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알아”
“됐으니까 새로운 걸 얘기해 봐”
직장에서 업무를 하면서 상사로부터 자주 듣는 말이다. 대부분의 경우 상사가 부하보다 업무에 대한 경험이나 지식이 많아 상사는 부하가 말하려는 내용을 끝까지 듣지 않아도 자신의 과거 경험에 비춰 쉽게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상사의 이런 믿음은 굉장히 위험해 자신을 함정에 빠뜨릴 수 있다.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커뮤니케이션 스킬’에 대한 필요성과 중요성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커뮤니케이션과 관련된 많은 책이 서점에서 꾸준히 팔리는 것을 보더라도 사람들로부터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 중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어려움을 느끼는 커뮤니케이션 스킬 중 하나가 ‘경청’이다. 경청의 중요성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강조하지만 실제로 경청이 힘든 이유 중 하나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상대방이 말을 하기 시작하면 상대방의 말로부터 다양한 정보를 수집하고, 수집된 정보를 해석하고 자기에게 미치는 영향을 평가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해석된 정보가 자신에게도 영향이 있다고 판단되면 더 많은 정보를 요구하거나 재빨리 반응한다. 만약 부장이 사장으로부터 자신의 자리에 오라는 말을 들으면 모든 일을 제쳐놓고 사장실로 뛰어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지만 “부장님, 제가 상의드릴 것이 있습니다”라는 부하의 말에 대해 사장을 대할 때와 같은 그런 모습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 이유는 자기 나름대로 상대방의 말에 대해 ‘부하가 자신에게 미치는 영향이 사장보다 중요하지 않다’고 평가하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말을 제대로 듣는 것이 인간관계나 업무에서 굉장히 중요하지만 잘 되지 않는 첫 번째 이유는 살아오면서 ‘다른 사람의 말을 듣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 제대로 배운 적이 없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초등학교에서부터 대학교에 이르기까지 학교에서 배우는 대부분의 내용은 ‘말하기’와 ‘쓰기’와 같이 자신의 생각을 다른 사람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방법을 배우지 ‘다른 사람의 말을 어떻게 하면 잘 들을 수 있을까?’ 혹은 ‘상대방의 말을 잘 들었을 때 내가 얻을 수 있는 것들’과 같은 내용에 대해서는 배우지 않는다.
‘말하기’와 ‘듣기’의 차이는 무엇일까? 말하기나 쓰기는 상대방의 존재와 관계없이 자신의 생각을 밖으로 내보내는 일방향의 소통이고 듣기는 상대방의 생각을 자신이 받아들여야 하는 양방향의 소통이다. 작년 말부터 몇 회에 걸쳐 ‘힘을 빼면 사람이 보인다’와 ‘힘과 힘의 대결은 패자만 남긴다’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설명한 ‘힘의 사용’으로 설명하면 ‘말하기’는 힘을 밖으로 내보내는 역할이고 ‘듣기’는 상대방의 힘을 수용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경청에 대해 배운 적이 없다는 의미는 상대방의 힘을 받아들이는 방법을 알지 못한다는 것과 같다.
많은 리더십이나 커뮤니케이션 과정에서 경청을 커뮤니케이션 스킬 중 하나로 다루고 있지만 경청은 ‘스킬’보다는 ‘태도’와 더 많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 경청에 대해 한 번도 배워본 적이 없는 사람도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이 하는 말이나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말은 온 정신을 집중해 듣는다. 주변 사람들로부터 듣는 금연하라는 충고를 무시하던 사람도 의사로부터 “지금 이대로라면 생명에 영향을 받을 수 있습니다”라는 말을 들으면 바로 담배를 끊은 것도 의사의 권유가 자신에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자신이 싫어하는 사람에 대해 “그 사람이 당신에게 도움이 된다”라고 주변에서 아무리 강조해도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이처럼 경청은 기술이 아니라 상대방을 대하는 태도가 더 중요하다.
