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짜증 나!

by 최환규


며칠 전 강의가 있어 서울로 가는 좌석버스를 탔다. 옆자리가 비어서 누가 옆에 앉을까 하고 기대에 부풀어 있는데 인상을 있는 대로 찡그린 어떤 여자분이 옆자리에 앉자마자 지인들과 통화를 시작했다. “엄마, 짜증 나 죽겠어. 내가 서울역 버스정류장에서 버스 기사 아저씨한테 “아저씨, 경희대 가요?”라고 물었는데, 간다는 거야. 그래서 버스를 탔는데 갑자기 수원으로 가는 거야. 그래서 기사 아저씨한테 “아저씨, 경희대 간다면서 왜 여기로 가요?”라고 물었더니 “여기도 경희대입니다.”라고 말하는 거야. 어쩔 수 없이 중간에서 내렸는데 정말 짜증 나. 물었으면 제대로 가르쳐줘야지 이게 뭐야. 시간도 1시간 넘게 썼잖아. 미치겠어.” 같은 내용으로 몇 사람에게 전화하더니 자신도 지쳤는지 잠을 자기 시작했다. 그 통화를 계속 들어야만 했던 필자에게도 드디어 평화가 찾아왔다.


자, 지인으로부터 이런 종류의 전화를 받았다면 어떻게 대화를 이끌어가겠는가? 아마도 대부분은 “그 아저씨 왜 그래? 제대로 알려줘야지 어떻게 그렇게 엉터리로 길을 알려줘? 나쁜 사람이네.”와 같은 종류의 말을 하게 될 것이다. 아니면 “네가 버스를 제대로 타지 못하고 왜 짜증을 내? 한심스럽게…….”와 같은 말을 해 상대방을 더욱 화나게 만드는 예도 있다. 그럼 이런 상황에서 가장 듣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

버스를 잘못 타 소중한 시간을 어이없게 허비한 사람은 몹시 화가 나고 당황스럽기도 했을 것이다. 자기에게 제대로 알려주지 않았던 버스 기사에게도 화가 났을 것이고……. 이런 상황을 만든 자신에게도 화가 났을 것이다. “짜증 나”라는 한 마디에 이런 모든 상황이 포함된 것이다. 또한 자신의 지인에게 전화한 목적은 이런 상황을 겪은 자신의 마음이 얼마나 답답하고 화가 나는지를 알아달라고 하는 하소연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상황에 있는 사람에게 가장 도움이 되는 말은 상대방의 마음을 알아주는 “그래, 너 정말 힘들었겠다.” 혹은 “많이 당황스러웠겠네.”와 같이 내가 자신의 마음을 이해하고 있다는 표현을 통해 상대방을 안심시키는 말이다. 상대방이 자신의 답답한 마음을 알아주면 마음이 편해지기 때문이다. 반대로 도움이 안 될 뿐만 아니라 상대방의 마음에 더 큰 상처를 주는 말도 있다. “네가 잘못해 놓고 누구에게 화를 내.” “야, 그만해라. 그렇게 짜증 낸다고 뭐가 해결되냐?” 혹은 “재수 없다고 생각하고 빨리 와.”와 같은 말들은 상대방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일상에서 이런 상황은 누구나 경험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사건이 벌어지고 난 다음이다. 아무리 지인에게 전화하고, 자신을 안내한 버스 기사를 원망하더라도 개선되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경우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도움이 되는 것일까?’ ‘다음에 이런 일이 발생하면 어떻게 대응할까?’에 대해서만 생각해야 한다.


이 사건을 처음부터 다시 살펴보자. 버스 기사에게 “이 버스가 경희대학교에 가나요?”라고 물으면 그 기사는 당연히 “네, 갑니다.”라고 대답한다. 왜냐하면 경희대학교 캠퍼스가 서울과 수원 두 군데에 있기도 하고 그 버스의 종점은 분명히 경희대학이기 때문이다. 그럼 어떻게 물어봐야 정확한 답을 얻을 수 있을까? 내가 원하는 대답을 얻기 위해서는 “서울 동대문구 회기동에 있는 경희대학교에 가나요?”라고 물어봐야 한다. 이렇게 정확한 대답을 얻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질문을 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상대방은 질문하는 사람이 기대하는 답을 알 리가 없기 때문에 제대로 대답할 수 없다. 그래서 자신이 잘 모르는 장소에 갈 때는 사전에 정확한 정보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경희대 캠퍼스가 두 군데에 있다는 사실을 미리 알았더라면 “어디에 있는 경희대에 갑니까?”라고 질문을 했을 것이고 자신이 가고자 했던 곳으로 정확하게 갈 수 있었을 것이다. 업무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자신이 잘 모르거나 이해가 되지 않는 내용에 대해서는 반드시 확인해야 업무에서의 실수를 줄일 수 있다.


짜증을 내면서 여기저기 전화를 하는 행동 또한 자신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한다. 답답한 마음을 이해해 달라는 의미로 다른 사람에게 말을 하지만 “너 정말 답답하겠다.”라는 말을 듣는 경우는 드물고, 다른 사람이 그런 말을 해 줄 의무도 없다. 더구나 자신의 실수를 많은 사람에게 알릴 때 얻을 수 있는 것은 ‘나는 바보다’라는 광고효과뿐이다. 특히 업무적으로 이해관계에 있는 사람들에게 이런 실수를 알리는 행동은 자신을 낭떠러지로 밀어 넣을 수도 있는 아주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짜증 나!’라는 단어는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단어 중에서 사용 빈도가 가장 빈번한 단어 중 하나일 것이다. 하지만 내가 아무리 짜증을 내더라도 오로지 내 기분이 더 악화할 뿐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결코 나를 돕는 말이 아니다. 또한 이 단어는 우리를 미래로 향하게 만들지 않고 과거에 머물게 만든다. 따라서 내 뜻대로 되지 않은 사건을 경험하면 ‘짜증 나’라고 말하기보다는 잠깐의 여유를 가지면서 짜증 나는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는 시간을 갖자. 그리고 ‘지금부터 내가 어떻게 해야 이 순간을 생산적으로 만들까?’를 생각하자. 이런 생각과 행동이 자신을 보호하고 미래로 향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된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감정노동이 어려운 이유는?