발한다. 세 정상은 황당할 정도로 쉽게 납치된다. 그것도 세계 최강국 미국의 정상이 북한 군인들에게 납치된다는 설정은 납득하기 어렵다. 이렇듯 가장 공 들여야 할 쿠데타 시퀀스는 매우 빠르게 지나가고 세 정상들의 리액션도 짧아 감흥이 없다.


두 번째는 좋은 유머의 부재다. <강철비>의 유머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은 관객들이 꽤 존재한다는 걸 안다. 그럼에도 내게 큰 거부감은 없었다. 지드래곤의 노래를 활용한 유머와 북한에 대한 편견 아닌 편견을 활용한 유머는 웃음이 지어질 만큼의 정도였다. <정상회담> 속 유머는 심각하다. 오히려 극의 흐름을 방해하는 게으르고 끔찍한 유머였다. 스무트 대통령을 향한 조롱에 가까운 풍자는 진부하고 심드렁하다. 방귀와 담배 유머는 핵과 협상을 은유하는 것이겠지만 관객에게 다가오지 않으니 이보다 명백한 실패가 어디 있겠나.


마지막은 좋은 캐릭터 활용의 부재다. 한경재 대통령은 한없이 선한 인물이다. 그는 언제나 옳고 바르다. 스무트 대통령은 (실제 모델도 그렇긴 했지만) 천박하기 그지없는 언행을 일삼는다. 박진우는 신념만 그럴 듯 하고 보여준 게 없는 인물이다. 도대체 이 캐릭터는 뭐란 말인가. 그저 맹목적으로 중국을 신봉하고 괴성만 지를 뿐이다. 이 멍청한 악역에게 우린 무엇을 얻을 수 있나. 오히려 조연 캐릭터인 장기석 부함장(신정근), 미국 부통령(크리스틴 달튼)이 더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전편의 두 철우가 상당히 매력적으로 다가온 것과 상반된다.


정리하자면, 전편에 이어 무거운 주제를 끝까지 밀고 들어가는 뚝심과 탁월한 연출, 매력적인 조연 캐릭터의 열연, 묵직한 잠수함 액션과 음향은 가히 훌륭했지만, 무거운 주제를 가볍게 만드는 게으른 유머, 주연 캐릭터의 평면성, 디테일의 부재로 생긴 부실한 서사는 큰 아쉬움이었다. 뛰어난 장점과 반대되는 끔찍한 단점이 있었기에 이 영화가 더 아쉬워진다. 분명 더 잘 만들 수 있었을 것이다. 진지한 정치 스릴러와 웃음을 주는 블랙 코미디 사이를 망설일 뿐 이도 저도 아닌 선택을 한 게 가장 큰 패착이라고 본다. 극중 한경재는 그레이엄 앨리슨의 『예정된 전쟁』이라는 책에 대해 이야기한다. 패권 국가와 신흥 강대국 간 대립은 불가피하다는 내용의 책이다. 즉, 패권 국가 미국과 신흥 강대국 중국의 예정된 전쟁을 의미한다. 그 책의 제목처럼 <정상회담>도 전편과 충돌하는 요소 탓에 '예정된 실패'로 향하고 있던 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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