상대방에 대한 긍정적인 태도는 저절로 상대방의 말에 귀를 기울이게 만든다. 이를 위해서는 상대방과의 ‘관계의 질’을 높일 필요가 있다. 관계의 질을 높이는 방법이 경청을 잘하는 방법이 된다. 관계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당사자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 혼자서 하는 노력은 노력이 아니다. 직장 상사가 하는 착각 중 하나는 ‘내 마음을 부하들은 알 거야’이다. 이런 생각을 가진 상사는 부하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는 일방적인 대화를 하게 된다. 예를 들어 상사 중에는 문제가 발생해 상의하려는 부하에게 문제의 해결 방법보다는 원인에 대해 부하를 질책하는 사람이 있다. 상사는 부하를 믿고 자신의 답답함을 큰소리로 표현했다고는 하지만 상사의 질책을 들은 부하는 ‘믿은 바보지. 다음부터는 무슨 일이 있어도 얘기하지 않는다’와 같은 생각을 하게 된다. 반면 ‘내가 화를 내면 부하가 어떻게 될까?’라고 자문하는 상사는 부하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말을 함부로 말하지 않는다. 상사의 이런 사소한 태도가 부하와의 관계를 결정짓는 단초가 된다.
경청이 어려운 두 번째 이유는 ‘상사는 말하는 사람이다’라는 왜곡된 생각이다. 상사는 부하에게 업무를 지시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말을 해야 한다. 하지만 상사가 일방적으로 지시만 내릴 경우와 부하의 의견을 들으면서 지시를 내릴 때와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부하가 상사의 지시를 그저 따르기만 한다면 그 조직은 어떻게 될까? 아마도 시간이 지날수록 상사가 지시해야 하는 내용은 점점 늘어나야 하고, 이런 부하의 모습을 보면서 상사는 답답해진다. 이런 답답한 마음은 부하를 향한 ‘화’로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부하 또한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자기가 시키는 대로 하고 있는데 왜 저렇게 화를 내? 나보고 어떡하라는 거야’와 같은 생각을 하면서 상사의 질책에 억울해한다. 이런 일이 몇 번 반복되면 부하는 더 이상 상사에게 자신의 의견을 말하지 않는다. 설사 상사가 잘못된 정보를 가지고 말하더라도 그대로 실행하게 된다. 그저 상사의 지시를 따르는 것이 자신의 안전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조직의 분위기가 이렇게 흘러가면 그 조직이 망하는 것은 시간문제이다. 상사와 부하 모두가 피해자가 되는 것이다.
상사가 해야 할 일은 부하의 ‘자기 결정권’을 인정해 주는 것이다. 상사가 부하의 자기 결정권을 인정한다는 의미는 부하에게 책임도 함께 지라고 하는 것과 같은 의미를 갖는다. 상사의 일방적인 지시를 따르는 부하에게 상사는 책임을 물을 수가 없다. 모든 것이 상사 자신의 결정이었기 때문이다. 상사가 자신의 생각을 수용한다고 느끼는 부하는 자신의 말에 책임을 지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하게 된다. 스스로 생각하고 더 좋은 대안을 찾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하게 된다. 자신을 인정해주는 상사에게 더 좋은 모습을 보이기 위해 노력할 뿐만 아니라 대화도 더 자주 하게 된다. 이런 노력은 상사와 부하 모두에게 신뢰를 높이는 계기를 만들어주면서 관계의 질도 높이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상사의 지시가 없더라도 부하가 능동적으로 움직이게 되면 상사에게는 더 많은 시간 여유가 생기게 된다. 이런 시간을 활용해 상사는 회사의 경쟁력을 높이는 결과를 얻기 위해 노력한다면 자신의 평가 또한 높아지게 된다. 이런 결과의 출발점은 ‘부하의 말을 잘 듣겠다’는 상사의 결심이다. 이런 결심이 중요한 이유는 모든 부하가 자신의 생각을 조리 있게 말할 수 있는 달변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조금 어눌하거나 느리게 말하는 부하를 향해 “그래서 결론이 뭔데?”라는 말을 하는 순간 부하는 숨이 턱 막히는 압박감을 느끼게 된다. 이런 상태에서 자신의 생각을 상사가 원하는 대로 조리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상사가 자신의 답답함을 밖으로 꺼내는 순간 부하는 압박감을 느끼면서 상사가 바라는 바를 해소해주기는커녕 오히려 상사가 원하는 결론과 멀어지는 악순환을 만들기 시작한다.
조직의 리더는 이런 악순환을 선순환으로 만들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할 필요가 있다. 코칭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 중 하나가 ‘사람은 누구에게나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자신의 부하가 능력이 있다고 믿는 상사와 그렇지 못한 상사와는 부하를 대하는 태도에서 많은 차이가 난다. 부하를 믿게 되면 부하의 의견을 주의 깊게 듣겠지만 부하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는 경우 부하의 의견에 대해 실현 가능성을 의심하면서 듣게 된다. 상사가 부하의 의견을 의심하게 되면 ‘저게 가능한 거야?’라고 생각하게 되고, 부하의 말에 대해 부정하는 의견을 내거나 더 이상 들으려 하지 않고 말을 중단시킨다. 부하의 의견에 호기심이 없기 때문에 부하와의 대화에 가치를 두지 않게 되고, 결론적으로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지 아는지에만 초점을 맞추게 된다. 상사의 이런 태도는 부하와의 관계 단절을 가져온다. 부하의 입장에서 ‘내 의견이 상사가 원하는 수준에 이를 수 있을까?’라는 자체 검열 기준을 통과해야 상사에게 말할 용기를 내게 되는데 자체 검열 기준을 넘었다고 판단하는 아이디어라고 스스로 자평하기란 쉽지 않다. 이런 이유로 부하는 ‘괜히 아이디어를 말했다가 야단맞는 것보다는 시키는 대로만 열심히 하자’라고 결론은 내리게 된다.
상사가 부하의 수동적인 태도를 능동적으로 변화시키지 않는 한 조직의 성과향상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상사가 아무리 뛰어난 능력을 지니고 있다고 하더라도 모든 일을 혼자서 할 수는 없다. 따라서 상사는 부하가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조직의 성과향상을 위해 상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부하의 모든 것을 품어줄 수 있는 포용력이다.
상사가 자신의 모든 것을 받아준다고 믿게 만드는 가장 쉬운 방법 중 하나는 상사가 인내력을 가지고 부하의 말을 끝까지 들어주는 것이다. 부하가 결론만 말하지 않고 과정까지 여유를 가지고 말하는 데 길어야 5분 정도의 시간이 더 필요할 뿐이지만 부하의 입장에서는 그 5분이 정말 소중한 시간이라고 느끼게 된다. ‘상사가 자신의 말을 끝까지 들어준다’는 생각이 들면 마음에 여유가 생기면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정보를 온전하게 쏟아낼 수 있다. 이렇게 부하가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면 상사는 이런 정보를 바탕으로 의사결정을 할 수 있게 된다. 또한 부하의 입장에서 상사가 자신의 말을 처음부터 끝까지 자세히 듣는다고 생각되면 업무 처리의 모든 과정을 소홀히 할 수 없게 된다. 또한 자신의 말에 대해 책임감을 느끼게 되고, 업무의 질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게 된다. 결국 상사의 입장에서 힘을 쓰지 않고 ‘경청’이라고 하는 힘을 빼는 조그만 노력이 조직의 성과뿐만 아니라 서로를 신뢰하는 조직문화를 새롭게 만들 수도 있는 힘을 발휘하게 된다.
상사가 부하의 말을 경청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상사는 부하의 역할 모델’이기 때문이다. 부하는 알게 모르게 상사를 닮아간다. 부하의 머릿속에 ‘상사는 부하의 말을 잘 들어주는 사람이다’와 ‘상사가 되면 부하의 말을 끝까지 들어주지 않아도 된다’는 것 중 어떤 것이 조직이나 부하의 성장에 도움이 되겠는가?
상사가 부하를 위해 베풀 수 있는 것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 일이 끝나고 부하와 술 한 잔 하면서 자신의 경험을 부하에게 말해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부하에게 근무 시간에 실제로 자신의 일하는 방법을 보여주면서 배우게 하는 방법이 효과도 높고 부하도 선호한다. 상사가 성과를 높이는 이론을 아무리 많이 알고 있더라도 실행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오히려 부하에게 자괴감만 심어줄 뿐이다. 상사가 부하에게 어쩌다 한 번 큰 것을 베풀기보다는 작은 것이라도 자주 부하에게 주는 것이 더 도움이 될 수 있다. 지금 이 순간 내가 부하에게 베풀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정리한 다음 하나씩 실천해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